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독립적인 단편 소설

밤의 장막이 아르카디아 마법학원을 삼키기 시작했다. 아니, 밤이라기엔 너무나 불길하고, 어둠이라기엔 너무나 역겨운 무엇이 학원의 모든 빛을 집어삼키는 중이었다. 한때 고고한 마법사들의 요람이자, 지식의 성지였던 이곳은 이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비명, 그리고 피비린내로 가득했다. 거대한 방어 마법진들이 하나둘씩 그 푸른빛을 잃고 굉음과 함께 박살 나고 있었고, 끔찍한 감염체들이 그 틈을 비집고 학원 깊숙이, 마치 쓰나미처럼 밀려들어오는 중이었다.

“젠장, 젠장, 젠장!”

이설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거대한 대리석 복도를 달렸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신음과 살 찢어지는 소리는 이제 익숙하다 못해 불쾌한 배경음악처럼 들렸다. 마력으로 강화된 학원의 육중한 철문들이 연이어 굉음을 내며 부서지는 소리가 그녀의 심장을 더욱 거칠게 몰아붙였다.

“설아! 이쪽이야!”

강민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학원 도서관의 부서진 입구에서 다급하게 손짓하고 있었다. 민혁은 평소 차분하고 냉철한 모습과는 달리, 잔뜩 땀에 젖은 얼굴로 필사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마법 지팡이는 여기저기 금이 가 있고, 마법 광석은 희미하게 깜빡였다. 설아는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려 도서관 안으로 뛰어들었다.

콰앙! 민혁이 온몸으로 힘을 다해 철문을 닫자, 밖에 매달려 있던 감염체들의 둔탁한 충돌 소리가 잠시 멎었다.

“하아… 하아… 겨우 살았네.” 민혁은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겨우? 지금 학원 전체가 저 괴물들로 가득 찼어, 민혁! 밖은 아예 지옥도라고!” 설아는 격렬하게 뛰는 심장을 움켜쥐고 주저앉았다. 그녀의 은색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었다.

“알아. 그래서 더 이상 버틸 곳이 없어.” 민혁은 낡은 양피지 지도를 펼쳤다. 도서관 사서에게서 몰래 훔쳐낸 학원 내부 지도로, 평소라면 ‘위험 구역’이라고 표시된 곳만 슬쩍 보고 웃어넘겼을 물건이었다. “기억나? 선배들이 쉬쉬했던 ‘지하 아르카나 연구실’ 말이야.”

설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끔찍한 곳을 왜? 그곳은 금지된 마법을 연구하던 곳 아니었어? 괜히 호기심 부리다 교수님들한테 마력 회수 당할 뻔했던 건.”

“금지된 마법이었으니 더 이상 저 괴물들이 들어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민혁의 눈빛에는 절박함과 함께 미약한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방금 전, 텔레파시 교신이 잠깐 연결됐었어. 거의 끊어져가는 목소리였는데, 누군가 ‘지하로… 숨겨진 진실… 문’이라고 외치고 끊겼어.”

“진실? 도대체 무슨 진실이 학원 지하에 있다는 거야?” 설아는 고개를 저었다. “이 모든 게 혹시 그 지하실에서 시작됐다는 말은 아니겠지?”

민혁은 아무 말 없이 지도의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은 붉은 잉크로 덧칠되어 있었다. ‘생체 마법 연구동 – 접근 금지.’

“말도 안 돼… 학원은 순수한 원소 마법과 정령술을 가르치는 곳이었잖아. 생체 마법이라니?” 설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도 그래. 하지만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위는 이미 지옥이야. 아래는… 어쩌면 살아남을 길이 있을지도 몰라.”

결국 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감염체들이 도서관 문을 부수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콰앙! 콰드득! 육중한 철문이 삐걱거리며 안쪽으로 휘기 시작했다.

“서둘러!”

민혁은 지팡이 끝에 작은 섬광 마법을 걸어 어둠을 밝혔다. 두 사람은 거대한 서고를 가로질러, 금지된 책들이 보관되어 있던 밀실 문을 찾아냈다. 그곳은 학원 지하로 향하는 은밀한 통로였다. 먼지와 거미줄로 가득한 낡은 나선형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끝없이 이어지는 듯했다. 빛이 전혀 들지 않는 지하 깊숙한 곳으로 향할수록, 학원 위에서 들려오던 끔찍한 소음은 점차 희미해졌다. 대신, 차갑고 습한 공기가 피부에 달라붙었고, 알 수 없는 금속성 냄새와 함께 희미한 화학약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봐, 설아… 여기 좀 봐.” 민혁이 지팡이 불빛으로 벽을 비췄다. 벽에는 낡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학원의 상징인 푸른 용과 별 대신, 기괴한 문양과 알 수 없는 기호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군데군데 핏자국처럼 보이는 검붉은 얼룩들이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이게 뭐야? 학원 문양이 아니잖아.” 설아는 소름이 돋았다.

“이건… 고대 생체 마법을 다루던 이교도들의 상징이야. 금지된 지식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학원 지하에 이걸 새겨놓다니…” 민혁의 목소리가 떨렸다.

계단은 드디어 끝났다. 눈앞에는 거대한 강철 문이 버티고 서 있었다. 문에는 복잡한 마법 봉인진이 얽혀 있었지만, 이미 오래전에 파괴된 듯 갈라지고 찢겨 있었다. 민혁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마치 죽은 자들의 영혼이 내뱉는 한숨처럼 눅눅하고 불쾌한 바람이 훅 끼쳐 나왔다.

