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오페라 독립적인 단편 소설

어둠이 짙게 깔린 우주, 별의 잔해들이 산산이 부서져 흐르는 카이론 성운의 가장자리에서, 낡고 투박한 우주선 ‘그림자 망토’가 그림자처럼 떠 있었다. 선실 안, 짙은 코발트색 작업복을 입은 카이렌은 눈을 감고 과거를 되새겼다. 그의 왼팔에는 오래된 기계 팔이 삐걱거렸고, 오른쪽 뺨에는 흉터가 은하의 지형도처럼 길게 새겨져 있었다.

“제로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은 차갑고 날카로운 얼음 조각 같았다. 한때 그 이름은 그의 전부였고,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시간은 7년 전, 찬란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카이렌과 제로스는 ‘세라핌’이라는 전투함의 쌍둥이 날개였다. 은하계 최강의 독립 함대 ‘새벽 별’의 정예 파일럿으로, 그들의 조종 실력은 전설적이었다. 둘은 고아원에서 함께 자랐고, 어릴 적부터 서로의 등 뒤를 지켜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들의 꿈은 단 하나, 무자비한 이산 제국의 폭정 아래 신음하는 자신들의 고향 행성, 베르길리아를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카이렌, 이번 임무가 성공하면, 우린 진짜 영웅이 될 거야. 베르길리아의 아이들이 우릴 노래할 거라고!”

제로스가 환하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던 그날 밤의 기억이 생생했다. 그들의 임무는 이산 제국의 심장부에 위치한 극비 연구소에서 ‘코스믹 키’라는 초월적인 에너지 코어를 탈취하는 것이었다. 코스믹 키는 우주 전체의 동력을 제어할 수 있는 궁극의 병기이자, 베르길리아를 해방시킬 유일한 희망이었다.

“네 말대로다, 제로스. 이 임무만 성공하면, 더 이상 누구도 우리 베르길리아를 노예로 삼을 순 없어.”

카이렌은 제로스의 눈빛에서 자신과 똑같은 열망을 읽었다. 굳건한 신뢰가 그들을 감쌌다.

하지만 코스믹 키를 손에 넣고 탈출하는 그 순간, 지옥의 문이 열렸다.

“제로스! 엔진이 과부하 됐어! 자네가 내 탈출 궤도를 열어줘!”

카이렌의 절규가 통신망을 찢었다. 이산 제국의 추격 함대가 지척이었고, ‘세라핌’은 불타는 파편이 되어가고 있었다. 제로스는 탈출선에서 그를 향해 손을 뻗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이미 다른 것이었다. 차갑고, 계산적이며, 낯선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미안하다, 친구.”

그것이 제로스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통신 패드를 스쳤고, 카이렌의 비상 탈출 궤도는 거짓말처럼 봉쇄되었다. 거대한 폭발이 ‘세라핌’을 집어삼켰고, 카이렌은 불타는 잔해 속으로 추락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은, 코스믹 키를 들고 유유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제로스의 탈출선이었다.

카이렌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육신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심장은 갈기갈기 찢겨졌다. 그는 제국군에게 붙잡혀 수년간 지옥 같은 고문을 견뎌야 했다. 매일 밤 제로스의 배신이 그의 꿈을 좀먹었고, 그의 영혼을 갉아먹었다. 그 모든 고통 속에서 그는 오직 하나의 생각으로 버텼다. 복수. 제로스를 찾아, 그가 자신에게 했던 것보다 백배 천배 더한 고통을 안겨주리라.

카이렌은 자신을 잊었다. 긍지 높던 파일럿 카이렌은 죽었다. 대신, 그림자 속을 떠도는 유령, 복수심에 타오르는 불꽃 ‘스펙터’가 탄생했다. 그는 탈출 후, 은하계의 가장 어두운 뒷골목을 전전하며 기술을 갈고닦았다. 돈을 벌기 위해 불법적인 일도 서슴지 않았다. 한때 제국을 무너뜨리려던 이상주의자였던 그는, 이제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는 차가운 사냥꾼이 되었다. 그의 낡은 기계 팔은 수많은 밤을 새워가며 조립한 ‘그림자 망토’를 조종했고, 그의 뺨 위 흉터는 그를 살아있는 복수의 화신으로 만들었다.

7년 후, 제로스는 이산 제국의 최고 사령관 자리에 올랐다. 그는 코스믹 키를 이용해 제국의 국력을 확장시켰고, 은하계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카이렌이 그토록 꿈꿨던 베르길리아 해방은 온데간데없었고, 오히려 제국에 편입되어 더욱 가혹한 통치에 시달리고 있었다. 제로스는 카이렌의 죽음을 자신의 성공 신화의 발판으로 삼았고, 심지어 고아원 동창이라는 이유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척까지 했다. 그 위선이 카이렌의 피를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코스믹 키를 이용해 자신의 제국을 만들고, 한때 우리의 꿈이었던 베르길리아를 다시 노예로 삼았다고? 제로스, 네게는 지옥조차 아깝다.”

