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재가 부스러지는 소리, 철골이 비명을 지르며 꺾이는 소리가 익숙한 멜로디처럼 폐허에 울려 퍼졌다. 세라는 무너진 고층 건물 잔해 아래를 기어 들어갔다. 습하고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희망의 냄새이기도 했다. 어쩌면 쓸 만한 부품이나, 운이 좋으면 먹을 것을 찾을 수도 있으니까. 얇은 천 조각으로 입과 코를 가렸지만, 미세한 먼지는 피부 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았다.

“젠장, 또 꽝이잖아.”

손전등이 비춘 곳은 녹슨 철근과 부패한 콘크리트 조각들뿐이었다. 가끔 이렇게 허탕을 칠 때면, 세상의 끝이 정말로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것 같아 절망감이 차올랐다. 세라는 한숨을 쉬며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크르르르…*

낮게 깔리는 짐승의 울음소리. 몸이 저절로 굳었다. 손전등 빛을 급히 소리 나는 쪽으로 돌리자,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두 개의 붉은 점이 세라의 심장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그롤. 변이된 늑대였다. 일반 늑대보다 훨씬 거대하고, 온몸이 딱딱한 비늘로 덮여 있으며, 턱에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일반적인 총알로는 뚫기도 힘든 녀석이었다. 세라는 허리에 찬 단검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녀석은 이미 세라의 숨통을 노리고 있었다.

맹렬한 속도로 덤벼드는 그롤의 형상이 손전등 빛에 드러나는 순간, 세라는 온몸의 피가 식는 것을 느꼈다. 피할 수 없다.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찰나, 어둠 속에서 번개 같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쉬익!

섬뜩한 바람 소리와 함께 그롤이 내지르던 흉포한 울음소리가 뚝 끊겼다. 거대한 짐승의 몸뚱이가 쿵, 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세라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손전등 빛은 이제 그림자처럼 서 있는 존재를 비추고 있었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어둠 속에서 스산하게 흔들렸다. 앙상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팔, 그리고 찢어진 옷 사이로 보이는 푸른빛 혈관. 그리고 가장 특징적인 것, 바로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나는 은회색 눈동자였다.

“카인…”

세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공포와 안도감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카인은 쓰러진 그롤을 한 번 힐끗 보더니, 천천히 세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미지의 깊이를 담고 있었지만, 세라에게 향할 때만큼은 항상 미묘하게 부드러워졌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세라의 손에서 손전등을 건네받아 쓰러진 그롤의 목 부위를 비췄다. 비늘로 덮인 그롤의 목은 깊고 날카로운 상처로 갈라져 있었다. 보통의 단검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상처였다. 카인의 손톱은 강철보다도 날카로웠다.

“너… 또 다쳤어?”

세라가 그의 찢어진 팔뚝을 보며 속삭였다. 스쳐 지나간 상처였지만, 그의 푸른 피가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카인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종족은 상처 회복 속도가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이 정도는 그에게 찰과상에 불과할 터였다.

하지만 세라는 알았다. 그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무모하게 뛰어들었을지. 인간에게는 미움과 공포의 대상인 ‘이종’인 그가, 자신에게는 세상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서 가자.”

카인은 짧게 말하고는 먼저 움직였다. 그의 움직임은 고양이처럼 유연하고 소리 없이 빨랐다. 세라는 재빨리 단검을 집어넣고 그의 뒤를 따랐다. 폐허를 벗어나 인적 없는 숲 속으로 들어서자, 습하고 음습한 기운이 한층 더 짙어졌다. 어둠은 이미 세상을 삼키기 시작했고, 변이된 곤충들의 기괴한 울음소리가 숲을 가득 채웠다.

그들은 작은 동굴을 찾아 몸을 숨겼다. 동굴 안은 예상외로 건조하고 깨끗했다. 아마 카인이 미리 손을 봐두었을 것이다. 그는 항상 세라를 위해 이런 보금자리를 찾아두곤 했다.

“오늘은 찾은 게 없어.”

세라가 작은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카인은 아무 말 없이 그녀가 찾아온 것들을 확인했다. 텅 빈 가방을 보더니, 그의 표정에 미묘한 아쉬움이 스쳤다. 인간의 음식은 그의 종족에게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항상 세라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했다.

“괜찮아. 어제 남은 걸로 먹으면 돼.”

세라가 애써 웃어 보였다. 사실 어제 남은 것이라고 해 봐야, 딱딱한 건빵 몇 조각뿐이었다. 그럼에도 카인의 눈빛은 고요하게 세라를 응시했다. 마치 모든 말을 삼켜버린 듯한, 그 침묵이 때로는 세라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넌… 괜찮아?”

세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카인의 종족은 햇빛 아래에서 힘이 약해지고, 밤이 되어야 비로소 온전한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인간에게 밤은 더 큰 위험을 의미했다. 밤의 사냥꾼들이나, 더욱 흉포해지는 변이체들이 돌아다녔다. 게다가, 카인의 종족은 인간들에게는 여전히 미지의 위협이었다.

