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건물은 한때 이 도시의 자랑이었을 거다. 돔 형태의 지붕은 별들을 관측했을 망원경의 흔적이었고, 견고한 벽돌은 한 시대를 버텨낸 고집을 말해주었다. 지금은 그저 흉물스러운 폐허일 뿐. 나는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고쳐 메고, 부서진 철제 울타리를 넘어섰다. 폐쇄된 지 30년이 넘은 ‘율하 천문대’. 도시의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진 곳이었다. 나 같은 도시 탐험가들에게는 그 희미함이야말로 보물이었다.
축축한 공기가 코를 찔렀다. 곰팡이 냄새, 썩어가는 나무 냄새,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비릿한 금속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발밑에는 깨진 유리 파편들이 바스락거렸고, 뜯겨나간 문짝들은 뼈대만 남긴 채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어두운 복도를 따라 걸어가자, 메인 관측실로 이어지는 텅 빈 공간이 나타났다. 거대한 돔 천장은 구멍이 숭숭 뚫려 밤하늘이 그대로 보였고, 그 아래 덩그러니 놓인 망원경 받침대는 녹슨 쇳덩이 괴물 같았다.
“볼품없군.”
혼잣말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뻔한 풍경이었다. 예상했던 폐허의 모습. 하지만 내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나는 익숙한 것 뒤에 숨겨진 낯선 것을 찾아 헤매는 습관이 있었다. 메인 관측실 한쪽에 자리한 작은 문. 보통은 관리실이나 자료실로 이어지는 문일 터였다. 그러나 그 문은 유난히 낡고, 굳게 닫혀 있었다. 아니, 닫혔다기보다는…… 봉인된 느낌이었다. 굵은 쇠사슬과 녹슨 자물쇠가 육중한 나무 문을 휘감고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려 문을 비췄다. 나무판에 새겨진 알아볼 수 없는 문양들. 종교적인 문양 같기도 하고, 단순한 낙서 같기도 했다. 손가락으로 문양을 쓸어보니, 이상하게도 차가운 금속 같은 질감이 느껴졌다. 나무 문인데? 고개를 갸웃하며 손전등을 구석구석 비췄다. 쇠사슬 너머, 문의 틈새로 아주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바깥의 빛이 아니었다. 안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옅은 초록빛이었다.
등골이 오싹했다. 이 건물은 전기가 끊긴 지 수십 년이 넘었다. 내장 배터리로 작동하는 비상등 같은 걸까? 아니면 누군가 여기 살고 있는 걸까? 후자라면 위험하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초록빛이 발산하는 기묘한 매력은 거부하기 힘들었다. 쇠사슬은 닳고 낡아 있었고, 자물쇠는 녹슬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몇 번 힘주어 당기자,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쇠사슬이 툭 하고 끊어졌다. 자물쇠는 녹슨 채로 풀려버렸다. 의외로 허술했다.
문을 밀자, 굉음과 함께 낡은 문이 안쪽으로 넘어갔다. 먼지 구름이 폭발하듯 솟구쳤고, 나는 기침을 하며 팔로 입을 가렸다. 먼지가 가라앉자 드러난 것은, 상상했던 관리실이나 자료실이 아니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이 지하로 이어져 있었다. 계단 양옆 벽면에는 마찬가지로 알 수 없는 문양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고, 그 문양들 사이사이에서 희미한 초록빛이 깜빡였다.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홀린 듯 계단을 내려갔다. 한 발짝, 한 발짝. 발을 디딜 때마다 뼈를 긁는 듯한 소름 끼치는 진동이 느껴졌다.
계단의 끝에 다다르자, 어둠 속에 거대한 공간이 펼쳐졌다. 거대한 동굴 같기도 하고, 고대 신전 같기도 했다. 공간의 중앙에는 원형의 제단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위로는 천장에 뚫린 작은 구멍에서 빛이 내려와 제단을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빛은, 별빛이나 햇빛이 아니었다. 옅은 보랏빛을 띠는, 생명력 넘치는 빛이었다.
“젠장, 이게 대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천문대 아래에 이런 공간이 숨겨져 있었다니. 가까이 다가가 제단을 살폈다. 제단은 거친 돌로 만들어졌지만, 표면은 섬세한 조각들로 뒤덮여 있었다. 알아볼 수 없는 글자들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그 글자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제단 중앙에는, 그 어떤 물건도 놓여 있지 않았다. 오직, 완벽하게 매끄러운 검은색 원형 표면만이 존재했다. 거울처럼 반사되지만, 나 자신의 모습은 비치지 않았다. 오직 뒤편의 어둠과 희미한 초록빛만이 그 속에 일렁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검은 표면에 닿았다.
