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밤 열한 시, 현우는 습관처럼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침대 옆 협탁 위 스탠드에서 퍼지는 노란 불빛이 지친 눈꺼풀 위로 쏟아졌다. 길고 고단했던 하루의 끝. 쾌적하게 조절된 실내 온도가 나른하게 몸을 감쌌다. 창밖에서는 도시의 밤이 여전히 웅성거리고 있었지만, 20층 높이의 이 아파트는 그 모든 소음으로부터 한 겹의 막으로 분리된 듯 고요했다. 완벽한 휴식. 그는 베개에 머리를 묻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스르륵.’

아주 작고 미세한 소리. 마치 마른 나뭇잎이 바닥을 긁는 듯한, 혹은 누군가 맨발로 마루 위를 아주 조심스럽게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소리였다. 현우는 눈을 번쩍 떴다. 침묵에 익숙해진 귀는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뭐지?”

중얼거렸지만, 답은 없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어둠이 짙게 깔린 거실 쪽을 응시했다. 창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고, 현관문도 잠가두었다. 도둑일 리는 만무했다. 피곤함이 불러온 환청이거나, 아니면 낡은 아파트의 미세한 소음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그가 다시 눈을 감으려는 찰나, 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슥, 스르륵.’

이번에는 좀 더 분명했다. 침대와 가장 가까운, 그러니까 주방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현우는 순간 몸에 오싹한 한기가 돋는 것을 느꼈다. 이상하다. 이 아파트에 혼자 산 지 벌써 3년째다. 이런 소리는 처음이었다. 그는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심장이 쿵, 쿵, 하고 불규칙하게 울렸다.

“누구… 없어요?”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갈라지고 작았다. 공허한 침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는 숨죽이며 어둠 속을 노려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거실의 공기가 이전과는 달랐다. 끈적하고, 미묘하게 차가웠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곳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십 분이 지났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긴장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그래, 그냥 착각이었을 거야. 너무 피곤해서 헛것이 들린 거겠지. 현우는 스스로를 애써 납득시키며 다시 침대에 몸을 뉘였다. 그러나 잠은 달아난 뒤였다. 그는 불안한 시선으로 거실을 응시하다, 결국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아침, 현우는 출근 준비를 마치고 거실로 나왔다. 어제밤의 일은 그저 불면의 밤이 만들어낸 해프닝쯤으로 치부하고 잊으려 했다. 그런데 식탁 위에 놓인 열쇠 꾸러미를 본 순간, 그의 눈썹이 저절로 치켜 올라갔다.

“이게 왜 여기에…?”

현관 옆에 걸어두는 작은 선반 위에 두는 것이 그의 오랜 습관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열쇠는 늘 제자리에 두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반을 확인했지만, 역시나 비어 있었다. 그는 열쇠 꾸러미를 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젯밤에 혹시 술을 마시고 들어왔나? 아니다, 어제는 야근만 실컷 했을 뿐이다.

출근길 내내 현우는 찜찜함을 지울 수 없었다. 단순히 건망증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확고한 습관의 변화였다.

그날 밤, 퇴근 후 집에 돌아온 현우는 곧장 샤워를 하고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꺼냈다.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오늘의 피로를 잊으려 했다. 그때였다.

‘짤랑!’

주방 쪽에서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현우는 깜짝 놀라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이번엔 또 뭐야?”

그는 조심스럽게 주방으로 향했다. 싱크대 위, 컵을 보관하는 선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선반 가장자리에 걸쳐져 있던 유리컵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 나 있었다. 깨진 유리 파편이 바닥에 반짝였다.

현우는 어이가 없었다. 선반 문은 분명 닫혀 있었는데? 그리고 컵은 선반 안쪽에 넣어두는 것이었지,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걸쳐두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는 천천히 선반 문을 살폈다. 경첩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문이 저절로 열릴 만큼 흔들린 흔적도 없었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열어놓고 컵을 밀어 떨어뜨린 것처럼 보였다.

“장난하나?”

누군가 장난을 쳤다고 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이 아파트에는 오직 현우 혼자 살고 있었다.

그는 무거운 한숨을 쉬며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 유리 파편을 쓸어 담았다.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정리를 끝내고 거실로 돌아왔을 때, 그는 소파 위 자신의 휴대폰을 발견했다.

액정에는 부재중 전화 기록이 남겨져 있었다. 발신자는 ‘민서’였다. 그는 분명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떨어뜨린 것인데, 민서에게 전화가 걸려 있고 심지어 부재중까지 떠 있었다. 마치 휴대폰이 스스로 전화를 걸고 끊은 것 같았다.

“젠장, 이게 무슨…!”