카이렌은 제로스의 은하 함대 진로도를 응시했다. 제로스는 오늘밤, 제국의 수도 행성 아르고스에서 열리는 ‘평화와 번영의 축제’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의 함대가 삼엄한 경비를 뚫고 아르고스 성계에 진입하려면, 예상치 못한 틈이 필요했다.

“알리, 준비됐나?” 카이렌이 통신기를 통해 물었다.

알리는 그의 유일한 조력자였다. 과거 ‘새벽 별’ 함대의 통신 전문 요원이자, 제로스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잃은 또 다른 복수심의 잔재였다. 그녀는 한쪽 눈에 안대 대신 빛나는 사이버네틱 렌즈를 착용하고 있었다.

“항상 준비돼 있었지. 그 망할 배신자의 함대가 지금 방어막 갱신 지점을 통과하고 있어. 3분 42초 후, 방어막 재구축이 일시적으로 중단될 거야. 정확히 1.5초간의 틈이 생기지.”

“그걸로 충분해.”

카이렌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그는 ‘그림자 망토’의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함선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메인 추진기 최대 출력. 스텔스 모드 가동. 코스믹 키의 에너지 파동을 우회해서 침투한다. 탐지망은 우리의 그림자조차 잡아내지 못할 거야.”

‘그림자 망토’는 유령처럼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아르고스 성계는 화려한 빛과 홀로그램으로 뒤덮인 거대한 도시 행성이었다. 수많은 전투함들이 거대한 방어막 주위를 순찰하고 있었다. 카이렌은 심장이 터질 듯한 압박감 속에서도 침착하게 조종했다.

“10초! 9… 8… 방어막 재구축 시작!” 알리의 목소리가 긴박하게 이어졌다.

거대한 에너지 장막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카이렌은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돌파! 최대 가속!”

‘그림자 망토’는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방어막의 틈새를 뚫고 아르고스 성계 내부로 진입했다. 수십 대의 제국 전투기가 요동치는 방어막을 재빨리 통과한 침입자를 향해 쇄도했다.

“탐지망에 적선 포착! 전투 태세!” 제국군의 통신이 터져 나왔다.

“제로스의 기함은 어디지?” 카이렌은 주위를 스캔하며 물었다.

“중앙 축제 광장 상공, ‘천룡’ 함선에 탑승해 있어! 저 빌어먹을 자식, 백성들 앞에서 여왕이라도 된 양 떠받들여지고 있군!” 알리가 비아냥거렸다.

카이렌의 눈이 번쩍였다. ‘천룡’, 제로스의 기함. 한때 그와 제로스가 함께 설계했던 꿈의 함선이었다. 그들은 세라핌의 후속작으로 천룡을 구상했었다. 모든 설계도와 아이디어는 제로스가 훔쳐갔다.

“미사일 포대 개방! 모든 화력, ‘천룡’에 집중!”

‘그림자 망토’의 숨겨진 미사일 포대에서 붉은 섬광이 터져 나왔다. 수십 발의 미사일이 일제히 ‘천룡’을 향해 날아갔다. 제국 전투기들이 필사적으로 요격했지만, 일부는 이미 목표에 근접해 있었다.

콰앙! 콰앙!

‘천룡’의 방어막에 균열이 생기고, 폭발음이 연이어 터졌다. 축제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환호성은 비명으로 바뀌었고,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이게 무슨 짓이냐! 누가 감히 내 제국에!” 제로스의 격노한 목소리가 성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카이렌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시작이었다.

“제로스, 잊었나? 네가 버리고 간 친구를 말이야.” 카이렌은 전함 전체에 자신의 목소리를 송출했다. 음성은 기계음처럼 왜곡되어 제로스의 귀에 박혔다. “네가 내 등 뒤에 칼을 꽂았던 그날부터, 나는 이 순간을 위해 살아왔다.”

‘천룡’의 홀로그램 스크린에 7년 전, 불타는 ‘세라핌’의 잔해와 그 속에서 탈출선이 멀어지는 영상이 재생되었다. 제로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의 병사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영웅으로 칭송받던 그들의 사령관이 이토록 비열한 배신자였다니.

“카이렌…! 살아있었나! 말도 안 돼!” 제로스의 목소리에 당황과 공포가 뒤섞였다.

“놀랐나? 지옥에서 돌아온 유령이 너를 찾아왔으니.”

카이렌은 ‘천룡’의 함교를 향해 돌진했다. 제국 전투기들이 ‘그림자 망토’를 에워쌌지만, 카이렌의 조종 실력은 7년 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는 맹렬하게 기동하며 추격자들을 따돌렸다. 그의 기계 팔은 정교하게 조종간을 움직였고, 그의 눈은 모든 움직임을 읽었다. 그는 살아있는 살인 기계였다.

