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소녀 독립적인 단편 소설

회색빛 하늘이 늘어진 실밥처럼 찢어진 먹구름을 이고 있었다. 지상에서 십수 미터는 족히 될 낡은 교각 위, 유나는 녹슨 철골에 기댄 채 먼지 쌓인 도시의 풍경을 응시했다. 한때 빛나는 유리벽을 자랑하던 마천루들은 이제 이빨 빠진 맹수의 뼈대처럼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고, 솟아난 풀뿌리가 콘크리트를 뚫고 생명의 끈질김을 과시하는 곳이었다. 숨을 들이쉬면 흙먼지와 금속의 비릿한 녹 냄새가 폐부를 찔렀다. 이젠 익숙한 냄새였다.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냄새.

“젠장, 또 꽝이네.”

유나는 낮게 욕설을 읊조리며 배낭을 고쳐 맸다. 오늘 하루 종일 뒤진 폐허 속에서 찾아낸 것이라곤 곰팡이 핀 통조림 캔 하나와 반쯤 닳은 손전등 배터리가 전부였다. 그것마저도 언제 작동을 멈출지 모르는 불안한 물건들이었다. 마법봉의 자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별 모양 장식이 달린 분홍색 지팡이는 한때 ‘희망의 마법소녀’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낡고 스크래치 투성이의 무기에 불과했다. 유나의 마법소녀 복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색 바랜 분홍색 천은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고, 원래는 반짝였을 리본 장식은 헤지고 너덜거렸다. 무릎과 팔꿈치에는 덧댄 가죽 조각들이 기웠다. 전투의 흔적은 그녀의 얼굴에도 선명했다. 왼쪽 뺨을 가로지르는 길고 옅은 흉터는 과거의 영광이 아니라 생존의 투쟁을 말해주고 있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붉은 노을이 회색 도시를 피처럼 물들였다. 이 시간은 위험했다. 어둠이 내리면 어둠 속에서 기어 나오는 것들의 움직임이 더 활발해졌다. 유나는 서둘러 교각을 내려와 지하도로 향했다. 그나마 지하도는 지상보다는 안전했다.

낡은 지하철역 통로는 습기와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다. 끊긴 전력 때문에 어둠이 짙었지만, 유나의 눈은 이미 이런 환경에 익숙해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발소리를 죽이며 나아가던 그녀의 귀에 희미한 소리가 잡혔다.

— 척, 척.

쇠가 갈리는 듯한 불쾌한 소리. 유나는 본능적으로 마법봉을 고쳐 쥐고 자세를 낮췄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둠 속에서 형체가 드러났다. 거미처럼 긴 팔다리에 강철판 같은 껍질을 두른 괴수였다. 여섯 개의 붉은 눈이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빛났다. ‘철갑 거미’. 흔히 볼 수 있는 괴수 중 하나였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특히 이런 좁은 통로에서는 더욱 그랬다.

“젠장, 재수 옴 붙었네.”

유나는 낮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오늘 저녁 식사는 이 녀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안이 바싹 말랐다. 전투는 피할 수 없었다.

괴수가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거대한 앞발을 들어 올렸다. 날카로운 발톱이 공기를 갈랐다. 유나는 빠르게 몸을 옆으로 틀어 공격을 피했다. 발톱이 지나간 자리에 콘크리트 벽이 움푹 파였다.

“흥! 이걸로 끝낼 줄 알아?”

유나는 마법봉을 높이 치켜들었다. 낡은 복장의 어깨 부분에서 푸른빛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스타라이트 차지!’ 그녀의 주문이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마법봉 끝에서 푸른 에너지 구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괴수는 유나의 빛을 향해 돌진했다. 육중한 몸이 좁은 통로를 울렸다. 유나는 에너지 구체가 충분히 커질 때까지 기다렸다. 녀석의 거대한 앞발이 그녀의 얼굴 바로 앞까지 닿는 순간, 유나는 이를 악물고 마법봉을 휘둘렀다.

“별빛 폭렬!”

푸른 에너지 구체가 괴수의 단단한 껍질에 정면으로 명중했다. 콰앙! 굉음과 함께 통로가 흔들렸다. 폭발의 섬광이 어둠을 잠시 몰아냈고, 유나는 그 틈을 타 괴수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연기가 걷히자 괴수는 비틀거리고 있었다. 단단한 껍질에 금이 가고, 붉은 눈 중 하나가 꺼져 있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녀석은 더욱 격렬하게 울부짖으며 유나에게 달려들었다.

유나는 숨을 헐떡였다. 방금 전의 마법은 상당한 마력을 소모했다. 그녀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러나 물러설 수는 없었다. 여기서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테니까.

“한 방 더!”

유나는 이번엔 마법봉을 땅에 박았다. 희미한 은빛 마법진이 그녀의 발밑에 그려졌다. ‘별빛 결계!’ 그녀의 몸을 감싸는 얇은 에너지 방벽이 형성되었다.

괴수의 다음 공격이 방벽에 부딪혔다.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방벽이 순식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유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시간을 벌어야 했다. 몸속에 남아있는 얼마 안 되는 마력을 쥐어짜냈다.

그녀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마법봉이 다시 푸른빛을 머금기 시작했다. 방벽이 완전히 깨지기 직전, 유나는 전력을 다해 마법봉을 괴수의 머리 방향으로 내질렀다.

“별빛 관통!”

이번에는 집중된 한 줄기 푸른 빛줄기가 괴수의 깨진 눈을 향해 날아갔다. 녀석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곧이어 육중한 몸이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거대한 진동이 지하 통로를 울렸다.

유나는 힘없이 주저앉았다. 마법봉이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마력이 바닥난 몸은 추위와 허기에 더욱 취약해졌다. 녀석을 완전히 소멸시키지 않은 것은 남아있는 마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죽은 철갑 거미의 시체를 바라보며 유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한때는 정의와 희망을 외치며 화려한 마법으로 괴수를 물리치던 마법소녀였다. 지금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생존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멈출 수는 없다는 것을. 멈추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죽은 괴수의 몸에서 쓸만한 부속이라도 떼어낼 수 있을지 확인해야 했다. 날카로운 발톱이나 껍질은 무기나 방어구로 가공할 수 있었다. 비록 피와 살점 범벅이 될지라도, 이것이 바로 생존이었다.

털썩.

시체 옆에 굴러떨어져 있는 작은 천 조각이 유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찢어지고 더러워진 천 조각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한때는 귀엽고 화려했을 법한 자수가 놓여 있었다. ‘꿈빛 요정’이라는 문구가 희미하게 박혀 있었다. 다른 마법소녀의 흔적이었다. 아마도 이 괴수에게 당한 또 다른 생존자였을 것이다.

유나는 천 조각을 주워 올렸다. 흙먼지와 피로 얼룩진 천은 손안에서 차갑고 무겁게 느껴졌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그것을 자신의 찢어진 주머니 속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언젠가는 다시 꿈을 꿀 수 있는 날이 올까. 빛나는 마법으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시절처럼.

아직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그러나 유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마법봉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꺼지지 않는 별처럼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죽은 괴수의 시체를 뒤지는 그녀의 손끝에는,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가 굳건히 맺혀 있었다. 지하 통로의 깊은 어둠 속으로, 유나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