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소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차가운 잿빛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은채는 폐허가 된 아파트 단지의 옥상 난간에 위태롭게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끝없이 펼쳐진 시멘트 무덤. 하늘은 희뿌연 먼지로 탁했고, 멀리 보이는 일그러진 태양은 겨우 그 존재를 알리는 핏빛 흔적에 불과했다. 발밑의 콘크리트 조각들이 바스러지는 소리마저도 이 지독한 침묵 속에서는 너무나 크게 울렸다.

어깨에 멘 낡은 배낭이 축 처졌다. 그 안에는 어제 겨우 찾아낸 딱딱한 에너지 바 두 개와, 삐걱거리는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 그리고 고작 다섯 알 남은 진통제가 전부였다. 생존에 필요한 물품은 언제나 부족했다. 특히, 지금 그녀가 찾고 있는 ‘정화석’은 더욱 그랬다. 균열에서 뿜어져 나오는 재앙적인 에너지를 잠시나마 억누를 수 있는 유일한 물질. 이곳, 한때는 ‘희망의 도시’라 불렸던 이 죽은 도시의 심장부에 마지막 조각이 남아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물론, 그 소문을 믿는 사람은 이제 그녀밖에 없었지만.

“크윽…”

왼쪽 옆구리가 욱신거렸다. 지난번 ‘균열의 잔재’와의 싸움에서 얻은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진통제도 소용없는 깊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멈추는 순간, 모든 것이 끝장날 테니까.

은채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낡은 방독면 안으로 퀴퀴한 먼지 냄새가 스며들었다. 그녀의 눈이 섬광처럼 빛났다. 희미하게 보라색으로 물든 동공은 주변의 미세한 에너지 흐름까지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 도시의 심장부로 향하는 길은 지하철 터널뿐이었다. 붕괴된 지상으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었다.

난간에서 뛰어내렸다. 건물 외벽에 박힌 낡은 철골을 딛고, 녹슨 간판을 잡고, 부서진 창틀을 붙잡으며 마치 그림자처럼 유려하게 내려왔다. 수십 미터 아래, 터널 입구의 어둠이 거대한 입을 벌리고 있었다.

“…….”

터널 안은 칠흑 같았다. 공기는 축축하고 역겨웠다. 썩어가는 고기와 알 수 없는 금속의 비린내가 뒤섞여 숨을 막히게 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디뎠다. 어둠 속에서 푸른빛이 번쩍였다. 그녀의 손에서 빛으로 이루어진 ‘밤의 칼날’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칼날은 희미하게 진동하며 주변의 어둠을 밀어냈다.

삐걱이는 철제 계단을 내려가자, 터널은 더욱 깊고 어두워졌다. 귓가에 웅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불안정한 에너지의 파동이었다. 그 소리는 마치 죽은 자들의 속삭임처럼 은채의 심장을 갉아먹었다.

갑자기, 등 뒤에서 차가운 기척이 느껴졌다.

“젠장!”

은채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리며 밤의 칼날을 휘둘렀다. 텅-!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무언가가 튕겨 나갔다. 어둠 속에서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균열의 잔재’. 놈은 뒤틀린 철골과 살덩이가 기괴하게 섞인 형태였다. 군데군데 녹슨 칼날이 솟아 있었고, 핏빛 안광을 뿜어내는 눈은 은채를 향해 광기를 드러냈다. 거대한 팔에서 돋아난 칼날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쉬이익-!

은채는 간발의 차이로 몸을 숙였다. 칼날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며 낡은 방독면의 귀퉁이를 잘라냈다. 살이 타는 듯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놈은 균열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끔찍한 존재였다. 그 존재 자체로 주변 모든 것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피해!”

