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차가운 돌바닥에 피가 흥건하게 배어들었다. 붉고 검은 피. 심연족의 피는 원래도 어둠을 닮았건만, 성스러운 신전의 대리석 위에서는 그 빛깔마저 저주받은 듯 기괴하게 번졌다. 카엘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엘라라를 등 뒤로 숨겼다. 그의 왼팔에서 뿜어져 나온 심연의 마력은 간신히 그들을 에워싼 기사들의 칼날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이미 깊게 베인 옆구리의 상처는 쉴 새 없이 검붉은 액체를 토해내고 있었다.

“카엘…!”

엘라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흰색 사제복은 이미 피와 흙먼지로 얼룩져 있었다. 여인의 손에서 반짝이던 성스러운 빛은 이미 꺼진 지 오래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절망과 분노, 그리고 지독한 사랑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성녀 엘라라. 감히 신성한 솔라리스 신전에서 심연족과 간통이라니…!”

대성기사장 레온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렸다. 그의 눈은 불타는 혐오로 가득했다. 그의 등 뒤로 늘어선 성기사들의 창끝이 번뜩였다. 그들의 눈에는 자비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카엘과 엘라라를 향한 것은 오직 처단뿐이었다.

“간통이라니! 우리는…!”

“닥쳐라, 심연의 개자식!”

레온이 카엘을 향해 검을 겨눴다. 그의 검에서 성스러운 광휘가 뿜어져 나왔다. 카엘의 심연 마력과 충돌하며 공기가 뒤틀렸다. 카엘은 고통으로 신음했다. 성스러운 힘은 심연족에게 독과 같았다.

“카엘… 제발…!”

엘라라가 울먹였다. 그녀는 카엘의 품에서 얼굴을 묻었다. 떨리는 손으로 그의 상처를 부여잡았다. 차가운 피가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감히 심연의 존재와 사랑에 빠진 죄. 신성한 맹세를 저버린 죄.

*“두려워 마. 엘라라.”*

카엘이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도 그의 검은 눈동자는 오직 엘라라만을 담고 있었다.

*“널 두고 죽진 않아. 절대.”*

그 말과 함께 카엘의 몸에서 검은 안개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에 기괴한 그림자 문양이 떠올랐다. 심연족의 각인. 그의 순수한 힘이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레온이 외쳤다.

“물러서라! 놈이 심연의 진정한 힘을 개방한다! 방패를 올려라!”

성기사들이 혼비백산하여 물러섰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검은 안개는 칼날처럼 날카롭게 휘몰아치며 그들의 방패를 산산조각 냈다. 비명소리가 신전 안을 가득 메웠다. 카엘은 피를 토해내며 간신히 버텼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 엘라라와 함께 죽을 수는 없었다.

엘라라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 그녀는 풋내기 사제에 불과했다. 금지된 숲, 그림자 덩굴이 뒤얽힌 심연의 경계에서 길을 잃었을 때였다. 맹독을 지닌 식물의 가시에 찔려 쓰러졌을 때, 검은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것이 바로 카엘이었다. 그의 피부는 밤하늘을 닮아 있었고, 눈은 깊은 어둠처럼 그윽했다. 세상이 말하는 괴물이 아니었다. 그는 다정했고, 따뜻했다. 상처받은 작은 새를 보살피는 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독을 빼주고, 그녀를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주었다.*
*“다음에…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까요?”*
*그때 그녀는 어리석게도 그렇게 물었다. 카엘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금지된 운명이 시작되었음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카엘! 제발 멈춰요! 당신 몸이…”

엘라라가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하지만 카엘은 듣지 못하는 듯했다. 그의 온몸에서 검은 기운이 솟구쳐 올랐다. 심연의 힘은 그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대가로 발휘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계속 힘을 쓰다가는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될 터였다.

“도망쳐라, 엘라라.”

카엘이 그녀를 향해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은 이미 흐려지고 있었다.

“혼자… 먼저 도망쳐.”

“무슨 소리에요! 당신을 혼자 둘 수는 없어요!”

엘라라가 절규했다. 그녀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신전의 차가운 바닥에 떨어지는 눈물은 카엘의 피와 섞여 희미한 무지개 빛을 띠었다.

“이것은 명령이야, 엘라라.”

카엘의 목소리에 일말의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남은 모든 힘을 끌어모아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그의 주변 공간이 일그러졌다. 시커먼 심연의 구체가 형성되며 끔찍한 기운을 뿜어냈다. 레온 대성기사장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망할! 저놈은 이미 미쳤다! 모두 물러서라!”

카엘은 심연의 구체를 성전의 천장으로 내던졌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신전의 돔이 부서져 내렸다. 돌무더기와 파편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혼란의 틈을 타 카엘은 엘라라의 손목을 잡아챘다.

“가자.”

그들의 머리 위로 밤하늘이 드러났다. 검은 구름이 잔뜩 낀 밤하늘은 그들의 운명을 비웃는 듯했다. 카엘은 잔해 더미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부상당한 몸으로 어떻게 그런 힘을 낼 수 있는지 엘라라는 알 수 없었다. 오직 그녀를 살리려는 처절한 의지뿐이었다.

그들은 무너진 신전의 지붕 위로 뛰어올랐다. 카엘은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의 숨소리는 더욱 거칠어졌다.

“어디로… 어디로 가려는 거죠?”

엘라라가 속삭였다. 밤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아래에서는 성기사들의 추격대가 이미 성전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어디든… 너와 함께라면.”

카엘이 힘겹게 대답했다. 그의 손이 엘라라의 뺨을 감쌌다. 차갑고 축축한 그의 손에서 피 냄새가 진동했다. 하지만 엘라라는 그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기댔다.

“미안해, 엘라라. 모든 것을 망쳤어.”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는 아무것도 망치지 않았어요.”

엘라라의 목소리에 다시금 결연한 의지가 담겼다. 그녀는 카엘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밤의 장막이 드리워진 도시 위로, 그들은 마치 한 쌍의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그들의 사랑은 이 세상을 뒤흔들었고, 이제 그들은 세상의 가장 깊은 곳으로 도망쳐야 했다. 어둠 속으로. 그곳만이 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안식처였다.

레온 대성기사장이 신전의 입구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무너진 돔 사이로 사라져가는 두 그림자를 그는 분노에 찬 눈으로 노려봤다.

“저놈들을… 반드시 찾아내라. 하늘 끝까지 쫓아서라도!”

그의 외침은 밤하늘에 메아리쳤다. 하지만 그 소리는 이미 멀어져 가는 두 연인에게는 닿지 않았다. 카엘은 엘라라를 품에 안고 도시의 어두운 지붕들을 가로질러 달렸다. 그들의 발아래로 불빛이 춤추는 도시가 보였다. 이제 그들에게 이 세상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그들의 앞에는 오직 미지의 어둠과 끝없는 추격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카엘은 자신의 품에 안긴 엘라라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여전히 희미한 빛이 일렁였다. 그 빛이 바로 카엘을 지탱하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심연의 끝에서 피어난 금지된 사랑. 그들의 도주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