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호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망월곡의 하늘은 푸르죽죽한 멍이 든 듯, 사방으로 피처럼 붉은 기운을 토해내고 있었다. 해가 떠올랐는가 싶으면 이내 빛을 잃고, 달이 떠도 그저 희미한 그림자만을 드리울 뿐이었다. 세상은 끝없는 황혼에 갇힌 듯 기이한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밭에서 피어나는 검은 안개를 속삭였고, 밤마다 아이들은 이유 모를 악몽에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공기마저 쇠 맛과 흙먼지가 뒤섞인 듯 텁텁하여,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운 나날이었다.

그리고, 그 병든 골짜기의 심장부에서 거대한 의식이 준비되고 있었다. 추수제도, 기우제도 아니었다. 오래된 전설 속에나 존재하던 ‘묵계 비무(墨契比武)’가 그 검은 장막을 걷어 올리고 있었다.

백운 노인은 그의 낡은 누각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희고 긴 수염이 바람에 흩날렸지만, 그의 얼굴에는 한 겹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나이 든 육신과는 달리 맑고 깊었으나, 그 맑음 속에 스며든 지독한 슬픔과,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공포는 감출 수 없었다.
“결국… 이리 되는구나.”
그의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망월곡 전체에 울리는 듯한 힘이 있었다. 혹은, 그의 비통함이 그토록 깊어 그렇게 들린 것일지도 모른다.

수십 년 전, 아니 어쩌면 수백 년 전, 사라진 줄 알았던 고대 흑술(黑術)의 징조들이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 땅속 깊이 잠들어 있던 어둠이 기지개를 켜듯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그 그림자가 무림 전체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묵계 비무는 단순한 무위(武威) 겨루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천하의 운명을 건 피의 의식이었다. 단지, 그 사실을 아는 이는 백운 노인처럼 극소수에 불과했다.

아래에서는 각 문파에서 온 무림 고수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영웅심과 패기, 그리고 천하제일이라는 영광을 향한 뜨거운 욕망이 가득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왜 이곳에 불려왔는지, 이 비무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사라졌던 묵계 비무가 다시 열렸다는 소식에 영웅이 될 기회를 잡으려 모여든 것이었다.

오색찬란한 문파의 깃발들이 잿빛 하늘 아래 나부꼈다. 금강문의 우직한 장한들은 맨몸으로 거대한 바위를 옮기며 괴력을 과시했고, 사매곡의 여인들은 차가운 미소 아래 날카로운 검기를 숨기고 있었다. 저 멀리서는 검은 옷을 입은 그림자 같은 무리가 침묵 속에 움직였다. 그들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존재 자체가 위협이었다. 마교의 그림자들이었다. 그들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으려는 듯 어둠 속에서만 움직였으나, 그들의 기운은 너무나도 강렬하여 숨길 수 없었다.

백운 노인은 그들을 보며 씁쓸히 고개를 저었다.
‘어리석은 자들… 그대들이 싸워야 할 적은 눈앞의 경쟁자가 아니다. 이 땅을 좀먹는 어둠이며, 저 비무의 끝에서 깨어날 지옥이다.’
그의 시선은 비무대 한가운데 박혀 있는, 검게 변색된 거대한 바위에 닿았다. 그것은 단순한 바위가 아니었다. 묵계 비무의 핵심, ‘암혼석(暗魂石)’이었다. 비무가 진행될수록, 승자의 피와 패자의 영혼이 그 돌에 스며들어, 결국에는 봉인된 존재를 깨울 것이었다.

그때였다.
망월곡의 입구 쪽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모든 소음이 순간 멎었다. 마치 심장이 멎은 듯, 모든 무인들이 그곳을 응시했다.
검은 가마가 천천히 비무대 쪽으로 움직였다. 가마를 끄는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앙상한 그림자만이 남아있는, 눈을 뽑힌 시체들이었다. 그들의 뼈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핏빛 노을에 실려 망월곡 전체에 음산하게 울려 퍼졌다. 가마의 문이 열리자, 그 안에서 검은 비단옷을 입은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그 어떤 산 자보다 강렬한 생기를 품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칠흑 같았고, 세상의 모든 비밀을 담고 있는 듯했다.
그녀의 등장은 모든 무인들을 압도했다. 그들의 패기는 순식간에 공포로 변했다.
백운 노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저것은… 저자는…! 설마, 살아 있었단 말인가!”
그 여인의 등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불길한 예고였다.

여인은 비무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녀의 발걸음마다 희미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그녀가 지나간 자리의 풀잎들은 순식간에 시들며 재가 되었다. 비무대 중앙, 암혼석 앞에 다다른 그녀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검은 기운이 솟아올라 암혼석을 휘감았다.
웅장하고 불길한 진동이 망월곡 전체를 뒤흔들었다.
드디어, 묵계 비무의 막이 오르는 것이었다. 아니, 진정한 지옥의 문이 열리는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