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우주, 그 심연의 어둠 속을 가로지르는 것은 오직 ‘별똥별호’뿐이었다. 혜성처럼 빠른 속도로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는 이 우주선 안에는 지구에서 온 세 명의 승무원이 타고 있었다.
함장 강준혁은 언제나 그랬듯 미간을 찌푸린 채 홀로그램 스크린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날카로웠고, 모든 보고서와 데이터는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그의 성격을 대변하듯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는 마치 우주 공간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분석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함장님, 또 뭘 그렇게 심각하게 보십니까? 우주선 벽에 미세한 먼지라도 붙었습니까?”
능글맞은 목소리가 조용했던 함교에 울렸다. 부함장 이수아였다. 그녀는 밝고 생기 넘치는 에너지로 우주선 내부를 가득 채우는 존재였다. 준혁의 딱딱한 태도와는 정반대로, 그녀는 항상 웃는 얼굴로 유머를 던지곤 했다.
준혁은 고개를 들지 않고 대답했다. “이 부함장. 이 먼지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입니다. 방금 전부터 미확인 에너지원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탐사하는 구역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형태의 신호입니다.”
수아는 그의 옆으로 다가와 스크린을 흘끗 보았다. 작은 녹색 점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다. “오, 외계인인가요? 그럼 드디어 저도 우주선 폭파시키는 멋진 영웅이 될 기회가 온 겁니까?”
“농담할 상황이 아닙니다. 이 부함장.” 준혁이 엄격하게 말했다. “접근 궤도를 재설정하고, 탐사 드론을 보내 선행 조사를 실시하겠습니다. 엔지니어 박선우에게 비상 대기하라고 전해주세요.”
“넵! 알겠습니다, 함장님!” 수아는 경쾌하게 대답하며 통신 장비로 향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들떠 있었다. 미지의 존재에 대한 설렘, 그것이 그녀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이었다.
***
별똥별호는 미확인 에너지원이 감지된 지점까지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탐사 드론이 보내오는 영상은 놀라웠다. 거대한 소행성 지대 한복판에, 짙은 암흑 속에서 오직 홀로 영롱한 빛을 내뿜는 무언가가 떠 있었다.
“세상에…!” 박선우 엔지니어의 탄성이 통신망을 타고 들려왔다.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긴 그는 별똥별호의 막내이자 분위기 메이커였다. “저거… 저거 뭔가요, 함장님? 수정인가요? 보석인가요? 혹시 외계인의 보물이라던가…?”
영상 속의 그것은 축구공만 한 크기의 구형 물체였다. 표면은 오색찬란한 빛을 반사하며 끊임없이 미묘하게 변하고 있었고,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한 유기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센서에는 강력한 에너지파가 지속적으로 방출되고 있음이 표시되었다.
준혁은 심사숙고했다. “선우, 회수 팀을 준비해. 보호막과 안정화 장치를 최대한으로 올리고,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무엇보다 안전에 유의해.”
“회수라니요! 함장님, 저건… 엄청 위험해 보이지 않습니까? 그냥 멀리서 분석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수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준혁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말했다. “미확인 에너지원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직접 분석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저 에너지는 주변 공간을 미묘하게 뒤틀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면 우리 항로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결국 준혁의 명령에 따라 선우는 특수 회수용 장비를 갖추고 소형 탐사선에 올랐다. 그는 긴장한 얼굴로 조작 버튼을 눌렀고, 소형선은 별똥별호의 도킹 베이를 미끄러져 나갔다.
***
작고 빛나는 구체는 생각보다 쉽게 회수되었다. 선우가 특수 집게로 구체를 조심스럽게 잡는 순간, 그의 손목에 찬 보호 장비에서 ‘삐빅’ 하는 경고음이 울렸다. 하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 함장님. 특이사항은… 약간의 정전기가 느껴지는 정도입니다.” 선우가 살짝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구체는 곧 별똥별호의 분석실로 옮겨졌다. 특수 격리장에 안치된 구체는 여전히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정밀 분석 결과는?” 준혁이 물었다.
수아가 홀로그램 스크린을 조작하며 보고했다. “흥미롭네요, 함장님. 이 물체는 기존에 알려진 어떤 물질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탄소, 규소 기반의 흔적도 전혀 없고요.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성하고 방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인체에 유해한 수준은 아닙니다.”
