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제1장. 잿빛 유랑**

하늘은 언제나 잿빛이었다. 십 년 전에도, 백 년 전에도 그러했을 것이다. 태양은 이따금 두꺼운 먼지 구름을 뚫고 희미한 붉은빛을 쏟아냈지만, 그마저도 세상을 더욱 처량하게 만들 뿐이었다. 류진은 갈라진 대지를 걸었다.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것은 말라비틀어진 풀 조각이 아니라, 문명이 남긴 부서진 잔해들이었다. 한때 높이 솟았을 건물들은 뼈대만 앙상하게 드러낸 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서 있었다.

목이 탔다. 혀는 사막의 모래처럼 바싹 말라붙었고, 침을 삼킬 때마다 목구멍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따랐다. 등 뒤에 멘 낡은 배낭은 거의 비어 있었다. 닷새 전 마지막으로 찾아낸 썩은 건포도 몇 알이 전부였다. 그는 며칠째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걷는 중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찾아야 했다. 기필코.

“이런 젠장,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쉰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그는 저 멀리 보이는, 모래바람에 반쯤 파묻힌 옛 도시의 흔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폐허 깊숙한 곳 어딘가에는 아직 버려지지 않은 우물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한 줄기 희망 때문이었다. 희망은 사치였지만, 그것마저 없으면 걸을 수가 없었다.

도시의 입구는 거대한 뼈대를 드러낸 아치형 구조물이었다. 한때는 화려했을 장식들은 모조리 떨어져 나가고, 녹슨 철골만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잔해들이 무질서하게 쌓인 골목길은 미로 같았다. 쨍한 한낮의 햇빛이 닿지 않는 그림자 속에서, 류진은 예민하게 주위를 살폈다. 이 잿빛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굶주린 짐승도, 메마른 대지도 아니었다. 바로 사람. 자신과 똑같은, 절박한 생존자들이었다.

발소리를 죽인 채, 그는 낡은 지도를 펼쳤다. 종이의 모서리는 이미 너덜너덜했고, 빗물과 피로 얼룩져 있었다. 지도 위에는 몇 개의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지하수’라고 쓰여진 지점이었다. 오래전 떠돌이 노인에게서 얻은 지도였다. 노인은 말했다. “그곳은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으니, 정녕 죽을 지경이거든 찾아가거라. 다만, 그만큼 위험하니 목숨을 걸어야 할 게다.”

류진은 지도를 접어 넣고 폐허 깊숙이 들어섰다. 썩은 시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몇몇 건물 안에는 부패한 유해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뼈만 남은 짐승들의 흔적도 보였다. 약탈자와 피난민,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얽혀 만들어진 참상이었다.

한 시간쯤 헤맸을까, 마침내 지도의 지점과 일치하는 곳에 다다랐다.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 반쯤 파묻힌 지하 주차장 입구였다. 차가운 공기가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류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물 냄새가 희미하게 풍기는 것 같았다. 아니, 착각일지도 모른다. 희망은 이따금 미쳐버린 후각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녹슨 철문을 밀었다. 삐걱거리는 끔찍한 소리가 폐허에 울려 퍼졌다. 류진은 몸을 웅크린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반응은 없었다. 문은 반쯤 열렸고, 그 안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후각은 더욱 선명해졌다. 분명하다. 물 냄새가 났다.

그는 허리춤에 찬 낡은 등불을 꺼내 불을 붙였다. 희미한 불빛이 동굴 같은 입구를 비췄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지하로 향하는 경사로를 내려갔다. 습하고 서늘한 공기가 폐부를 채웠다. 쿰쿰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쇠 비린내가 섞여 올라왔다. 물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동시에 또 다른 생존자의 흔적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도 스쳤다.

경사로 끝, 지하 주차장은 예상보다 넓었다. 천장은 여기저기 무너져 내렸지만, 지반이 단단한 덕분인지 전체적인 구조는 유지되고 있었다. 등불을 높이 들어 올리자,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희미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주차장 한가운데, 거대한 콘크리트 바닥이 푹 꺼져 있었다. 그 밑에는 탁하지만 분명한 푸른빛을 띠는 물웅덩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바닥에서 솟아나는 지하수였다. 마르지 않는 샘물. 류진은 홀린 듯 그곳으로 다가갔다. 물가에는 한때 사용되었을 물통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누군가 급하게 떠나면서 버린 듯한 낡은 천 조각도 보였다. 그는 주저앉아 손으로 물을 움켜쥐었다. 차갑고, 시원했다. 살 것 같았다.

“크으읍…”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물은 어떤 진귀한 약재보다도 달콤하고 상쾌했다. 뱃속으로 들어간 물은 며칠간 쌓였던 갈증을 깨끗이 씻어 내려 주었다. 그의 몸에 새로운 생기가 도는 듯했다. 그는 두 손 가득 물을 퍼올려 세수까지 했다. 잿빛 먼지로 뒤덮였던 얼굴이 조금이나마 깨끗해졌다.

그때였다.

“흐음, 꽤나 운 좋은 놈이군. 이런 보물을 찾아내다니.”

등 뒤에서 들려오는 싸늘한 목소리에 류진의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어둠 속에서 다섯 명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들은 낡은 가죽 갑옷을 걸치고 있었고, 제각기 녹슨 칼과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허리춤에는 잘 말린 짐승 가죽이 매달려 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단순한 떠돌이가 아니라는 증거였다. 놈들은 약탈자, 이 황량한 세상의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황사단이었다.

