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우주선 ‘별무리호’의 메인 연구실, 한유진 박사는 길게 하품하며 모니터에 얼굴을 파묻었다. 심우주 탐사 5년 차. 처음엔 미지의 광활함에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했지만, 이제 그녀에게 우주는 그저 끝없는 회색빛 모니터 화면과 예측 가능한 데이터의 연속일 뿐이었다.

“젠장, 정말 아무것도 없네. 이럴 거면 차라리 지구에서 연구실에 틀어박혀 논문이나 쓰는 게 나았을 텐데.”

뜨뜻미지근한 합성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며 투덜거렸다.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인공지능 전문 연구원, 이하나 박사가 고개를 들었다.

“유진 선배, 너무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언젠가 한 방 터질 때가 올 거예요. 우리의 임무는 새로운 것을 찾는 거잖아요?”
“찾긴 뭘 찾아. 지난 5년간 찾은 거라곤 궤도 이탈한 소행성 조각이랑, 존재조차 희미한 암흑물질 흔적뿐인데.”

유진은 신경질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때였다.

*삐이이- 비이이이-*

경고음이 연구실 전체를 뒤흔들었다. 동시에 모니터 상단에 비상 알림이 떴다.

[미확인 에너지원 감지. 접근 중인 미지의 물체 식별.]

유진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하품하던 입이 딱 벌어졌다. 하나 역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선배, 이거… 진짜예요?”
“…….”

유진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루함에 찌들어 있던 눈빛은 순식간에 날카로운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메인 브릿지는 이미 혼란의 도가니였다. 수십 개의 모니터가 미지의 물체를 추적하는 영상과 데이터를 띄우고 있었고, 승무원들은 각자 제 자리에서 부산하게 움직였다. 그 중심에는 강민준 함장이 서 있었다. 그는 딱 벌어진 어깨와 냉철한 눈빛으로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언제나 여유와 함께 사람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리고 그게 유진은 영 불편했다.

“함장님, 물체가 너무 빠르게 접근합니다! 현재 속도로는 10분 내에 별무리호와 근접 조우하게 됩니다!”
“에너지원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격적인 패턴은 보이지 않습니다. 일종의… 신호로 감지됩니다.”

민준은 턱을 쓸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유진을 발견하고 눈짓했다.

“한 박사, 데이터 분석은?”
“지금 가는 중입니다, 함장님.”

유진은 종종걸음으로 민준의 옆에 섰다. 메인 홀로그램 모니터에는 육안으로는 식별 불가능한 거대한 빛의 덩어리가 별무리호를 향해 다가오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었다.

“현재까지 분석된 바로는, 인공적인 구조물일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지구에서 알려진 어떤 물질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순수한 에너지의 집합체 같아요.”
“외계 문명체라는 말이군.”

민준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실려 있었다.

“접촉 시도.”
“함장님, 너무 위험합니다! 아직 정체도 모르는데…!”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민준은 단호하게 지시했다. 그의 명령에 따라 통신 전문 요원들이 접촉 시도를 시작했다. 별무리호에서 발사된 신호가 미지의 물체를 향해 뻗어나갔다.

그리고, 반응이 왔다.

빛의 덩어리가 순간 일렁이더니, 거대한 홀로그램 영상이 별무리호 브릿지 전체를 감쌌다. 그것은 복잡한 기하학적 무늬로 이루어진, 마치 살아있는 보석 같은 구조물이었다. 형형색색의 빛이 섬세하게 얽혀 있었고, 그 중심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투명한 구체가 떠 있었다.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아름다웠다. 지구에서 본 어떤 예술 작품보다도, 어떤 자연 현상보다도 압도적으로 아름다웠다.

“이게… 뭐죠?” 하나가 넋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민준은 홀로그램에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빛의 구조물을 통과하는 순간, 투명한 구체에서 한 줄기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민준의 손을 감싸더니, 곧 브릿지에 있던 모든 사람의 이마에 닿았다.

유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마치 오래된 기억을 더듬는 듯한, 혹은 잊고 있던 감정을 되살리는 듯한 기묘한 느낌이었다.

