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의 정적이 드리운 심우주, 인류의 손길이 닿지 않던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는 우주선 ‘혜성호’의 함교에는 늘 옅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함장 이지혁은 유리 너머로 펼쳐진 별들의 강을 응시하며 묵묵히 데이터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언제나 유쾌하지만 탐사 앞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해지는 수석 과학자 김민아가 띄엄띄엄 흘러나오는 센서 값을 살피고 있었다.
“함장님, 이상 신호입니다.”
김민아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한 옥타브 높아졌다. 이지혁이 고개를 돌렸다. 스크린에는 희미한 점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다.
“거리, 특이점, 에너지 파장.”
“측정 불능입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접촉했던 어떤 물질의 스펙트럼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완벽하게, 완벽하게 기하학적인 형태를 띠고 있어요.”
이지혁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그는 항해사 박서준에게 시선을 주었다. 박서준은 숙련된 솜씨로 조이스틱을 움직였다.
“현재 속도로는 13시간 후 접근 가능합니다. 비행 경로에 방해물은 없습니다.”
“진로 유지. 모든 센서와 탐지 장치를 최대로 가동시켜.” 이지혁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그리고 각 대원들에게 상황 전파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보안 레벨 3으로 격상시켜.”
13시간은 길고도 짧았다. 혜성호는 광활한 어둠 속을 헤치며 미지의 존재에게 다가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스크린 속의 점은 점점 더 선명한 윤곽을 드러냈다. 거대한 오벨리스크였다. 우주를 부유하는 검은 바위처럼 보였지만, 그 표면은 어떤 인공적인 가공물보다 매끄럽고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빛을 머금지 않고, 모든 빛을 집어삼키는 듯한 칠흑 같은 색이었다.
“이건… 자연 현상이 아닙니다. 완벽한 인공물이에요. 믿을 수가 없군요. 이런 것을 만들 수 있는 문명이 존재했다니.” 김민아의 눈은 경외와 흥분으로 빛나고 있었다.
“생명 반응은?” 이지혁이 물었다.
“전혀 없습니다. 마치 죽어 있는 것처럼… 차갑고 고요합니다.”
혜성호는 오벨리스크로부터 1km 지점에 멈춰 섰다. 그 거대한 존재감에 압도되어 모두가 침묵했다. 이지혁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어깨에 멘 휴대용 통신기를 들었다.
“탐사조 편성. 나와 김민아 박사, 그리고 박서준 항해사. 나머지 대원들은 혜성호에서 대기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최유진 통신장교는 함교에서 모든 교신 채널을 열어놔라.”
소형 탐사선 ‘갈매기호’가 혜성호의 격납고를 빠져나왔다. 오벨리스크에 가까워질수록 그 규모는 더욱 경이롭게 다가왔다. 표면에는 아무런 문양도, 글자도 없었다. 완벽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접근 완료. 착륙 지점 탐색 중… 젠장, 아무것도 없어.” 박서준이 갈매기호를 오벨리스크 표면으로부터 수십 미터 띄운 채 투덜거렸다. “완벽한 매끈함입니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 같아요.”
“잠깐.” 김민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저기… 균열 같은데? 자연스러운 균열은 아닌 것 같아요. 마치… 문처럼.”
오벨리스크의 한 면에 희미하게 드러난 틈새가 있었다. 아주 얇아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구별하기 힘들 정도였다. 박서준이 갈매기호를 조심스럽게 그 틈새로 유도했다. 갈매기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아무런 마찰 없이 미끄러져 들어갔다.
내부는 더욱 기괴했다. 사방이 칠흑 같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갈매기호의 조명등이 닿자 벽면에서 은은한 푸른빛이 반사되었다. 공기는 차갑고 정적이었다. 아무런 장치도, 인공적인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길고 어두운 통로만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이지혁 함장, 내부 환경 분석 결과입니다. 산소와 유사한 기체가 감지됩니다. 유해 성분은 없습니다. 하지만 중력은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김민아의 목소리가 들떴다.
“무슨 문명인지도 모르는 곳이다. 경계 늦추지 마.” 이지혁이 경고했다.
통로를 따라 한참을 나아가자, 홀연히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그 중앙에는 기이한 형태의 물질이 공중에 떠 있었다. 완벽한 구형, 하지만 빛을 흡수하면서도 은은한 붉은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불규칙하게,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맥동했다.
“저것이… 유물일 겁니다.” 김민아는 자기도 모르게 무중력 상태에서 몸을 띄워 그 구형 물질로 다가갔다. 이지혁이 황급히 그녀를 불러세웠다.
“김민아 박사! 함부로 접근하지 마!”
하지만 김민아는 이미 매료된 듯 구형 물질에 손을 뻗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어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으로 일렁였다. 손가락이 닿는 순간, 구형 물질은 붉은빛을 강렬하게 뿜어내며 웅웅거리는 소리를 냈다. 동시에 김민아의 몸이 경직되었다. 그녀의 눈이 뒤집히고, 입에서는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김민아!” 이지혁이 다급하게 외치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붉은빛이 구형 물질에서 뿜어져 나와 김민아의 몸을 감쌌고, 이내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부터 시커먼 정맥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마치 피부 아래로 수많은 벌레들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그녀의 비명은 고통과 함께 점차 기괴한 울음소리로 변해갔다.