내부는 마치 미로와 같았다. 좁은 복도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벽면에는 녹슨 파이프와 알 수 없는 장치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학원의 아름답던 마법적인 분위기는 흔적도 없었다. 이곳은 차라리 거대한 지하 감옥이나 비밀 공장 같았다.

“이게… 학원 지하라고? 믿을 수가 없어.” 설아는 마력으로 만든 작은 불꽃을 손에 쥐고 주위를 밝혔다.

그들의 발아래, 바닥에는 말라붙은 검붉은 얼룩이 드문드문 보였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소름 끼치는 끈적임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복도 끝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거대한 실험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상에…”

설아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실험실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깨진 비커와 증류기, 알 수 없는 액체가 든 시험관들이 바닥에 뒹굴었고, 엉망진창이 된 책상 위에는 낡은 연구 일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실험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기괴한 형체들이었다.

그것들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어떤 것은 팔다리가 뒤틀려 있었고, 어떤 것은 피부가 불투명하게 변색되어 있었다. 심지어 머리에서 촉수 같은 것이 자라난 개체도 있었다. 그중 몇몇은 눈을 뜬 채 정지해 있었는데, 그 시선은 비어 있었지만 너무나 끔찍했다.

“이건… 시체도 아니야. 마물도 아니고…” 민혁은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설아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연구 일지를 집어 들었다. 표지에는 낡은 글씨로 ‘Vita-Arcana 프로젝트’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는 페이지를 넘겼다. 처음에는 평범한 생체 마법 연구 기록처럼 보였다. 세포 재생, 육체 강화… 하지만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내용은 기괴하고 끔찍하게 변해갔다.

– 132일 차: 피험체 ‘베타’에게 이종(異種) 마력 주입. 근육 조직 반응 미미. 재생 주기 이상 징후 포착.
– 187일 차: ‘초월 생명’을 향한 실험.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다. 죽음을 넘어선 존재…
– 210일 차: ‘불멸의 육체’를 위한 마법적 변이 시도. 기존 세포 구조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
– 245일 차: 피험체 ‘감마’의 자아가 소멸. 육체는 변이를 거듭하며 비정상적인 활성화를 보인다. 이는 실패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작인가?
– 248일 차: 피험체들이 통제 불능. 마력장이 불안정하게 요동친다. 접촉자들에게 급격한 변이 발생. 격리 실패. *탈출*…

설아의 손에서 일지가 떨어졌다. 콰당!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진 일지에서 마지막 페이지가 펼쳐졌다. 붉은 잉크로 큼지막하게 쓰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신에게 도전한 대가. 우리의 탐욕이 세상을 집어삼킬 것이다.’

“이게… 이게 학원이 숨기고 있던 진실이었어…?” 설아는 주저앉았다. “우리가 아는 그 모든 지식이, 그 모든 영광이, 결국 이 끔찍한 실험을 위한 위장이었단 말이야?”

그 순간, 실험실 저 안쪽에서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흐읍… 흐읍…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실험실 가장 안쪽, 거대한 봉인석에 둘러싸인 투명한 관 속에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관 속의 액체는 검붉었고, 그 안에 담긴 것은 형언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온몸이 불투명한 검은 혈관으로 뒤덮여 있었고, 얼굴은 해골처럼 변해 있었으며, 눈은 섬뜩한 붉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살아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살아있다고 불리던 것’의 잔해가 끔찍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봉인석들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내부의 존재가 곧 밖으로 뛰쳐나올 듯한 기세였다.

“저게… 저게 시작이었어. 모든 감염체의 원형…” 민혁의 목소리는 공포로 완전히 쉬어 있었다. “학원 교수들이 말했던 ‘인류를 초월한 존재’… 그들이 만들려고 했던 신…”

흐읍… 흐읍… 관 속의 존재가 한 번 더 크게 숨을 들이쉬자, 실험실 전체의 마력장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머리 위 파이프가 굉음을 내며 터지고, 검붉은 액체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도망쳐, 민혁! 저게 깨어나고 있어!”

설아는 마력을 끌어모아 강력한 화염 마법을 시전했다. 거대한 불꽃의 파도가 관을 향해 덮쳐갔지만, 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꽃이 관에 닿는 순간, 붉은 눈의 존재는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리는 듯했다.

“안 돼! 마법이 통하지 않아!”

두 사람은 실험실을 등지고 필사적으로 달렸다. 뒤에서는 봉인석이 깨지는 굉음과 함께, 무언가가 육중하게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얼어붙게 만드는 듯한 끔찍한 포효가 지하 전체를 흔들었다.

“젠장! 결국 우리의 탐욕이 만든 괴물들에게 우리가 쫓기는 신세라니!” 설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외쳤다.

이제 학원의 지하 깊숙한 곳은 더 이상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모든 비극의 근원이자, 살아남은 인류에게 드리워진 절망의 그림자였다. 두 사람은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다시 어둠 속으로, 미지의 출구를 찾아 달렸다. 학원의 이름에 담긴 ‘아르카디아’라는 이상향은, 그렇게 끔찍한 금기 아래 영원히 파묻히고 말았다. 바깥 세상이 감염체로 인해 붕괴했다면, 학원 내부는 그 감염체들의 원류가 만들어낸 참혹한 비극으로 붕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진실을 목격한 유일한 생존자였다. 이제 그들은 이 진실을 가지고 살아남아야만 했다. 아니, 살아남아 이 끔찍한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야만 했다. 만약 세상이 아직 존재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