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4호의 망령
지훈은 익숙한 침묵 속으로 들어섰다. 삐걱거리는 현관문 소리가 텅 빈 집안의 고요를 깨트렸다. 퇴근 시간, 인파에 시달리다 간신히 집에 도착했지만, 그의 피로는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왠지 모르게 불안감으로 변질되곤 했다. 요즘 들어 부쩍 심해진 현상이었다.
엘리베이터 없는 낡은 빌라 7층. 굳이 704호에 살 필요가 있었을까, 종종 후회하기도 했다. 월세가 싸다는 이유 하나로 계약했던 과거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오늘도 평화롭기를.”
작게 중얼거리며 신발을 벗었다. 현관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어야 할 슬리퍼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어제 밤 분명 한 짝은 신발장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는데. 지훈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피곤해서 착각했겠지.
옷을 갈아입고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 문을 열어 마실 것을 꺼내려는데, 싱크대 위에 놓여 있던 컵 하나가 기우뚱하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산산조각 난 유리 파편들이 온 사방으로 튀었다. 지훈은 놀라 뒤로 물러섰다.
“젠장, 뭐야!”
손이 덜덜 떨렸다. 바람? 아니,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고양이도 키우지 않았다. 그는 잠시 얼어붙은 듯 서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찾아왔다. 파편을 쓸어 담는 내내 심장이 쿵쾅거렸다. 분명 컵은 싱크대 가장자리가 아닌, 안쪽에 놓여 있었다. 이런 식으로 떨어질 리가 없는데.
그날 밤, 지훈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에 매달린 전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마치 심장이 뛰는 박자 같았다.
“이 빌라가 노후화돼서 그래. 다 그렇지 뭐.”
스스로를 다독였다. 원래 오래된 건물은 이랬다 저랬다 하는 법이다. 고층이라 전압이 불안정한 걸 수도 있고. 온갖 합리적인 이유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방문이 삐걱이며 살짝 열렸다. 지훈은 숨을 멈췄다. 분명 잠그고 들어왔는데.
“누구… 없어?”
작게 속삭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텅 빈 복도의 정적뿐이었다. 방문 틈새로 보이는 어둠이 마치 낯선 존재의 시선처럼 느껴졌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다음 날부터는 더 심해졌다.
아침에 둔 리모컨이 저녁엔 소파 밑에서 발견되고, 밤에는 거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윗집이나 아랫집에서 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그 소리는 지훈의 집 내부에서 울리는 듯했다. 벽을 긁는 소리, 무언가 질질 끌리는 소리, 억눌린 한숨 소리.
점점 잠을 이루기 힘들어졌다. 지훈은 회사에서도 멍하니 앉아 있다가 상사에게 혼나기 일쑤였다. 그의 유일한 낙은 퇴근 후 가상현실 속으로 도피하는 것이었다.
“하아….”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지훈은 익숙하게 VR 헤드셋을 집어 들었다. 게임 속에서는 그가 왕이 될 수도, 영웅이 될 수도 있었다. 현실의 불안과 피로는 가상세계의 짜릿한 모험 속에 녹아내렸다. 그의 손에 들린 헤드셋은 최신형이었고, 몰입감은 현실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헤드셋을 착용하고 컨트롤러를 쥐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환상적인 게임 로비. 오늘은 길드원들과 함께 거대한 드래곤을 토벌하기로 한 날이었다.
“로그인….”
시스템이 로딩되는 동안, 지훈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틱.
방 불이 꺼졌다.
“젠장!”
지훈은 헤드셋을 벗어 던졌다. 로딩 중이던 화면이 깜빡이며 사라졌다. 온통 암흑이었다. 그는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두리번거렸다. 분명 방금까지 불이 들어와 있었는데. 차단기가 내려간 걸까?
현관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복도를 가로지르는데, 벽에 걸린 액자가 삐뚤어져 있었다. 며칠 전부터 조금씩 기울어진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오늘은 거의 떨어질 지경이었다.
“이게 또 왜 이래….”
액자를 바로 잡으려 손을 뻗는 순간, 누군가 뒤에서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가운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읍!”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지만, 보이는 건 어둠뿐이었다.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마치 누군가가 숨죽이며 지훈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소름 끼치는 감각이 전신을 옥죄었다.
순간, 쿵!
거실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의 심장이 발끝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는 플래시를 비추며 조심스럽게 거실로 향했다.
거실 한가운데, 쓰러져 있는 건… 그의 VR 헤드셋이었다.
방금 전 침대 옆 협탁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는데.
“설마….”
불안한 예감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는 헤드셋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헤드셋 화면이 스스로 켜졌다.
지직, 하는 노이즈와 함께 화면에 나타난 것은 게임 로비가 아니었다.
새하얀 배경에 검은 글씨가 떠올랐다.
**[704호의 문이 열렸습니다.]**
지훈의 손에서 헤드셋이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새하얀 화면은 사라지고, 마치 거울처럼 그의 얼굴이 비쳤다.
화면에 비친 지훈의 얼굴 뒤로, 어둠 속에서 무언가 거뭇거뭇한 형체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차가운 손이 그의 어깨를 움켜쥐는 듯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이건… 꿈이 아니야.”
그제야 지훈은 깨달았다.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이 모든 기괴한 현상들이,
더 이상 평범한 노후화나 착각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이 게임이 그 모든 것의 시작이거나, 혹은…
출구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가능성을.
**[챕터 1 종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