## 챕터 1: 검은 침묵의 발견
아스트로스호의 함교는 칠흑 같은 심우주의 한 점과 같았다. 망원경으로도 가늠할 수 없는 아득한 어둠 속에서, 함장 서진우는 늘 그렇듯 담담한 시선으로 전방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일상적인 궤도 계산과 항성 데이터가 끊임없이 흘러가는 풍경은 지루하기까지 했다. 벌써 세 번째 은하 간 항해였다. 미지의 것을 찾아 나서는 탐사의 매력은 이미 빛바랜 추억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함장님, 별다른 이상 없습니다. 예상 궤도 오차는 0.001% 미만입니다.”
항법사 김민준이 정례 보고를 올렸다. 그의 목소리에도 피로가 묻어 있었다. 이 망망대해 같은 우주에서 ‘별다른 이상’이란 말은, 말 그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뜻이었다.
“좋아. 다음 관측 지점까지 현재 속도 유지.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휴식 취하며 대기하라.”
서진우의 나직한 지시에 따라 함교의 분위기는 다시 잔잔한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침묵은 늘 우주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차갑고, 거대하며, 닿을 수 없는.
바로 그때였다.
“……함장님!”
김민준의 목소리가 한순간 날카롭게 튀어 올랐다. 그는 경악한 눈으로 자신의 콘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서진우의 목소리에도 미묘한 긴장이 깃들었다. 김민준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알 수 없는 에너지 파형이 감지되었습니다. 극히 미약하지만… 지속적으로, 그것도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공간에서요!”
서진우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면 공유해.”
메인 스크린에 김민준의 콘솔 화면이 투영되었다. 희미하게 깜빡이는 녹색 점 하나가 우주 배경 속에서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평소라면 잡음으로 치부할 만한 미세한 신호였지만, 김민준은 절대 실수를 할 항법사가 아니었다.
“수아, 이거 좀 봐줘.”
서진우는 함교 구석의 연구용 콘솔 앞에 앉아있던 선임 과학자 이수아를 불렀다. 그녀는 늘 그렇듯 흥미로운 무언가를 발견한 듯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게… 뭐죠? 이런 파형은 처음 보는데요. 인공적인 건가요, 아니면 자연적인…?”
이수아가 스크린에 바싹 다가붙어 데이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함장님! 이 신호… 저희가 감지할 수 있는 모든 물질 스펙트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어떤 원소와도 매칭되지 않아요. 게다가… 거리가 계속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가까워지고 있다고? 그쪽에서 접근하는 건가?” 서진우의 미간이 좁아졌다.
“아니요, 저희가 접근하는 겁니다. 분명 이 신호는 아주 미약했고, 저희 탐지 범위 밖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저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저희에게 접근해오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지금은 불과 수백만 킬로미터 내에 있습니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상황은 급변했다. 김민준은 다급하게 실시간 영상 시스템을 가동했다. 거대한 메인 스크린이 심우주의 풍경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었다.
모든 빛을 삼키는 듯한, 완벽한 검은색. 매끈하고, 단단하며, 그 어떤 곡선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기하학적인 형태. 굳이 비유하자면, 거대한 흑요석으로 깎아 만든 아파트 건물 크기의 정육면체였다. 하지만 그 정육면체는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었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우주 공간에 정지해 있었고, 별빛조차 그 표면을 비추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듯했다.
“젠장… 저게 대체 뭐야.”
기관장 박준영의 거친 숨소리가 함교에 울렸다. 그는 늘 침착한 사람이었지만, 저 정체불명의 물체 앞에서는 경외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스캔! 모든 가능한 센서로 저 물체를 스캔해!” 서진우가 명령했다.
하지만 이수아는 이미 여러 차례 시도한 듯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함장님. 어떤 센서도 통과하지 못해요. 전자기파든, 중력파든… 마치 저희의 모든 탐지 시도를 *흡수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아예 저희 우주와는 다른 물질로 이루어져 있거나요.”
“접근 각도 변경. 500미터 이내로 붙어.” 서진우의 목소리는 한층 더 낮고 단호해졌다. “탐사선 외부 카메라 준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보안팀은 완전 무장하고 대기하라.”
