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하이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제12화: 심연의 눈

우주선 ‘아스가르드호’는 헤아릴 수 없는 어둠 속을 표류하고 있었다. 별빛마저 빛을 잃고 영원한 밤을 맴도는 심우주의 망루. 탐사 임무는 지루함과 고독으로 점철되었고, 몇 년째 이어진 여정은 승무원들의 신경을 날카롭게 벼려놓았다. 통신 두절은 이미 일상이 된 지 오래. 지구와의 마지막 교신은 까마득한 과거의 유물이었다.

“함장님, 뭔가 포착됐습니다.”

정적을 깨뜨린 건 항해사 김태훈의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그의 얼굴은 홀로그램 스크린의 푸른빛에 잠겨 있었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눈동자는 숨길 수 없었다. 이선우 함장은 조종석 중앙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숙련된 우주인의 침착함이 그의 굳건한 표정 속에 응축되어 있었다.

“어떤 종류지?”

“규칙적인 패턴이 아닙니다. 이전에 관측된 어떤 자연 현상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인공물… 같습니다. 그것도 저희 기술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

태훈의 목소리에 일말의 경외심이 섞여 있었다. 선우는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억 광년 떨어진 미지의 성운 깊은 곳, 검은색에 가까운 심연 위로 희미하게 점멸하는 불규칙한 에너지 파형이 보였다. 마치 죽은 별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듯했다.

“위험 분석 보고서 올려.”

“이미 스캔했지만… 어떤 위협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치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태훈의 말에 선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기다리고 있었다고? 심우주 한가운데에서? 그는 과학 책임자인 강지민 박사를 호출했다. 잠시 후, 긴장으로 굳은 지민 박사가 조종석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안경 너머 눈빛에는 학자 특유의 탐구욕과 함께 미지의 것에 대한 불안감이 공존하고 있었다.

“함장님, 이 신호는… 상상 이상입니다. 어떤 기록에서도 찾을 수 없는 주파수 대역이에요. 분명히 지적 생명체가 만든 겁니다.”

“접근하겠다. 최고 안전 단계로.” 선우는 단호하게 명령했다. “모든 시스템 최고 출력으로 전환, 비상 탈출 경로 확보. 단, 무장은 해제한다. 교전은 최후의 수단이다.”

아스가르드호는 거대한 망원경처럼 우주를 응시하며 미지의 신호원을 향해 천천히 기수를 돌렸다. 수 시간 후, 함선이 정체불명의 존재에 충분히 가까워지자, 그 실체가 드러났다.

그것은 거대한 검은 수정이었다.

마치 우주의 모든 빛을 흡수하고 삼킨 듯, 주변의 별빛마저도 그 존재 앞에서 희미해지는 듯했다. 높이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육면체의 유물은 어떠한 반사광도 내보내지 않은 채, 오직 내부에서부터 발산되는 희미하고 불규칙적인 푸른빛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그것은 금속도, 바위도, 알려진 어떤 물질과도 달랐다. 표면은 매끄러웠지만, 시선을 잡아먹을 듯한 심연을 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지민 박사가 넋을 잃고 중얼거렸다. “이건… 우리가 상상했던 어떤 문명권의 유물과도 달라요. 어떻게 이런 형태로 존재할 수 있죠?”

“분석 결과는?” 선우가 억눌린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함장님. 전자기파도, 중력파도, 방사능도… 어떤 에너지도 외부로 방출하지 않아요. 그저… 존재합니다. 마치 우주의 틈새에서 솟아난 것 같아요.”

태훈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함장님, 선체 외부 센서가 이상합니다. 자꾸 오류를 일으킵니다. 이 물체에 가까워질수록 시스템 전반에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선우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이내 결심한 듯 명령했다. “탐사 로봇을 내보낸다. 샘플 채취는 하지 마라. 오직 접촉만 시도한다.”

탐사 로봇은 거대한 검은 유물에 천천히 다가갔다. 로봇의 팔이 유물 표면에 닿으려던 그 순간, 유물 전체가 희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푸른빛은 더욱 강렬해졌고, 어두운 표면 위로 마치 혈관처럼 섬세한 무늬들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림이나 무늬가 아니었다. 잉크가 물에 번지듯, 빛이 움직이는 선들이었다. 그리고 선우의 눈에 그 무늬들이 마치… 고대문자처럼 보였다. 수십, 수백 개의 낯선 기호들이 유물 표면을 뒤덮었다.

“함장님! 로봇과의 통신이 끊겼습니다!” 태훈이 다급하게 외쳤다.

동시에 아스가르드호 내부의 조명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엔진룸에서 둔탁한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젠장, 무슨 일이지?” 선우가 소리쳤다.

“알 수 없습니다!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정지하고 있습니다!” 지민 박사가 경악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이 유물이… 우리의 모든 것을 흡수하는 것 같아요!”

거대한 검은 유물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빛이 일순간 폭발하듯 번쩍였다. 그 순간, 아스가르드호 전체가 굉음과 함께 심하게 요동쳤다. 승무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흔들리는 콘솔에 몸을 지탱했다.

모든 빛이 사라졌다.

함선 내부가 완전한 어둠에 잠겼다. 비상등마저 작동하지 않았다. 오직 조종석 정면 홀로그램 스크린에 미약하게 빛나는 유물의 영상만이 그들의 유일한 시야가 되어주었다.

그때였다.

정적 속에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잡음이 아니었다. 낮게 웅얼거리는 듯한, 혹은 속삭이는 듯한 소리. 그것은 마치 수억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존재가 깨어나는 듯한, 혹은 수많은 영혼들이 한꺼번에 합창하는 듯한 소리였다. 그 소리는 선원들의 뇌리를 직접 관통하는 듯했다.

“무슨 소리야…?” 태훈이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건… 소리가 아니에요…” 지민 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눈은 광기에 가까운 공포로 번뜩였다. “이건… 메시지예요. 우리의 언어가 아닌… 우주의 언어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어요…!”

선우 함장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검은 유물을 바라봤다. 이제 유물의 푸른빛은 사그라지고, 그 안에서 붉은빛이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심연의 눈동자가 서서히 뜨이는 것처럼.

붉은빛이 강렬해질수록, 함선 내부의 어둠은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그 붉은빛 속에서, 마치 그림자처럼 거대한 형상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유물 안에 갇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유물 자체가 변형되는 것 같기도 했다.

선우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본능적으로, 그는 이 검은 유물이 단순한 물질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것은 생명체였다. 아니, 생명체 이상의 무언가였다.

수억 년의 침묵을 깨고 깨어난 우주의 고대 지성.

이제 그들은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발견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스가르드호의 모든 스크린에 동일한 경고 메시지가 섬뜩하게 번쩍였다.

**[경고: 존재 감지 – 격리 실패]**

**[경고: 존재 감지 – 격리 실패]**

**[경고: 존재 감지 – 격리 실패]**

스크린의 붉은 경고 메시지가 깜빡이는 가운데, 검은 유물에서 뻗어 나온 그림자 같은 형상이 아스가르드호의 선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손이 함선을 움켜쥐는 듯한, 형언할 수 없는 압력이 사방에서 조여왔다.

“함장님… 저희가 뭘 건드린 거죠…?” 태훈의 목소리가 절규처럼 터져 나왔다.

선우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의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눈앞의 거대한 붉은 눈과 마주할 뿐이었다.

그것은 심연의 눈이었다.

그리고 그 눈은, 그들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