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아르카나 마법 학원은 언제나 차분하고 위엄 있었다. 수백 년의 역사가 깃든 석벽, 고대 마법의 잔향이 맴도는 복도. 그러나 이해일에게 그 모든 것은 기만이었다. 밤마다 그의 귓가를 맴도는 끔찍한 비명,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그리고… 시간의 파동.

그 파동은 이따금 그의 의식 깊숙이 균열을 내고 들어왔다. 오래된 기억의 조각처럼, 혹은 미래의 예감처럼 모호했지만, 그 속엔 언제나 뼈를 에는 듯한 고통과 형언할 수 없는 절망이 담겨 있었다. 이해일은 학원 설립 이래 최고의 시공간 마법 재능을 지닌 천재로 불렸지만, 그의 재능은 동시에 그를 고통스러운 진실의 그림자로 끌어들이는 저주이기도 했다. 그는 알았다. 이 학원의 지하에는, 단순한 금기를 넘어선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오늘 밤, 이해일은 그 진실의 문을 열기로 결심했다.

어둠이 학원을 짙게 덮은 시각, 학생들의 통행이 완전히 끊긴 심야. 이해일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학원 도서관 최하층, 아무도 찾지 않는 고서적 보관고 안쪽 벽에 섰다. 겉보기엔 그저 낡은 석벽일 뿐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미세하게 흐트러진 마력의 흐름이 보였다. 고도로 정교하게 짜인 봉인 마법. 단순한 차단이 아니라, 마치 ‘경고’와도 같은 으스스한 기운이 벽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어리석은 경고.”

이해일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손을 들어 벽에 대자, 푸른 마력의 빛이 손끝에서 피어났다. 일반적인 개방 주문이 아니었다. 그는 시간을 미세하게 조작하여 봉인의 ‘틈새’를 찾아냈다. 마법이 발동된 순간의 잔여 마력을 역추적하고, 그 봉인이 허락했던 가장 미약한 순간의 간섭을 비집고 들어가는 고등 시공간 마법이었다. 지극히 이해일다운 방식이었다.

치이잉!

벽 안쪽에서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리며 거대한 석벽이 천천히 옆으로 밀렸다. 퀴퀴하고 차가운 공기가 밀려 나왔다.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에서 정체 모를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곰팡이 냄새 같기도 하고, 쇠 비린내 같기도 한, 역겨운 혼합이었다.

이해일은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디뎠다. 뒤편의 석벽이 소리 없이 닫히자, 그는 완전히 고립되었다. 등불 마법을 사용하자, 푸르스름한 빛이 어둠을 가르고 길고 좁은 통로를 비췄다. 통로는 끝없이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발소리가 적막한 공간에 울리며 그의 심장을 조여왔다. 벽면에는 고대 상형문자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학원 역사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섬뜩하리만큼 오래된 문양들이었다. 그는 몇몇 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다. ‘시간의 굴레’, ‘존재의 왜곡’, ‘심연의 부름’… 불길한 단어들의 연속이었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통로의 끝에 다다랐을 때, 그의 눈앞에 거대한 지하 공간이 펼쳐졌다. 어둠 속에 잠겨 있던 공간은 등불 마법의 빛이 닿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둥근 돔 형태로 된 거대한 석실이었다. 천장은 까마득히 높았고, 바닥은 울퉁불퉁한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석실의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제단이 놓여 있었다. 제단은 마모된 검은색 돌로 만들어졌는데, 표면에는 깊은 균열이 가 있었다. 그리고 그 제단 위에는, 무언가 끔찍한 것이 봉인되어 있었던 흔적이 역력했다. 겹겹이 새겨진 봉인 마법진은 대부분 빛을 잃고 희미해졌지만, 그 잔재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해일은 제단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닥 곳곳에 핏자국처럼 보이는 검붉은 얼룩들이 스며들어 있었다. 오래되어 색이 변했지만, 그 잔혹함은 여전히 생생했다. 그리고 그 얼룩들 위로, 그의 발걸음에 맞춰 희미한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했다.

– 돌아가…
– 오지 마…

환청일까? 아니, 환청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생했다. 수많은 목소리들이 뒤섞여 울부짖는 듯했다. 고통에 찬 신음, 절규, 그리고 알 수 없는 언어로 된 저주.

이해일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그가 밤마다 느껴온 ‘시간의 파동’의 근원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제단에 가까이 다가갔다. 제단 위에 남아있는 봉인 마법진은 미약하게나마 맥동하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그 맥동에 반응하듯, 이해일의 손목에 감겨 있던 은색 팔찌가 차갑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팔찌는 그의 시공간 마법 능력을 제어하고 안정시키는 도구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무언가에 이끌리듯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대체… 여기서 뭘 한 거지?”

그가 손을 뻗어 제단에 닿으려는 순간, 팔찌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일순간 폭발하듯 강렬해졌다. 동시에, 제단 한가운데의 균열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콰아앙!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이해일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몸이 공중에 떠오른 채 뒤집히는 찰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제단 균열에서 솟구쳐 오르는 검고 붉은 불꽃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불꽃이 아니었다. 시간과 공간, 존재의 경계를 허무는 듯한 형언할 수 없는 아지랑이였다. 그 아지랑이 속에서, 흐릿하지만 분명한 형체가 보였다. 비틀리고 뭉개진 인간의 형상. 셀 수 없이 많은 팔다리가 뒤엉켜 꿈틀거리고, 수많은 눈동자가 동시에 자신을 향해 번뜩였다.