은채는 낮게 읊조리며 밤의 칼날을 힘껏 휘둘렀다. 푸른 섬광이 터널을 갈랐다. 밤의 칼날은 잔재의 끔찍한 몸통을 깊게 베어냈다. 끄아아악! 기괴한 비명 소리와 함께 잔재의 몸에서 검붉은 피와 함께 탁한 에너지가 분출되었다. 주변의 콘크리트 벽이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잔재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더욱 맹렬하게 공격했다. 거대한 칼날 팔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은채는 몸을 비틀고, 굴러가며 공격을 피했다. 매번 아슬아슬하게 죽음을 비켜갔다. 그녀의 주변으로 푸른 에너지 방벽이 순간적으로 솟아올랐다가 사라지며 잔재의 공격을 쳐냈다.

쾅!

방벽이 잔재의 거대한 팔에 부딪히며 터널이 진동했다. 은채의 어금니가 으스러질 듯 힘이 들어갔다. 잔재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놈은 다른 잔재들보다 훨씬 강했다. 어쩌면… 정화석을 지키는 수호자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잔재가 휘두른 칼날에 어깨가 스쳤다.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뜨거운 피가 흘러내렸다. 은채는 고통을 참으며 뒤로 물러섰다. 밤의 칼날 끝에서 푸른 에너지가 폭주하듯 뿜어져 나왔다.

“끝내야 해… 여기서.”

그녀의 눈빛이 더욱 선명한 보랏빛으로 타올랐다. 숨겨두었던 마지막 힘을 끌어냈다. 온몸의 마력이 밤의 칼날로 집중되었다. 칼날은 이제 단순한 빛의 검이 아니었다. 주위의 모든 빛을 흡수하고 삼켜버릴 듯한 어둠의 핵처럼 빛났다.

쉬이이이잉-!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은채는 잔재를 향해 돌진했다. 잔재는 위협을 느꼈는지 온몸의 칼날을 치켜들고 은채를 향해 내리찍었다. 수십 개의 칼날이 동시에 쏟아지는 절망적인 공격이었다.

하지만 은채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오직 한 방향으로, 잔재의 핵이 위치한 곳으로 밤의 칼날을 겨눴다.

파지지직! 콰아앙!

밤의 칼날이 모든 칼날을 꿰뚫고, 균열의 잔재의 뒤틀린 몸 한복판에 정확히 박혔다. 잔재의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붉은 에너지가 미친 듯이 날뛰다, 마치 거대한 전구가 터지듯 파지지직 소리와 함께 완전히 소멸했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갔다. 은채는 밤의 칼날이 사라진 손으로 벽을 짚고 겨우 몸을 지탱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흐르는 피를 닦아낼 기력조차 없었다.

잔재가 사라진 자리. 기괴하게 뒤틀렸던 공간이 서서히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조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은채는 떨리는 손으로 정화석을 집어 들었다.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정화석은 은은한 백색 빛을 뿜어냈다. 그 빛은 주변의 오염된 공기마저 잠시나마 정화하는 듯했다. 미지근한 온기가 그녀의 손을 통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작은 희망의 조각이었다.

“찾았다… 겨우.”

그녀는 정화석을 배낭 깊숙이 넣었다. 이 작은 조각이 수십 명의 생존자들에게 최소한의 안식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때였다.

정적 속에 파묻혀 있던 터널 저 깊은 곳에서, 아주 미세한, 하지만 섬뜩한 진동이 느껴졌다. 바닥의 돌멩이들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지진의 진동이 아니었다.

균열의 잔재가 사라진 후, 균열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일시적으로 더욱 불안정해진 탓일까. 아니면…

은채는 밤의 칼날을 다시 소환했다. 터널 깊은 곳의 어둠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잔재와는 다른, 거대한 파동이 느껴졌다.

그것은 그녀가 이제까지 마주했던 어떤 균열의 잔재보다도 강력하고, 지능적이며, 더할 나위 없이 거대한 존재의 서곡처럼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붉은 눈빛 두 개가 섬광처럼 번뜩였다. 터널 전체를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포효가 귓청을 찢었다.

“크윽…!”

은채는 밤의 칼날을 꽉 움켜쥐었다. 상처에서 피가 다시 솟구쳤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정화석을 손에 넣었다고 해서 싸움이 끝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살아남아야 했다. 어떻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