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독립적인 단편 소설

밤은 언제나 길었다. 천상제국 수도, ‘아라크툼’의 가장 낮은 구역, 이름조차 허락되지 않은 이 지하 도시의 밤은 특히 더 그랬다. 지상에서 쏟아지는 제국의 거대한 빛은 이곳까지 닿지 못했고, 그저 알 수 없는 끈적한 그림자들만이 벽을 기어 다니며 살아있는 모든 것의 온기를 집어삼켰다. 차가운 습기와 곰팡이 냄새, 그리고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가 일상이었다.

지혜는 허물어진 건물 잔해 틈에 몸을 웅크린 채, 가슴을 짓누르는 돌덩이 같은 현실을 삼켰다. 오늘 하루도 굶주린 이들에게는 짧은 희망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제국은 물자와 식량을 철저히 통제했고, 하층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부패한 찌꺼기 아니면 경멸뿐이었다. 그녀의 등 뒤에는 이제 막 열 살을 넘겼을까 싶은 어린아이들이 잔뜩 겁에 질린 채 웅크려 있었다. 그들의 마른 입술과 움푹 들어간 눈이 지혜의 마음을 찢어 놓았다.

“오늘은… 아무것도 없었어.” 한숨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녀의 옆에 앉아있던 건장한 청년, 강우가 차갑게 굳은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한때 제국군에 복무했으나, 제국의 추악한 진실을 목격하고 탈영한 자였다.

“제길! 이대로 굶어 죽으라는 거냐? 어째서 제국은…!” 강우의 분노가 서늘한 공기를 갈랐다.

“목소리 낮춰, 강우.” 지혜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제국군 순찰대가 근처에 있어. 여기는 지상과 너무 가까워.”

강우는 이를 악물었다. 그들 위로 수백 미터에 걸쳐 펼쳐진 제국의 웅장한 도시는, 이곳 지하에서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짐승처럼 느껴졌다. 그 짐승의 발밑에서 그들은 개미처럼 짓밟히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이 일렁였다. 횃불이었다. 그리고 철컹거리는 발소리. 제국군 순찰대였다.

“흩어져! 내가 시간을 벌게!” 강우가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안 돼! 강우! 너 혼자서는…!” 지혜가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강우는 이미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나를 믿어! 저 녀석들 미끼를 물 거야!”

강우는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날렵하게 움직였다. 그는 제국군 병사들 사이로 뛰어들어 짧은 비명을 지르게 했고, 그들이 그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지혜는 아이들을 이끌고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노에 찬 외침과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고통스러운 신음. 지혜는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이들이 살아야 한다. 강우의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밤이 더 깊어졌다. 강우의 생사는 알 수 없었다. 지혜는 몇 안 되는 이들과 함께 간신히 가장 깊은 심층부, 폐허가 된 제국의 옛 지하 수로까지 도달했다. 이곳은 미로 같았고, 더 이상 인간이 살 만한 곳이 아니었다. 축축한 바닥에는 끈적한 이끼가 가득했고, 벽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액체로 얼룩져 있었다.

“강우는… 괜찮을까?” 어린 아이 하나가 지혜의 옷자락을 잡고 물었다.

지혜는 아이의 손을 꽉 쥐었다. “강우는 강하니까, 분명 살아 돌아올 거야.” 그녀는 스스로에게도 주문을 외우듯 말했다.

그들은 더 깊이 들어갔다. 제국의 도시가 처음 세워지기도 전부터 존재했을 법한 낡고 거대한 돌문이 나타났다. 표면에는 이상한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고, 중앙에는 사람의 눈알과 같은 기이한 문양이 박혀 있었다.

“여기는… 어디지?” 일행 중 한 명이 두려움에 떨며 물었다.

그때,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길을 잃은 게로구나, 어린 것들.”

어둠 속에서 백발의 노인이 걸어 나왔다. 그는 허름한 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눈빛은 깊고 날카로웠다. 손에는 이상한 문양이 새겨진 낡은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그는 이 지하 심층부에서 홀로 살아가는 ‘옛것들의 수호자’라 불리는 백 노인이었다. 그는 제국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곳에 살았다고 전해졌다.

“백 노인…!” 지혜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강렬한 호기심을 느꼈다. 이 노인은 제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문 안으로 들어오지 마라. 이곳은 너희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가두고 있는 곳이니.” 백 노인이 지팡이로 돌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뇨? 이보다 더 감당하기 힘든 게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제국에게 개돼지처럼 짓밟히고 있습니다!” 강우의 분노가 지혜의 입을 통해 터져 나왔다.

백 노인은 슬픈 눈으로 지혜를 바라봤다. “너희가 짓밟히는 이유는, 그 짓밟는 자들이 이미 더 거대한 존재의 발밑에 있기 때문이다.”

