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철문이 거대한 신음과 함께 천천히 열렸다. 케케묵은 곰팡이 냄새와 먼지가 섞인 비릿한 공기가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후끈하게 밀려 나왔다. 시아는 후드 아래로 얼굴을 묻으며 마른기침을 터뜨렸다.
“젠장, 이런 공기는 올 때마다 적응이 안 돼.” 그녀가 투덜거렸다.
옆에서 두꺼운 철문을 거의 부수다시피 열어젖힌 카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둠 속으로 랜턴을 비췄다. 삐걱이는 빛줄기가 닿는 곳마다 녹슨 파이프와 검게 변색된 마법 문양들이 드러났다. 이곳은 한때 찬란한 마법의 정수였던 아르카나 학원 지하의 가장 깊은 곳, ‘영원의 서고’라고 불리던 장소의 숨겨진 입구였다.
“이봐, 너무 깊숙이 들어온 거 아니야? 선배들도 여기까지는 안 내려왔다고 했잖아.” 시아는 괜한 불안감에 목소리를 낮췄다. 학원의 다른 생존자들은 이 지하 깊은 곳에 대한 온갖 끔찍한 소문들을 속삭이곤 했다. 마법 연구소의 마지막 실험체들이 아직 살아남아 돌아다닌다거나, 학원장조차 손댈 수 없던 금지된 마법이 봉인되어 있다는 식의 이야기들.
카인은 대답 없이 이마의 땀을 훔쳤다. 그의 거친 손이 낡은 권총의 손잡이를 단단히 쥐었다.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순 없지. 아르카나의 비밀은 언제나 지하에 있었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라진 마법사들이 이쪽으로 향했다는 기록을 찾았잖아.”
시아는 한숨을 쉬며 랜턴을 들어 어둠 속을 살폈다. 희미한 마법의 잔향이 느껴졌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공기 속에서 그녀는 본능적으로 위협을 감지했다. 일반적인 마물과는 다른, 훨씬 오래되고 사악한 무언가의 흔적.
‘정말 우리가 찾던 게 있을까?’ 시아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오래된 문서에 적힌 ‘금단의 문’이라는 문구를 떠올렸다. 그 문을 열면 모든 것이 시작될 것이라고, 혹은 끝날 것이라고.
그들은 좁은 통로를 따라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벽에는 기묘한 형상의 조각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빛을 받으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그림자가 흔들렸다. 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조각의 거친 표면을 만져보았다. 차가운 돌의 감촉 너머로 끈적이는 무언가가 느껴지는 듯했다.
“잠깐, 저건….” 카인이 갑자기 멈춰 섰다.
랜턴 불빛이 닿은 곳에는 한 남자의 미라화된 시체가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찢어진 마법사 로브를 걸치고, 앙상한 손에는 낡은 일기장 같은 것을 쥐고 있었다. 피부는 바싹 말라붙어 뼈만 남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끔찍한 공포가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눈구멍은 텅 비어 있었고, 입은 비명이라도 지르려는 듯 벌어져 있었다.
“죽은 지 꽤 된 것 같군.” 카인이 시체에 가까이 다가가 일기장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시체는 그의 손길에 맞춰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시아는 토할 것 같은 역겨움에 고개를 돌렸다. “뭘 하려는 거야? 만지지 마! 무슨 저주가 걸려 있을지도 모르잖아.”
“어쩌면 마지막 생존자의 기록일 수도 있어.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카인은 차분하게 일기장의 먼지를 털어냈다. 종이는 습기와 세월에 눅눅해져 있었지만, 마법으로 보존되어 있었는지 글씨는 또렷했다.
카인이 낮은 목소리로 일기장의 한 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223년 3월 14일. 지하 연구실의 봉인이 해제되었다. 학원장님은 ‘절대 열어서는 안 될 문’이라고 경고하셨지만, ‘재건’이라는 미명 아래, 광기 어린 과학자들이 결국 그 문을 열었다. 저들은 ‘모두를 위한 새로운 생명’을 운운하지만, 내가 보는 것은 오직 죽음과 기형뿐이다. 불완전한 존재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갔다. 마법이 썩어가는 냄새가 진동한다….”*
시아는 숨을 멈췄다. ‘재건’이라는 단어에 등골이 오싹했다. 이 망해버린 세상에서, 누군가 모든 것을 되돌리려 했다면… 그 광기가 어떤 형태를 띠었을지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카인은 계속해서 읽었다.
*”…223년 5월 2일. 그들은 ‘심연의 샘’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죽은 자에게서 생명을 끄집어내는 원천이라고 한다. 샘은 기이한 마력을 뿜어내며, 접촉한 모든 것을 변형시킨다. 이미 몇몇 동료들이 의식을 잃고 그 샘으로 향했다. 눈동자에 생기가 없었다. 마치 인형처럼….”*
시아의 심장이 발작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심연의 샘. 죽은 자에게서 생명을 끄집어낸다고? 소름 끼치는 내용이었다.
“이봐, 이 사람 완전히 미쳤던 것 같아. 당장 나가자.” 시아는 카인의 팔을 잡아끌었다.
“아니, 기다려.” 카인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다음 장을 넘겼다. 일기장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자, 글씨는 극도로 흐트러져 있었다. 마치 죽어가는 순간에 필사적으로 써 내려간 것처럼.
*”…223년 7월 1일. 끝이다. 모든 것이 끝났다. 그들은… 스스로 심연의 샘에 뛰어들었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아닌 존재들이, 지하 깊은 곳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육체를 갈구한다. 새로운 육체를. 우리를 원한다. 학원장님은 우리에게 절대… 이곳을… 열지… 말라… 하셨는데…. 젠장, 이제… 나도… 더는… 버틸… 수… 없…어….”*
일기장은 거기서 끝났다. 마지막 문장에는 핏자국처럼 보이는 얼룩이 번져 있었다.
정적이 흘렀다. 두 사람 모두 입을 열지 못했다. 카인의 랜턴 불빛이 불안하게 흔들리며 벽에 기괴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인형처럼… 새로운 육체….” 시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머릿속에 섬뜩한 그림이 그려졌다. 육체를 잃은 마법사들이, 다른 생명체의 몸을 차지하려 하는 모습.
그때였다.
멀리서,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 긁히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크륵, 크르르륵….* 마치 뼈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하고, 무언가 거대한 것이 질질 끌려오는 소리 같기도 했다. 소리는 어둠 속에서 점차 커져갔다.
카인은 총을 들어 올렸다. “왔군.” 그의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뭐가… 왔다는 거야?” 시아의 손이 차갑게 식어갔다.
그들이 서 있는 통로의 끝, 어둠이 가장 짙게 드리워진 곳에서, 두 개의 붉은 눈동자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거대한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었지만, 어딘가 익숙한, 하지만 끔찍하게 뒤틀린 마법사의 로브 자락이 그 거대한 몸뚱이를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존재의 입에서는 찢어진 살점과 부서진 뼈 조각들이 뒤섞인 끔찍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시아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이 지하 깊은 곳에 숨겨진 금기. 그것은 학원장님이 경고했던 그대로, 죽음조차 초월한 가장 끔찍한 형태의 광기였다.
그리고 이제, 그 광기가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