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송저택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였다. 웅장한 아치형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고요해야 할 저택 전체가 거대한 심장처럼 불규칙하게 쿵쿵거리고 있음을 느꼈다. 어수선한 현장 경찰들의 움직임, 웅얼거리는 무전 소리, 그리고 그 모든 것 위로 묵직하게 가라앉은 피 냄새와 오래된 목재 향.
“강태인 씨, 여기입니다.”
이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늘 그랬듯 안절부절못하는 얼굴이었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이마를 대충 닦아내는 모습이 마치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 서 있는 사람 같았다. 물론, 지금은 늦가을이었다.
나는 굳이 고개를 들어 대꾸하는 대신, 검은 코트 주머니에 양손을 푹 찔러 넣고 삐걱이는 마룻바닥을 밟았다. 발소리마저 이형사와는 극명하게 달랐다. 나는 가볍고 리드미컬하게, 그는 마치 세상을 짊어진 듯 삐걱이며.
이형사가 앞장서서 이끄는 곳은 저택의 2층에 위치한 서재였다. 문 앞에는 이미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고, 그 안쪽으로는 과학수사대 요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문틈으로 뿜어져 나오는 싸늘한 기운이 나를 감쌌다.
“피해자는 70대 후반의 자산가, 서영호 씨입니다. 어젯밤 10시에서 12시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형사가 작은 수첩을 펼쳐 들고 기계적으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사인은 칼에 의한 복부 자상. 흉기는 현장에서 발견됐습니다. 서재 바닥에 떨어진 채로요.”
나는 문턱을 넘어섰다. 발아래의 마룻바닥은 붉은색 카펫이 깔려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묵직한 오크 서재 책상이 놓여 있었다. 그 너머로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수천 권의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낡은 종이와 가죽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닥에 쓰러진 피해자의 모습이었다. 푹신한 카펫 위에 흥건하게 번진 핏자국이 어둠 속에서도 검붉게 도드라졌다. 그 옆에는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은장 단도가 툭 던져져 있었다.
나는 시선을 천천히 옮겼다. 서재 안쪽을 한 바퀴 둘러보는 데는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에도 내 눈은 모든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뜯어진 벽지 조각, 기울어진 액자, 책상 위 흐트러진 종이들, 그리고…
“밀실입니다.” 이형사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강태인 씨가 오셨으니 다시 말씀드리죠. 현관문은 안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고, 모든 창문은 안에서 잠금쇠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내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짐작했던 바였다.
“창문도 확인했습니다. 2층 높이라 사람이 드나들기 어렵고, 창살도 튼튼하게 박혀 있습니다. 만약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면 외부 흔적이 남았을 텐데, 아무것도 없습니다. 완벽한 밀실입니다.” 이형사의 목소리에는 답답함과 함께 경외감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이런 사건에 늘 압도당했다.
나는 피해자의 시신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칼에 찔린 상처는 깊고 치명적이었다. 저항 흔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 특이했다. 마치 습격당하는 순간까지도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던 것처럼.
“사망 추정 시각, 10시에서 12시라고 했지?” 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내 목소리는 항상 그렇듯 차분하고 낮았다.
“네, 부검의 소견입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더 이상 시신을 보지 않았다. 대신, 서재의 오른쪽 벽에 길게 나 있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고풍스러운 양쪽 여닫이식 창문이었다. 앤티크한 목재 프레임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고, 두꺼운 유리창은 창밖의 어둑한 풍경을 흐릿하게 비추고 있었다.
손끝으로 창문의 잠금쇠를 만져보았다. 묵직한 놋쇠 잠금쇠는 확실히 안쪽에서 단단하게 잠겨 있었다. 흔들림도, 억지로 뜯어내려 한 흔적도 없었다. 완벽했다. 이형사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분명히 안에서 잠겨 있는데…” 이형사가 내 옆으로 다가와 중얼거렸다. “외부에서 조작한 흔적은 아예 없습니다. 만약 범인이 창문을 통해 나갔다면, 어떻게 안에서 잠글 수 있었을까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창틀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낡은 목재 창틀은 오랜 시간 비바람을 맞아 삭아 있었고, 부분적으로는 페인트가 벗겨져 나무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시선이 멈춘 곳은 창틀 가장자리에 아주 미세하게 남은 흔적이었다. 육안으로는 거의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아주 작은 긁힘 자국. 마치 아주 얇고 딱딱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간 듯한 자국이었다. 주변의 낡은 나무결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흔적.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창틀을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창문 아래쪽, 닫혀 있는 창문과 창틀이 만나는 아주 미세한 틈새에 거의 보이지 않는 흙먼지가 조금 더 쌓여 있었다. 바깥에서 들어온 흙먼지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안에서 바깥으로 나갔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온 무언가에 의해 쓸려나온 흙먼지처럼 보였다.
