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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연의 아레스: 칠흑의 조각 (제12화)

메인 연구실의 굳게 닫힌 강철문 너머에서 미약한 진동이 흘러나왔다. 단순히 물리적인 떨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고, 척추를 타고 오르는 차가운 기운을 동반했다. 우주선 ‘아레스’는 인간의 감각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저 깊은 우주의 칠흑 속을 표류하고 있었다. 마지막 보고로부터 이미 이틀이 지났고, 그 이틀은 영겁의 시간처럼 흘렀다.

선장 이지혁은 함교 중앙의 홀로그램 스크린을 노려봤다. 스크린에는 연구실 내부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었다. 강화 유리로 된 격리실 중앙에 놓인, 아무런 설명도 불가능한 그 ‘것’. 칠흑 같은 암흑을 머금은 듯한 매끄러운 표면, 어떤 빛도 반사하지 않고 오직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고요하게 자리 잡은 기이한 조각이었다. 발견 당시부터 그 어떤 분석 장비로도 재질이나 성분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저 ‘있음’이라는 존재의 압도적인 증명만이 공간을 채울 뿐이었다.

“선장님, 수석 과학 장교 강유진입니다. 현재까지 유물의 에너지 파동은 안정적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주파수가… 계속해서 변동합니다. 특정 패턴은 없습니다.”

강유진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녀는 격리실 바로 바깥, 최첨단 센서들로 둘러싸인 콘솔 앞에 앉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스크린에 쏟아지는 복잡한 데이터 그래프 위를 쉴 새 없이 오갔다.

“안정적이라고? 저게 지금 우리 아레스호 전체를 저주라도 건 것처럼 만들고 있는데, 그걸 안정적이라고 표현하는 건 좀 부적절하지 않나?”

통신에 끼어든 건 보안 장교 박대수였다. 그의 굵은 목소리에는 불신과 짜증이 역력했다. 박대수는 함교 한쪽에서 전투용 파워 슈트의 점검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이따금씩 스크린의 유물을 향했지만, 그 눈빛은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대수 씨, 감정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유물은 어떤 공격적인 행동도 보이지 않았어요. 다만… 미지의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을 뿐입니다.” 유진은 침착하게 반박했다.

“그 미지의 에너지 때문에 함선의 보조 동력원이 두 번이나 먹통이 됐고, 자율 항법 시스템이 오류를 뿜어냈어! 우린 지금 저 정체불명의 돌멩이 때문에 우주 미아가 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박대수의 날 선 목소리에 함교 내의 긴장이 한층 고조되었다. 이지혁은 손을 들어 올리며 둘의 대화를 중단시켰다.

“둘 다 진정해. 유진, 보고를 계속해. 현재까지 파악된 특이사항은?”

“네, 선장님. 가장 특이한 점은… 유물이 주변 공간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약하지만 지속적으로요. 그것도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주파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요.”

“에너지를 흡수한다고?” 이지혁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네. 그리고… 우리 함선의 중력장 안정화 장치와 미묘하게 공명하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간헐적으로 선내 중력에 아주 미세한 변동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박대수 장교님이 말씀하신 시스템 오류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때, 함교 한쪽에서 자신의 콘솔을 조작하던 항해사 최윤아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선장님, 유진 장교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현재 아레스호의 항로 이탈률이 평소보다 0.001% 높습니다. 중력장의 미세한 변동이 항법 시스템에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 정도 미동으로 시스템이 그렇게 영향을 받는다는 건 말이 안 돼.” 박대수가 으르렁거렸다.

“정확히는, 유물이 내뿜는 파동이 시스템의 ‘인지’ 자체를 방해하는 것 같습니다.” 유진이 덧붙였다. “마치 시스템이 잠시 착각을 일으키는 것처럼요. 단순한 물리적 간섭이 아니라, 더 근원적인… 인식의 왜곡을 유도하는 듯합니다.”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 인식의 왜곡이라니. 그것은 단순한 기계 고장을 넘어선, 훨씬 더 불쾌하고 불길한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지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주력 2342년, 대한연방의 심우주 탐사선 아레스호는 인류가 한 번도 도달하지 못한 미지의 은하 변방에서 이 유물을 발견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례 없는 발견이었기에, 그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위험했다.

“유진, 제안할 것이 있나?” 이지혁이 물었다.

“네. 선장님. 이 유물의 파동을 정밀하게 분석하려면, 우리가 적극적으로 ‘상호 작용’을 시도해봐야 합니다. 너무도 미약한 파동이라, 수동적인 관측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상호 작용? 어떤 식으로?” 박대수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유진을 봤다.

