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탐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검은 심장의 시험

“검은 심장.”

누군가 낮게 읊조린 그 단어가 거친 바람을 타고 이진호의 귓가에 닿았다. 검은 심장. 천하의 운명이 걸린 이 무림 비무제의 이름이자, 동시에 저 거대한 구조물의 이름이었다.

회색빛 하늘 아래, 기괴하게 솟아오른 검은 석탑은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뽑혀 나온 거대한 어금니 같았다. 삭막한 황무지 한가운데 홀로 우뚝 서서, 그 존재만으로 주변의 모든 생명을 빨아들인 듯 척박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탑의 표면은 매끄럽기보다 오히려 울퉁불퉁하고 거칠었다. 검은 바위와 알 수 없는 광물들이 뒤섞여 덩어리진 그 모습은 자연의 조형물이라기보다는, 태초의 혼돈이 응축되어 굳어진 잔해에 가까웠다.

이진호는 한참을 말없이 그 검은 탑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낡은 검은 도포는 바람에 휘날렸고, 잿빛 머리칼은 흐트러져 그의 날카로운 눈매를 가렸다. 다른 무림인들의 웅성거림과 흥분 어린 대화는 그의 귀에 닿지 않는 먼 메아리 같았다. 그저 저 탑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불길한 기운만이 온몸의 감각을 지배했다.

“젠장, 저게 대체 뭐지?”

누군가 침을 꿀꺽 삼키며 중얼거렸다. 멀리서 봐도 압도적인 규모였는데, 탑의 기단부에 가까워질수록 그 거대함은 더욱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왔다. 탑의 중앙에는 거대한 아치형 입구가 뚫려 있었다. 검고 깊은 심연으로 이어지는 듯한 그 입구에서는 기묘한 어둠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둠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미약하게 꿈틀거렸고, 그 안에서 희미한 빛이 번뜩이는가 싶으면 이내 사라졌다.

이진호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목적은 명확했다. 저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곳에서 해답을 찾는 것.

“이곳에 모인 무인들이 어림잡아 천 명은 족히 넘겠군.”

옆을 스쳐 지나가던, 붉은 도포를 입은 중년 무인이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이진호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저 발걸음을 재촉했다. 대회의 접수처는 탑의 입구 바로 앞에 마련되어 있었다. 이미 수백 명의 무림인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이름만 대면 천하를 들썩이게 할 문파의 장문인부터, 그림자처럼 숨어 지내던 은둔 고수, 심지어는 풋내기처럼 보이는 젊은 협객들까지, 온갖 무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이한 활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어르신, 대단하십니다. 백룡문의 문주께서 여기까지 발걸음하시다니, 저희 같은 소인배들은 감히 꿈도 못 꿀 영광입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이번 비무제가 천하의 운명을 건다고 하니, 어찌 이 늙은 몸이라도 나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들려오는 대화는 대부분 명망 있는 무인들을 향한 아첨이거나, 비무제 자체의 웅장함을 칭송하는 말들이었다. 이진호는 그들의 대화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에게는 ‘천하의 운명’ 따위는 와닿지 않는 허울 좋은 명분일 뿐이었다. 그의 운명은 이미 다른 곳에 있었다.

“어이, 거기! 새치기하지 마!”
“이 비겁한 놈이! 죽고 싶어 환장했나!”

간간이 터져 나오는 작은 실랑이와 살기 어린 눈빛 교환은 이곳이 무림인들의 집합소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다. 이진호는 그 틈을 비집고 접수처에 도착했다. 앞에 선 이는 은자 셋을 품고 고개를 숙이는 젊은 무인이었다. 무공은 보잘것없어 보였지만, 눈빛은 독기와 욕망으로 이글거렸다.

‘천하의 운명이 아니라, 제 한 몸의 안위와 부귀영화를 위해 이곳에 모인 자들이 더 많겠지.’

이진호는 속으로 비웃었다. 하지만 그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는 거대한 명분을 좇아 온 것이 아니었다.

이윽고 이진호의 차례가 되었다. 접수원 앞에 선 이는 차분한 인상의 중년 여인이었다. 언뜻 보기에 평범해 보였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감출 수 없는 강한 내공이 스며 있었다. 아마도 이번 비무제를 주관하는 무림맹 소속의 고수일 터였다.

“성함과 소속을 말씀해주십시오.”

여인이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진호. 소속은 없습니다.”

이진호의 답에 여인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소속 문파가 없다는 것은 무림에서 변변찮은 출신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다.

“참가비는 은자 열 냥입니다.”

이진호는 허리춤에서 엽전 주머니를 꺼내 은자 열 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여인은 은자를 확인하고는 작은 붓으로 명부에 그의 이름을 적었다.

