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성호는 심연을 가르고 있었다. 수많은 별들이 창밖으로 은가루처럼 흩뿌려진 우주에서, 낡고 육중한 증기기관의 고동 소리만이 유일한 동반자였다. 선체 곳곳의 황동 파이프들은 김을 뿜어내며 붉은빛으로 달아올랐고, 증기압은 맹렬한 기세로 계기판의 바늘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거대한 금속 톱니바퀴들이 쉼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는 낡은 배의 심장박동 같았다.
“이 속도면 예정보다 이틀 빠릅니다, 함장님.”
정면에 펼쳐진 수많은 지표 스크린을 응시하던 항해사 김민아가 나직이 말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복잡한 다이얼과 스위치 위를 분주히 움직였다.
“좋아. 하지만 방심하지 마라. 심우주는 언제나 예측 불허니까.”
함장 이준혁은 투박한 망원경을 어깨에 멘 채 함교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짙은 눈빛은 아득한 우주의 검은 장막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콧수염은 희끗희끗했지만, 단단한 턱선과 굳게 다문 입술은 여전히 강철 같았다.
그때였다. 낡은 센서 장비에서 ‘삐빅’ 하는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어, 이게 뭡니까?”
견습 승무원 최우진이 제 앞에 놓인 스크린을 가리켰다. 이제 막 우주선의 갑판을 밟은 그의 얼굴에는 미숙한 당황스러움이 역력했다. 스크린에는 희미한 점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다.
“뭔가 잡혔나?”
이준혁 함장이 성큼 다가섰다. 그는 망원경을 내려놓고 스크린을 응시했다.
“미확인 물체입니다. 아주 미약한 신호지만, 분명히 존재합니다.” 김민아의 목소리에 일말의 긴장감이 스며들었다. “이전에 탐지된 적 없는 위치입니다. 우리 항로와 미세하게 겹칩니다.”
“정체불명이라고? 고장 난 잔해라도 되는 건가?” 최우진이 중얼거렸다.
“아니, 달라.” 김민아가 고개를 저었다. “이건… 불규칙하지만, 일정한 패턴을 가진 신호입니다.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에요. 인공적인 무언가입니다.”
함교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심우주에서 인공적인 무언가라니. 그건 예상치 못한, 그리고 위험한 발견일 수 있었다. 이 광활한 어둠 속에서 마주칠 수 있는 존재는 인류뿐만이 아닐 테니까.
“기관실! 박지수 기관장!” 이준혁 함장의 목소리가 인터폰을 통해 울려 퍼졌다. “현재 출력 유지하면서 15도 각도로 선회. 물체에 최대한 접근한다. 모든 증기압을 예비 단계로 돌려.”
「쉭… 쉭… 알겠습니다, 함장님! 해성호의 심장이 다시 뛸 준비를 하겠습니다!」
박지수 기관장의 쾌활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그녀는 해성호의 기계들을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다루는 천재였다.
해성호는 육중한 선체를 비틀어 미지의 물체를 향해 나아갔다. 낡은 황동 패널들이 삐걱거렸고, 거대한 증기기관은 더욱 맹렬하게 고동쳤다. 최우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눈은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희미했던 점은 점점 커져갔다.
“가시 범위 내로 진입합니다.” 김민아가 속삭였다. “주 망원경으로 확인해 주세요, 함장님.”
이준혁 함장은 다시 망원경을 들어 올렸다. 고풍스러운 렌즈를 통해 우주의 장막을 응시하던 그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맙소사…”
그가 내뱉은 낮은 탄식에 최우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대체 무엇이 그 노련한 함장을 놀라게 한 걸까?
“모든 스크린에 외부 영상을 연결해.”
김민아가 빠르게 조작하자, 함교를 둘러싼 스크린들이 일제히 미지의 광경을 비췄다. 최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그것은 별들 사이를 유영하고 있었다. 차가운 금속 같기도, 살아있는 유기체 같기도 한 기묘한 형태였다. 완벽한 구형도, 날카로운 결정체도 아니었다. 육각형의 패널들이 섬세하게 맞물려 거대한 유성처럼 보였지만, 그 표면에서는 은은한 푸른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마치 우주의 심장박동처럼, 아주 느리고 규칙적으로.
“이건… 우리가 아는 어떤 문명의 흔적도 아닙니다.” 김민아의 목소리는 경외감과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이 형태… 이 재질…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술입니다.”
그 유물은 거대한 달의 절반만 한 크기였다. 육각형 패널의 이음새는 마치 정교한 시계 부품처럼 맞물려 있었고, 그 틈새로 푸른 에테르 같은 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기관실! 유물과의 거리는?” 이준혁 함장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현재 300마일! 접근할수록 에너지 파동이 감지됩니다, 함장님! 주 증기 파이프의 압력이…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박지수 기관장의 목소리가 격양되어 있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해성호의 선체 전체가 삐걱거렸다. 낡은 황동 패널들이 떨리고, 증기압 조절 밸브에서는 김이 미친 듯이 뿜어져 나왔다. 최우진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진동에 몸을 가눌 수 없었다. 선실 곳곳의 나사들이 튕겨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기관장! 압력 조절해! 과부하 걸리면 안 돼!” 이준혁 함장이 소리쳤다.
「수동 조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파동이 너무 강합니다! 해성호의 모든 시스템이 그 영향을 받고 있어요!」
박지수 기관장의 외침이 절박하게 들려왔다. 함교의 모든 계기판들이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스크린에는 온통 경고 문구가 번쩍였다.
“젠장! 당장 후진! 유물에서 멀어져!” 함장이 명령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 순간, 거대한 유물 전체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푸른빛은 순식간에 해성호의 모든 창문을 집어삼켰고, 선체 전체가 거대한 충격파에 휘청였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최우진은 의식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귓속에서 맹렬한 굉음이 울리고, 온몸의 뼈마디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빛이 사라진 자리에 거대한 눈동자처럼 떠오른, 이제는 완전히 열린 유물의 검은 심연이었다. 그 심연 속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