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혀진 심연의 입구
늦가을 산자락은 이미 스산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낙엽이 썩는 눅진한 냄새와 축축한 흙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짙은 안개가 협곡 사이를 휘감아 마치 세상의 끝에 다다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낡은 등산화를 신은 발이 거친 바위와 진흙탕을 가로지를 때마다 질척이는 소리가 고요를 깼다.
이현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폐 속 가득 찬 차가운 공기는 오래된 전설이 드리운 그림자처럼 섬뜩했다. 그의 옆을 걷던 서지원은 고개를 숙인 채 손전등을 휘둘렀다. 좁고 미끄러운 길은 그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했다.
“이현 씨, 정말 여기까지 와야만 했을까요? 이 주변 지질 조사는 이미 십 년 전에 끝났습니다. 특이점은 없었어요. 전설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이건… 무모한 도박 같아요.”
지원의 목소리에는 불만이 역력했다. 그는 현이 제시한 고대 문자 자료들을 분석해 주기로 했지만, 이렇게 오지까지 끌려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학자다운 정확성과 현실적인 회의감이 그의 등 뒤에서 투덜거리는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현은 대꾸 없이 산등성이를 훑어보았다. 그의 눈은 예리한 매의 눈처럼, 희미한 단서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끈질기게 움직였다.
“십 년 전에는 이 주변에 접근조차 어려웠던 곳입니다, 지원 씨. 제가 찾은 고문헌 기록과 지리 정보를 조합하면, 여기에 뭔가 있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단순한 광맥이나 동굴이 아니라….”
그는 말을 흐렸다. ‘죽은 신들의 도시’라고 불리는 고대 유적. 입 밖으로 내뱉기조차 불경한 그 이름이 그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지난 몇 년간 그를 잠식했던 미지의 유적에 대한 갈증. 학계에서는 미친 소리 취급받던 이현의 집념은 이제 여기까지 그를 이끌었다.
“이현 씨의 그 ‘뭔가’ 때문에 전 지금 발목이 빠질 것 같은데요.” 지원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손전등은 여전히 앞길을 밝히고 있었다. 아무리 불평해도, 그는 결국 현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현의 자료가 제시하는 암시들은 단순한 미신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정교하고 섬뜩했기 때문이다.
한참을 더 헤치고 나아갔을 때, 현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그의 눈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빽빽한 담쟁이덩굴과 이끼로 뒤덮인 거대한 바위 절벽 아래, 짐승의 입처럼 벌어진 어두운 틈새가 보였다. 언뜻 보면 자연적인 동굴 입구 같았지만, 현의 눈에는 달랐다.
“찾았군요.” 현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흥분과 긴장이 뒤섞인 음성이었다.
지원은 현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저건 그냥… 무너진 바위틈인데요? 맹수가 살 만한 동굴 입구로 보입니다만.”
“아니요.” 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잘 보세요. 바위틈의 가장자리.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이끼들… 이끼 아래 감춰진 문양들. 이곳의 지질과는 전혀 맞지 않는 재질입니다.”
현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손으로 담쟁이덩굴을 걷어내자, 차가운 돌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아래 드러난 것은 지극히 정교하고 기이한 문양들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기하학적 도형들과 알아볼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뒤엉켜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의 촉수처럼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지원의 얼굴에서 회의감이 사라지고 경악이 번졌다. “이건… 어느 문명의 것도 아닙니다. 제가 아는 고대 문자의 형태가 아니에요. 메소포타미아도 아니고, 이집트도 아니고, 잉카도… 아닙니다.”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가 지금껏 연구해 온 모든 지식이 부인당하는 순간이었다.
현은 낡은 휴대용 손전등을 켜고 어둠 속으로 비춰 보았다. 입구는 생각보다 깊었다. 습한 공기 속에서 기분 나쁜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다. 차가운 바람이 안에서 불어 나오는 듯했다.
“준비됐습니까, 지원 씨?” 현이 물었다.