현우는 혼란스러웠다. 열쇠, 컵, 그리고 휴대폰. 단순한 건망증이나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기이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불빛들이 현우의 불안한 마음을 더욱 어지럽혔다.

그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대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아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의 신경은 온통 곤두서 있었다. 매 순간, 아주 미세한 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어젯밤처럼 ‘스르륵’ 하는 소리가 다시 들릴까 봐. 혹은 또 다른 무언가가 눈앞에서 펼쳐질까 봐.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마 새벽 세 시쯤이었을 것이다. 거실 쪽에서 갑자기 ‘두두둑!’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어렴풋한 소음이 아니었다. 분명하고, 위협적인 소리였다. 마치 거대한 망치로 마룻바닥을 내려찍는 듯한 울림.

현우는 벌떡 일어났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랐다. 그는 더 이상 이 상황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의 손전등 기능을 켜고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왔다. 한 발, 한 발,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거실로 향하는 복도 끝에 다다르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거실의 모든 가구들이 제멋대로 움직여 있었다. 소파는 벽에서 떨어져 나와 거실 한가운데를 가로막고 있었고, TV 스탠드는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화병은 바닥에 엎질러져 있었고, 그 안에 있던 물이 마룻바닥에 흥건했다. 마치 거대한 손이 이 모든 것을 뒤집어엎은 것처럼.

현우는 숨을 헙 들이켰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그때, 그의 발밑에서 또 다시 ‘두두둑!’ 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소리의 진원지는 그의 발밑, 그러니까 마룻바닥 아래에서 오는 것 같았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아파트의 구조를 긁고, 뒤틀고 있는 듯한 불쾌한 진동이 발바닥을 통해 전해져 왔다.

그는 휴대폰의 불빛을 아래로 향했다. 시선이 닿은 곳은 거실 중앙, 파괴된 화병 옆이었다. 마룻바닥 한가운데가 불룩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마치 땅속에서 무언가가 뚫고 나오려는 듯, 나무 마루가 찢어질 듯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갈라진 틈새 사이로 짙고, 축축한 어둠이 스며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 같은 기척이 느껴졌다.

‘꾸물… 꾸물…’

그것은 벌레 같기도 하고, 뿌리 같기도 했다. 끈적하고 기괴한 형체가 마룻바닥의 갈라진 틈을 비집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현우는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이 공간, 이 아파트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마룻바닥의 솟아오름은 더욱 거세졌다. ‘끼이이익!’ 하는 나무가 찢어지는 소리가 굉음처럼 울렸다. 현우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단단한 나무 바닥이 마치 부드러운 살점처럼 꿈틀거리는 광경이었다.

“아… 안 돼…!”

그는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거실 벽에 걸려 있던 액자.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풍경화 액자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 있었다. 그런데 그 액자의 유리 파편 사이로, 마치 누군가 손톱으로 긁어놓은 것처럼 선명한 다섯 줄기의 붉은 자국이 보였다. 액자 뒤의 벽지에는 어두운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피가 아니었다. 끈적하고, 탁하며, 불길한 검붉은 색깔의 액체였다. 그것은 마룻바닥의 틈새에서 스며 나오는 어둠과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액체 속에서, 현우는 아주 희미하게, 알아볼 수 없는 형상이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 수많은 눈동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엉킨 실타래처럼 보이기도 하는, 기괴하고 혼란스러운 이미지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현우의 머릿속에 알 수 없는 영상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해할 수 없는 기하학적 문양들, 어둠 속에 잠긴 거대한 건축물, 그리고 귀를 찢을 듯한 절규. 그의 뇌는 감당할 수 없는 정보를 쏟아냈다.

“으아아악!”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은 인간의 것이라기보다는, 벼랑 끝에 몰린 짐승의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그는 공포에 질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관문으로 향했다. 손이 덜덜 떨렸지만, 필사적으로 문고리를 붙잡고 돌렸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는 무작정 아파트를 뛰쳐나왔다. 복도 끝 비상계단으로 향하는 동안, 등 뒤에서 여전히 ‘두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아파트 문이 통째로 뒤틀리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마치 무언가가 그의 집을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것처럼. 현우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 밤, 그는 자신의 집에서 도망쳤다. 그리고 다시는 그 아파트에 돌아가지 못했다.

복도 끝 비상계단 문을 열고 뛰쳐나간 현우는 그대로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내려갔다. 그의 뒤로 닫힌 아파트 문 너머에서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존재의 울부짖음과 함께 건물이 붕괴되는 듯한 끔찍한 소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소음보다 현우를 더 절망하게 만든 것은, 그의 머릿속에 각인된 그 기이한 형상이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알 수 없는 존재가 현대 도시의 평범한 아파트를 집어삼키려는 기괴한 시작. 그리고 현우는 그 첫 번째 목격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