눈을 뜨자, 민준이 바로 코앞에 서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너무나 가까이에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함장…님?”

유진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평소라면 꿈에도 생각지 못할 거리였다. 민준은 평소와 달리 살짝 흔들리는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이 미묘하게 붉어진 것 같기도 했다.

“한… 박사.”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평소의 냉철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딘가 살짝 풀어지고, 조금 더 부드러운… 그리고 묘하게 흔들리는 목소리.

“지금… 뭔가 이상합니다. 저, 제 머릿속이… 뭔가… 혼란스러워요.”

유진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째서인지, 민준의 얼굴이 너무 잘생겨 보였다. 평소에는 그저 ‘잘생긴 함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지금은 그의 눈빛 하나하나, 입술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신경 쓰였다.

민준은 한숨을 쉬듯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박사. 당신이… 음… 평소보다 훨씬 더… 예뻐 보이는군요.”

유진은 꿀꺽 침을 삼켰다. 민준이, 함장이, 방금 자신에게 예쁘다고 했다. 그것도 이런 심각한 상황에!

“함장님,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지금 이런 상황에!”

유진은 버럭 소리쳤지만, 얼굴은 이미 불덩이처럼 화끈거렸다. 그때, 이하나 박사가 비틀거리며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선배! 함장님! 제 눈에… 제 눈에 함장님이 갑자기 너무 멋져 보여요! 제 마음이 왜 이러죠?!”
“하 박사, 정신 차려요!”

유진은 경악했다.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승무원들도 서로를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옆 사람의 손을 덥석 잡고 얼굴을 붉혔고, 또 다른 누군가는 평소 앙숙이던 동료에게 진심 어린 칭찬을 건네고 있었다.

홀로그램 속의 투명한 구체는 여전히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빛이 닿았던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어딘가 잠들어 있던 감정의 씨앗을 갑자기 꽃피우기 시작한 듯했다. 그것은 긍정적인 감정일 수도 있었고, 부정적인 감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브릿지 전체를 지배하는 감정은… 확실히 ‘로맨틱한’ 혼란이었다.

“젠장, 저 구체가 뭔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 민준이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여전히 유진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유진은 민준의 시선을 피하려 애썼다. 그러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어쩐지 전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중 가장 강렬한 것은, 바로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강민준의 시선이었다.

“함장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안 되는 게 뭔데, 한 박사?”

민준이 한 발짝 더 다가왔다. 유진은 숨을 멈췄다.

“이건 외계 문명의… 농간일 뿐입니다! 착각이에요!”
“착각…?”

민준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당신이 그렇게 말해도… 지금 내 눈에는, 그 착각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지는군.”

유진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다. 브릿지 전체를 가득 채운 혼란 속에서, 그녀의 심장은 외계 유물 때문에 벌어진 이 상황이 마냥 착각이라고 부정할 수 없는 속도로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투명한 구체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저 아름다웠던 외계 유물은, 별무리호 승무원들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사랑의 씨앗을 뿌려놓은 듯했다.

“함장님, 지금… 제 말이 들려요?”

유진은 거의 울상이 되어 외쳤다. 그러나 민준은 그저 부드럽게 웃을 뿐이었다.

“아주 잘 들리는군, 한 박사. 그리고, 당신의 심장 소리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홀로그램 속 투명한 구체가 한 번 더 강렬하게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이번에는, 브릿지 중앙에 알 수 없는 문양의 빛의 글자들이 홀로그램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외계 문명체가 보내는 첫 번째 ‘메시지’처럼 보였다.

그러나 유진의 눈에는, 그 메시지보다도, 제멋대로 심장이 뛰는 자신의 몸과,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민준의 흔들리는 눈빛만이 더 크게 들어왔다.

외계 유물은, 과연 무엇을 의도하는 걸까? 그리고, 이 혼란스러운 감정들은… 정말 외계 문명의 장난일 뿐일까?

유진은 혼란스러운 눈으로 민준을 바라봤고, 민준은 그녀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별무리호는 미지의 유물 앞에서, 미지의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