“젠장, 김민아! 정신 차려!” 박서준이 권총을 빼 들었지만, 쏠 수가 없었다.
김민아의 몸은 삽시간에 뒤틀렸다. 피부는 잿빛으로 변하고, 눈동자는 흰자위가 사라진 검은 구슬처럼 변했다. 입은 찢어져 기괴한 미소를 띠었고, 손톱은 길고 날카롭게 변했다. 끔찍한 괴물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는 기괴하게 뒤틀린 목으로 이지혁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더 이상 김민아 박사의 지적인 빛은 없었다. 오직 광기 어린 굶주림만이 번뜩였다.
“크르륵….”
낮고 거친 소리가 그녀의 목에서 터져 나왔다. 김민아는 짐승처럼 달려들었고, 이지혁은 간신히 몸을 피했다. 박서준이 총을 발사했지만, 탄환은 괴물의 잿빛 피부를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괴물은 갈매기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돌아와! 즉시 혜성호로 귀환한다!” 이지혁은 절규하며 소리쳤다.
간신히 갈매기호에 몸을 실은 이지혁과 박서준은 전속력으로 오벨리스크를 빠져나왔다. 뒤에서는 김민아였던 괴물의 끔찍한 울음소리가 쫓아오는 듯했다.
혜성호로 돌아온 것은 겨우 한 시간 뒤였다. 격납고에 착륙하자마자 이지혁은 최유진 통신장교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격리! 김민아 박사는 미지의 감염체에 노출되었다! 즉시 의무실로 이동시킨 후 격리 조치하라!”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김민아는 혜성호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비명에 가까운 신음 소리를 내며 격납고 벽을 긁어대고 있었다. 혜성호의 의료진이 다가오려는 순간, 그녀의 몸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크게 뒤틀리더니, 끔찍한 괴물로 완전히 변해버렸다.
“크아아아악!”
괴물은 의료진에게 달려들었고, 순식간에 두 명의 대원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들의 비명 소리가 격납고에 울려 퍼졌다. 괴물은 살을 찢어발기는 잔혹한 움직임으로 그들을 물어뜯었다. 검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고, 쓰러진 대원들의 몸에도 잿빛 반점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격납고 폐쇄! 모든 인원 격리하라!” 이지혁이 광란 속에서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통신장교 최유진의 다급한 목소리가 함교에서 들려왔다.
“함장님! 의료실에서 비상 경보가 울립니다! 보안팀이 진입했지만…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혜성호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했다. 괴물로 변한 김민아에게 물어뜯긴 대원들도 곧이어 끔찍한 생명체로 변해갔다. 그들은 이전의 인간성이란 찾아볼 수 없는 굶주린 눈으로 다른 대원들을 쫓았다. 혜성호의 복도는 비명과 울음소리, 그리고 살을 찢는 소리로 가득 찼다. 비상등이 깜빡이는 어둠 속에서, 그림자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괴물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이지혁은 박서준과 함께 겨우 함교로 대피했다. 최유진은 이미 창백한 얼굴로 비상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함장님, 외부 통신이 먹통입니다. 감염체가 제어실을 장악한 것 같습니다.”
“탈출정은?”
“동력 시스템이 불안정합니다. 지금으로선 가동 불가합니다!”
함교의 문이 거칠게 두들겨졌다. 쿵, 쿵, 쿵. 마치 거대한 망치로 내리치는 듯한 소리였다. 금속이 휘어지는 소리와 함께 문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은 인간의 것이라 할 수 없는 끔찍한 울부짖음과 긁어대는 소리였다.
“젠장, 이건 끝이다.” 박서준이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저것들… 너무 빠르고, 너무 강해.”
이지혁은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혜성호의 각 구역에서 감염 경보가 붉은색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생체 반응은 급감하고, 괴물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들의 심우주 탐사는 인류가 존재해서는 안 될 곳에 발을 들여놓은 결과였다.
“혜성호… 혜성호는 인류의 희망이었다….” 최유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직 포기하지 마!” 이지혁이 소리쳤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이미 절망이 배어 있었다. “통신 모듈을 수동으로 연결해 봐! 구조 요청을 보내야 해! 혹시라도… 혹시라도 누군가 들을 수 있다면!”
최유진은 떨리는 손으로 패널의 덮개를 열고 복잡한 회로들을 더듬었다. 혜성호의 문이 더욱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거대한 굉음과 함께 안쪽으로 움푹 들어갔다. 그 균열 사이로 핏발 선 검은 눈이 번뜩였다. 김민아였다. 아니, 김민아였던 끔찍한 괴물이었다.
“크르르릉….”
함교 안은 차가운 침묵과 함께 공포로 얼어붙었다. 혜성호는 이제 망자의 배가 되었다. 인류는 우주의 깊은 어둠 속에서, 자신들이 깨우지 말아야 할 재앙을 깨워 버린 것이다. 오벨리스크의 검은 심장이 심우주의 고요 속에 영원히 맥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혜성호는 그 심장의 불길한 메아리를 싣고 미지의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우주의 끝에서, 인류의 비명은 너무나도 작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