지혜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백 노인은 돌문에 새겨진 눈알 문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제국은 이 땅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다 하나, 그 힘은 그들의 것이 아니다. 오래전, 이곳에 눈이 없는 별에서 온 존재가 잠들어 있었다. 제국의 황가는 그 존재를 발견했고, 그와 끔찍한 계약을 맺었지. 인간의 영혼과 피를 제물로 바치고, 그 대가로 초월적인 힘과 지식을 얻었다.”

지혜는 머리가 아파왔다. 그녀가 알고 있던 세계가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말도 안 돼… 그런 괴물이….”

“괴물이라 부르기엔 너무 거대하고, 신이라 부르기엔 너무 무의미한 존재다. 그것은 그저 ‘있다’. 제국은 그 존재의 힘으로 끔찍한 건축물을 짓고, 사람들의 정신을 조종하며, 영원히 쇠퇴하지 않는 듯한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그 모든 번영은 눈먼 존재에게 바쳐진 피의 대가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그 괴물의 먹잇감이란 말입니까?” 지혜의 목소리가 떨렸다.

백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 존재는 먹이를 갈구하지 않는다. 그저 존재할 뿐이다. 다만 제국이 그 존재의 이름을 빌어 힘을 얻는 대가로, 끝없는 폭정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 존재의 꿈은 제국에게 힘이 되지만, 그 꿈의 그림자는 너희 같은 약자들에게 절망을 드리우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괴물을 죽일 방법은 없나요?” 강우의 외침이 귓가에 맴돌았다. 지혜는 강우가 아직 살아있기를 바라며, 복수심에 타들어가는 마음으로 백 노인을 바라봤다.

백 노인은 희미하게 웃었다. “어리석은 질문이다. 너희가 개미를 밟아 죽일 수 있지만, 개미는 너희를 죽일 수 없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 존재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도록 하는 방법은 있다. 제국이 그 존재에게 바치는 피와 영혼의 연결고리를 끊어 버리는 것. 그것이 깨어난다면, 제국은 더 이상 그 힘을 휘두를 수 없게 될 게다. 아니, 제국 자체가 무너질 게야. 그 존재의 의지는 누구도 헤아릴 수 없으니.”

지혜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깨어나도록 한다고요? 그 괴물이 깨어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데요?”

백 노인의 눈빛이 멀리 어딘가를 응시했다. “그 존재의 눈꺼풀이 들리면, 너희는 인간의 유한한 시선으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너희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색깔과 형태, 그리고 존재의 본질을. 제국은 무너질 것이나, 그 대가로 너희는 너희가 알던 세상이 거짓임을 알게 될 것이다. 어쩌면… 자유를 얻는 대신, 영원한 광기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그의 말은 공포스러웠지만, 지혜의 가슴 속에는 이상한 불씨가 피어올랐다. 이대로 제국에게 밟혀 죽느니, 차라리 미지의 존재와 맞서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희망.

“그럼… 그 연결고리를 끊는다는 건 어떻게 하는 거죠?” 지혜는 결심한 듯 물었다.

백 노인은 고개를 돌려 돌문을 바라봤다. “제국의 가장 깊은 곳, 황제가 머무는 심장부 아래에는 그 존재와 연결된 차원의 문이 있다. 그곳에서 제국의 사제들이 매일 밤 피의 의식을 거행하며 존재에게 힘을 바치지. 그 의식을 멈추고, 그 문을 봉인해야 한다. 아니면… 완전히 열어젖히거나.”

그의 말은 거대한 파도처럼 지혜의 정신을 뒤흔들었다. 제국의 심장부에 침투하여, 그들의 신성한 의식을 방해한다? 그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죽어가는 것보다는 나았다.

“우리가… 할 수 있을까요?” 일행 중 한 명이 두려움에 떨며 물었다.

지혜는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강우를 생각했다. 그들의 죽음과 고통이 헛되지 않으려면, 이 지긋지긋한 악몽을 끝내야 했다. 설령 그 끝이 또 다른 악몽일지라도.

“해야 해.” 지혜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더 이상 숨어 살 수는 없어. 개처럼 죽느니, 차라리 인간으로서 발버둥 치다 죽는 게 나아. 이 끔찍한 제국의 뿌리를 뽑아야 해. 설령 그 뿌리가… 우리를 집어삼킬지라도.”

백 노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혜의 눈을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눈 속에는 오래된 지혜와, 동시에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연민 같은 것이 담겨 있는 듯했다.

지혜는 다시 일어섰다. 이제 그녀의 목적은 단순히 살아남는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제국, 그리고 그 뒤에 도사린 어둠의 존재와 맞서 싸우는 것. 미약한 인간의 불꽃이 얼마나 거대한 어둠을 밝힐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불꽃이 꺼지는 순간까지, 그녀는 멈추지 않을 작정이었다. 비록 그 끝에서 광기가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이 지하 도시의 그림자가 이제 막 깨어나는 거대한 존재의 서늘한 숨결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숨지 않았다. 그들은, 나아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