지원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자로서의 호기심이 두려움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준비는 됐습니다. 하지만… 저 문양들은 묘하게 불길한 기운을 풍기는군요. 단순한 장식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현의 등 뒤에 서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현이 먼저 어두운 입구로 들어섰다. 좁은 통로를 따라 몇 걸음 걷자, 바깥세상의 빛은 완전히 사라지고 암흑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두꺼운 암반이 만들어내는 완전한 고요. 그 고요는 모든 소리를 빨아들여 마치 그들의 심장 박동 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만드는 것 같았다.
축축하고 차가운 돌벽이 양옆으로 펼쳐졌다. 손전등 불빛 아래 드러난 통로는 단순한 흙길이 아니었다. 발밑에는 거친 돌들이 불규칙하게 깔려 있었고, 벽면에는 이끼와 함께 알 수 없는 검붉은 얼룩들이 스며들어 있었다. 피처럼 보였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이봐요, 이현 씨. 이 벽면에 새겨진 그림들을 보세요.” 지원의 목소리가 떨렸다.
현은 손전등을 돌려 벽면을 비췄다. 좁고 낮은 천장 아래, 정교하게 새겨진 벽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의 형상과 흡사하지만 어딘가 뒤틀리고 길어진 팔다리, 기형적인 머리를 가진 존재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들은 숭배하듯 무릎을 꿇고 있거나, 아니면 알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절규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벽화의 색은 검붉었고, 그로테스크했다.
그리고 그 벽화들 위에는 이전에 입구에서 보았던 그 기하학적 문양들이 반복적으로 새겨져 있었다.
“이건… 제례 의식 같은데요? 아니면… 희생 의식?” 지원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공포와 매혹 사이에서 갈등하는 듯했다.
“이 그림들 아래를 보세요.” 현이 손전등을 더 아래로 내렸다.
벽화의 맨 아래에는 거대한 구덩이 속으로 미끄러져 떨어지는 듯한 형상들이 그려져 있었다. 구덩이의 바닥에는 무언가 검은 형체가 웅크리고 있었는데, 형체를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공포를 자아냈다. 그 주변에는 수많은 눈동자들이 그려져 있었다. 공허하고 차가운, 죽은 눈동자들이었다.
바로 그때, 고요를 찢는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수십 개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낮은 음으로 읊조리는 듯한, 으스스한 속삭임이었다. 소리는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듯했으나, 동시에 그들의 바로 옆에서 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무슨 소리죠?” 지원이 현의 팔을 잡았다. 그의 손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현은 손전등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빛이 닿는 모든 곳은 그저 어두운 암벽뿐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선명해졌다. 그것은 더 이상 읊조림이 아니었다. 수많은 개미들이 기어가는 소리 같기도 했고, 뼈와 뼈가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했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저 깊은 곳에서 깨어나 꿈틀거리는 듯한 소리였다.
그 순간, 현의 발이 무언가에 걸렸다.
휘청거리며 쓰러질 뻔한 그가 겨우 중심을 잡았다. 그의 손전등이 아래를 비췄다. 발밑에는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돌이었다. 아니, 돌 조각처럼 보였지만, 매끄럽고 차가운 표면은 이 주변의 암석과는 전혀 다른 재질이었다. 그리고 그 돌 위에는 벽화에서 보았던 그 기이한 문양 중 하나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현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손안에서 느껴지는 기분 나쁜 한기. 마치 살아있는 존재를 만진 것 같은 섬뜩함에 현은 숨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아까부터 들려오던 기이한 소리가 뚝 끊겼다.
완전한 정적.
하지만 그 정적은 이전보다 훨씬 더 공포스러웠다.
현은 손 안의 돌 조각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조각에 새겨진 문양이 섬뜩한 빛을 내며 잠시 번쩍였다.
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알 수 없는 강력한 힘에 이끌리는 듯, 그 문양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저 심연의 어둠 속, 잊혀진 문양 아래,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그는 이 돌 조각이 그저 단순한 유물이 아님을 직감했다.
이것은… 열쇠였다.
미지의 공포로 향하는 문을 여는 열쇠.
그리고 현의 심장은, 섬뜩한 예감과 걷잡을 수 없는 호기심 사이에서 격렬하게 요동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