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소드 1: 잿빛 황무지의 메아리
**[프롤로그]**
(장면: 드넓은 잿빛 황무지. 끝없이 펼쳐진 회색의 땅 위로 잔해가 된 고층 빌딩들의 뼈대가 앙상하게 솟아있다. 하늘은 칙칙한 구름으로 뒤덮여 있고, 간간히 검은 재가 섞인 바람이 불어온다. 발자국 소리 외에는 어떤 생명체의 흔적도 없다. 화면 중앙에는 방진 마스크와 후드를 깊게 눌러쓴 두 인영이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한 명은 성인 남성, 다른 한 명은 그보다 한참 어린 소녀.)
**[1컷]**
(장면: 리안, 낡고 닳은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허리춤의 물통을 만져본다. 물통은 거의 비어있는 듯 가볍다. 그의 눈은 피로에 잠겨 있지만, 동시에 매섭게 주변을 살핀다. 마스크 너머로 거친 숨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2컷]**
(장면: 엘라, 리안의 뒤를 따라 걷는 엘라의 얼굴에선 피로감이 역력하다. 하지만 이따금 고개를 들어 칙칙한 하늘을 올려다보는 눈빛은 불안과 함께 작은 희망을 품고 있는 듯 보인다. 그녀의 작은 손에는 끝이 닳은 낡은 단검이 들려있다.)
**리안 (낮고 거친 목소리):** …얼마나 더 가야 한다고 했지.
**엘라 (지친 기색이 역력하지만 억지로 활기찬 목소리):** 지도 상으로는… 이제, 이제 거의 다 왔어요, 리안 오빠! 저기 저 멀리 보이는, 저 낡은 기둥 같은 건물들 보이죠? 저기가 예전 발전소 자리래요!
**[3컷]**
(장면: 리안이 엘라가 가리킨 방향을 본다. 흐릿한 재의 안개 너머로 거대한 구조물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형태가 불분명하지만, 일반적인 건물과는 다른 육중한 실루엣.)
**리안:** 발전소… 거기 물이 남아있을 거라고 확신하나? 벌써 십 년도 더 지났어. 그때 그 검은 비가 내린 이후로… 세상 모든 것이 변했어.
**엘라:** (작게 한숨 쉬며) 적어도, 다른 곳보다는 가능성이 높다고 했어요. 물… 아니면, 하다못해 버려진 비상식량이라도 찾을 수 있을 거래요. 옛 자료에 그렇게 나와 있었어요. 거기, 물을 정화하던 장치가 완전히 파괴되진 않았을 거랬어요.
**[4컷]**
(장면: 리안은 대답 없이 묵묵히 걷는다. 그의 시선은 바닥을 향해 있지만, 그의 귀는 주변의 작은 소리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듯 예민하게 움직인다. 잿빛 평원 위, 두 사람의 길고 앙상한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다.)
**[5컷]**
(장면: 엘라가 걷는 도중 발을 헛디뎌 작은 돌멩이를 건드린다. 돌멩이는 황무지의 정적을 깨고 몇 번 통통 튀며 굴러간다. 작은 소음조차 크게 울리는 적막.)
**[6컷]**
(장면: 그 순간, 리안의 동작이 멈춘다. 그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본다. 그의 눈이 무언가를 포착한 듯 날카롭게 빛난다. 마스크 아래로 그의 턱이 굳어진다.)
**리안 (나지막이):** …멈춰.
**엘라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왜… 왜요?
**[7컷]**
(장면: 잿빛 평원의 작은 언덕 위. 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그 나무의 뿌리 근처, 회색빛 모래와 재 사이에서 삐져나온 거대한 발톱 자국이 클로즈업된다. 비정상적으로 크고 날카로운 자국.)
**리안:** 발자국.
**[8컷]**
(장면: 리안이 바닥을 가리킨다. 엘라가 그제야 발자국을 발견하고 경직된다. 사람의 발자국이 아니다. 거대한 맹수의 흔적이다.)
**엘라 (떨리는 목소리로):** 잿빛… 잿빛 짐승…?
**리안:** 어둠벌레 자국은 아니야. 훨씬 크고, 육중해. 밤에 사냥하는 놈들 중 하나겠지. 이쪽으로 향했어. 분명히 녀석의 체취가 느껴져.
**[9컷]**
(장면: 리안이 등 뒤에 메고 있던 낡은 석궁을 꺼내 재빠르게 장전한다. 그의 손놀림은 거칠지만 숙련되어 있다. 쇠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날카롭게 울린다.)
**리안:** 움직여. 최대한 조용히.
**[10컷]**
(장면: 두 사람은 발자국을 피해 조심스럽게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엘라의 시선은 계속해서 뒤를 돌아본다. 작은 발소리가 재 위를 스치는 소리만 들린다.)
