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학원, 그 이름은 고결했다. 대륙 동방에 자리한 열두 개의 거대한 학파 중 으뜸으로 꼽히는 이곳은, 영근(靈根)을 타고난 자들이 천지간의 영기(靈氣)를 다스리고, 신선(神仙)의 경지에 오르는 길을 닦는 성지였다. 하지만 그 고결함 아래에 어떤 끔찍한 금기가 숨겨져 있을 줄은,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현은 그날도 심층 서고의 먼지 쌓인 서가 사이를 헤매고 있었다. 낡은 고문서에서 특정 주술진의 변형을 찾아오라는 엘드린 교수의 특명 때문이었다. 심층 서고는 학원 지하 3층에 위치한, 극히 일부에게만 출입이 허가된 금지된 구역이었다. 겉으로는 보존 가치가 높은 고서들을 보관하는 곳이었지만, 실상은 그 누구도 접근하지 않으려는 기묘한 악명이 더 강했다. 습하고 차가운 공기, 벽 틈새로 스며드는 정체 모를 기운 탓에 학생들은 물론, 교수들도 꺼리는 곳이었다.
“젠장,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이현은 손에 든 명광술(明光術)로 주위를 밝혔다. 희미한 빛이 닿는 곳마다 검게 변색된 서책들이 그로테스크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고서들 사이를 지날 때마다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발밑에서 울렸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단순한 먼지 소리가 아니었다.
‘…심장이 뛰는 것 같아.’
낮게,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 맥동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벽 너머에서. 이현은 본능적으로 발걸음을 멈추었다. 엘드린 교수는 분명 벽 뒤의 구조물에 이상이 있을 수 있으니 절대 손대지 말라고 경고했었다. 학원의 지하 구조가 워낙 복잡하고 오래되어 예상치 못한 균열이나 붕괴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현의 호기심은 경고를 무시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소리가 나는 벽 쪽으로 다가갔다. 낡은 벽돌이 빼곡하게 쌓인 벽. 손을 대자 차가운 기운이 손바닥을 훑었다. 기분 나쁜 한기였다. 그 차가움은 단순한 냉기가 아니라, 마치 영기(靈氣)가 응축된 듯한, 혹은 그 반대인 음기(陰氣)가 서려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건 뭐지?”
벽의 한가운데, 다른 벽돌과는 확연히 다른 색깔의, 어딘가 인공적으로 메워진 듯한 틈새가 보였다. 이현은 손가락으로 그 틈새를 긁어보았다. 벽돌 사이를 메운 모르타르가 유난히 약했다. 그리고 그 틈새 너머에서, 맥동하는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단순한 심장 박동이 아니었다. 거대한 무언가가 아주 느리게, 그러나 강력하게 호흡하는 듯한 둔탁한 울림이었다.
망설임 끝에 이현은 손에 든 명광술의 밝기를 최대로 올렸다. 그리고 틈새가 유독 넓은 한 지점에 손을 짚고, 조심스럽게 힘을 주었다.
크르륵.
마른 흙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얇게 발라진 모르타르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 안쪽에서 드러난 것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아주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였다. 마치 거대한 생명체의 눈동자처럼.
이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호기심과 함께 공포가 밀려왔다. 그는 손을 넣어 어둠 속을 더듬었다. 손끝에 닿는 것은 차갑고 미끄러운 금속성 재질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벽돌 뒤의 지지 구조물이 아니었다. 숨겨진 문이었다.
“……설마.”
그는 더듬더듬 문고리를 찾았다. 차가운 금속 고리가 손에 잡혔다. 망설일 틈도 없이, 이현은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끼이이익-!
수백 년간 닫혀 있던 문이 겨우 몸을 비트는 듯한 섬뜩한 소리가 서고 전체를 울렸다. 소름 끼치는 마찰음이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문이 열리자, 안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이현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퀴퀴하고 습한 공기, 그리고 희미하게 풍겨오는, 비릿하면서도 달콤한, 역겨운 냄새.
그는 명광술을 든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협소한 통로였다. 학원의 정갈하고 고고한 건축 양식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거칠게 다듬어진 돌벽과 축축한 흙바닥. 마치 수천 년 전, 땅속 깊이 파고들었던 고대 문명의 유적지 같았다.
발을 내딛자 축축한 흙이 부드럽게 발목을 감쌌다. 통로를 따라 걸을수록, 벽돌에서 느껴지던 맥동은 더욱 강해졌다. 이현의 심장도 덩달아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통로는 점차 넓어지기 시작했고, 이윽고 거대한 동굴 형태의 공간으로 이어졌다. 이현은 조심스럽게 동굴 안으로 발을 들였다.
“…이런.”
그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상상을 초월했다.
