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소녀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핏빛 서막

차가운 비가 도시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던 밤, 폐허가 된 건물 옥상에 홀로 선 그림자가 있었다. 찢어진 망토 자락이 밤바람에 제멋대로 펄럭였다. 한때는 찬란한 빛을 머금었던 마법진은 이제 어둠에 잠식되어 검붉은 기운을 뿜어냈고, 소녀의 손에 들린 지팡이 끝에서는 메마른 번개 스파크가 사납게 튀었다. 리아였다. 더 이상 희망을 노래하던 ‘별빛 수호자’가 아닌, 복수만을 속삭이는 ‘심연의 마녀’로 다시 태어난 그녀였다.

“후우…….”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린 숨은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나선 후에야 겨우 뜨거운 통증으로 이어졌다. 온몸의 상처는 아물었지만, 그보다 깊이 새겨진 마음의 흉터는 여전히 덧나고 곪아 터질 듯 아팠다. 특히 그날의 기억은 날카로운 조각이 되어 끊임없이 심장을 찔러댔다.

* * *

“리아! 세상을 지키는 건 우리 둘뿐이야! 영원히 함께하자!”

반짝이는 마법봉을 휘두르며 활짝 웃던 세라의 얼굴. 순진무구하고 빛나던 그녀의 눈동자. 그 눈에 비치던 자신의 모습은 얼마나 어리석고 행복해 보였던가. 빛의 파편이 흩날리던 밤하늘 아래, 손을 맞잡고 맹세했던 찬란한 약속들. 영원히 함께 빛을 수호하고, 어둠에 맞서 싸우자던 순수한 다짐.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

눈부신 광채 속에서 세라가 비명을 지르던 순간, 리아는 온몸의 마력을 끌어모아 방패를 만들었다. 자신을 밀어내고 세라를 보호하려던 그 찰나의 순간.

“미안해, 리아.”

귓가에 속삭이던 목소리는 너무나 달콤하고 잔인했다. 등 뒤에서 느껴지던 차가운 칼날. 심장을 관통하는 듯한 통증과 함께, 리아는 무너져 내렸다. 마법 방패는 산산조각 났고, 빛은 꺼져버렸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신을 밟고 선 채 비릿하게 웃던 세라의 섬뜩한 미소였다. 그리고 그 미소 위로 드리워지던 찬란한 영웅의 후광.

세라는 리아의 모든 것을 훔쳐갔다. 리아의 빛, 리아의 희망, 그리고 리아가 쌓아 올린 모든 명성까지도. 그녀는 리아의 희생을 발판 삼아 ‘구원의 마법소녀’로 추앙받았고, 리아는 어둠 속으로,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 * *

어둠 속에서 깨어났을 때, 리아의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 차가운 증오와 복수심이 메아리쳤다. 희망은 죽었고, 사랑은 재가 되었으며, 남은 것은 오직 세라를 향한 처절한 분노뿐이었다.

“세라… 너는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갔지.”

리아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제는 낯설어진 자신의 마력이 손끝에서 요동쳤다. 과거에는 따뜻하고 순수했던 그것은, 이제 싸늘하고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있었다. 심연에서 끌어올린 저주받은 마법은 리아의 육신을 감쌌고, 찢어진 망토는 마치 먹물을 머금은 듯 더욱 짙은 어둠을 띠었다.

리아는 폐허 옥상에서 한 발짝 내디뎌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푸른색 마법진이 발밑에서 폭발하며 그녀의 낙하를 멈췄다. 검은 날개를 연상시키는 그림자 마법이 그녀의 등 뒤에서 펼쳐졌다. 어둠 속에서 자라난 거대한 날개는 도시의 불빛을 가리며 조용히, 그러나 맹렬하게 하늘을 갈랐다.

그녀의 시선은 한 곳을 향해 있었다. 도시의 가장 번화한 중심부에 솟아 있는, 빛나는 마천루. 그곳은 바로 ‘세라’가 ‘구원의 마법소녀’로서 도시의 모든 찬사와 사랑을 받으며 군림하는 곳이었다. 매일 밤, 그녀는 그곳에서 화려한 파티를 열고, 시민들의 환호 속에서 가식적인 미소를 지을 터였다.

‘기다려, 세라. 이제 곧 너의 빛은 꺼질 거야.’

리아의 눈은 밤하늘의 별빛보다도 차갑고, 심연의 가장 깊은 곳보다도 어두웠다. 그녀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았다. 복수는 그녀의 피와 살이 되었고,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천루의 꼭대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화려한 불빛이 밤하늘을 수놓고, 흥겨운 음악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 아래에는 수많은 인파가 세라를 찬양하며 모여 있었다.

리아는 검은 날개를 접고 마천루의 가장 높은 첨탑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아무도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모든 시선은 오직 ‘구원의 마법소녀’ 세라에게로 향해 있었다.

리아는 지팡이를 꽉 쥐었다. 차가운 마력이 손끝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입술에서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이제 시작이야. 나의 복수.”

그녀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마천루의 화려한 조명이 일순간 일렁이는 듯했다. 곧이어, 첨탑 끝에서부터 검은 그림자들이 꿈틀거리며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밤의 장막이 마천루를 집어삼키려는 듯, 어둠이 서서히 빛을 잠식해 들어갔다.

아래층에서 환호하던 사람들의 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공포와 혼란의 기미가 섞인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리아는 그 모든 소리를 뒤로하고 마천루의 가장 꼭대기, 세라가 있는 연회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며 모든 빛을 삼켰다.

그녀는 더 이상 과거의 리아가 아니었다.
이제, 심판의 시간이 도래했다.
세라, 너의 빛은 나의 손에서 영원히 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