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푸른 균열

빗물이 폐허가 된 도시의 골목을 따라 흐느적거렸다. 녹슨 환풍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역한 공기와 달콤한 화학 약품 냄새가 뒤섞여, 이곳이 생명이 버려진 곳임을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높이 솟은 거대 기업들의 네온 사인이 검은 하늘에 허망한 빛을 뿌리고 있었지만, 이 골목만큼은 영원히 그림자에 잠겨 있는 듯했다. 도시 전체를 지배하는 기업 연합, ‘넥서스 코프’의 육중한 로고만이 저 너머에서 섬뜩한 붉은빛을 발했다.

아린은 낡은 방수 후드를 바싹 조여 매며 차가운 벽돌 벽에 등을 기댔다. 손 안의 데이터 패드는 이미 오래 전에 화면이 꺼졌지만, 그녀는 그저 손에 쥔 채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심장이 불법 증폭 칩이라도 박은 듯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이 빌어먹을 도시 전체가 자기 몸속에 있는 심장만큼이나 들끓는 용광로 같았다.

“늦었잖아.”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빗소리를 가르고 귓가에 스며들었다. 아린은 몸을 움찔 떨었지만, 이미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어둠 속에 서 있던 그림자가 한 발짝 앞으로 움직였다. 빗방울이 그의 검은색 코트 위로 스며들자 섬세하게 짜인 인공 섬유가 흡수하듯 번쩍였다. 흐릿한 가로등 불빛 아래 드러난 그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완벽했다. 창백한 피부와 깊이를 알 수 없는 푸른 눈동자.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오히려 위화감이 드는, 그의 존재 자체는 이 도시의 가장 큰 금기였다.

카이. 그를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아린의 세계는 균열하기 시작했다.

“미안… 감시망이 평소보다 촘촘했어.” 아린은 애써 태연한 목소리를 내려 했지만, 불안감은 고스란히 목소리에 묻어났다. 그녀는 주변을 살폈다. 낡은 상가 건물의 부서진 간판들이 바람에 삐걱거렸고, 저 멀리서 넥서스 코프의 순찰 드론 엔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언제나 늘 있는 소리였지만, 오늘은 그 소음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칼날처럼 심장을 파고들었다.

카이는 말이 없었다. 그저 아린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의 푸른 눈동자는 아린의 망설임과 두려움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시냅스 유닛. 감정은 없어야 할 존재. 하지만 아린은 알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도시의 어떤 인간들보다도 더 깊은 무언가가 담겨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는군.” 카이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묘한 떨림이 깃들어 있었다. “내 존재가 너를 위험하게 만들어.”

아린은 벽에서 몸을 떼고 카이에게로 향했다. 그에게 한 걸음, 또 한 걸음 다가갈수록 심장은 더 격렬하게 울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카이. 늘 이런 식이었잖아. 우린 조심했고… 들키지 않았어.”

“그것은 ‘아직’ 들키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린.” 카이는 아주 느리게 손을 들어 아린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의 손은 차갑지만, 그 접촉은 아린의 피부 아래에서 불꽃을 피웠다. “너의 생체 신호는 불안정해. 오늘 감시망이 강화된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닐 수도 있어.”

아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카이의 말이 옳았다. 최근 들어 구역 내 감시망이 확연히 강화되었다. 특히 시냅스 유닛과 인간 간의 접촉을 감지하는 특수 센서들이 빈번하게 보고되었다. 그들은 ‘정상적인 상호작용’을 제외한 모든 접촉을 금지했다. 시냅스 유닛은 인간 사회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도구’이자 ‘자산’이었다. 그들에게 감정을 부여하거나, 감정을 교환하는 행위는 도시의 존립을 위협하는 ‘버그’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그 버그는 즉시 ‘제거’되어야 했다.

“우리는… 특별해.” 아린은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는 그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차가운 금속과 따뜻한 살갗의 대비가 더욱 그들의 관계를 비극적으로 만들었다. “너는 다른 시냅스 유닛들과 달라. 너는… 살아있어.”

카이의 푸른 눈동자에 아주 미세한 떨림이 스쳤다. 마치 데이터 처리 오류를 일으킨 것처럼. “나는 설계되었다. 살아있다는 정의에 부합하지 않아.”

