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제12화: 잊힌 마탑 아래, 속삭이는 그림자

“흐읍, 흐읍… 제발, 좀 떠줘라, 떠줘!”

강아린은 진땀을 뻘뻘 흘리며 손에 든 수정구를 향해 주문을 외고 또 외웠다. 수정구는 마치 묵직한 돌덩이라도 되는 양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늘 오전에 있었던 실전 마법 수업의 흔적이었다. 공중부양 마법 ‘레비타티오’ 실습 중, 아린은 실수로 주문의 마력을 과하게 주입했고, 그 결과 그녀의 수정구는 바닥에 처박힌 채 그 어떤 마법도 먹히지 않는 고집불통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다른 아이들은 교수의 도움으로 모두 복구했지만, 아린의 수정구만은 어째서인지 완강히 저항하고 있었다.

“강아린, 너는 대체 뭘 한 거니? 마력을 들이부으랬지, 마나 폭탄을 만들랬니?”

교수님의 한숨 섞인 잔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아 아린은 이마를 짚었다. 에테리움 마법 학원, 이름만 들어도 영롱한 이곳에 들어온 지 어느덧 1년. 그녀는 수석은 아니어도 언제나 상위권을 유지하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자잘한 마법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마법 제어에서 자꾸 문제가 생겼다.

여기는 학원 본관 깊숙한 곳에 위치한 ‘고대 마법 유물 보관실’. 평소에는 거의 오지 않는, 오래된 마법 도구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었다. 훼손된 수정구를 복구하는 데 일반적인 마법은 씨알도 먹히지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곳에 와서 오래된 복구 주문서를 뒤적이고 있었다.

“하아, 이거 진짜 안 되겠네. 그냥 새로 사야 하나…?”

절망적인 한숨을 내쉬던 아린의 뒤로, 나직하지만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쓸모없는 짓이다. 그 수정구는 네가 마나를 폭주시켜서 마법 회로 자체가 뒤틀려 버렸어. 일반적인 복구 주문으론 해결 못 해.”

화들짝 놀라 돌아본 아린의 시야에 완벽한 실루엣이 들어왔다. 은회색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 신비롭게 빛나고, 냉철한 푸른 눈동자는 아린이 든 수정구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학원의 수석이자 마탑주의 직계 후손, 서카이였다.

“서카이? 네가 왜 여기 있어?”

아린은 저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카이는 언제나 아린의 마법 사고 현장에 불쑥 나타나 비아냥거리는 재주가 있었다.

“왜겠어. 망가뜨린 건 너 혼자만 그런 게 아니니까.”

카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손에 든, 아린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해 보이는 마도구를 들어 보였다. 그의 마도구는 아린의 수정구보다 더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네가? 네가 그 복잡한 마도구를 망가뜨렸다고? 거짓말! 완벽주의자 서카이가 그런 실수를 할 리 없어!”

아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카이가 헛웃음을 쳤다.

“완벽주의자는 완벽하게 망가뜨릴 줄도 아는 법이지. 교수는 내 마도구도 특별한 복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굳이 이 오래된 보관실까지 올 필요는 없었지만, 겸사겸사.”

그는 빙긋 웃는가 싶더니, 아린이 들고 있던 수정구를 가볍게 툭 쳤다.

“네 수정구, 내가 한번 해 볼까?”

“뭐? 네가 어떻게…?”

아린이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카이는 수정구를 낚아채듯 가져가더니 자신의 지팡이를 휘둘렀다. 빛 한 줄기가 수정구로 향했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아린은 비웃을 타이밍을 잡으려 했으나, 카이의 얼굴에는 당황함 대신 흥미로운 기색이 떠올랐다.

“재밌군. 내 마력에도 반응하지 않는다고? 네 마나 폭주가 예상보다 강력했나 보네, 강아린.”

그는 수정구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중얼거렸다. 아린은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 걸?”

“칭찬이 아니니까. 하지만….”

카이의 시선이 수정구 한구석에 있는 아주 작고 미묘한 흠집에 닿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그 흠집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러자 수정구 안쪽에서 희미하게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보통의 마법 복구로는 건드릴 수 없는, 마나 폭주로 인해 생긴 미세한 균열이었다. 그 균열 속에서 이상한 형태의 문자가 엿보였다. 고대 마법 문양 같기도 했고, 그저 단순한 균열 같기도 했다.

“이게 뭐지? 마법 회로가 완전히 박살 난 줄 알았는데… 이건 마치… 새로운 회로가 형성된 것 같아.”

카이가 중얼거리는 순간, 수정구는 갑자기 강렬한 빛을 뿜어내며 공중에 떠올랐다. 그리고 마치 나침반처럼 한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그 방향은 보관실의 가장 구석진, 낡은 벽이었다.

“어… 어라? 수정구가 움직여! 내 명령 없이!”

