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 아래 속삭임: 오라클의 금기 (최신 화)
오라클 마법 학원, 그 웅장한 첨탑들이 밤하늘의 별을 꿰뚫고 서 있는 모습은 언제나 경외로웠다. 하지만 내게는 더 이상 희망의 등대가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불길한 징조들, 그리고 어젯밤 꾸었던 악몽은 내 심장을 찢어발기는 듯했다.
꿈속에서 나는 끝없이 펼쳐진 지하 통로를 헤매고 있었다. 습기와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섬뜩한 속삭임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내 이름을 부르는 듯했다. 그리고 그 통로의 끝에서, 나는 거대한 핏빛 문을 보았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고, 그 안에서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온몸의 땀구멍이 열린 듯 식은땀이 흘렀다.
“시온, 어젯밤에 또 그랬어?”
아침 식탁에서 리안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리안은 언제나 활기 넘치는 친구였지만, 최근 내 안색이 좋지 않자 부쩍 조심스러워졌다.
“응, 점점 더 선명해져. 이제는 꿈이 현실처럼 느껴져.”
나는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마셨지만, 싸늘하게 식은 속은 데워지지 않았다.
“그거 혹시… 학원에 떠도는 옛날이야기랑 비슷한 거 아니야? 오라클 설립 초기부터 지하에 뭔가 끔찍한 게 봉인되어 있다는…”
리안이 말을 흐렸다. 학원생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소문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오래된 건물 특유의 괴담 정도로 치부하곤 했다. 학원 당국은 그런 소문이 돌 때마다 낡은 배관 소리나 지반 침하 때문이라며 일축했다.
“그냥 소문일 뿐이야. 너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리안은 애써 밝은 목소리를 냈지만, 눈빛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내 꿈은 단순한 소문이 아니었다. 어젯밤, 꿈속에서 나는 그 핏빛 문에 다가가 손을 댔다. 차갑고 끈적한 감촉, 그리고 내 손바닥에 새겨진 듯한 낯선 문양. 깨어나 보니 실제로 내 손바닥에 희미한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희미했지만 분명한… 삼각형 안에 거미줄처럼 얽힌 선들.
나는 그 문양을 찾기 위해 학원 도서관의 금서 구역으로 향했다. ‘사서 아카데미아’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곳은 학생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곳이었다. 고위 마법사들만이 연구 목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곳, 잊히거나 위험한 지식들이 봉인된 곳. 하지만 나는 특출난 재능 덕분에 가끔 특별 허가를 받아 고서를 열람할 수 있었다.
묵직한 철문이 삐걱이며 열리고, 습하고 오래된 종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먼지 쌓인 서가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 한때 고대 문양학 수업에서 스쳐 지나갔던 자료들을 찾아 헤맸다. 몇 시간째 뒤지던 중,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검은색 가죽으로 덮인 낡은 책 한 권이었다. 표지에는 아무런 글자도 없었고, 오직 익숙한 문양이 음각되어 있었다. 삼각형 안에 거미줄처럼 얽힌 선들… 내 손바닥의 문양과 똑같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나는 책을 펼쳤다. 안에는 고대 룬 문자와 그림들이 뒤섞여 있었다. 내가 아는 몇몇 단어들을 조합해보니, 이 책은 오라클 마법 학원의 지하에 묻힌 고대의 존재, 혹은 ‘어둠의 심장’이라 불리는 금기를 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금기는… 봉인된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공물’을 바쳐야만 잠잠해진다는 섬뜩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손바닥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공물? 도대체 무엇을 공물로 바친다는 말인가?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오라클 학원의 초기 지도와 함께 알 수 없는 기호로 표시된 구역이 있었다. 학원 지하의 가장 깊은 곳, 오직 이 책에만 기록된 듯한 잊혀진 통로였다. 꿈속에서 내가 보았던 그 핏빛 문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통로…
망설일 틈도 없었다. 나는 책을 도로 제자리에 놓는 척하며, 지도에 표시된 좌표를 머릿속에 새겼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몰래 학원 지하로 향했다.
학과 건물 가장 안쪽에 위치한, 늘 잠겨 있던 낡은 창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가득한 그곳 바닥에, 지도에 표시된 문양과 똑같은 것이 희미하게 그려져 있었다. 먼지를 닦아내자, 숨겨진 레버가 드러났다. 레버를 힘껏 당기자, 묵직한 마찰음과 함께 낡은 나무 상자가 옆으로 밀려났다. 그 아래, 어둠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차가운 공기가 내 뺨을 스쳤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습기와 곰팡이, 그리고 알 수 없는 비릿한 냄새가 뒤섞인 공기였다.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갈 때마다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플래시를 비추자, 끝없이 이어지는 좁은 통로가 나타났다. 벽은 매끄럽게 다듬어진 돌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곳곳에 새겨진 알 수 없는 문양들은 기괴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얼마나 걸었을까. 통로의 끝에서, 나는 마침내 그 문을 발견했다.
꿈속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핏빛으로 물든 거대한 이중 문.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붉은 빛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속삭임이 들려왔다.
아까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에 기록된 고대의 언어. 내 이름… 그리고 무언가를 요구하는 듯한 음산한 목소리.
나는 문에 바짝 귀를 댔다.
“그림자… 깊은 잠… 영혼의… 바침…”
내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공물… 영혼?
그 순간, 문틈에서 붉은 빛이 더욱 강렬하게 번뜩였다. 섬뜩한 기운이 나를 덮쳐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바로 그때,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온 군,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몸을 굳혔다. 익숙하면서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목소리.
오라클 학원의 교장, 마스터 엘라스의 목소리였다.
어둠 속에서 그의 눈빛이 핏빛 문보다 더 붉게 빛나는 듯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내가 도서관에서 보았던 그 검은 가죽 책이었다.
나를 덮쳐오는 서늘한 공포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이 지하에는 단순한 금기가 아니라, 이 학원 전체를 지배하는, 끔찍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 진실의 문을 건드린 첫 번째 희생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 *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