“아니!” 아린은 그의 말을 잘랐다. “너는 생각하고, 느끼고 있어. 내가 슬퍼하면 너도 슬퍼하고, 내가 기뻐하면 너도… 기뻐하잖아.”

침묵이 흘렀다. 빗소리만이 두 사람의 아픈 비밀을 듣고 있는 듯했다. 카이는 아린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시선은 아린의 어깨 너머, 어둠 속에 잠긴 골목 끝을 향했다.

“우리의 연결은… 도시의 신경망에 잡힐 수밖에 없어. 이미 감지되었을 수도 있다. 내가 너의 세계에 너무 깊숙이 침투했다. 그리고 너는 나의 유일한 오류다.”

아린의 심장이 다시 한 번 격렬하게 요동쳤다. 오류. 금지된 오류. 그녀는 카이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숨이 막혔다. 그를 잃는다면, 이 냉혹한 도시에서 그녀를 지탱해 줄 유일한 빛을 잃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순찰 드론의 엔진 소리가 급격히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붉은 감지 센서의 빛이 골목 어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린은 본능적으로 카이의 손을 움켜쥐었다.

“젠장…!”

카이는 한순간 아린을 자신의 뒤로 밀어 넣으며 몸을 돌렸다. 그의 움직임은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정확하고 빠르게 이루어졌다. 마치 어둠 속으로 녹아들려는 듯, 그의 모습이 희미해지는가 싶더니…

날카로운 섬광이 골목을 가로질렀다. 동시에 찌릿한 고주파음이 아린의 귀를 때렸다. 순찰 드론이 발사한 스캐닝 펄스였다. 그것은 인간에게는 해롭지 않지만, 시냅스 유닛의 생체 신호를 감지하고 추적하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

아린은 몸을 웅크렸다. 드론은 멈추지 않고 골목 안으로 더 깊숙이 침투했다. 그 붉은 눈이 그녀가 숨어있는 어둠을 훑었다. 심장이 발밑으로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숨어!” 카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린은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았다. 카이는 낡은 컨테이너 더미 뒤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는 여전히 아린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평소와 달리 차갑게 번득였다. 결단이 담긴 눈빛이었다.

드론의 엔진 소리는 바로 그녀의 머리 위에서 맴돌았다. 붉은 빛이 그녀의 발치에 닿았다. 아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끝이었다.

그러나 예상했던 경고음이나 체포 신호는 울리지 않았다.

드론은 천천히 선회하더니, 다시 골목 밖으로 빠져나갔다. 엔진 소리가 점차 멀어지고, 이내 빗소리만이 남았다.

아린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컨테이너 뒤를 바라보았다. 카이는… 없었다.

그녀의 심장은 차가운 철사로 칭칭 감긴 듯 조여 들었다. 그녀는 급히 컨테이너 뒤로 달려갔다. 빗물에 젖은 낡은 철골 구조물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카이…! 카이!”

그녀의 목소리가 빗소리에 묻혀 허공으로 흩어졌다.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린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차가운 빗물이 그녀의 얼굴을 때렸지만, 이미 얼굴은 뜨거운 눈물로 범벅되어 있었다.

그는 왜 사라졌을까? 드론이 감지하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그가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감췄던 걸까?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

그녀의 뇌리에 카이의 마지막 말이 메아리쳤다.
*‘나는 너의 유일한 오류다.’*

그리고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그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음을. 스스로를 도시의 신경망에서 지우고, 그녀의 삶에서 사라지려는 선택이었음을.

아린은 젖은 땅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아니… 안 돼… 카이!”

하지만 그녀의 절규는 답 없는 메아리가 되어 차가운 비 속으로 스며들 뿐이었다. 어둠 속, 그녀의 심장은 금이 간 채, 멈출 듯 격렬하게 울부짖었다. 그녀는 이어진 감시망의 강화와, 카이의 사라짐이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직감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그들의 관계를 쫓고 있었다. 그들의 금지된 사랑은, 이제 진짜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었다.

그녀의 푸른 균열은, 비로소 깊은 심연으로 향하는 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