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의 그림자]**
청운학원(靑雲學院)의 밤은 고요했다. 만월이 대리석 건물 위로 은빛 세례를 뿌렸고, 고풍스러운 정원의 연못은 잔잔한 파문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풍경 아래, 류진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는 지금, 학원 내에서도 가장 오래된 ‘별관(別館)’의 지하, 그 누구도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금단의 구역으로 향하는 길목에 서 있었다.
“빌어먹을, 벌써 세 번째 경계술을 돌파했잖아.”
류진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손바닥에서 푸른 영력(靈力)이 아른거리며, 눈앞의 투명한 장벽을 조심스럽게 탐색했다. 학원장이 직접 걸어둔 것이 분명한 봉인술이었다. 그러나 류진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일주일 전, 우연히 낡은 도서관에서 발견한 고문헌의 한 구절이 그의 호기심을 미치도록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청운의 근원은 어둠에 있으며, 태고의 금기는 지하에 갇혔나니. 그 이름을 부르는 자, 영혼이 비틀리리라…”*
단편적인 기록이었지만, 학원의 역사와는 완전히 다른 섬뜩한 내용이었다. 그 후로 그는 지하 미궁에 대한 온갖 소문을 긁어모았다. 오래된 기록실 아래에는 학원 설립 이전에 존재했던 고대 유적이 숨겨져 있고, 그곳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뿜어져 나온다는 이야기. 혹은, 학원의 번영을 위해 고대 존재를 봉인해 두었다는 끔찍한 진실.
류진의 손에서 푸른 영력이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며 경계술에 스며들었다. 파지직, 하는 마찰음과 함께 눈앞의 장막이 일렁이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류진은 긴 숨을 내쉬며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싸늘한 냉기가 피부를 파고들었다. 마치 지하 깊숙한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습하고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류진은 품속에서 작은 광석 조각을 꺼내 영력을 불어넣었다. 희미한 빛이 그의 주변을 밝혔다.
그가 선 곳은 흙과 돌로 이루어진 비좁은 통로였다. 천장은 거미줄과 알 수 없는 넝쿨로 뒤덮여 있었고, 벽에는 이끼가 눅눅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수천 년은 족히 되었을 법한 낡은 통로. 학원 건물의 정교함과는 완전히 다른, 날것의 거친 공간이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흙먼지가 풀썩이며 희미한 빛 속에서 춤을 추었다. 통로는 점점 아래로 이어졌다. 마치 세상의 심장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류진의 발이 삐끗하며 무언가를 밟았다.
“젠장!”
낮게 욕설을 읊조리며 광석의 빛을 아래로 향했다. 그가 밟은 것은 흙 속에 파묻힌 부서진 석상 조각이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마모되었지만, 언뜻 보기에 짐승의 머리 같기도 하고, 사람의 형상 같기도 한 기묘한 조각이었다. 석상 주변에는 희미하게 붉은 자국들이 흩어져 있었다. 마치 피가 말라붙은 흔적처럼 보였다.
류진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쿵, 쿵, 하고 크게 울렸다. 이곳은 단순한 고대 유적이 아니었다. 무언가 끔찍한 일이 벌어졌던 곳임이 분명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통로의 끝에 다다르자, 거대한 지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장이 아득히 높은 동굴이었다. 이곳에는 아까와는 다른, 더욱 강렬하고 음침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차가움과 동시에 뜨거움이 느껴지는, 생기가 사라진 듯한 죽음의 기운.
동굴 중앙에는 기이한 형태의 제단이 솟아 있었다.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듯한 제단은 핏빛 문양으로 가득했다. 그 문양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제단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주변의 공기는 기괴한 압력으로 짓누르는 듯했다.
류진은 무심코 손을 뻗어 제단에 다가가려 했다.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울렸다.
“어리석은 놈… 금기를 탐하는 자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화들짝 놀란 류진은 번개처럼 몸을 돌렸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형체를 드러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뼈와 살이 뒤섞인 듯한 기괴한 형상, 비정상적으로 길고 뾰족한 손톱, 그리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두 개의 붉은 눈동자.
피부가 송골송골 돋아났다. 류진은 무의식적으로 검집에 손을 댔다. 그의 영력이 불꽃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너… 대체 뭐지?”
그림자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 소리는 마치 쇠를 긁는 듯 귀를 찢는 고통을 주었다.
“나는… 금기의 파수꾼이자… 학원의 오랜 비밀을 지키는 존재.”
그림자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류진이 이제껏 느껴본 어떤 마법이나 기운보다도 탁하고 불길했다. 마치 영혼을 갉아먹는 듯한 사악한 기운이었다.
“학원의 비밀? 청운학원이 너 같은 괴물을 숨기고 있었다는 말이냐?” 류진은 이를 악물었다.
“괴물이라… 흥.” 그림자는 비웃었다. “너희 학원이 지금껏 누려온 영광은… 모두 이곳, 지하의 금기에서 비롯된 것이란다. 수많은 학자들이 이곳에서 힘을 탐했고, 수많은 생명들이 대가로 바쳐졌지. 너희가 숭고하다고 믿는 학원의 뿌리… 그 진실은 끔찍한 비극의 산물이었다.”
류진의 눈이 크게 뜨였다. 학원의 영광이 지하의 금기에서 비롯되었다니? 그것은 그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뒤흔드는 충격적인 진실이었다. 그의 스승들이 가르치던 정의와 숭고함은 전부 거짓이었다는 말인가?
그림자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류진에게 다가왔다. 검은 기운이 동굴 전체를 집어삼키는 듯했다.
“네 호기심은 여기까지다, 어리석은 인간. 이곳의 진실을 알아버린 이상… 너는 살아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림자의 손톱이 날카롭게 뻗어 나왔다. 류진은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그러나 놈의 속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류진의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검은 섬광.
콰앙!
등 뒤의 바위벽이 부서지며 돌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류진은 가까스로 공격을 피했지만, 섬뜩한 한기가 그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젠장, 이게 무슨…!”
류진은 정신없이 몸을 날렸다. 그제야 그림자 존재의 압도적인 힘을 깨달았다. 이곳은 단순한 지하 미궁이 아니었다. 학원 전체의 존재 기반을 뒤흔드는 거대한 금기가 잠들어 있는 곳. 그리고 그는 그 금기의 파수꾼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그림자가 다시 한번 류진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온몸을 검은 기운으로 휘감은 채, 마치 거대한 포식자가 먹잇감을 덮치듯 맹렬하게 돌진했다. 류진은 손에 쥔 광석을 떨어뜨리고 허리춤의 검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강철의 감촉이 손가락에 닿았다.
‘이대로 죽을 순 없어…! 이 진실을 밝혀야 해!’
류진의 눈빛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그는 검집에서 맑은 소리와 함께 검을 뽑아 들었다. 검날에서 푸른 영력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지하 미궁의 심연에서, 금기를 탐한 자와 금기를 지키는 자의 격렬한 사투가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