“유해하지 않다니 다행이지만, 그게 더 불안하게 들리는군요.” 준혁이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격리장 앞에 서 있던 선우가 갑자기 헛기침을 하더니 손으로 얼굴을 부채질하기 시작했다.
“어어… 저… 저만 갑자기 막… 심장이 간질간질하고… 막… 누가 보고 싶고… 그런 건가요?” 선우는 뜬금없이 볼을 붉히며 말했다. 그의 시선은 허공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
준혁과 수아는 서로를 쳐다봤다. “선우, 괜찮나?” 준혁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 예! 괜찮은데… 너무 괜찮아서 문제입니다! 하… 갑자기 막 고백하고 싶고 막… 노래 부르고 싶고…!” 선우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더니, 이내 분석실 한복판에서 뜬금없이 옛날 지구 발라드 노래를 열창하기 시작했다. 가사는 어설펐고 음정은 불안했지만,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사랑해요~ 오직 그대만을~ 내 마음 속에 간직할래요~”
준혁과 수아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선우를 바라봤다. “박선우 엔지니어,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준혁의 목소리에는 당황스러움이 역력했다.
“아, 제가 아니에요! 뭔가 이상해요! 자꾸… 자꾸 마음속에서 막… 사랑이 뿜어져 나와요!” 선우는 울상이 되었다. 그의 눈가는 촉촉했고, 노래는 멈출 줄 몰랐다.
수아는 격리장 안의 구체를 다시 보았다. “이봐요, 함장님. 설마 저 외계 물체 때문일까요? 감정을 증폭시키는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설마요. 그런 비과학적인…” 준혁이 반박하려던 순간이었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데이터 패드가 갑자기 핑크색 하트 모양으로 변하더니, 이내 패드에서 은은한 장미 향이 풍겨 나오기 시작했다.
준혁은 자신의 손에 들린 하트 패드를 보며 경악했다. “이… 이게 대체…!”
“함장님! 함장님 얼굴도 지금… 막… 복숭아색이에요!” 선우가 노래를 멈추고 환호했다.
준혁은 당황한 나머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의 뺨은 정말로 미묘하게 붉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뇌리에는 수아의 환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어째서 지금 이수아 부함장 얼굴이 떠오르는 거지?*
***
그날 이후, 별똥별호의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미확인 구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때문인지, 승무원들은 시도 때도 없이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선우는 이제 하루 종일 우주선 내부를 돌아다니며 승무원들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심지어 자동 청소 로봇에게도 “너의 메탈릭한 심장이 내 마음을 울려!” 라며 애정을 표현했다. 그의 취미는 이제 우주선 내 모든 공간에 하트 모양 포스트잇을 붙이는 것이었다.
수아도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는 평소라면 전혀 하지 않을 행동들을 했다. 예를 들어, 함장실에 들어가 준혁이 아끼는 희귀 우주 식물에 직접 만든 작은 리본을 달아주거나, 그에게만 몰래 초콜릿으로 만든 별똥별 모양 쿠키를 선물하기도 했다.
가장 큰 변화는 준혁에게서 나타났다. 그는 여전히 이성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지만, 무의식적인 행동들이 그의 의지를 배신했다. 그는 수아가 지나갈 때마다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거나, 그녀의 머리나 어깨에 붙은 보이지 않는 먼지를 떼어주는 시늉을 했다. 한번은 수아에게 “이 부함장님, 오늘 입으신 우주복…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입니다. 아주… 그… 멋있습니다.” 라고 말하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그의 칭찬은 칭찬이라기보다는 고문처럼 들렸다.
“함장님, 또 저에게 오글거리는 칭찬을 하시는군요?” 수아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도 묘하게 붉어져 있었다. 그녀는 함장이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과 행동을 할 때마다 심장이 간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게 다 저 외계 구체 때문일 거야. 맞아, 외계 구체 때문이야.* 그녀는 애써 생각했지만, 준혁의 의도치 않은 엉뚱함에 자꾸만 마음이 흔들렸다.