가장 앞에 선 사내는 키가 크고 왜소했지만, 매서운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거친 흉터가 길게 나 있었다. 그는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이런 귀한 물을 혼자 마시다니, 염치도 없는 놈 같으니라고. 우리도 며칠째 물 한 모금 못 마셨는데 말이야.”

류진은 천천히 일어섰다. 손가락으로 입가를 훔치자, 붉은 피가 묻어났다. 물을 너무 급하게 마신 탓에 입술이 터진 모양이었다. 그는 낡은 허리춤을 붙들었다. 그곳에는 한 자루의 낡은 검이 있었다. 날은 무뎠지만, 강철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나가라.” 류진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내 구역이다.”

사내는 크게 비웃었다. 그의 뒤에 선 부하들도 칼을 들고 껄껄거렸다.

“하하하! 지랄도 풍년이네. 여기가 네 구역? 너 같은 거지새끼가 뭘 믿고 개소리를 지껄여?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보군.”

“경고했다.”

류진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잠시 전까지 죽음의 문턱을 헤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의 몸에서 희미하게 기운이 피어나는 듯했다. 비록 쇠약해졌지만, 그 안에 잠재된 무인의 기개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황사단의 무리들은 잠시 움찔했다.

“흥, 허세 부리지 마라! 굶주린 거지새끼가 뭘 할 수 있겠어!”

가장 앞에 선 사내가 몽둥이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류진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몽둥이를 피했다. 그리고 동시에 허리춤에서 낡은 검을 뽑아들었다. ‘철골검’. 녹슨 칼날은 희미한 등불 아래서도 빛을 발했다.

**챙!**

그가 든 검은 몽둥이와 부딪히며 섬뜩한 금속음을 냈다. 류진의 손놀림은 놀라울 만큼 민첩했다. 굶주림에 허덕이던 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검을 휘둘러 몽둥이를 쳐내고, 사내의 가슴을 향해 곧장 찔러 들어갔다.

사내는 뒤로 물러서며 겨우 칼날을 피했지만, 그의 팔뚝에는 이미 붉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 피가 뚝뚝 떨어졌다.

“이런 망할 자식! 숨어있는 고수였나!”

다른 세 명의 부하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한 명은 칼을, 다른 한 명은 도끼를, 마지막 한 명은 쇠사슬을 휘둘렀다. 좁은 지하 주차장은 순식간에 난투극의 장이 되었다. 류진은 등불을 발로 차 멀리 날려버렸다. 어둠 속에서 싸우는 것이 그에게 유리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귀를 열었다.

**쉬이이익, 챙! 퍽!**

쇠사슬이 허공을 갈랐고, 도끼가 콘크리트 바닥을 찍는 소리가 들렸다. 류진은 소리에 의지해 몸을 움직였다. 그는 바람처럼 움직였다. 좁은 공간에서 상대를 몰아붙이는 동시에, 자신에게는 한 점의 피해도 입지 않았다. 검은 어둠 속에서 번개처럼 번뜩였다.

“크아악!”

도끼를 든 사내가 비명을 질렀다. 그의 손목에서 도끼가 떨어져 나갔고,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류진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다른 사내의 칼을 쳐냈다. 낡은 철골검은 비록 녹슬었지만, 숙련된 무인의 손에서는 여전히 치명적인 무기였다.

그는 짧게 호흡을 내쉬며 자세를 잡았다. 그의 발밑에는 두 명의 황사단이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이제 세 명. 그는 다시 한번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흩어져! 흩어져서 공격해!”

사내의 외침이 들렸지만, 이미 늦었다. 류진은 빠르게 움직여 쇠사슬을 든 사내의 등 뒤로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검을 내리찍었다.

**푹!**

묵직한 소리와 함께 사내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나머지 두 명의 사내는 경악했다. 그들의 눈에는 공포가 서렸다. 한 명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고, 또 다른 한 명은 겁에 질린 채 달아나려 했다.

“어딜 가느냐.”

류진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낮게 울렸다. 그는 달아나려는 사내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사내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류진은 그의 목에 칼날을 들이밀었다.

“살려… 살려주십시오…”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마라. 그리고 이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마라. 알겠느냐?”

“예… 예! 알겠습니다! 다시는 오지 않겠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사내는 오줌을 지리며 빌었다. 류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그를 놓아주었다. 그는 쓰러진 부하들을 버려둔 채 미친 듯이 도망쳤다.

류진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몸의 모든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겨우 물 한 모금 마신 것이 전부였기에, 과도한 움직임은 온몸의 기운을 빨아들였다. 그는 비틀거리며 물가로 다가갔다. 다시 한번 물을 움켜쥐었다. 조금 전의 시원함과는 달리, 이제는 물의 냉기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이 세상은 끝없이 싸워야만 했다. 물을 찾아도, 음식을 찾아도, 심지어 잠시 쉬는 순간에도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 자신을 노리는 그림자가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는 주저앉아 남은 물통에 조심스럽게 물을 채웠다. 물통을 든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전투의 여파와 깊은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젠장…”

작게 중얼거렸다. 그는 물통을 든 채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승리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어떤 만족감도 없었다. 오직 끝없는 고독과 피로만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문득 폐허의 지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희미한 잿빛 노을이 멀리 보이는 지평선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붉은빛 속에서, 저 멀리, 거대한 모래폭풍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마치 이 세상의 마지막을 알리는 거대한 파도처럼.

류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눈에 비장한 결의가 스쳤다. 아직 죽을 수 없었다. 이 황량한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아직 남아있었으니까.

모래폭풍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 안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어쩌면 그저 모래일 뿐일 수도 있고, 어쩌면 더 큰 절망일 수도 있었다. 류진은 물통을 단단히 붙잡았다. 또 다른 생존의 여정이 시작될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