**엘라:** 아직, 낮인데… 왜 벌써 나타났을까요? 보통 밤에 움직인다고 했잖아요…
**리안:** (숨을 고르며) 이 주변은 밤낮의 구분이 흐려진 지 오래다. 재의 폭풍이 다가오고 있어. 놈들은 그걸 감지하고 숨을 곳을 찾는 중일 거다. 아니면… 사냥을 시작했거나.
**[11컷]**
(장면: 멀리서부터 회색빛 안개가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몰려오는 것이 보인다. 재와 먼지가 뒤섞인 폭풍이다. 시야가 급격히 흐려지기 시작한다. 황무지 전체를 집어삼킬 듯이 밀려오는 거대한 장막.)
**엘라 (경악하며):** 저거… 재의 폭풍이잖아요! 어쩌죠, 리안 오빠?! 피해야 해요!
**리안:** (주변을 살피며) 가까운 은신처를 찾아야 해! 저 안에선 길을 잃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게 있어! 놈들도 폭풍 속에선 더욱 미쳐 날뛰는 법이니까!
**[12컷]**
(장면: 폭풍이 순식간에 두 사람을 덮친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재와 모래가 살을 에는 듯하다. 시야는 완전히 가려지고, 귓가에는 폭풍의 울부짖음만이 가득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백색의 공간.)
**[13컷]**
(장면: 리안이 엘라의 손을 꽉 잡고 이끈다. 엘라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리안의 뒤를 따른다. 이따금씩 돌멩이나 잔해가 날아와 몸을 때린다. 바람 소리마저 삼켜버릴 듯한 거대한 포효가 멀리서 들려오는 듯하다.)
**엘라 (폭풍 소리에 묻히지 않기 위해 소리치듯):** 아무것도 안 보여요! 우리가 제대로 가는 건 맞아요?!
**리안 (짧게 외치며):** 그냥… 따라와! 믿어!
**[14컷]**
(장면: 그 순간, 발밑에서 묵직한 진동이 느껴진다. 땅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리안의 표정이 마스크 아래로 굳는다. 발소리마저 묻혀버릴 듯한 강렬한 진동.)
**[15컷]**
(장면: 잿빛 폭풍 속, 바로 눈앞에서 거대한 형체가 불쑥 솟아오른다. 회색빛 비늘과 근육으로 뒤덮인 거대한 잿빛 짐승이다. 이빨은 낫처럼 날카롭고, 눈은 핏빛으로 번뜩인다. 폭풍 속에서 더욱 기괴하고 거대하게 느껴진다.)
**엘라 (비명):** 꺄악!
**[16컷]**
(장면: 짐승이 육중한 발톱으로 두 사람을 후려치려 한다. 리안이 재빠르게 엘라를 끌어당겨 피한다. 짐승의 발톱이 땅을 찍어 깊은 웅덩이를 만들고, 파괴된 지면에서 재가 다시 솟구친다.)
**리안 (이를 악물며):** 이 미친놈이, 여기서 기어나왔잖아! 하필 지금!
**[17컷]**
(장면: 짐승이 다시 공격 자세를 취한다. 리안은 엘라를 등 뒤로 숨기고 석궁을 겨눈다. 재의 폭풍 속에서 짐승의 실루엣이 흔들린다. 리안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난다.)
**리안:** 엘라! 내가 시선 끌 테니, 넌 왼쪽으로 뛰어! 최대한 멀리! 발전소 방향으로!
**엘라 (울먹이며):** 오빠 혼자 어떻게 해요! 너무 커요!
**리안:** 잔말 말고! 뛰라고! 이건 명령이다!
**[18컷]**
(장면: 리안이 짐승의 눈을 향해 석궁을 발사한다. 낡은 볼트가 짐승의 눈에 정확히 박히지만, 짐승은 고통스러운 울부짖음과 함께 더욱 격렬하게 날뛴다. 그 눈은 더욱 붉게 타오른다.)
**[19컷]**
(장면: 짐승이 눈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리안에게 달려든다. 리안은 재빨리 다음 볼트를 장전하며 뒤로 물러선다. 짐승의 꼬리가 휘둘러져 주변의 잔해를 부숴버린다. 거대한 파괴력.)
**[20컷]**
(장면: 엘라가 망설이다가 리안의 말대로 왼쪽으로 필사적으로 달린다. 하지만 재의 폭풍 때문에 방향 감각을 잃고 비틀거린다. 그녀의 작은 몸이 폭풍에 휘청거린다.)
**[21컷]**
(장면: 리안은 짐승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계속해서 볼트를 발사한다. 짐승의 단단한 비늘에 볼트가 튕겨나가지만, 한 발이 목덜미에 깊숙이 박힌다. 짐승이 주춤한다.)
**리안 (숨을 헐떡이며):** 크윽…! 이 자식, 단단하기는…! 이 정도로 안 죽는다고?!
**[22컷]**
(장면: 짐승이 리안에게서 시선을 돌려 달아나는 엘라를 향해 포효한다. 그 거대한 몸이 엘라에게로 향한다. 엘라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드는 짐승의 모습.)
**리안 (절규하듯):** 엘라!! 안 돼!
**[23컷]**
(장면: 엘라는 뒤를 돌아본다. 거대한 짐승이 자신을 향해 돌진해 오는 모습에 얼어붙는다. 그녀는 공포에 질려 눈을 질끈 감는다. 죽음의 그림자가 그녀를 덮치는 순간.)
