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 액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철혈도시의 밤은 늘 거대하고 차가웠다. 네온사인 불빛 아래로 강철 거인들이 묵묵히 제 그림자를 끌고 지나다니는 풍경은, 이 도시의 가장 익숙한 풍경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거인들 중에서도, ‘격리 구역 델타’의 훈련장 한복판에서 춤을 추듯 움직이는 두 대의 기체는 단연코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냈다.

“민준! 왼쪽 세 시 방향! 빈틈 보여!”

날카로운 목소리가 통신망을 찢고 들어왔다. 강민준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조종간을 틀었다. 그의 애기(愛機) ‘천둥매’가 묵직한 기체를 날렵하게 회전시키며 섬광처럼 뻗어오는 레이저포를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조종석 안, 수십 개의 홀로그램 패널이 빛을 뿜어냈지만, 그의 시선은 오직 정면에 박혀 있었다.

“알아, 현우! 하지만 이번엔 내가 먼저다!”

민준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천둥매의 오른팔에 달린 거대한 블레이드가 번뜩이며 상대 기체의 어깨 장갑을 노렸다. 콰앙! 금속이 찢어지는 굉음이 훈련장을 뒤흔들었다. 상대 기체가 비틀거렸지만, 이내 균형을 잡고 반격에 나섰다.

이현우의 기체 ‘강철 그림자’는 천둥매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민첩하고 유려한 움직임, 마치 그림자처럼 미끄러지며 상대를 혼란에 빠뜨리는 전술은 오직 현우만이 구현할 수 있는 독창적인 방식이었다. 그는 잠시 물러서는 척하며 천둥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가, 순식간에 후방으로 치고 들어왔다.

“방심하지 마, 민준. 나는 네 등 뒤도 놓치지 않아.”

등 뒤에서 울리는 현우의 목소리에 민준은 씨익 웃었다. 그래, 이게 이현우다. 천재적인 전술가, 그리고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둘도 없는 파트너.

“하! 네가 내 등을 노리는 순간, 나는 네 심장을 꿰뚫는다!”

민준의 천둥매는 예상치 못한 움직임을 보였다. 후진 기어를 넣는 동시에 거대한 부스터를 역추진하며 강철 그림자와의 거리를 벌렸다. 동시에 블레이드를 뒤로 젖혀 등 뒤의 적을 향해 냅다 휘둘렀다. 현우는 본능적으로 기체를 급강하 시키며 블레이드를 피했지만, 스쳐 지나간 바람에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젠장! 진짜 칼날이었다면 죽었겠군.” 현우가 숨을 헐떡였다.
“내가 죽일 리 없잖아. 네가 없는 천둥매는 날개가 꺾인 거나 마찬가지니까.”

민준의 목소리에는 변치 않는 신뢰가 담겨 있었다.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서로의 빈틈을 메워주는 관계. 그들은 언제나 그랬다. 모든 임무에서 승리하고, 모든 역경을 함께 헤쳐 나갔다. 사람들은 그들을 ‘쌍둥이 독수리’라 불렀다. 함께라면 불가능은 없다고.

훈련이 끝나고 두 사람은 헬멧을 벗었다. 현우는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오늘도 죽을 뻔했네, 강민준. 언제쯤 봐줄 거냐?”
민준은 시원하게 웃으며 현우의 어깨를 툭 쳤다.
“봐주는 게 오히려 모욕이지, 이현우. 너도 나도 항상 한계까지 밀어붙여야 더 강해질 수 있어. 그래야 다음 달 ‘별들의 전쟁’ 토너먼트에서 우승컵을 거머쥘 수 있지 않겠어?”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전 우주의 강자들이 모이는 ‘별들의 전쟁’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는 것. 우승자에게는 막대한 명예와 함께, 모든 것을 초월하는 고대의 기술이 담긴 ‘에테르 코어’를 연구할 자격이 주어졌다. 그것은 그들의 오랜 꿈이었고, 함께 만들어나갈 미래였다.

“그럼! 당연히 우리가 우승해야지!” 현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의 눈에는 성공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담겨 있었다. 민준은 그저 현우의 열정이 좋았다. 자신의 열정과 닮아 있는, 언제나 자신을 북돋아주는 친구.

***

그로부터 한 달 뒤, ‘별들의 전쟁’ 결승전이 열리는 날.

전 우주에 생중계되는 거대한 아레나의 한복판에 천둥매와 강철 그림자가 나란히 서 있었다. 결승 상대는 예상대로 현 우승팀이자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검은 태양단’이었다. 그들의 기체는 전설적인 성능을 자랑하는 ‘오버로드’ 두 대.
하지만 민준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옆에 현우가 있었으니까.

