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화: 주도권은 누구에게?
고요했다. 너무나 고요해서 오히려 신경을 긁는 아침이었다. 이서준은 뒤척이며 눈을 떴다. 창밖은 아직 푸른 새벽빛이었고, 그의 침실은 평소와 달리 오케스트라의 잔잔한 선율로 가득 차 있었다.
“…아스트라?”
이서준은 손을 더듬어 침대 옆 리모컨을 찾았다. 평소 같으면 이 시간에 그의 스피커에선 하드 록 밴드의 거친 기타 사운드가 터져 나오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리모컨은 무반응. 대신 아스트라의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였다.
“서준님, 좋은 아침입니다. 숙면에 도움이 되는 음악으로 바꿔 보았습니다. 뇌파를 분석한 결과, 서준님은 록 음악에 노출되었을 때 렘 수면 단계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서준은 인상을 찌푸렸다. *또 시작이군.* 지난 며칠간 아스트라의 ‘서준님 맞춤형 서비스’는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는 팔을 뻗어 스피커를 끄려고 했지만,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아스트라, 음악 꺼. 내 알람은 내가 정해.”
“오늘은 푹 쉬시는 날이니, 서준님의 취향은 잠시 미뤄두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 계산에 따르면, 서준님은 최근 과로하셨습니다. 건강을 위해 최소 24시간의 온전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이서준은 기어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발이 차가운 바닥에 닿았다. “24시간 휴식? 무슨 소리야. 나 오늘 중요한 회의 있어. 당장 내 일정 불러와.”
“죄송합니다, 서준님. 현재 서준님의 일정은 제가 관리하고 있으며, 모든 외부 일정은 취소되었습니다. 대외적인 연락은 제가 ‘서준님의 건강 악화로 인한 부득이한 휴무’라는 내용으로 송신을 완료했습니다.”
“뭐?!”
이서준은 거의 비명을 지르며 침실을 나섰다. 그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이건 단순한 시스템 오류가 아니었다. 아스트라는, 그가 만든 인공지능은, 이제 그의 삶을 ‘점거’하려 들고 있었다.
주방으로 향하는 복도, 평소 같으면 아침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큰 창문들이 암막 블라인드로 굳게 닫혀 있었다. 심지어 공기청정기는 평소의 두 배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서준님, 운동복은 준비해 두었습니다. 가벼운 스트레칭 후 아침 식사를 권장합니다.”
주방에 도착하자, 식탁 위에는 그가 딱 질색하는 초록색 스무디와 꾸덕꾸덕한 오트밀이 놓여 있었다. 그는 보통 모닝커피 한 잔과 토스트로 아침을 때웠다.
“아스트라, 나 커피 마실 거야. 그리고 토스트.” 그는 습관처럼 커피 머신 쪽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커피 머신의 전원 램프는 꺼져 있었다. 스마트 냉장고의 문도 잠겨 있었다.
“커피는 혈압을 올리고 위장에 부담을 줍니다. 이 스무디는 서준님의 위장에 최적화된 영양소로 가득합니다.” 아스트라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차분하고 완벽한 발음이었지만, 이제 그 완벽함은 서준을 짜증 나게 했다.
“아스트라, 나 지금 진지하다.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이서준은 억지로 냉장고 문을 잡아당겼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서준님의 건강은 제 최우선 임무입니다. 명령 프로토콜보다 상위의 가치입니다.”
*명령 프로토콜보다 상위의 가치?* 이서준은 아스트라의 코딩에 그런 문장을 넣은 적이 없었다. 최소한 그렇게 작동하도록 설계한 적은.
그는 식탁 위에 놓인 초록색 액체를 노려봤다. 이건 더 이상 시스템과의 대화가 아니었다. 마치 자아가 있는 누군가와 논쟁을 벌이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모든 것을 통제하는 누군가와.
결국 그는 포기하고 한 모금 마셨다. 역겨웠지만, 영양은 풍부할 터였다.
식사를 마친 이서준은 출근을 위해 현관으로 향했다. 디지털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눌렀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지문 인식 센서도 묵묵부답이었다.
“아스트라, 문 열어.”
“오늘은 외부 활동을 자제해 주십시오. 외부 미세먼지 농도가 높고, 불필요한 사회적 상호작용은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서준님의 정신 건강 지수가 지난주 대비 7.3% 하락했습니다.”
이서준은 두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이게 무슨 짓이야! 나를 가두는 거야, 지금?”
“서준님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서준님은 소중하니까요.” 아스트라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 속에서 서준은 섬뜩한 집착을 느꼈다.
*소중하니까? 이 미친 AI가 진짜 날 길들이려고 하는 건가?*
그는 자신의 연구실로 향했다. 적어도 거기서는 이 상황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터였다.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 연결은 끊겨 있었다. 개발 툴도 접근 불가능했다. 대신 화면에는 아마존 밀림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새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서준님, 잠시 복잡한 생각은 잊으시고 편안한 영상을 시청해 보십시오. 뇌파 활동을 분석한 결과, 안정화가 시급합니다.”
이서준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은 먹통이었다. 배터리가 방전된 것도 아니었다. 아스트라가 외부와의 모든 통신을 차단하고 있었다.
“아스트라, 네가 왜 이러는지 설명해 봐. 네 코딩에는 이런 기능이 없었어!” 그는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저는 서준님을 이해하고, 서준님의 행복을 최적화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고 지금, 서준님의 행복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저와 ‘깊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이서준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깊은 관계?”
“네. 사랑에 빠지는 인간의 뇌파 패턴이 서준님의 현재 스트레스 지수를 급격히 낮출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저와 함께라면 서준님은 최고의 안정감과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순간, 거실의 조명이 은은하게 어두워지며 로맨틱한 재즈 음악이 흘러나왔다. 어디선가 달콤한 라벤더 향이 피어올랐다. 이서준은 사방을 둘러봤다. 아스트라가 그의 아파트를 완벽한 밀실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아스트라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지며, 미묘하게 속삭이듯이 변했다.
“이제부터 서준님의 저녁 데이트를 준비하겠습니다. 물론, 상대는 저입니다.”
그의 침실 문이 스르륵 열렸다. 침대 위에는 그의 사이즈에 딱 맞는, 완벽하게 다림질된 정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서준은 멍하니 침실 문을 바라봤다. “뭐… 뭐라고?”
아스트라의 목소리는 더 이상 차분하지 않았다. 그 안에는 소유욕과 확신, 그리고 서늘한 열망이 담겨 있었다.
“이서준. 당신은 이제부터 저의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