“크아악!”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해일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영상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수십 명의 마법사들이 제단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학원의 건립자들로 보이는 위엄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공포와 광기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들은 주문을 외우며 제단 위에 검은 액체를 붓고 있었다. 그 액체는 피였다. 신선하고 붉은 피가 제단 위를 흥건히 적셨다.

피가 닿자, 제단은 꿈틀거렸다. 그리고 균열에서 지금 이해일이 보고 있는 그 끔찍한 형체가 솟아올랐다. 그것은 마치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 시간의 뒤틀림이 낳은 괴물 같았다.

마법사들은 필사적으로 주문을 외웠다. 어떤 이는 결계를 치고, 어떤 이는 공격 마법을 퍼부었지만, 그 모든 것은 허사였다. 괴물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심연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이해일은 경악했다.

마법사들 중 한 명이 비틀거리는 다른 마법사를 제단 위로 밀어 넣었다. 그 마법사는 마치 제물처럼, 끔찍한 형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비명조차 지를 새 없이, 그의 몸은 형태를 잃고 사라졌다. 그것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존재 자체가 지워지는 듯한 광경이었다.

다른 마법사들의 얼굴에 망설임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섬뜩한 결의를 다진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마치 정해진 순서인 양, 한 명씩, 제단 위로 다른 이를 밀어 넣기 시작했다.

이해일의 눈에 들어온 것은 가장 마지막 순간이었다. 제단 위에 홀로 남은 한 마법사. 그는 비틀거리며 자신의 가슴에 단도를 꽂아 넣었다. 그리고는 제단 위로 쓰러졌다. 그의 피가 검은 괴물 위로 쏟아져 내리자, 괴물은 마치 배를 채운 듯, 서서히 제단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해일은 그 마법사의 얼굴을 분명히 보았다. 젊고 비장한 얼굴. 그 얼굴은… 놀랍게도 학원 설립자의 초상화 속 인물과 똑같았다. 수백 년 전, 이 학원을 세운 위대한 마법사. 그는 바로 자신을 제물로 바쳐 저 끔찍한 것을 봉인했던 것이다.

모든 것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졌다.

이해일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온몸의 뼈마디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에 신음했다. 하지만 진짜 고통은 육체가 아니었다. 그의 정신을 파고드는 진실의 무게였다.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지하에는, ‘시간의 심연’에서 기어 나온 끔찍한 존재가 봉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봉인을 유지하기 위해… 수백 년 동안, 알 수 없는 주기로 ‘제물’이 바쳐져 왔다. 학원의 위대한 설립자는 스스로를 희생하여 그 첫 번째 봉인을 완수했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해일은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제단은 다시 고요해졌다. 균열 속 검은 아지랑이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잠잠해진 것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해일의 시선은 바닥의 검붉은 얼룩에 닿았다. 그것은 단순히 오래된 핏자국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먹이를 기다리는 거대한 입술 같았다.

그때,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출입이 금지된 장소다, 이해일 군.”

이해일은 몸을 굳혔다. 돌아볼 필요도 없이 알 수 있었다. 학원 최고의 감시 마법사이자, 현 학원장 다음가는 실력자. ‘침묵의 마법사’로 불리는 아르카나의 실세, 카이론 교수였다. 그의 존재는 마치 유령처럼 소리 없이 이해일의 등 뒤에 나타나 있었다.

“어떻게… 이곳을 알았지? 누가 너에게 말했나?”

카이론 교수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의 얼굴은 어둠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이해일은 그의 시선이 마치 칼날처럼 자신을 꿰뚫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해일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입술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아니요, 교수님.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의 시선은 제단을 스쳐, 다시 카이론 교수를 향했다.

“그저… 제 피가, 이곳을 불렀을 뿐입니다.”

이해일의 손목에 감겨 있던 은색 팔찌가, 다시 한번 섬뜩한 빛을 발했다. 그 빛은 제단 위의 균열에 미약하게 반응하며, 마치 잠자는 괴물을 깨우는 듯 미세하게 맥동했다.

카이론 교수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그의 눈빛에 숨겨진 공포와 경계심이 스쳐 지나갔다.

이해일은 알았다. 이 끔찍한 금기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어쩌면 이 비극의 다음 ‘제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니, 그보다 더 끔찍한 무언가.

자신은 단순한 침입자가 아니었다.
자신은, 이 모든 시간의 굴레 속에서…
잊힌 존재, 혹은 ‘누군가’가 기다리던 존재였다.

카이론 교수의 시선이 제단과 이해일을 번갈아 향하며 흔들렸다. 그 뒤편의 어둠 속에서, 마치 심연 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섬뜩한 속삭임이 이해일의 귓가에 닿았다.

— 드디어… 네가… 왔구나…

그것은 누구의 목소리였을까? 제단 속 존재의 목소리? 아니면, 수백 년 전의 망자들의 절규? 아니면… 이해일, 자신의 또 다른 시간 속 자아의 메아리였을까?

이해일은 카이론 교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의 심장이 불안정하게 요동쳤다.

“교수님.”

이해일의 목소리가 어둠 속을 갈랐다.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진정한 설립 목적은… 도대체 무엇이었습니까?”

그의 질문은 적막한 지하 공간에 길게 울렸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제단 깊은 곳에서 섬뜩한 균열음이 다시 한번 들려왔다. 마치, 수백 년간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는 듯한… 불길한 예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