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새까만 우주, 인류의 손길이 닿지 않은 심연 속에서 ‘개척자 7호’는 유령처럼 미끄러지고 있었다. 수십억 광년 떨어진 항성계의 망령 같은 빛만이 유리창 너머로 아스라이 비쳤다. 함장 이진우는 홀로 함교에 앉아 전방 스크린에 펼쳐진 광활한 허공을 응시했다. 무한한 정적. 고독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공간. 그게 그의 전부였다.

“함장님, 한소라입니다.”

정적을 깬 건 부함장 한소라의 목소리였다. 경쾌하지만 그 안에 과학자의 불타는 호기심이 깃들어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한 박사?” 진우는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놀라운 발견입니다. 추정 좌표 ‘제타-447’ 지점에서 이전에 기록되지 않은 대규모 에너지 반응이 감지되었습니다. 자연 현상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정교합니다.”

진우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정교하다? 자연은 경이롭지만, ‘정교함’이란 단어는 인공의 영역이었다.

“화면에 띄워.”

순간, 검은 스크린 중앙에 희미한 초록색 점이 나타났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개척자 7호’의 초정밀 센서가 포착한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였다. 마치 우주의 심장이 어둠 속에서 고동치는 것처럼.

“함선 속도 50% 감속. 제타-447로 경로 변경. 승무원 전원 비상 대기.” 진우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했지만, 그의 눈은 이글거렸다. “박세준 보안장에게 상황 보고하고, 모든 무기 시스템 대기 상태로 전환 지시해.”

“네, 함장님!” 소라의 목소리에 흥분이 역력했다.

몇 시간 후, ‘개척자 7호’는 목적지에 도달했다. 스크린 너머로 드러난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이었다. 거대한, 새까만 다면체. 마치 우주의 모든 어둠을 응축해 놓은 듯한 형태였다. 표면은 흠 하나 없이 매끄러웠고, 간혹 내부에 고여 있던 빛이 뿜어져 나오듯 섬광을 터뜨렸다. 그 빛은 차갑고, 동시에 매혹적이었다.

“젠장, 이게 대체 뭐야?” 엔지니어 김민준이 탄성을 내질렀다. 그의 얼굴에는 경외심과 함께 알 수 없는 공포가 스쳤다. “무슨 건물 같기도 하고… 아니, 이런 건 본 적이 없어!”

박세준 보안장은 허리춤의 플라스마 권총 손잡이를 꽉 쥐었다. “에너지 반응은 여전합니까, 한 박사?”

“네, 보안장님. 그리고 이 구조물에서 미세한 파장이 계속 방출되고 있어요. 인간의 인지 범위를 벗어난 주파수지만, 생체 신호에 미묘하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종류입니다.” 한소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일종의… 정보 전달 같아요. 혹은 교감?”

진우는 침묵하며 다면체를 응시했다. 직감적으로 그는 이 물건이 인류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꿀 수도, 혹은 파멸시킬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선택의 여지는 없어.” 진우가 나직이 말했다. “이대로 지나칠 수는 없다. 탐사팀을 꾸린다. 한 박사, 당신은 핵심 분석 담당. 김민준 엔지니어, 당신은 장비 담당. 그리고 박세준 보안장, 당신은 저와 함께 팀을 이끌고.”

“함장님, 제가 갈 필요가 있습니까?” 박세준이 물었다. “함장님은 함선에 남아 지휘를…”

“아니. 중요한 임무일수록 내가 직접 가야 한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진우의 결단은 확고했다. “우주복 착용하고, 탐사선 ‘스카우트’에 집결한다.”

탐사선 ‘스카우트’는 조용히 모선에서 분리되어 다면체로 향했다. 다면체는 생각보다 훨씬 거대했다. 마치 작은 행성처럼, 그들의 탐사선은 먼지처럼 보였다. 수백 미터 상공에서 ‘스카우트’는 정지했고, 팀원들은 조심스럽게 외계 구조물 표면에 착륙했다. 발밑의 재질은 마치 극도로 단단한 유리를 밟는 듯한 느낌이었다. 차갑고, 이질적이었다.

“표면에 작은 균열이 있습니다, 함장님!” 한소라가 외쳤다. “마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스로 벌어진 듯한. 내부에서 빛이 새어 나옵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다면체의 한 면에 있는, 손바닥만 한 균열이었다. 그 틈새에서 희미하게 보랏빛 섬광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한소라는 분석 장비를 들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이 파장… 심상치 않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변화하고 있어요. 그리고… 경고 신호입니다. 함장님, 물러서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균열이 갑자기 활짝 벌어졌다.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우주 공간을 뒤흔들었다. 보랏빛 섬광이 마치 액체처럼 쏟아져 나오며 한소라의 우주복을 감쌌다.

“한 박사!” 진우가 외쳤다.

소라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뒤로 나동그라졌다. 그녀의 우주복 헬멧 안에서 눈동자가 급격히 팽창하며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몸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젠장, 물러서!” 박세준이 플라스마 권총을 뽑아 들었지만, 뭘 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균열에서 뿜어져 나온 보랏빛 안개는 순식간에 탐사선 내부로 스며들었다. 김민준 엔지니어가 비틀거렸다. 그의 우주복 헬멧 안에서도 눈동자가 변색되기 시작했다.

“함… 함장님… 저… 저기…” 민준의 목소리가 헬멧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지만, 이내 기괴한 으르렁거림으로 변했다.

그의 몸이 급격히 팽창하듯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우주복의 이음새가 찢어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김민준은 더 이상 그가 아니었다. 짐승 같은 포효와 함께, 찢어진 우주복 사이로 드러난 피부는 검푸른색으로 변해 있었고, 혈관은 거미줄처럼 불거져 나왔다. 그는 일그러진 얼굴로 진우에게 달려들었다.

“사격 금지! 그들은 아직…!” 진우는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박세준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플라스마 탄이 김민준의 흉부를 강타했다. 검푸른 살덩이가 터져 나오며 역겨운 냄새가 헬멧 안으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민준은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광폭하게 달려들었다.

“망할! 이건… 이건 생명체가 아니야!” 세준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때, 저 멀리 나동그라져 있던 한소라가 꿈틀거렸다. 그녀의 몸은 이미 인간의 형태를 벗어나 있었다. 우주복이 찢어지고, 그 안에서 끔찍하게 부풀어 오른 사지가 튀어나왔다. 그녀의 입에서는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비명은 우주의 정적을 갈라놓고, 진우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진우는 뒤로 물러섰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더 이상 동료가 아니었다. 그것은… 재앙의 시작이었다. 검은 다면체는 여전히 고요했고, 그 균열에서는 보랏빛 안개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본함, 본함! 개척자 7호! 긴급 철수! 당장 이 행성을 벗어나야 한다! 반복한다, 긴급 철수! 이곳은… 이곳은 지옥이다!” 진우의 목소리는 절규로 변해 있었다. 그의 뒤에서는 이미 두 명의 동료가 끔찍한 괴물로 변해 서로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우주선 내부, 그리고 더 큰 우주로 퍼져나갈 알 수 없는 역병의 서막이 열린 순간이었다.

개척자 7호는 엔진을 최대로 가동하며, 지옥 같은 다면체와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랏빛 재앙을 뒤로한 채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이미 보랏빛 안개는 ‘스카우트’ 탐사선을 넘어 ‘개척자 7호’의 격벽을 뚫고, 내부로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것을.

심연의 유산은,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