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독립적인 단편 소설

세계는 비명을 질렀다. 아니, 이제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거대한 무덤처럼 침묵에 잠겨 있었다. 황량한 회색빛 건물들 사이로 으스스한 바람만이 휘파람을 불었고, 하늘은 더 이상 파랗지 않았다. 늘 그랬듯이, 썩은 피를 흩뿌린 듯한 핏빛 구름이 뭉텅이로 떠다니거나,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검푸른 빛깔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느릿하게 회전하며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훈은 고개를 숙인 채 무너진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낡은 방독면 안으로 쿰쿰한 먼지 냄새와 함께 쇠 녹이 슨 비릿한 향이 스며들었다. 등에 멘 낡은 배낭은 깡통과 알 수 없는 파편들로 가득 차 무거웠고, 한쪽 어깨에 멘 샷건은 언제든 발사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이 폐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생존 법칙을 몸으로 익혔다. ‘움직여라. 그리고 절대 눈에 띄지 마라.’

오늘은 꽤 운이 좋았다. 허물어진 편의점 건물 잔해 속에서 겨우 물 한 병과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통조림 몇 개를 찾아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녹슨 철문 안쪽에서 반쯤 부서진 태양광 충전기를 발견했다. 작은 성과였지만, 이 암흑 같은 세상에서는 그것마저도 귀한 희망의 조각이었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아니, 해라는 표현이 맞는지도 불분명했다. 하늘의 핏빛 구름이 더욱 진해지고, 어둠이 서서히 지상을 잠식하는 시간이었다. 지훈은 늘 그랬듯이 안전한 곳을 찾아야 했다. 폐건물의 지하 벙커나, 혹은 거대한 구조물 틈새에 숨겨진 작은 공간. 그곳만이 밤의 방문객들로부터 그를 보호해줄 수 있었다.

“빌어먹을.”

그는 중얼거렸다. 멀리서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뼈를 씹는 듯한 우드득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고, 아니면 수십 개의 혀가 동시에 끈적한 액체를 핥는 소리 같기도 했다. 소리는 불규칙했고, 예측할 수 없었다. 지훈은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저 소리의 주인이 무엇인지는 그는 알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알면 안 됐다.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일 수 없었다. 그의 주변을 떠돌다 미쳐버린 이들이 증명하는 바였다.

그는 낡은 건물 잔해 사이를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목표는 도시 외곽에 위치한 오래된 도서관이었다. 그곳은 한때 지식의 보고였지만, 지금은 그저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곳은 다른 곳보다 ‘그것들’의 접근이 덜했다. 마치 그곳에 존재하는 무언가가 ‘그것들’을 밀어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도서관 입구는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지훈은 능숙하게 자물쇠를 부수고 안으로 들어섰다. 퀴퀴한 먼지 냄새와 함께 종이가 썩는 듯한 특유의 향이 코를 찔렀다. 플래시를 켜자, 겹겹이 쌓인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책들은 거미줄에 뒤덮여 있었고, 어떤 책들은 곰팡이가 피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지훈은 익숙하게 한쪽 구석의 낡은 철제 책장 뒤로 향했다. 그곳에는 좁은 틈새가 있었고, 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으면 간이 침대가 놓인 작은 공간이 나타났다. 이곳이 그의 은신처였다. 그는 배낭을 내려놓고 샷건을 옆에 뒀다. 방독면을 벗자,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스며들었다.

“후우…”

그는 한숨을 쉬었다. 찢어진 옷자락으로 얼굴의 먼지를 닦아냈다. 그의 눈은 피곤했지만, 그 속에는 결코 꺼지지 않는 생존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통조림을 따서 차가운 고깃덩어리를 입에 넣었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는 묵묵히 그것을 삼켰다.

밤이 깊어질수록 도서관 안은 더욱 싸늘해졌다. 밖에서는 다시 그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더욱 가까이, 마치 도서관 벽을 긁는 듯한 소리였다. 지훈은 몸을 웅크렸다. 심장이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그는 자신의 불안감을 억누르려 애썼다. 공포는 사치였다. 공포는 판단을 흐리게 했고, 판단이 흐려지면 죽음만이 남았다.

그때, 소리가 멎었다. 완벽한 침묵. 그 침묵은 오히려 더 큰 공포를 불러왔다. 마치 무엇인가가 그의 존재를 눈치채고, 그의 은신처를 찾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지훈은 숨소리마저 죽였다. 플래시도 껐다. 오직 어둠만이 그를 감쌌다.

어둠 속에서, 그는 희미한 빛을 발견했다. 책장 틈새로 스며드는 푸른빛이었다. 그 빛은 벽 너머에서 오는 것이었다. 궁금증이 고개를 들었다. 이 도서관에 이런 빛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것은 인공적인 빛도, 자연적인 빛도 아닌,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빛이었다.

지훈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의 손은 샷건을 꽉 쥐고 있었다. 그는 빛이 새어 나오는 벽 쪽으로 다가갔다. 책장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자, 낡은 벽돌 벽에 이상한 문양이 새겨진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기하학적이면서도 유기적인, 불쾌한 형태의 문양이었다. 문양의 중앙에는 작은 틈이 있었고, 그 틈 사이로 푸른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뭐지…?”

그는 문양에 손을 댔다. 차가운 벽돌 표면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진동과 함께, 그의 머릿속으로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거대한 촉수, 비명을 지르는 도시, 하늘을 뒤덮은 검은 그림자,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웅장하고 불쾌한 노래 소리.

그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에 주저앉았다. 환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한 ‘기억’이었다. 마치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존재의 기억이 그의 머릿속으로 강제로 주입되는 것 같았다. 그는 팔로 머리를 감싸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환각, 아니 기억은 빠르게 사라졌다. 고통도 잦아들었다. 지훈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다. 그는 다시 벽을 바라봤다. 푸른빛은 여전히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문양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듯했다.

“젠장… 이게 대체…”

그는 몸을 떨었다. 이곳이 왜 ‘그것들’로부터 안전한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도서관 자체가, 이 벽 안의 무언가가 ‘그것들’을 멀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그것들’보다 더 끔찍한 존재가 이 벽 안에 잠들어 있는 것이라면?

지훈은 다시 배낭을 챙겼다. 이번에는 통조림 대신, 부서진 태양광 충전기를 챙겼다. 그는 이곳을 떠나야 했다. 당장. 이 밤에 밖으로 나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았지만, 이 끔찍한 벽 안에서 한시도 더 머무를 수는 없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밤하늘의 핏빛 구름은 여전히 진했다. 거대한 소용돌이는 멀리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도서관을 뒤로하고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더 이상 안전한 곳은 없었다. 다만, 덜 위험한 곳만 있을 뿐이었다.

폐허 속을 걷는 그의 귀에, 다시 그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더 가까웠다. 마치 바로 뒤에서 쫓아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앞을 향해 달릴 뿐이었다. 그의 생존은 끝없는 도주와 마주한 공포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그의 도주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임을. 그의 발자국이 남긴 먼지 위로, 검푸른 하늘의 거대한 눈이, 침묵 속에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