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호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균열의 밤

현우는 언제나처럼 늦은 밤, 적막한 아파트 복도를 걸었다. 낡은 타일 바닥은 그의 구두 소리를 유난히 울리게 만들었고, 어둠 속에 잠긴 복도는 깊은 심해처럼 먹먹했다. 도어록이 ‘삐빅’ 소리를 내며 열리고, 익숙한 곰팡이 냄새가 희미하게 코끝을 스쳤다. 그는 한숨을 쉬며 현관문을 닫았다. 등 뒤에서 철컥, 하고 잠금이 걸리는 소리가 마치 이 거대한 도시의 심장이 멎는 소리처럼 들렸다.

외투를 벗어 아무렇게나 의자에 걸쳐 던지고, 현우는 습관처럼 냉장고를 열었다. 텅 빈 선반, 말라비틀어진 채소 몇 조각. 먹을 만한 것이 마땅치 않아 차가운 물 한 컵을 들이켰다. 차가운 액체가 목을 타고 흐르자 비로소 축 늘어졌던 몸에 미미한 생기가 돌았다. 그의 낡은 원룸은 불을 켜지 않아도 바깥 도시의 빛으로 흐릿하게 채워져 있었다. 창밖으로 아득히 펼쳐진 빌딩 숲은 거대한 병풍 같았다. 저 수많은 불빛들 중 오직 이 방만이 그의 세상이었다.

소파에 몸을 파묻고 눈을 감았다. 고요가 그의 귀를 채웠다. 너무나 완벽한 고요. 도시의 소음도, 이웃집의 작은 움직임도 들리지 않는, 섬뜩하리만큼 완벽한 침묵이었다. 며칠 전부터 그랬다. 밤이 되면 세상 모든 소리가 차단된 듯, 그의 아파트는 소리의 감옥이 되곤 했다. 처음에는 지친 몸이 만들어낸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스윽, 스윽.”
아주 미세한 소리. 마치 작은 동물이 벽을 긁는 듯한 마찰음이었다. 현우는 눈을 번쩍 떴다.
“뭐지?”
그는 귀를 기울였다. 소리는 거실 벽, 그의 침대 머리맡과 맞닿아 있는 벽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쥐인가? 설마. 아무리 오래된 아파트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는 무시하려고 애썼지만, 소리는 점점 더 또렷해졌다. 불규칙하게, 마치 무언가 살아있는 것이 긁어대는 것처럼.

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귀를 대보았다. 차가운 벽에 뺨이 닿았다. 소리는 멈췄다. 그는 피식 웃었다.
“젠장, 피곤해서 헛것이 들리나.”
다시 소파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가 소파에 앉자마자,
“스윽, 스스슥!”
소리가 다시 시작됐다. 이번에는 좀 더 거칠게, 마치 누군가 칼날로 벽지를 긁는 듯한 소리였다. 현우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손으로 벽을 쾅쾅 두드렸다.
“야! 거기 누구야? 뭘 긁는 거야!”
소리가 뚝 멎었다. 완벽한 침묵. 그는 숨을 죽인 채 벽을 노려보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벽은 그저 차갑고 무표정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결국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올 리 없었다. 그는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밤은 깊어가는데, 그의 안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쥐도 아니고, 이웃도 아니라면, 저 소리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새벽 두 시쯤이었을까. 현우는 갈증을 느껴 잠에서 깼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뭔가 이상한 기척이 느껴졌다. 방 안의 공기가 평소보다 훨씬 차가웠다. 에어컨을 튼 것도 아닌데, 마치 한겨울처럼 뼈 시린 한기가 감돌았다. 그는 팔을 문지르며 거실로 향했다.

테이블 위에는 어제 마시다 남은 머그컵이 놓여 있었다. 그는 컵을 집어 들려다 멈칫했다.
컵이, 아주 미세하게,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이 아니라, 마치 아주 부드러운 빙판 위에 놓인 것처럼, 미끄러지듯, 현우 쪽으로 아주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느리게, 그러나 분명하게.
“으악!”
그는 무심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심장이 발밑으로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손을 뻗어 컵을 움켜쥐었다. 컵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는 손안에서 컵이 발버둥 치는 착각마저 들었다.
“이게 뭐야….”
머리가 어지러웠다. 잠결에 본 환상일까? 아니, 그는 분명히 깨어 있었다. 차가운 공기, 움직이는 컵.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현실적이었다.

컵을 내려놓고 침대 맡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앉아 심호흡을 했다. 분명 잠이 부족해서 생긴 환각일 거야. 아니면, 이 아파트가 너무 낡아서… 뭐라도 좋으니 합리적인 이유가 필요했다.

다시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았을 때였다.
거실에서 “쨍그랑!” 하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리나 도자기 같은 것이 바닥에 부딪혀 깨지는 소리. 현우는 펄쩍 뛰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맨발로 차가운 바닥을 디디고 거실로 나갔다.

거실 한가운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처참하게 깨져 산산조각 난 도자기 꽃병이었다. 어머니가 선물해주신, 현관 신발장 위에 두었던 바로 그 꽃병이었다.
꽃병은 바닥에 흩뿌려진 파편들 사이에서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현관 신발장 위에 있던 것이 어떻게 여기까지?
현우의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단순한 착각, 피로, 환각 같은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적막한 아파트, 차가운 공기. 그리고 깨진 꽃병.
벽을 긁던 소리, 저절로 움직이던 컵.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이건…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그의 아파트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숨어 있지 않았다.

현우는 얼어붙은 몸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둠 속에 잠긴 그의 아파트.
그곳에, 무언가가, 분명히, 그와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그의 존재를 감지하고, 섬뜩한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방금 전까지 익숙했던 아파트는 이제 낯선, 차갑고 잔인한 공간으로 변해버린 듯했다.
현우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밤이, 그를 집어삼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