마침내 ‘그림자 망토’는 ‘천룡’의 함교 바로 앞에 착륙했다. 카이렌은 함선의 도킹 해치를 열고, 섬광탄을 던져 넣었다. 폭발과 함께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카이렌은 연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손에는 낡고 닳은 플라스마 소총이 들려 있었다.

연기가 걷히자, 함교 중앙에 제로스가 서 있었다. 그는 화려한 제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 얼굴에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무장한 제국군 병사들이 그를 보호하고 있었다.

“카이렌… 넌 미쳤어! 여긴 제국의 심장이다! 감히 네까짓 게…!”

“미쳐? 그래, 미쳤지. 너를 죽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됐으니까.”

카이렌은 망설임 없이 소총을 발사했다. 플라스마 탄환이 병사들을 꿰뚫었다. 그는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병사들을 하나하나 쓰러뜨렸다. 그의 움직임은 잔혹하고 효율적이었다. 7년간의 지옥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다.

마침내 제로스와 카이렌, 둘만이 남았다.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다시 ‘새벽 별’을 만들고 싶나? 이산 제국을 무너뜨리고 싶어? 그래, 좋아! 함께 하자! 나는 사령관이고, 넌 그 옆에서 나를 도우면 돼! 코스믹 키는 여전히 내 손에 있다고!” 제로스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권위는 사라지고 비굴함이 가득했다.

카이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뺨의 흉터를 쓸어 올렸다. “코스믹 키? 네가 감히 그걸 말해? 베르길리아? 네가 감히 그걸 입에 담아?”

카이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속에 담긴 것은 분노였다. 순수한, 모든 것을 불태울 듯한 분노.

“네놈이 내 등을 찔렀을 때, 모든 게 끝났다, 제로스. 나의 꿈, 나의 희망, 나의 전부가. 나는 너 때문에 지옥을 살았다. 네가 영웅으로 칭송받는 동안, 나는 괴물로 변해야만 했어.”

“난… 난 어쩔 수 없었어! 카이렌! 코스믹 키는 너무 강력했어!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고!” 제로스가 소리쳤다. 그의 눈에도 절망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가 함께라면…!”

“함께? 네놈은 동료를 팔아넘겼고, 꿈을 배신했다. 이제 와서 함께? 네가 나와 함께할 곳은, 지옥뿐이다.”

카이렌은 소총을 버렸다. 그리고 제로스에게 맨주먹으로 다가갔다. 제로스는 비명을 지르며 레이저 권총을 뽑아 들었지만, 카이렌의 기계 팔이 번개처럼 움직여 그의 손목을 꺾었다. 권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카이렌! 제발! 살려줘! 우리의 옛정을 생각해서!”

제로스의 얼굴에서 모든 가면이 벗겨졌다. 그는 비참하고 나약한 존재였다. 권력 뒤에 숨겨져 있던 그의 본모습.

“옛정? 네놈이 나를 불타는 함선에 가두고, 코스믹 키를 훔쳐 도망치던 그 순간에, 우리의 옛정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카이렌은 제로스의 목을 움켜쥐었다. 기계 팔의 강철 손아귀가 으스러질 듯 조여왔다. 제로스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나… 난… 후회한다…!”

카이렌은 그의 마지막 말을 들었지만, 그의 심장은 이미 굳어버린 돌덩이였다. 그는 7년간 품어온 복수심을 모두 담아 제로스의 목을 부러뜨렸다. 퍽, 하는 소리가 함교를 울렸다. 제로스의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의 눈은 텅 비어 있었고, 그 속에는 한때 친구였던 자의 죽음이 담겨 있었다.

카이렌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복수는 끝났다.
하지만 그의 심장은 여전히 공허했다.
텅 빈 함교 안, 그는 바닥에 쓰러진 제로스를 내려다보았다. 승리감은 찾아오지 않았다. 7년간 그를 지탱했던 유일한 감정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는 거대한 허무가 남았다.

“끝났어… 알리.”

카이렌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알리는 조용히 통신을 끊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복수는 그를 지배하는 유일한 목적이었다. 이제 그 목적이 사라졌다. 그는 그저 홀로 남겨진, 망망대해의 작은 파편에 불과했다.

카이렌은 제로스의 시체 옆을 지나 함교 창문으로 다가갔다. 창밖으로는 수많은 제국 전투함들이 그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붉은 레이저 광선들이 ‘그림자 망토’를 향해 쏟아졌다.
그는 다시 조종석에 앉아 고요히 우주선을 움직였다. 그의 앞에는 여전히 광활하고 어두운 우주가 펼쳐져 있었다.

카이렌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더 이상 ‘제로스의 그림자’ 속에서 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그는 새로운 어둠 속으로, 미지의 길을 향해 나아갔다.
그의 뺨에 새겨진 흉터는, 이제 복수의 상흔이 아닌, 한 남자가 견뎌낸 지독한 삶의 흔적으로 남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