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먼지가 폐허의 첨탑 도시 아르카디움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한때 하늘을 찌르던 웅장한 건물들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채, 칼날 같은 햇볕 아래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그림자 속을 기어가는 것은 오직 파괴의 잔해와, 그리고 나 같은 생존자들뿐이었다.
나는 무너진 상점가의 잔해 속을 걷고 있었다. 부러진 철근과 깨진 유리 조각들이 발에 밟힐 때마다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낡은 방진 마스크는 들숨마다 텁텁한 흙먼지를 걸러냈지만, 폐 깊숙이 스며드는 절망까지 막아주지는 못했다. 벌써 삼 일째, 제대로 된 식량을 찾지 못했다. 등 뒤의 낡은 배낭은 텅 비어 축 늘어져 있었고, 허리춤에 찬 녹슨 칼은 더 이상 아무것도 베지 못할 것처럼 느껴졌다.
“젠장.”
낮게 욕설을 읊조렸다. 목이 바짝 말라 침을 삼켰다. 물통에는 바닥에 고인 탁한 물을 정화한 것이 전부였다. 마시면 배탈이 날지, 아니면 목숨을 연명할지 신만이 알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한 모금조차 아껴야 했다.
나는 한때 ‘찬란한 기록의 전당’이라고 불리던 도서관의 잔해 앞에 섰다. 대재앙이 휩쓸고 간 지 수십 년. 이제 이곳은 텅 빈 서가와 조각난 돌기둥만이 남은, 거대한 뼈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가끔, 정말 가끔 이곳에서 뜻밖의 생존 물품이 발견되곤 했다. 책은 무용지물이지만, 가끔 오래된 통조림이나 의료품이 운 좋게 남아있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나 같은 굶주린 자들이 많았기에 경쟁은 치열했고 위험은 늘 도사렸다.
나는 도서관의 갈라진 문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내부의 공기는 바깥보다 더 무겁고 답답했다. 켜켜이 쌓인 먼지는 내가 움직일 때마다 작은 구름을 만들었다. 한 줄기 빛이 천장의 거대한 구멍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 빛이 닿는 곳은 한때 책장이 놓여 있던 자리였으나, 지금은 바닥에 뒹구는 종잇조각들과 이름 모를 괴물의 배설물만이 가득했다.
“오늘은 운이 없나.”
텅 빈 공간을 훑어보던 시선이 벽 한쪽에 있는 작은 틈새에 멈췄다. 다른 생존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너무 좁아서 포기했던 곳일 수도 있었다. 혹시 하는 마음에 낡은 장갑을 낀 손으로 잔해를 헤집었다. 부스러지는 돌무더기와 날카로운 파편들이 손에 닿았다. 먼지가 풀풀 날렸다.
그리고 마침내, 손끝에 차가운 금속 감촉이 느껴졌다. 심장이 발작적으로 뛰었다. 망할, 통조림이다!
나는 온 힘을 다해 틈새를 벌려 통조림을 꺼냈다. 낡고 녹슬었지만, 내용물은 무사해 보였다. 라벨은 이미 지워져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통조림을 배낭에 넣고, 더 이상의 수색을 포기하려 했다. 하나만으로도 오늘 나의 수확은 충분했다. 욕심은 죽음을 부른다. 이 황폐한 세계에서 내가 깨달은 가장 중요한 진리였다.
그때였다.
정적을 깨고, 등 뒤에서 무언가 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소리.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나는 즉시 허리춤의 칼에 손을 올리고 숨을 죽였다.
소리는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두운 복도 끝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두 개의 점이 나를 향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잿빛 포식자. 이 도시의 가장 흔하고, 가장 위험한 존재였다. 대재앙 이후 모든 것이 변질되었지만, 특히 잿빛 포식자들은 기어다니는 살덩어리 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시야는 제한적이지만, 후각과 청각은 인간의 몇 배에 달했다.
나는 재빨리 옆에 쓰러진 책장 뒤로 몸을 숨겼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통조림 하나에 목숨을 걸어야 하다니. 이 세계가 이토록 잔인했다.
포식자는 느릿느릿 걸어왔다. 여섯 개의 다리가 바닥을 긁으며 둔탁한 소리를 냈고, 입에서는 역겨운 비린내가 풍겼다. 놈의 빛나는 눈은 마치 사냥감을 찾는 탐조등 같았다. 놈은 잠시 멈춰 서서 공기 중의 냄새를 맡는 듯했다. 나는 숨조차 쉬지 못하고 몸을 웅크렸다. 들키면 끝이었다. 놈의 발톱은 두꺼운 강철조차 찢어발길 수 있었다.
몇 초가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놈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를 찾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포식자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내가 숨은 책장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놈의 머리가 책장 위로 불쑥 솟아났다. 끔찍한 눈이 나를 향했다. 내가 놈에게 숨어든 것이 아니라, 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칼을 뽑아 들었다. 놈의 입에서 끔찍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기 직전이었다. 이젠 도망칠 수도 없었다. 망할. 이 썩어빠진 세계가 또다시 나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르는 폐허 속에서, 나, 카인은 잿빛 포식자의 끔찍한 울음과 함께 마지막 전투를 준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