카인은 세라의 옆에 앉았다. 그의 차가운 손이 세라의 뺨에 닿았다. 늘 그랬듯, 그 손은 세라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마법 같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밤은 내게 더 익숙해.”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지만, 그 속에는 세라만을 위한 부드러움이 배어 있었다. 세라는 그의 손에 뺨을 기댔다. 세상 모든 것이 끝장난 폐허에서, 서로 다른 종족이라는 금기를 깨고 살아가는 두 존재. 그들의 사랑은 이 죽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살아 숨 쉬는 희망이자, 동시에 가장 위험한 비밀이었다.

갑자기, 동굴 밖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희미한 불빛이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소리.

*쿵… 쿵… 쿵…*

발소리였다. 여럿이 움직이는 발소리. 그리고 이 폐허에서 가장 듣기 싫은 소리 중 하나, 바로 인간의 목소리였다.

“이 근처에서 변이체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놓치지 마라. 놈들의 번식을 막아야 한다.”

매캐한 화약 냄새와 함께 들려오는 목소리. 세라의 심장이 다시 한 번 쿵, 하고 떨어졌다. ‘변이체’. 그들은 카인의 종족을 그렇게 불렀다. 그리고 그들을 발견하는 즉시 제거하려 했다.

카인의 몸이 굳어지는 것을 세라는 느꼈다. 그의 눈빛은 순식간에 차갑게 변했고, 손끝에서는 푸른 혈관이 더욱 선명하게 솟아났다. 본능적으로, 그는 세라를 보호하려는 듯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젠장… 사냥꾼들이잖아.”

세라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들은 폐허를 배회하며 이종들을 사냥하는 인간 집단이었다. 그들에게 잡히면 카인은 물론이고, 카인과 함께 있는 세라 역시 무사할 수 없을 터였다. ‘이종에게 홀린 인간’이라는 명목으로, 더 잔혹한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카인은 세라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쉿’하는 동작을 취했다. 동굴 밖의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카인의 은회색 눈동자가 동굴 입구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 눈동자에선 미약하지만 섬뜩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사냥꾼들이 그를 발견하는 순간, 이곳은 피로 물들 것이다. 그리고 그 피는 아마 카인의 것이 아닐 터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의 정체가 완전히 드러나고 말았다.

세라는 카인의 품에 바싹 안겼다. 그의 강한 심장 박동이 그녀의 귀에 직접적으로 전해졌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 동시에 자신에게는 가장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존재. 그들의 사랑은 이 죽어가는 세상에서 피어난 기적이었지만, 동시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발소리는 동굴 입구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이어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와 수군거림.

“이쪽이야? 냄새가 이 근처에서 끊겼는데.”
“틀림없어. 역겨운 피 냄새가 진동한다고.”

날카로운 손전등 불빛이 동굴 입구 안쪽을 비추었다. 세라와 카인은 벽에 바짝 붙어 숨을 죽였다. 빛줄기가 그들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세라는 공포에 질려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끝인가? 그들의 금지된 사랑은 이 폐허의 어둠 속에서 발각되고, 결국 파멸할 운명인가?
카인의 품이 더욱 단단해졌다. 그의 손이 세라의 손을 찾아 움켜쥐었다. 차갑지만, 그 어떤 것보다 따뜻한 온기가 세라의 손에 전해졌다.

그때, 사냥꾼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이 안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짐승 굴인가?”
“아니야. 이상해. 분명히 여기에서 흔적이… 잠깐, 저쪽이다!”

갑자기, 다른 사냥꾼의 외침이 들려왔다.

“저기 봐! 새로운 발자국이 저쪽으로 이어져 있어! 아마 놈들이 방향을 틀었나 보군. 서둘러!”

발소리가 다시 멀어지기 시작했다. 세라와 카인은 그제야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안도감은 잠시, 카인의 눈빛이 다시 한 번 동굴 입구를 응시했다. 그의 손이 세라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사냥꾼들의 외침. 그리고 그들이 추격하는 방향은, 마치 카인이 그들을 유인이라도 한 듯, 동굴과 반대되는 쪽이었다.

카인은 이 위험한 사냥꾼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자신과 세라를 보호하려 발버둥 치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에게 단 한순간의 안식도 허락하지 않는 듯했다.

“우린… 어디로 가야 해?”

세라의 떨리는 목소리가 어둠 속을 헤맸다. 카인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의 품에서, 세라는 온 세상의 무게를 견디는 듯한 고독을 느꼈다. 그들의 앞날은 여전히 불확실하고, 이 금지된 사랑은 언제까지 이 폐허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요한 동굴 안에, 카인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어디든… 너와 함께.”

그의 말은 세라의 마음속에 따뜻한 불씨를 지폈지만, 동시에 다가올 더 큰 위험을 예고하는 듯했다. 이 밤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