“이진호 님. 이번 비무제는 총 세 단계로 진행됩니다. 첫 번째 단계는 탑의 외곽에서 이루어지는 단체전으로, 무인들의 기본적인 자질과 팀워크를 평가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탑 내부에서 진행되는 개인전이며, 각자의 무공을 시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오직 단 한 명의 우승자만이 검은 심장의 가장 깊은 곳으로 향할 자격을 얻습니다.”

여인은 말을 할수록 목소리에 미묘한 긴장감이 실렸다.

“그곳에서 무엇을 얻게 됩니까?” 이진호가 물었다.

“그곳에는 ‘재앙의 씨앗’이 봉인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완전히 봉인하거나, 혹은 파괴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실패한다면… 천하는 거대한 혼돈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입니다.”

여인의 시선은 이진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시선에는 경고와 함께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재앙의 씨앗이라….”

이진호는 낮게 읊조렸다. 그가 찾던 해답의 실마리가 저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심장을 옥죄어 왔다.

“첫 번째 단계의 장소는 ‘회오리 골짜기’입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열 리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다섯 명씩 한 조를 이루어 그곳에 있는 흑룡석 열 개를 먼저 가져오는 조가 승리합니다. 조는 임의로 배정되며, 곧 발표될 것입니다.”

여인의 설명이 끝나자, 이진호는 접수처를 벗어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석판이 세워져 있었고, 그 석판 위에는 먹물이 빠르게 글씨를 써 내려가듯 참가자들의 조 편성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진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석판을 응시했다. 무림인들의 거친 숨소리와 웅성거림, 그리고 간혹 터져 나오는 탄식과 환호성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제17조 이진호…!’

마침내 그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조에는 다른 네 명의 이름이 함께 적혀 있었다.

**제17조:**
* 이진호 (무소속)
* 남궁혜 (남궁세가)
* 단봉 (개방)
* 목영진 (오호문)
* 주혁 (청룡회)

이름들을 훑어보던 이진호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남궁세가의 직계 후예, 남궁혜. 그리고 개방의 장로급 고수 단봉. 오호문의 핵심 인물인 목영진. 마지막으로 신흥 무림단체 청룡회의 차기 수장 주혁.

‘재미있군.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자들만 모아놓았군.’

이진호는 작게 코웃음을 쳤다. 무소속인 자신과, 저렇게 화려한 배경을 가진 네 명이라니. 분명 뭔가 의도가 있을 터였다. 아마도 실력과 잠재력을 동시에 시험하려는 운영 측의 의도이리라.

“하아, 제17조 찾았다!”

묵직한 목소리가 이진호의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이진호가 고개를 돌리자, 자신만큼이나 낡은 검은 도포를 걸친 거구의 사내가 서 있었다. 그의 등에는 육중한 철봉이 매달려 있었고, 얼굴에는 굵은 흉터가 길게 나 있었다. 개방의 장로 단봉이었다. 그의 눈은 마치 굶주린 늑대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당신이 이진호인가?” 단봉이 낮게 물었다.

이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단봉 장로.”

단봉은 이진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경계심과 호기심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소속 없는 젊은이치고는 기개가 느껴지는군. 이번 조, 나쁘지 않겠어.”

그때였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봉 장로님, 이진호 님. 찾았습니다.”

이진호와 단봉의 시선이 동시에 향한 곳에는, 백옥 같은 피부와 섬세한 이목구비를 지닌 여인이 서 있었다. 연한 푸른색 도포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그녀는 한눈에 봐도 명문가의 규수임을 알 수 있었다. 허리춤에는 은은한 빛을 내는 장검이 매달려 있었다. 남궁세가의 남궁혜였다. 그녀의 뒤에는 날카로운 눈빛의 젊은 사내 둘이 따라붙어 있었다. 오호문의 목영진과 청룡회의 주혁이었다.

다섯 명의 시선이 공중에서 교차했다. 그들은 모두 다른 문파, 다른 배경,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모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들은 하나의 운명으로 묶여 있었다.

“자, 그럼 이제 ‘회오리 골짜기’로 향해볼까.”

단봉이 굵은 손으로 철봉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미 비무에 대한 강한 열기가 묻어나고 있었다.

이진호는 검은 심장의 거대한 입구를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저 안, 가장 깊은 곳에 그의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이 있을 터였다. 재앙의 씨앗. 그리고 그 안에서 사라져 간…

그는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함께 솟아오르는 희미한 기대를 애써 억누르며, 동쪽 하늘로 발걸음을 옮겼다. 검은 심장이 서 있는 삭막한 황무지 위로, 거친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 비무제의 막이 이제 막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