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공상과학)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스크린 속 망령, 1201호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어깨에 얹힌 뻐근한 피로가 조금은 가시는 듯했다. 미나는 퇴근 후 늘 그렇듯 몸을 소파에 파묻었다. 널따란 통창 너머로 번쩍이는 도시의 야경이 그림처럼 펼쳐졌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무감각하게 느껴졌다. 그저 고요와 휴식이 필요했다.

리모컨에 손을 뻗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는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것 같은데, 텅 비어 있었다. 미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상하다. 늘 같은 자리에 두는 습관이 있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몸을 일으켰다. 혹시 소파 쿠션 틈새로 빠졌나 싶어 뒤적였다. 없었다. 부엌으로 가봤다. 혹시 물 마시러 가면서 무의식적으로 들고 갔을까. 냉장고 문을 열고 시원한 물을 한 컵 따랐다. 식탁 위에도, 조리대 위에도, 그 흔한 리모컨은 보이지 않았다.

“뭐지, 진짜….”

혼잣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퇴근하고 들어오자마자 TV를 켜고 뉴스를 잠깐 봤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지. 그 다음엔… 리모컨을 테이블에 놓고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게 전부였다. 그 짧은 사이에 리모컨이 사라질 리 없는데.

미나는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테이블 위를 꼼꼼히 살폈다. 없었다. 혹시 바닥에 떨어졌나 싶어 발치도 더듬어 보았다.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왠지 모를 싸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기분 탓이겠지. 너무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고 헛생각이 드는 걸 거야.

그 순간, 미나의 시선이 작은 협탁 위로 향했다. 어제 선물 받은 예쁜 유리 오르골이 놓여 있는 그 협탁 위에, 거짓말처럼 검은색 리모컨이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 있었다.

“어…?”

미나는 한 발짝 다가갔다. 분명 아까는 없었다. 테이블 위에도 없었고, 소파 아래에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저곳에 있었다. 그것도 테이블에서 제법 떨어진, 오르골 옆에.

소름이 돋았다. 리모컨을 집어 들자 차가운 플라스틱의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그냥… 자기가 못 보고 지나쳤을 거라고 애써 합리화했다. 피곤하니까 그럴 수 있다. 사람이 살다 보면 깜빡할 수도 있는 일이다.

TV를 켜고 채널을 돌렸다. 불쾌한 기분을 털어내려 애썼다. 쿵. 갑작스러운 소리에 미나가 움찔했다.

“무슨 소리지?”

소파에서 일어섰다. 소리는 부엌 쪽에서 들려온 것 같았다. 접시라도 떨어뜨렸나? 미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조리대는 깨끗했고, 식탁 위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서랍장과 수납장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쿵. 또 한 번의 소리. 이번에는 현관 쪽에서 들린 듯했다. 미나는 조심스럽게 현관으로 다가갔다. 현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신발장도 멀쩡했다. 바깥에서 나는 소리인가? 위층인가 아래층인가? 이 늦은 시간에?

미나는 휴대폰을 들어 친구 지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지고, 이내 지은의 잠결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나? 이 시간에 웬일이야? 무슨 일 있어?”

“지은아, 나 좀 이상해….” 미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 노력했지만, 목소리는 이미 떨리고 있었다. “우리 집이 좀… 이상해.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나고, 물건이 제자리에 없어.”

“응? 무슨 소리야, 자다 깼니?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는 거 아니야? 아니면 위층에서 나는 소리겠지.”

“아니야, 지은아. 아까 리모컨도 그랬고, 지금은 쿵 소리가 두 번이나 났어. 집 안에서.” 미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말을 엿듣기라도 할 것처럼. “방금도 현관 쪽에서 났어. 근데 아무것도 없어. 문도 잠겨 있고.”

“아파트가 다 그렇지 뭐. 나도 전에 살던 오피스텔에서 새벽에 자꾸 누가 문 여는 소리 나고 그래서 무서웠는데, 알고 보니 옆집 아줌마가 새벽에 일찍 출근하시는 거였잖아. 착시나 착청 같은 걸 거야, 미나야. 너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는다고 했지? 잠 좀 푹 자봐.”

지은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섞여 있었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불신이 더 크게 묻어났다. 미나는 말문이 막혔다. 자신의 상황을 설명해도 결국 ‘기분 탓’이나 ‘스트레스’로 치부될 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야. 뭔가… 뭔가 여기 있어.”

그때였다. 쨍그랑! 등 뒤에서 들려온 엄청난 소리에 미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휴대폰이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심장이 발끝까지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자, 거실 중앙에 놓인 작은 탁자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 위를 장식하고 있던 유리 오르골은 산산조각이 나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흐읍…!”

미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분명 탁자는 거실 한가운데 안정적으로 놓여 있었다.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쓰러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와서 발로 걷어찬 것처럼. 오르골의 파편들이 섬뜩하게 반짝였다.

휴대폰 액정에서 지은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미나! 미나 괜찮아?! 무슨 소리야 방금?!”

미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눈은 이미 공포로 질려 있었다. 이건 착각이 아니었다. 이건 현실이었다. 누군가 분명히 저 탁자를 넘어뜨린 것이다. 하지만 집 안에는 자신밖에 없었다.

“지은아… 지은아… 탁자가… 오르골이… 누가… 누가 탁자를 넘어뜨렸어…!”

미나의 목소리는 흐느낌으로 변해 있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숨이 막혀왔다.

“미나야, 진정해! 일단 밖으로 나와! 1층으로 내려가 있어! 내가 지금 갈게!”

지은의 다급한 외침이 귓가에 울렸다. 미나는 겨우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바닥에 흩어진 유리 파편을 피해 기어가다시피 현관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도망쳐야 했다. 이 공간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 순간, 아파트 전체의 전기가 나간 것처럼 모든 불이 일제히 꺼졌다. 주변은 순식간에 암흑에 잠겼다. 쨍한 도시의 불빛마저 완벽히 차단된, 깊은 어둠. 휴대폰 액정에서 흘러나오는 푸른빛만이 유일한 광원이었다.

그리고 지은의 목소리가 들려오던 휴대폰에서, ‘툭’ 하는 소리와 함께 통화가 끊겼다.

완벽한 침묵.

어둠 속에서 미나는 심장이 터질 듯한 공포에 휩싸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거친 숨소리와 미친 듯이 뛰는 심장 소리만이 귓가를 울렸다.

그때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거실 한가운데서 무언가가 아주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르륵…. 드르륵….

마치 아주 무거운 가구를 바닥에 질질 끌고 오는 듯한 소리. 그 소리가 서서히, 미나가 있는 현관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더 가까워졌다.

드르륵… 드르르륵…!

그리고 바로 그 소리 위로, 낮고 쉰 듯한, 마치 흙먼지가 잔뜩 낀 듯한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스며 나왔다.

**”왔…구나….”**

소리는 너무나 가까웠다. 마치 미나의 바로 귀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미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