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삭막한 콘크리트 숲, 그나마 온전한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낡은 도서관의 잔해 속에서 희미한 불빛 하나가 흔들렸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에는 곰팡이 냄새와 함께 흙먼지가 섞여 있었다. 한낮의 햇살마저 뚫지 못하는 두꺼운 벽 아래, 세아는 쭈그리고 앉아 낡은 휴대용 정수기의 필터를 손질하고 있었다. 흙탕물 같은 누런 물이 필터에서 겨우 한두 방울씩 떨어져 내렸다.

“언니, 그거 또 막혔어?”

지우의 목소리에는 실망과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낡은 방한복 차림의 지우는 한쪽 구석에서 주워온 낡은 그림책의 삽화를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었다. 물은 이 세계에서 금보다 귀한 존재였다. 깨끗한 물은 더욱더.

세아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젓고는 필터를 통째로 분해했다. 속은 검고 끈적한 이물질로 가득 차 있었다. 이걸 닦아내는 것도 이젠 한계에 달했다. 그녀는 손에 묻은 끈적한 것을 낡은 천에 문질러 닦아내며 한숨을 쉬었다.

“이젠 뭘 해도 안 될 것 같아. 필터가 완전히 수명을 다했네.”

지우가 그림책을 내려놓고 세아 옆으로 다가왔다. 소녀의 눈은 이미 며칠 전부터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남아있는 식수는 겨우 이틀치. 그것도 아껴 마셨을 때의 이야기였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 더러운 물 마시면 또 아프잖아.”

지우의 말이 세아의 가슴을 찔렀다. 지난번, 오염된 물을 마시고 고열에 시달리던 지우의 모습이 생생했다. 그 일 이후 세아는 필터 하나하나에 목숨을 걸었다.

“괜찮아. 방법이 있을 거야.” 세아는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이미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전에 찾아뒀던 지도, 기억나? 저기 폐공장 지대.”

지우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폐공장 지대? 거기 너무 위험하잖아… 괴물들도 많고, 가끔 다른 사람들도 온다고 했잖아.”

폐공장 지대는 한때 번성했던 공업 단지였다. 멸망 이후 대부분의 건물들이 무너지고 침수되었지만, 아직 온전한 공장 설비들이 남아있을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그만큼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생존자들이 자원을 놓고 다투거나, 돌연변이 된 짐승들이 숨어 있는 곳이었다.

세아는 지우의 어깨를 감쌌다. “어쩔 수 없어. 깨끗한 물이 없으면 우리는 버틸 수 없어. 공장 설비 중에 물을 정화하는 데 쓸 만한 부품이 있을지도 몰라. 아니면 하다못해 필터라도 몇 개 건질 수 있을 거야.”

“언니 혼자 갈 거야?”

“아니, 나 혼자 가면 더 위험해. 지우, 너도 같이 가야 해.”

지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두렵지만, 세아가 혼자 가는 것을 지켜볼 수는 없었다. 세아가 고생하는 동안 자신은 늘 이곳에서 언니를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이번만큼은.

“알았어… 같이 갈게.” 지우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단호했다.

세아는 지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지우. 대신 약속해야 해. 내가 하라는 대로 무조건 따르고, 절대 앞서 나가지 않기로.”

“응!” 지우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세아는 낡은 배낭을 챙기기 시작했다. 겨우 남은 식량 몇 조각과, 손전등, 그리고 유일한 방어 수단인 닳고 닳은 쇠 파이프. 챙길 것이라고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물을 조심스럽게 플라스틱 병에 따랐다. 탁한 물이었지만, 목숨줄이나 다름없었다.

“오늘 밤은 푹 자둬야 해.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거니까.”

세아는 지우에게 마른 고기 조각 하나를 건넸다. 지우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받아들고는 오물거렸다. 평소 같으면 이런 딱딱한 고기는 입에 대지도 않았겠지만,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언니는 안 먹어?”

“난 괜찮아. 지우, 너 많이 먹어둬야 힘을 내지.”

세아는 지우가 고기를 다 먹는 것을 지켜보다가, 불빛을 조금 더 밝혀 책장 더미에서 낡은 지도를 꺼냈다. 폐공장 지대로 향하는 가장 안전한 길을 눈으로 훑었다. 지도는 대부분의 길이 붕괴되거나 수몰되어 있다고 표시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자체가 함정일지도 모른다.

“언니, 있잖아…” 지우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우리 나중에… 깨끗한 물 엄청 많이 마시면 뭐 할까?”

세아는 지도에서 눈을 떼고 지우를 바라봤다. 지우의 눈에는 어렴풋한 희망이 서려 있었다.

“음…” 세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 도서관 옆에 작은 텃밭 만들었었잖아? 거기에다 시금치도 심고, 상추도 심고… 그리고 옆에 작은 연못도 만들어서 물고기도 키워볼까?”

지우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진짜? 그럼 나 물고기한테 이름 지어줄래! 우리 물고기 엄청 키우는 거야! 그리고 상추는… 음… 상추쌈 해 먹을까? 고기 없어도 맛있다던데!”

“응, 고기 없어도 맛있지.” 세아는 지우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었다. 소녀의 이야기는 어둡고 삭막한 현실 속에서 한 줄기 따뜻한 햇살 같았다. 그녀는 지우가 품은 소박한 꿈이 깨지지 않도록 모든 힘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들이 머무는 공간은 낡고, 먼지투성이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격리된 작은 성처럼 느껴졌다. 외부의 냉기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온기를 나누며, 잠시나마 불안감을 잊고 미래의 작은 희망을 꿈꿨다.

하지만 밤은 언제나 짧았다. 새벽녘, 희미한 빛이 먼지 쌓인 창문을 통해 스며들기 시작하자, 두 사람은 조용히 짐을 챙겨 길을 나설 준비를 했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폐허가 된 도시의 정적을 가르고 들어왔다.

세아는 배낭을 단단히 메고 쇠 파이프를 고쳐 잡았다. 지우는 조금은 불안한 듯, 세아의 옆에 바싹 붙어 섰다. 낡은 도서관의 육중한 철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밖은 회색빛 폐허의 세상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그들의 뺨을 스쳤다.

저 멀리, 뭉개진 빌딩 숲 너머로 희미하게 붉은색의 구조물이 보였다. 바로 폐공장 지대였다. 마치 거대한 짐승의 뼈대처럼 음침하게 서 있는 그곳을 향해, 두 사람은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들의 발소리만이 고요한 새벽의 정적을 깨뜨렸다.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발아래 진흙 속에 묻혀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낡은 로봇 인형의 팔이었다. 한때 아이들의 친구였을 장난감은 이제 녹슬고 더러워져 있었다. 그 인형의 눈은 텅 비어 있었고, 마치 그들을 향해 무언의 경고를 보내는 듯했다.

세아는 잠시 멈춰 서서 그것을 바라보다가, 이내 지우의 손을 잡고 걸음을 재촉했다.
“어서 가자, 지우.”

희미한 새벽빛 아래, 도시의 잔해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속으로 사라져 갔다. 폐공장 지대의 붉은 잔해는 마치 거대한 입을 벌린 괴물처럼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