“가장 안전한 방법부터 시도할 겁니다. 저주파 음파를 이용한 스캔을 제안합니다. 우리가 통신에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주파수 대역으로, 아주 낮은 강도로요. 혹시 모를 내부 구조를 파악하고, 유물의 반응을 관찰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지혁은 잠시 침묵했다. 위험한 제안이었다. 미지의 존재와 접촉하는 것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초래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우주적 고요 속에서 해답을 찾을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아레스호의 임무는 탐사와 연구였다. 회피가 아니었다.

“좋다. 허가한다. 하지만 모든 안전 프로토콜을 최대로 가동하고, 혹시라도 이상 징후가 보이면 즉시 중단한다.”

“알겠습니다, 선장님!” 유진의 목소리에 희미한 활기가 돌았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이 미지의 존재에 매료되어 있었다.

수석 과학 장교 강유진은 조심스럽게 콘솔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연구실 내의 로봇 팔이 격리실로 접근했다. 로봇 팔 끝에 달린 음파 발생기가 유물을 향해 조준되었다.

“발사 3초 전. 3… 2… 1… 발사.”

낮은, 거의 들리지 않는 진동이 격리실 안에서 시작되었다. 유물은 아무런 미동도 없이 그 음파를 받아들이는 듯했다. 칠흑 같은 표면은 여전히 모든 빛과 소리를 삼킬 것 같았다.

10초, 20초, 30초…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박대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괜히 귀한 전력만 낭비하는군.”

그때였다. 유물의 표면에서 미세한 파동이 일기 시작했다. 마치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진 것처럼, 어둠 속에서 어둠의 물결이 번져 나갔다. 빛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 그 자체가 파동치는 듯했다.

“선장님! 반응합니다! 음파를 흡수하고 있습니다! 반사가 아닌, 흡수입니다!” 유진의 목소리에 흥분과 경외심이 섞여 있었다.

흡수? 이지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음파는 반사되어야 하는 물리적 파동이었다. 흡수한다는 것은, 마치 유물이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작용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쿠웅!*

배 전체를 뒤흔드는 깊고 둔탁한 충격음이 들려왔다. 단순한 충격이 아니라, 심장을 움켜쥐는 듯한 압력과 함께 뼛속까지 울리는 진동이었다.

함교의 비상등이 깜빡거리며 주변을 붉게 물들였다. 메인 스크린에 경고 메시지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경고: 주 동력원 불규칙한 출력! 보조 시스템 과부하!]**
**[경고: 함선 중력장 안정화 실패! 선내 미세 중력 변동 감지!]**

“젠장! 유진, 당장 중단해! 모든 시스템이 나가고 있어!” 박대수가 소리쳤다. 그의 손은 이미 허리춤의 권총에 가 있었다.

“멈출 수 없습니다! 유물이… 유물이 역으로 파동을 방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보낸 주파수가 아닙니다! 훨씬 더 복잡한… 듣도 보도 못한 파동입니다!”

유진의 스크린에는 기괴한 형태의 에너지 그래프가 춤추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감각으로 해석할 수 없는, 너무도 이질적인 파동이었다.

유물의 칠흑 같은 표면에서 이제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둠의 파동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주변의 빛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연구실 내부의 조명조차 점차 희미해졌다.

이지혁은 온몸에 돋아나는 소름을 애써 억눌렀다. 그의 눈에 비친 유물은 더 이상 고요한 조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검은 구멍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듯 으스스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니, 빛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둠’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유물의 표면에 아주 잠깐,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기하학적이면서도 유기적인, 처음 보는 문양. 그것은 마치… 눈동자 같았다. 수없이 많은 눈들이 한순간 열렸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잠기는 것처럼.

**[경고: 함선 전체 에너지 레벨 위험 수준! 즉시 조치 요망!]**

아레스호는 미지의 심연 속에서, 정체불명의 존재와 함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유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둠의 파동은 단순한 에너지 충격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주선의 강철 선체는 물론,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의 정신마저 뒤흔드는, 근원적인 공포의 메아리였다.

*쿵! 쿵! 쿵!*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이지 않은, 불규칙하지만 강렬한 진동이 선체 전체를 울렸다. 그것은 외부에서 오는 충격이 아니었다. 분명, 연구실 안에서, 유물로부터 시작되는 소리였다. 마치 거대한 존재가 어둠 속에서 깨어나 발걸음을 내딛는 듯한…

모두의 시선이 스크린 속, 어둠을 뿜어내는 유물에 박혔다. 이지혁은 본능적으로 손에 땀이 차는 것을 느꼈다. 그들 앞에 놓인 것은 단순한 외계 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잠자는 심연의 거인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거인이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