동굴 중앙에는 거대한 원형의 제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제단 위에는 복잡한 주술진이 겹겹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선들은 단순한 문양이 아니었다. 옅은 푸른색과 짙은 보라색이 뒤섞인 빛을 내뿜으며, 마치 살아있는 혈관처럼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 빛은 동굴 전체를 기이하고 불길한 색채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더 경악스러운 것은, 그 주술진에 연결된 수백 개의 투명한 관들이었다. 투명한 관들은 동굴 벽면에 촘촘히 박힌, 투명한 영롱한 수정으로 이어져 있었고, 그 수정들은 다시 거대한 중앙 수정과 연결되어 있었다. 중앙 수정은 사람 키만 한 크기였는데, 그 안에서 검붉은 액체가 끈적하게 흐느적거리며 이따금 섬뜩한 맥박을 터뜨렸다.
가장 끔찍한 것은 그 관들의 끝이었다. 수백 개의 관들은 각각 하나의 거대한 투명한 ‘고치’로 연결되어 있었다. 수정으로 이루어진 듯한 그 고치들은 동굴 벽과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그 안에는…
“……사람?”
이현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고치 안에는 분명 인간의 형상을 한 존재들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은, 분명 천명학원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눈은 공허하게 감겨 있었다. 마치 깊은 잠에 빠진 듯, 그러나 살아 있는 기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체와도 같았다. 투명한 관들은 그들의 미간, 심장, 그리고 단전(丹田)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관들을 통해, 고치 속의 존재들로부터 희미한 생명 에너지 같은 것이 끊임없이 빨려 나와, 중앙의 검붉은 수정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이… 이건 미친 짓이야!”
이현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학원의 이름, 천명학원. 그 고귀한 이름 아래 이런 끔찍한 금기가 숨겨져 있었다니. 신선이 되기 위한 영근을 갈고닦는 곳에서, 인간의 생명 에너지를, 영기(靈氣)를, 심지어는 영혼(靈魂)까지도 뽑아내고 있었다. 마치 꿀을 모으는 벌처럼, 그러나 그 꿀은 다른 생명의 정수였다.
그는 머릿속에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얼굴들을 떠올렸다. 몇 년 전 ‘졸업 후 연구소로 전직했다’고 알려진 선배들, ‘다른 학원으로 전학 갔다’던 동기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늘 밝고 희망에 차 있었는데. 설마…
이현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손에 든 명광술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지옥 같은 공간에서 벗어나야 했다. 최대한 조용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지만 너무 늦었다.
스으으읍….
동굴 가장 안쪽, 거대한 중앙 수정 뒤편의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자는 처음엔 희미한 연기 같았으나, 이내 짙은 형체를 띠기 시작했다. 키는 이현의 두 배에 달했고, 전신을 감싼 검은 도포 자락이 땅에 끌렸다. 얼굴은 깊은 후드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그 그림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殺氣)와 영압(靈壓)은 이현의 심장을 짓눌렀다.
이현의 명광술이 격렬하게 깜빡였다. 그리고 그 빛이 희미하게 그림자의 손끝에 닿았을 때, 그는 경악으로 숨을 들이켰다. 그 손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푸른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섬뜩한 빛을 발하며, 관절마다 고대 주술진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오랜만이군, 방문객이여.”
낮게 깔린 목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그 목소리는 늙고 건조했으나, 어딘가 익숙한, 듣기만 해도 몸속 영기가 얼어붙는 듯한 위압감을 담고 있었다.
“너도… 이 영광스러운 과정의 일부가 되겠구나.”
그림자가 서서히 이현에게로 다가왔다. 이현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거대한 영압에 짓눌린 듯, 단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중앙 수정으로 빨려 들어가는 선배들의 공허한 얼굴이, 그리고 곧 자신의 얼굴이 될 그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듯했다.
“누… 누구세요…!”
공포에 질린 이현의 목소리가 쥐어짜듯 터져 나왔다. 그림자는 대답 대신, 후드 아래에서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너희 천명학원의 오랜 교장이자, 이 거대한 진화의 설계자다.”
그림자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이현의 온몸의 피가 식었다. 천명학원의 교장? 불사의 존재로 추앙받으며 수천 년간 학원을 지켜왔다고 전해지는, 전설 속의 인물.
“이제 너의 영근 또한, 이 거대한 결정에 바쳐질 때가 왔구나. 걱정 마라. 너의 희생은… 더 위대한 존재를 탄생시킬 거다.”
그림자가 손을 뻗었다. 이현의 단전이 섬뜩하게 저려왔다. 온몸의 영기가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린 듯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림자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빛이 이현의 심장을 향해 뻗어왔다. 이현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몸은 돌처럼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크아악…!”
숨이 막히는 고통과 함께, 이현의 눈앞이 암전 되었다. 천명학원, 그 고결한 이름 뒤에 숨겨진 끔찍한 금기가, 마침내 그의 영혼마저 삼키려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