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동굴이었다. 축축하고 차가운 암벽에 등허리가 닿았다. 천무혁은 제 몸이 하나의 거대한 상처 덩어리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가 부서진 듯한 통증이 폐부를 찢었고, 쑤시고 저리는 아픔은 온몸의 신경을 끊임없이 들쑤셨다. 입에서는 비릿한 피 냄새가 끊이지 않고 맴돌았다. 이미 사흘 밤낮을 피와 죽음의 경계에서 헤매었다.
‘살아 있는 건가?’
정신이 가물거리는 와중에도, 그는 제 의식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죽음보다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 지 오래건만, 이 육신은 잔혹하리만큼 끈질겼다. 그러나 그 끈질김은 축복이 아닌 저주에 가까웠다. 살아있는 매 순간이 지옥이었으므로.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천장의 바위들이 보였다. 손을 움직이려 했으나, 오른팔의 어깨가 완전히 으스러진 듯 움직이지 않았다. 왼팔은 더 이상 제것이 아닌 듯 마비된 상태였다. 발버둥치려 하자, 허벅지 안쪽 깊숙한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고통이 온몸을 휘감았다. 단전은 이미 깨져버린 지 오래, 내공의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경맥은 찢기고 막혀, 흐르던 강물이 메마른 강바닥처럼 변해 있었다.
이 모든 고통의 시작은, 단 하나의 배신이었다.
그 이름을 떠올리자, 무혁의 찢어진 가슴에서부터 뜨거운 피가 역류하는 것 같았다.
**진. 호. 영.**
친구라는 가면을 쓰고 저를 농락했던 그 비열한 자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떠올랐다.
* * *
“무혁아, 마지막이야! 이 진법만 파훼하면 칠성문의 비보가 우리 손에 들어온다!”
진호영의 목소리는 여전히 유쾌하고 활기찼다. 쩌렁쩌렁 울리는 동굴 속에서 그 소리는 유독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천무혁은 진호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으로 남은 한 가닥의 결계 줄기를 응시했다. 무너진 고대 문파, 칠성문의 잔해 속에서 둘이서 힘겹게 찾아낸 비보의 입구였다. 강호에 수백 년간 전설로만 떠돌던 칠성문의 비보. 그 안에는 무공의 정수가 담긴 비급과 신물이 숨겨져 있다고 전해졌다. 둘은 어린 시절부터 형제처럼 지내며 함께 무공을 익혔고, 강호에 이름을 떨치는 영웅이 되리라 맹세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맹세를 현실로 만들 가장 강력한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이쪽이야. 호영아, 뒤를 봐줘.”
천무혁은 온 정신을 집중하여 손끝으로 섬세하게 진법의 흐름을 읽어냈다. 칠성문의 진법은 오묘하고 복잡하여, 어지간한 고수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무혁은 타고난 천재적인 감각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그 난해한 흐름을 풀어내고 있었다. 땀방울이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려 눈썹을 타고 흘러내렸다. 손끝의 감각이 예민하게 반응하며, 마침내 마지막 진법의 핵을 찾아냈다.
“됐다!”
그의 손이 허공에서 멈칫하는 순간, 등 뒤에서 섬뜩한 한기가 느껴졌다.
동시에, 폐부를 꿰뚫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 터져 나왔다.
크아악!
천무혁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거대한 충격이 온몸을 강타하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등 뒤에 꽂힌 것은 날카로운 비수였다. 그것도 단전에 정확히 박혀, 모든 내공의 흐름을 끊어버렸다. 피가 왈칵 솟구치며 입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고통 속에서 겨우 몸을 돌렸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차가운 미소를 띠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진호영의 얼굴이었다.
그의 손에는, 무혁이 오래전 호신용으로 선물했던 작은 비수가 들려 있었다. 지금 그 비수는 무혁의 등짝에 깊이 박혀 있었다.
“호… 영… 아…?”
목소리가 찢어지는 듯 갈라져 나왔다. 믿을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믿었던 친구, 목숨을 맡길 수 있다 생각했던 유일한 동료. 그가… 저를 찔렀다?
진호영은 무혁의 경악과 배신감에 물든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마치 시시한 벌레를 보듯 툭 내뱉었다.