아린이 놀라 소리쳤다. 카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저 벽…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수정구가 가리키는 벽은 먼지 쌓인 책장으로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수정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닿자, 낡은 책장 뒤편으로 희미하게 균열이 드러났다. 마법으로 감춰진 문이었다.

“고대 마법으로 봉인된 문이야. 보통 마력으론 감지할 수 없어.” 카이가 나직하게 말했다. “이 수정구가 네 마나 폭주로 인해 오히려 감지 마법의 역할로 변질된 모양이군. 흥미로운데.”

아린은 호기심에 눈을 반짝였다. “그럼 저 문 안에는 뭐가 있을까? 혹시 아주 귀한 유물 같은 거?”

카이는 아린의 천진한 말에 피식 웃었다. “유물이 아니라, 차라리 봉인된 악마가 있길 바라야 할지도 몰라. 이 학원 지하에는 온갖 금기들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니까.”

그의 말에 아린은 살짝 겁먹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눈빛을 반짝였다. “더 궁금해지는데? 가보자, 카이!”

“무모하군, 강아린.” 카이는 혀를 찼지만, 그의 눈은 이미 그 숨겨진 문을 향해 있었다. 그는 지팡이를 들어 벽에 드리워진 봉인을 해제하려 했다. 하지만 봉인은 예상보다 견고했다.

“젠장. 제법 강력한 봉인이군.”

바로 그때, 아린의 수정구가 더욱 강하게 빛나며 마치 해제 주문이라도 되는 양 낯선 마력을 뿜어냈다. 카이가 지팡이를 휘두르는 순간, 고대 봉인 문양이 섬광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철컥!*

묵직한 소리와 함께 낡은 벽이 서서히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 뒤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어둠 속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된 곰팡이 냄새와 함께 차갑고 습한 공기가 훅 끼쳐 왔다.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었어…!” 아린이 숨을 들이켰다.

“분명 지도에도 없는 곳이야.” 카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린, 여긴 분명히 평범한 곳이 아닐 거야. 돌아가야 해.”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돌아가? 궁금해 죽겠다고!”

아린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한 발짝 계단 아래로 내디뎠다. 낡은 나무 계단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들의 발걸음을 반겼다. 카이는 한숨을 쉬더니, 결국 아린의 뒤를 따랐다. 어차피 저 무모한 아이를 혼자 보낼 수는 없었다.

계단을 한참 내려가자, 학원 본관의 소음은 완전히 사라지고 사방은 고요함으로 가득했다. 카이가 마법으로 만들어낸 조명이 어둠을 조금이나마 걷어냈다. 벽은 흙과 돌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축축한 이끼들이 군데군데 피어 있었다.

“무슨 지하 감옥 같아… 여기, 공기마저 차가워.” 아린이 팔을 문질렀다.

“평범한 지하실은 아니야. 마력이… 뒤틀려 있어.” 카이가 지팡이 끝으로 주변의 마력을 감지했다. 그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이건… 봉인된 마탑의 지하와 비슷해. 아니, 어쩌면 더 오래된….”

그때, 계단의 끝에 닿았다. 거대한 홀이 나타났지만, 홀의 모습은 기이했다. 사방의 벽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그림들이 희미하게 그려져 있었다. 사람의 형태를 닮았지만, 어딘가 일그러지고 뒤틀린 형상들이었다. 그림들은 마력으로 그려진 듯, 카이의 조명에 푸른빛을 반사하며 기괴하게 흔들렸다.

“저 그림들… 뭔가 섬뜩해.” 아린이 카이의 팔을 꼭 붙잡았다.

카이는 아린의 손길에 살짝 흠칫했지만, 이내 신경 쓰지 않는 듯 그림들을 응시했다. “이건… 고대 문명에서 금지된 주술에 사용되던 문양과 흡사해.”

그때였다. 홀의 가장 안쪽, 거대한 이중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은 온갖 봉인 마법으로 겹겹이 봉쇄되어 있었고, 그 위에는 핏빛으로 그려진 끔찍한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문틈 사이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히 들리는, 누군가의 *속삭임*이 흘러나왔다.

“…도와… 줘….”

아린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속삭임은 너무나 처량했고, 동시에 너무나 기이했다.

“카이… 저 소리….” 아린의 목소리가 떨렸다.

카이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 있었다. 그의 손은 이미 지팡이를 꽉 쥐고 있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여긴… 우리가 생각했던 곳이 아니야.”

문틈에서 흘러나오는 속삭임은 점점 더 선명해지고, 그들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마치 수천 년 동안 갇혀 있던 존재가 그들을 부르는 듯했다. 그리고 문 너머에서, 푸른빛 그림자가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과연, 그 문 너머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에테리움 마법 학원 지하에 숨겨진, 끔찍한 금기의 정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