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챕터 1: 오래된 먼지 속의 속삭임

김민준은 축 늘어진 어깨로 낡은 도서관의 계단을 올랐다. 매 학기 마지막 관문처럼 찾아오는 ‘현대사 심화’ 리포트가 그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이번 주제는 ‘20세기 초반 조선의 비정통 민간신앙과 사회적 파장’이라는, 듣기만 해도 현기증이 날 것 같은 것이었다. 일반적인 자료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난해함에, 그는 결국 대학 본관 옆에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특수 자료실’까지 흘러들어왔다.

녹슨 철문은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열렸고, 그 안은 말 그대로 시간의 정지된 공간이었다. 희미한 백열등 불빛 아래, 셀 수 없이 많은 책과 서류 뭉치가 먼지 가득한 서가에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곰팡이와 퀴퀴한 종이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찔렀다. 이곳은 학생들이 발길을 끊은 지 오래된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청소된 것이 언제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회색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젠장, 이런 곳에 뭐가 있다고…”

민준은 투덜거리며 가장 으슥한 구석, ‘기증 자료’라고 대충 쓰인 서가로 향했다. 그나마 제목이 붙어 있는 다른 서가와 달리, 이곳은 아무렇게나 던져진 상자들이 전부였다. 그 안에는 기증자의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잡동사니들이 가득했다. 깨진 붓, 빛바랜 사진, 낙서로 가득한 노트, 그리고 겉장 없는 오래된 책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뒤적였다. 먼지가 뭉텅이로 피어올라 기침을 콜록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의미 없는 것들만 거듭 확인하다 지쳐갈 무렵, 그의 손끝에 유독 낯선 감촉이 닿았다. 일반적인 나무나 가죽 재질이 아니었다. 차갑고 단단했으며, 희미하게 기름기가 느껴지는 듯한 기이한 감촉. 민준은 호기심에 이끌려 조심스럽게 상자 깊숙한 곳을 뒤져 그것을 꺼냈다.

그것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검은색 상자였다. 매끄러운 표면은 마치 흑요석 같았지만, 빛을 받으면 미묘하게 푸른빛이 감돌았다. 어떤 이음새도 보이지 않는 매끈한 육면체. 단순한 돌멩이라기엔 너무나 정교했고, 인공물이라기엔 너무나 기괴했다. 표면에는 알아볼 수 없는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음각되어 있었는데, 그 선들은 손가락 끝으로 더듬으면 희미하게 열기를 띠는 듯했다.

민준은 저도 모르게 상자를 손에 쥔 채 잠시 멍하니 응시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상자 표면의 한 문양을 쓸어보았다. 그 순간, 차가운 상자에서 섬뜩할 정도의 고열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 날카로운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귓가에서 수천 마리의 벌떼가 웅웅거리는 듯한 소리. 이어서 그의 시야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희미한 불빛 아래 도서관의 서가들이 기이하게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먼지 속에 갇힌 공기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고, 퀴퀴한 냄새 대신 짙은 바다 비린내와 어딘가 썩어 문드러진 듯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큭…!”

민준은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구멍에서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마치 오래된 필름 조각처럼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했다. 푸른빛이 감도는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들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형태조차 제대로 인지할 수 없는, 우주적이고 낯선 실루엣들. 그 움직임 하나하나에 세계의 근간이 흔들리는 듯한 압도적인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무수한 눈들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헤아릴 수 없는 숫자, 인간의 감각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차원의 시선들이었다.

순간, 민준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의 의식이 수천 갈래로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는 상자를 놓치려 했으나, 손이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자를 꽉 붙들고 있었다. 오히려 상자의 열기는 그의 손바닥을 집어삼키는 듯 뜨거워졌다. 문양들이 마치 살아있는 혈관처럼 그의 피부 위로 솟아오르는 착각마저 들었다.

이어서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굉음은 사라지고, 시야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도서관은 여전히 먼지 가득한 낡은 공간이었고, 퀴퀴한 종이 냄새만이 남아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은 상자는 다시 차갑고 묵직한 돌덩이가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환상이었다는 듯이.

“뭐… 뭐야 이건…”

민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벽에 기댔다.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고,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환각? 과로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 그는 스스로를 납득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그의 손바닥에는 상자의 문양과 정확히 일치하는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는 아직도, 아주 희미하게, 저 깊은 심연에서부터 기어 올라오는 듯한 속삭임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그러나 본능적으로 끔찍한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목소리.

그는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꽉 쥐었다. 이 모든 것이 미친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상자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아니, 내려놓기 싫었다. 방금 전의 경험은 공포스러웠지만,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매혹적인 충격이었다. 마치 닫혀 있던 미지의 문이 억지로 열린 것 같았다. 그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 잠자고 있던 것이 깨어난 듯한 기이한 감각이 피어올랐다.

민준은 상자를 품에 안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포트는 까맣게 잊은 지 오래였다. 그의 눈은 더 이상 낡은 도서관의 먼지나 희미한 불빛을 보고 있지 않았다. 방금 전 스쳐 지나간, 거대하고 낯선 어둠 속의 그림자들이 그의 망막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세상이 이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한 꺼풀 벗겨진 듯했다. 그는 자신이 방금 전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음을 직감했다.

검은 상자를 품에 안은 채, 민준은 삐걱이는 철문을 열고 도서관을 나섰다. 어두워진 캠퍼스의 밤공기가 차갑게 그의 뺨을 스쳤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가슴속에는 알 수 없는 열기와 함께, 미지의 힘에 대한 끔찍한 호기심이 격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알 수 없는 존재들의 속삭임이, 이제 막 그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다시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