“이형사.”
“네, 강태인 씨.”
“이 창문은 꽤 오래된 것 같군.”
“네, 이 저택 자체가 거의 백 년 가까이 됐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창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형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저 잠금쇠.”
나는 다시 잠금쇠로 손을 뻗었다. 놋쇠 잠금쇠는 견고해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잠금쇠가 고정되는 부분의 목재가 미세하게 벌어져 있었다. 아주 작은, 눈에 띄지 않는 틈새였다.
“범인은 이 서재에서 살인을 저지른 후, 이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내가 말했다. 이형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나가는 순간, 완벽하게 밀실을 만들었죠.”
“하지만… 어떻게 안에서 잠긴 잠금쇠를…”
“저 잠금쇠는 안에서만 조작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나는 잠금쇠를 가리켰다. “하지만, 모든 창문이 완벽하게 밀폐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오래된 창문은 더욱 그렇죠.”
이형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직 내 추론의 퍼즐 조각을 맞추지 못한 듯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틀 밖을 내다보았다. 2층 높이였지만, 아래에는 단단한 돌출부가 있었고, 그 옆으로는 굵은 담쟁이덩굴이 벽을 타고 오르고 있었다. 숙련된 사람이라면 충분히 타고 오르내릴 수 있는 환경이었다.
“범인은 살인을 저지르고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창문을 다시 닫았죠.” 내가 설명을 이어갔다. “창문을 완벽하게 닫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주 미세한 틈이 남아 있었어요. 아마도 창틀의 변형 때문일 겁니다.”
나는 내 손가락으로 잠금쇠 바로 옆의 틈을 가리켰다. 그 틈은 머리카락 한 올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주 미세한 간극이었다.
“그리고 범인은 이 틈을 이용했습니다.”
“이 틈을요? 어떻게?” 이형사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그는 이제야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어렴풋이 짐작하는 듯했다.
“아주 가늘고 길며, 충분히 단단한 도구를 이용했겠죠.” 나는 마치 그림을 그리듯 손가락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예를 들어, 길게 늘어뜨린 철사나, 얇고 견고한 낚싯대 같은. 그것을 이 미세한 틈으로 밀어 넣은 겁니다.”
이형사가 잠금쇠와 틈새를 번갈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안쪽에서 잠겨 있는 놋쇠 잠금쇠를 건드려, 잠금 상태로 만든 거죠.” 내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저 잠금쇠는 레버식입니다. 바깥에서 가느다란 도구로 충분히 밀어 돌릴 수 있었을 겁니다.”
이형사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그런 식으로?”
“그리고 도구를 빼낸 후, 창문을 살짝 다시 건드려 완전히 밀폐시킨 겁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처럼 보이겠죠. 외부 침입 흔적은 없었을 테고, 잠금쇠는 안에서 단단히 잠겨 있었을 테니까요.” 나는 창틀의 미세한 긁힘 자국과 쌓인 흙먼지를 다시 가리켰다. “저 흔적들은 범인이 도구를 사용하며 남긴 것, 그리고 창문을 조작하며 발생한 겁니다.”
이형사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외부에서 잠금쇠를 조작했다고 해도, 그게 그렇게까지 완벽하게 보이도록 할 수 있나요?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티가 날 텐데요.”
“그래서 천재적인 트릭인 겁니다.” 나는 서늘하게 웃었다. “범인은 이 서재의 구조와 이 낡은 창문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거죠. 아주 섬세하고 치밀하게 계산된 수법입니다.”
나는 다시 피해자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저항 흔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다시금 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럼… 범인은 누구죠?” 이형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밀실 트릭이 깨지자, 이제야 진범의 실체가 드리워지는 듯한 느낌이었을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피해자의 얼굴을 잠시 응시했다. 죽음의 공포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피해자의 눈동자에 그대로 남아 있는 듯했다.
“밀실의 트릭은 깨졌습니다.” 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는 범인의 동기와 그가 누구인지 밝혀낼 차례입니다.”
내 시선은 다시 서재 안을 훑었다. 완벽하게 보였던 밀실은 이제 거짓된 장막이 걷히고, 그 안의 진실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진실은, 이 낡은 저택의 모든 비밀을 집어삼킬 만큼 어둡고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수색팀을 불러 창틀과 주변의 모든 미세한 흔적들을 다시 확인하세요. 특히 창문 아래 외부 흙먼지 샘플도 채취해야 합니다. 범인이 사용한 도구의 잔여물이 남아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의 말에 이형사는 급히 무전기를 들었다. 나는 다시 고요해진 서재 안에서, 풀리지 않은 마지막 퍼즐 조각을 찾아 헤매는 듯한 눈으로 주변을 응시했다.
범인은, 이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