아스트로스호는 조심스럽게 미지의 정육면체에 다가갔다. 그 거대한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우주선 내부로 알 수 없는 압력이 전해지는 듯했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모두의 시선은 스크린에 고정되었다.
그리고 아스트로스호가 500미터 이내로 진입하는 순간.
거대한 검은 정육면체의 한쪽 면에서, 서서히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니, 균열이 아니었다. 마치 보이지 않던 이음새가 드러나는 것처럼, 완벽하게 맞물려 있던 틈이 조용히 벌어졌다. 틈은 점점 넓어졌고, 이내 우주선을 통째로 삼킬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에서는 어떤 빛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오직 무한한 어둠만이 존재했다.
이수아의 숨이 멎었다. “열렸어요…! 저 안쪽에서 뭔가 저희에게 반응한 거예요!”
박준영은 총을 움켜쥐었다. “함장님, 너무 위험합니다! 저 안이 뭐가 있을지 아무것도 몰라요!”
서진우는 망설였다. 이 미지의 존재는 인류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초월했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는 탐험가의 불굴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탐사팀을 꾸린다. 이수아, 박준영, 그리고 김민준, 나와 함께 간다.”
“함장님! 제가 너무 위험합니다!” 김민준이 외쳤다. 그는 항법사이지 전투원이 아니었다.
“네가 있어야 저 안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이 미지의 미궁에서.” 서진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시선은 거대한 검은 입구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곳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다. 인류에게 던져진, 어쩌면 최후의 던전일지도 모르는 미지의 문이었다.
완전 무장한 채, 아스트로스호의 소형 셔틀은 검은 정육면체의 입구를 향해 천천히 전진했다.
셔틀이 입구를 통과하는 순간, 모든 통신이 끊겼다.
안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어둠에 잠겨 있던 내부가, 셔틀이 들어서자마자 천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푸른 빛줄기가 마치 혈관처럼 벽과 천장을 타고 흘렀다. 그 빛을 따라 드러나는 내부는 상상할 수 없는 건축미를 자랑했다. 날카로운 각도로 꺾이는 복도, 위아래 구분이 모호한 공간, 그리고 알 수 없는 문양으로 가득 찬 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맙소사… 이건….” 이수아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게 다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함장님, 뭔가 기분이 찜찜합니다.” 박준영이 총을 단단히 쥐며 말했다.
셔틀은 거대한 격납고 같은 공간에 착륙했다. 내부의 공기는 서늘했지만, 인체에 해로운 기운은 감지되지 않았다. 팀원들은 셔틀에서 내렸다. 푸른빛이 일렁이는 통로 저 너머는 미지의 그림자로 가득했다.
“이쪽입니다, 함장님. 미약하지만 이쪽에서 희미한 에너지 흐름이 감지됩니다.” 김민준이 손목의 탐지기를 보며 말했다.
팀원들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복도는 끝없이 이어지는 듯했고, 걸을수록 미묘한 진동이 발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그 진동은 마치 거대한 기계가 느리게 움직이는 소리 같았다.
“함장님, 뭔가… 뭔가 달라요!” 이수아가 갑자기 멈춰서며 외쳤다.
그녀의 눈은 벽에 그려진,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문양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문양 하나가 희미한 빛을 내더니, 그녀의 손을 스치는 듯한 형체를 뿜어냈다.
“크악!”
이수아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그녀의 손목에 차고 있던 소형 탐지기가 지직거리며 연기를 뿜어냈다.
“수아! 괜찮나?!” 서진우가 그녀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이수아는 자신의 손목이 아니라, 허공에 떠 있는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까 문양에서 튀어나온 그것은, 마치 연기처럼 희미하지만 명확한 형태를 지닌 존재였다. 그것은 서진우와 팀원들의 주위를 맴돌더니, 이내 정면의 벽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이전에 없던 새로운 문이 열렸다.
새로운 문 저편에서는 더욱 강렬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마치 미지의 존재가 속삭이는 듯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젠장… 이 던전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는 건가, 아니면… 우리를 유혹하는 건가….”
박준영이 총구를 그 문으로 향한 채 중얼거렸다. 서진우의 눈빛은 흔들렸다. 그들은 이제 막 시작에 불과했다. 이 검은 미궁은 이제 막 그 진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