그 순간, 온몸의 감각이 뒤틀렸다.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차가운 전율이 척추를 타고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뇌 속에서 수많은 영상과 소리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끝없이 펼쳐진 암흑의 우주. 그 속에서 헤엄치는 거대한 존재들. 그것들은 별이 아니었고, 은하도 아니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형체를 가진 것들이었다. 삐져나온 촉수, 기괴하게 뒤틀린 눈동자, 뚫려 있는 무수한 입들. 그들의 존재만으로 우주는 왜곡되고 일그러졌다. 이해할 수 없는 비명 소리와 낮은 웅얼거림이 귀청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동시에, 내 머릿속에 수많은 정보가 강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언어라고 할 수도 없는 개념들, 그림으로 표현할 수도 없는 이미지들. 시간의 시작과 끝, 우주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법칙들. 그것들은 인간의 지성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너무나도 거대하고 압도적인 진실들이었다.
“크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손을 떼어냈다.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고, 눈앞의 풍경은 왜곡되어 보였다. 제단은 여전히 검은 표면을 빛내고 있었지만, 이제 그 검은색은 나에게 단순한 색이 아니었다. 그것은 심연이었고, 우주의 끝이었으며, 모든 존재의 근원이자 파멸이었다.
내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웅얼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수십, 수백, 수천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속삭이는 듯했다.
— *너는 보았는가?*
— *너는 들었는가?*
— *너는 느꼈는가?*
— *이제 너는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몸을 떨며 고개를 들었다. 제단 주변의 벽면에 새겨진 문양들이 더 이상 죽은 형체가 아니었다. 초록빛으로 꿈틀거리며, 마치 눈을 뜨는 것처럼 깜빡이고 있었다. 보랏빛 조명 아래, 제단 중앙의 검은 표면이 더욱 깊고 어두워졌다. 그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거대한 그림자가 일렁이는 듯했다.
갑자기, 주변의 돌벽에 새겨진 문양 중 하나가 빛을 발하며 균열하기 시작했다. 푸른색과 보랏빛이 뒤섞인 섬광이 뿜어져 나오더니, 벽의 일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 뒤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있었다.
공간이 비틀리고, 그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형태가 없었다. 마치 살아있는 어둠과 같았다. 검은 실타래처럼 엉겨 붙어 있었지만, 그 실타래 하나하나가 수억 개의 눈동자처럼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그것은 천천히,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 존재가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제단에서 흘러나오던 웅얼거림이 더욱 거세졌다. 마치 그것의 움직임에 맞춰 우주가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나는 달아나야 했다. 본능이 미친 듯이 경고음을 울렸다. 하지만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몸은 돌처럼 굳어버렸다. 어둠의 존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이제는 그 속에서 섬뜩한 아가리가 벌어지는 것 같았다. 마치 내 영혼을 통째로 삼키려는 듯이.
그때, 제단 중앙의 검은 표면이 갑자기 밝은 보랏빛으로 번뜩였다. 그 빛은 어둠의 존재를 꿰뚫었고, 존재는 고통스러운 듯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마치 그림자처럼 벽면으로 스며들어갔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몸이 풀리고, 바닥에 쓰러졌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갔다. 심장이 여전히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방금 전의 경험은 꿈이 아니었다. 환상도 아니었다.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들었으며, 내 정신으로 받아들인 현실이었다.
문득,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검은 표면에 닿았던 손바닥이었다. 피부 위로 희미한 문양들이 돋아나 있었다. 제단 주변의 벽면에 새겨진 문양들과 똑같은 것들이었다. 그 문양들은 옅은 초록빛으로 깜빡이며, 내 손바닥 안에서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내가 뭘 건드린 거지……?”
두려움과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흥분이 밀려왔다. 이것은 내가 평생을 찾아 헤매던 그 무언가였다. 도시의 기억에서 사라진 폐허 속에서, 나는 세상의 근원과 맞닿아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것이 내 일부가 되었다. 벗어날 수 없었다. 아니,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이 모든 것을 기록해야 했다.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 그리고 내 손바닥에 새겨진 이 표식들까지.
하지만 렌즈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이미 예전 같지 않았다. 벽면의 문양들은 더욱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고, 제단 중앙의 검은 표면은 나를 유혹하는 심연의 눈동자처럼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사라졌던 그 존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만 같았다. 아니,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미쳐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나를 더욱 깊은 심연으로 끌어당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