**[24컷]**
(장면: 바로 그 순간, 짐승의 옆구리에서 섬광이 번쩍인다. 엘라의 손에 들려있던 낡은 단검이 짐승의 비늘 틈새를 찢고 깊숙이 박혀있다. 짐승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쓰러진다. 폭풍 속에서도 선명하게 들리는 고통의 비명.)
**[25컷]**
(장면: 엘라가 숨을 거칠게 쉬며 짐승을 노려본다. 그녀는 무의식중에 단검을 휘둘러 짐승의 가장 약한 옆구리를 노린 것이었다. 짐승은 마지막 발악을 하며 몸부림치다 이내 움직임을 멈춘다. 그녀의 얼굴에는 공포와 함께 알 수 없는 결의가 엿보인다.)
**리안 (놀란 표정으로 엘라를 보며):** …엘라.
**엘라 (단검을 꽉 쥔 채 떨리는 목소리로):** …괜찮아요, 오빠? 저… 저 괜찮아요…
**[26컷]**
(장면: 리안이 쓰러진 짐승을 확인한다. 거대한 몸집의 짐승이 확실히 숨을 거뒀다. 그는 엘라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잡는다. 안도감과 함께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스친다.)
**리안:** 다쳤어? 어디 부러진 곳은?
**엘라:** 아니요… (그녀의 손이 아직도 떨리고 있다) 그냥… 너무 놀라서… 오빠가 옆에 있으라고 해서… 그래서…
**[27컷]**
(장면: 폭풍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한다. 시야가 조금씩 트이며 멀리 발전소의 거대한 실루엣이 좀 더 명확하게 보인다. 거대한 그림자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리안:** 운이 좋았어. 네가 없었다면… 하아. 고맙다. 엘라.
**엘라:** 오빠도… 오빠도 대단했어요.
**[28컷]**
(장면: 리안이 쓰러진 짐승의 몸을 살핀다. 그리고 짐승의 등 뒤에 박힌, 보통 잿빛 짐승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 이상한 금속 조각을 발견한다. 그의 표정이 다시 굳어진다.)
**리안 (표정이 굳어지며):** 이건…
**엘라:** 뭐예요, 오빠?
**[29컷]**
(장면: 리안이 금속 조각을 뽑아든다. 그것은 날카롭고 매끄러운 형태의 기계 파편이다. 짐승의 몸에 깊숙이 박혀 있었던 흔적이 역력하다. 첨단 기술의 잔해처럼 보인다.)
**리안:** 이 근처에… 우리 말고 또 다른 놈들이 있다는 증거야. 그것도 이런 짐승을 제압할 수 있을 만한 무기를 가진 놈들이. 꽤 오래전에 박힌 것 같군…
**[30컷]**
(장면: 두 사람의 시선이 발전소의 방향으로 향한다. 이제 발전소는 눈앞에 가깝게 다가와 있다. 하지만 그 거대한 구조물은 왠지 모르게 불길한 기운을 내뿜고 있다. 그 안에 미지의 존재가 도사리고 있는 듯한.)
**엘라 (조용히):** 그럼… 저 안에, 누군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우리보다 먼저…
**리안 (금속 파편을 꽉 쥐며):** 가능성이 높겠지. 그것도 우리처럼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는 놈들이거나… 아니면, 훨씬 더 위험한 존재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선 모든 것이 적이 될 수 있다.
**[31컷]**
(장면: 발전소의 거대한 철문이 보인다. 녹슬고 낡았지만, 여전히 굳건히 닫혀 있다. 문틈 사이로 어둠이 스며 나온다. 그 어둠 속에서 알 수 없는 기척이 느껴지는 듯하다.)
**리안:** 하아… (긴 한숨을 내쉰다) 물도 좋고 식량도 좋지만… 일단은 저 안에 뭐가 있는지부터 확인해야겠어. 조용히, 그리고 신중하게.
**[32컷]**
(장면: 리안과 엘라가 발전소를 향해 마지막 발걸음을 옮긴다. 그들의 등 뒤로 잿빛 황무지의 메아리가 다시금 울려 퍼지는 듯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섬뜩한 울음소리, 혹은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처럼 모호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화면은 발전소의 입구로 들어서는 두 사람의 작은 실루엣을 비춘다.)
**엘라 (결심한 듯 리안의 옆에 바싹 붙어 걸으며):** 제가… 오빠 옆에 있을게요. 끝까지.
**리안 (엘라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그래. 그럼 됐어.
**[에필로그]**
(장면: 발전소 입구. 그들의 발밑에는 방금 전 쓰러뜨린 잿빛 짐승의 피가 재 위로 스며들고 있다. 짐승의 핏빛 눈동자는 텅 비어 있지만, 그 안에는 알 수 없는 경고가 담겨 있는 듯하다. 화면은 발전소의 거대한 문을 클로즈업하며 암전.)
**내레이션 (리안의 낮은 목소리로):** 파멸은 한순간에 찾아왔고… 생존은 매 순간의 몸부림이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인간은 과연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무엇이 남아 있기에… 우리는 이토록 간절히 살아가려 하는가. 그리고 저 문 너머에는… 대체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