어느 날, 수아는 분석실에서 외계 구체의 에너지 패턴을 분석하고 있었다. 준혁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작은 유리병이 들려 있었는데, 그 안에는 우주선 재활용 시스템에서 뽑아낸 물방울들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부함장님.” 준혁이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이… 이것은… 별똥별호의 순수한 물입니다. 마치… 당신의 눈빛처럼 투명해서… 드리고 싶었습니다.”
수아는 유리병을 받아 들고 웃음을 터뜨렸다. “함장님, 이건 그냥 정수된 물이잖아요! 그리고 제 눈빛이 투명한 건 오늘 아침에 세수를 해서 그런 건데요!”
준혁은 민망한 듯 고개를 돌렸다. “아… 그런가요? 하지만… 어쩐지 특별하게 느껴져서…”
바로 그때, 외계 구체의 에너지가 갑자기 최고조에 달했다. 격리장 안의 구체는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했고, 분석실 전체에 알 수 없는 핑크빛 에너지가 넘실거렸다.
“우와! 함장님, 부함장님! 이거 보세요! 사랑 에너지 폭발이에요!”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선우가 흥분해서 외쳤다.
준혁은 갑작스러운 에너지 폭발에 휘청거렸다. 그의 눈앞에는 수아의 모습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다가왔다. 빛으로 가득 찬 공간 속에서, 그의 이성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오직 하나의 감정만이 뇌리를 지배했다.
“이수아 부함장님…!” 준혁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의 냉철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나는 당신이 이 우주선에서 가장… 가장 눈부신 별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그… 엉뚱하면서도 밝은 미소는… 내 차가운 심장을 녹여버릴 것 같습니다!”
수아는 눈을 크게 떴다. 준혁의 진심이 담긴, 그러나 여전히 오글거리는 고백이었다. 그녀의 심장은 쿵쾅거렸다. 그녀도 외계 구체의 영향 아래 있었다. 억눌려 있던 감정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함장님!” 수아가 외쳤다. “저도… 저도 사실은 함장님이 우주선 정리할 때 그… 집중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가끔씩 저한테 어색하게 던지는 농담도… 사실은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둘의 얼굴은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주변의 핑크빛 에너지는 최고조에 달했고, 선우는 밖에서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결혼해! 결혼해! 우주선에서 결혼해!”
***
외계 구체의 에너지는 몇 분간의 절정기를 거쳐 서서히 가라앉았다. 분석실의 핑크빛 에너지가 옅어지고, 구체는 다시 평소의 은은한 빛을 되찾았다.
에너지가 사라지자, 준혁과 수아는 방금 자신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방금 전의 끓어오르던 감정들은 마치 꿈처럼 아득해졌다. 남은 것은 거대한 민망함과, 어색하게 마주 선 두 사람뿐이었다.
준혁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어… 음… 이 부함장님. 방금… 그… 외계 에너지의 영향으로… 잠시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수아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네, 함장님. 저도… 제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후회막심합니다. 죄송합니다.”
분석실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그 침묵은 예전의 딱딱하고 이성적인 침묵이 아니었다. 어색하고 민망함 속에, 묘한 설렘이 섞인 침묵이었다.
그때, 선우가 분석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방금 만든 듯한 하트 모양 풍선이 들려 있었다. “와! 함장님, 부함장님! 방금 고백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제 평생 들은 고백 중에 최고였어요! 이제 함장님하고 부함장님은 오늘부터 1일인 거죠?”
“박선우 엔지니어!!!” 준혁과 수아가 동시에 소리쳤다.
결국 외계 구체는 안전한 특수 격리장에 보관되었다. 그 정체와 목적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았지만, 별똥별호에는 새로운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준혁과 수아는 여전히 예전처럼 함께 임무를 수행하고, 때로는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눈빛은 예전과 달랐다. 서로를 향한 어색함 속에, 숨길 수 없는 미묘한 끌림이 담겨 있었다.
“함장님, 오늘 밤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반짝이네요.” 수아가 함교 창문 너머의 은하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준혁은 홀로그램 스크린을 보고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자꾸만 수아에게로 향했다. “그렇습니까? 어쩐지… 예전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군요.”
그의 뺨에 살짝 복숭아색이 감돌았다. 그리고 수아는, 아주 미세하게, 그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외계에서 온 작은 구체는 우주 공간에서 뜻밖의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별똥별호는 그렇게, 미지의 우주와 미지의 감정 사이를 항해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