“현우, 오늘 작전은 B-7이지?” 민준이 통신으로 물었다.
“그래, 민준. 우리가 연습했던 대로. 내가 먼저 어그로를 끌 테니, 넌 우측으로 우회해서 오버로드 한 대를 무력화시켜.”
“오케이. 믿는다, 현우.”
“나도 너를 믿어, 민준.”

출전 신호와 함께 거대한 문이 열렸다. 두 기체가 맹렬한 속도로 아레나를 가로질렀다.
전투는 시작부터 격렬했다. 검은 태양단의 오버로드는 명성 그대로 강력했다. 현우의 강철 그림자는 순식간에 두 대의 오버로드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렸다. 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민첩하게 움직이며 집중 포화를 견뎌냈다.

“민준! 지금이야! 빨리!”

현우의 다급한 외침에 민준은 오버로드 한 대의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천둥매의 블레이드가 번뜩이며 오버로드의 다리 관절을 노렸다.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이대로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그때였다.
파지직! 민준의 통신망이 일그러졌다. 현우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민준! 미안하다…!”

뭐지? 민준은 의아했다. 미안하다니?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강렬한 섬광이 터져 나왔다. 콰아앙! 엄청난 충격이 천둥매의 장갑을 뚫고 들어왔다. 기체가 크게 흔들리며 제어 불능 상태에 빠졌다.
“커헉!”
민준은 피를 토하며 조종간에 얼굴을 박았다. 경고등이 붉은색으로 번쩍였다. 전면 패널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고, 내부 장치들이 스파크를 튀기며 고장 나기 시작했다.

그를 공격한 것은 다름 아닌 이현우의 강철 그림자였다.
정확히 천둥매의 등 뒤, 비상 제어 장치가 있는 핵심 부위를 노린 공격이었다.
민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홀로그램 패널 너머로 현우의 기체를 바라봤다. 강철 그림자는 여유롭게 자세를 잡고는, 블레이드를 거두고 주포를 다시 충전하기 시작했다. 오버로드들은 마치 구경꾼처럼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현우…! 이게… 무슨 짓이야…?” 민준의 목소리가 통신망에서 갈라졌다.
현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강철 그림자의 주포가 천둥매를 향해 조준되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차갑게, 감정 한 조각 없이 울렸다.

“강민준, 네 운은 여기까지다. 에테르 코어는 내가 가질 거야.”

쿵! 쿵! 쿵!
민준의 심장이 뜯겨나가는 듯 아파왔다. 믿을 수 없었다. 이현우가. 친구인 이현우가 자신을 배신했다니.
그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강철 그림자의 주포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에너지는 너무나도 선명했다.

“미친…!”
민준이 필사적으로 조종간을 당겼지만, 천둥매는 이미 폐허 직전이었다. 팔다리가 떨어져나가고, 내부 회로가 모두 망가진 상태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이럴 리가… 현우…!”

거대한 섬광이 아레나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민준의 의식도, 그의 천둥매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마지막으로 그의 뇌리에 스쳐 간 것은, 자신을 향해 조준된 강철 그림자의 차가운 포구와, 그 안에 담겨 있을 이현우의 싸늘한 표정이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둠 속에서 깨어난 민준은 온몸을 짓누르는 고통에 신음했다. 그는 폐허가 된 도시의 한 구석, 잔해 더미에 파묻혀 있었다. 머리 위로는 텅 비어버린 달만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살아… 있었나…?”

겨우 눈을 뜬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산산이 부서진 천둥매의 잔해였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진 강철 덩어리들. 그의 심장과도 같았던 천둥매는 이제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부서진 통신 장치에서 가까스로 복구된 마지막 녹음 파일이 들려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 “강민준, 네 운은 여기까지다. 에테르 코어는 내가 가질 거야.” —

현우의 목소리. 차갑고 냉혹한, 한 점의 망설임도 없는 그 목소리.
그 순간, 민준의 뇌리에 모든 것이 퍼즐처럼 맞춰졌다.
‘별들의 전쟁’ 토너먼트의 우승자는 ‘에테르 코어’를 연구할 자격과 함께, 막대한 권력을 얻게 된다. 현우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가질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에게 자신은 그저 디딤돌에 불과했다.

“이현우…!”

핏발 선 눈동자가 허공을 노려봤다.
배신감과 분노, 절망과 증오가 뒤섞여 그의 심장을 찢어발겼다.
그는 이빨을 악물었다. 피가 입안 가득 고였다.

“날… 나를… 이 지옥에 처박아 넣었겠다…?”
“내가… 내가 너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폐허 속에서 한 남자의 끔찍한 절규가 울려 퍼졌다.
그의 눈동자에서 타오르는 것은, 재가 될 때까지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순수한 복수의 불꽃이었다.

이현우, 네가 빼앗아 간 모든 것을, 나는 네놈의 손에서 찢어발겨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네놈의 목숨으로, 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피로 얼룩진 그의 주먹이 땅을 내리쳤다.
부서진 철골들 사이로, 새로운 복수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