“미안하다, 무혁아. 허나 너의 재능은 너무 눈부셨고, 강호는 둘의 영웅을 허락치 않으니.”
그 말은 비수보다 더 날카롭게 무혁의 심장을 꿰뚫었다.
‘재능…?’
진호영은 무혁보다 한 살 위였고, 무공 실력도 한 수 위로 평가받았다. 늘 형으로서 무혁을 아꼈고, 강호의 미래를 함께 꿈꾸었다. 그런 그가… 재능 때문에 저를?
“개… 소리…” 무혁은 끓어오르는 분노와 고통 속에서 겨우 한 단어를 뱉어냈다. “네… 놈이… 어찌… 감히…”
진호영은 미소를 거두고 차가운 눈빛으로 변했다.
“강호의 정상은 하나뿐이다, 무혁아. 그리고 그 정상은 오직 내가 차지해야만 해.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내가 가져야만 내가 진정한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다.”
그의 눈에 비치는 것은 끝없는 욕망과 섬뜩한 광기였다.
그는 무혁의 몸에 박힌 비수를 비틀어 뽑아냈다. 꾸득, 하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피가 다시 한번 분수처럼 솟구쳤다. 무혁의 몸은 완전히 망가졌다. 내공은 파괴되었고, 심장 부근을 스쳐 지나간 비수는 신경을 마비시켰다.
“이대로는 안 돼.” 진호영은 무혁의 피가 묻은 비수를 허공에서 가볍게 휘둘렀다. “네가 이 사실을 안 채 살아있다면, 분명 내 발목을 잡을 터.”
말을 마치는 순간, 진호영은 무혁의 멱살을 잡고 거친 힘으로 들어 올렸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무혁을 그는 칠성문 비보의 입구 옆에 있던 거대한 낭떠러지 아래로 던져버렸다.
“잘 가라, 나의 벗이여. 너의 죽음은 나의 영광스러운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진호영의 싸늘한 목소리가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무혁의 귓가에 마지막으로 울려 퍼졌다.
* * *
“크윽…”
무혁은 과거의 악몽에서 벗어나 현실의 차가운 동굴 바닥으로 돌아왔다. 온몸이 쑤시는 고통보다, 그날의 기억이 주는 모멸감이 더욱 심장을 갉아먹었다. 강호의 정상? 영웅? 웃기는 소리였다. 그저 지독한 질투와 탐욕에 눈먼 짐승일 뿐이었다.
숨이 턱 막혀왔다. 눈앞이 다시 흐려졌다. 이대로 죽는 건가. 이 차가운 동굴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고통 속에서, 처량하게. 진호영은 아마 지금쯤 칠성문의 비보를 차지하고 강호에 이름을 떨치며 영웅 대접을 받고 있을 것이다. 저는 겨우 스물다섯, 푸른 강호를 꿈꾸던 젊은 무인이었건만.
죽음이 목전까지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진호영의 비웃음 가득한 얼굴이 다시 아른거렸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문득, 마음속 깊은 곳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 하나가 치솟았다.
이대로 죽는 것은 그에게 너무나 쉬운 용서였다.
진호영에게 천하제일인의 자리를 양보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안 돼. 절대로.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한 격렬한 분노가 무혁의 심장을 때렸다. 부서진 단전, 끊어진 경맥, 으스러진 뼈들. 이 모든 것을 되돌릴 수는 없을지라도, 단 하나. 복수. 오직 그것만을 위해 다시 살아남아야 했다.
‘진호영… 네놈에게는… 열 배, 백 배로 갚아줄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한… 반드시…’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피로 물든 눈동자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활활 타오르는 붉은 불꽃이 서리기 시작했다. 고통은 여전했지만, 그 고통은 이제 더 이상 그를 짓누르는 사슬이 아니었다. 복수라는 이름의 새로운 생명력이 되어 그의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반드시 살아서, 그 개만도 못한 배신자에게 모든 것을 되갚아 주리라. 이 지옥 같은 삶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아니, 그놈을 더 깊은 지옥으로 던져 넣기 위해서라도.
천무혁은 온 힘을 다해, 제 의식을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쳤다. 그의 눈빛 속에서, 피로 물든 처절한 복수극의 서막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