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천원 비록(靑天院 秘錄) 1장: 심연의 속삭임
세상의 모든 영술사들이 평생에 걸쳐 한 번쯤은 꿈꾸는 이름, 청천원.
그 이름은 구름 위를 거니는 듯 웅장하게 솟아난 백옥궁들과, 맑고 고귀한 영기가 늘 학원 전체를 감싸고돌던 모습에서 유래했다. 푸른 하늘 아래, 천상의 낙원처럼 펼쳐진 이곳이야말로 영기(靈氣)를 다루는 자들의 최종 목적지이자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진우에게 이곳은 늘 어딘가 불편하고,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드는 곳이었다.
“진우, 영기 집중!”
교수 묵천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강의실을 가득 메웠다. 진우는 눈을 감고 자신의 심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아나는 영기를 끌어올렸다.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묘한 기운이 전신을 휘감았다. 그는 주변의 다른 학생들처럼 화려하게 허공에 불꽃을 피우거나 얼음 조각을 띄우는 대신, 오직 자신의 영기를 정밀하게 다듬는 데 집중했다.
손바닥 위로 희미한 빛이 일렁였다. 색도 없고, 형태도 없는 순수한 영기의 흐름. 옆자리 강혁은 벌써 손바닥에서 푸른 번개 줄기를 뿜어내며 동기들의 감탄사를 자아내고 있었다. 묵천 교수는 그의 재능을 칭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강혁! 영기 출력은 물론 제어력도 일취월장하는구나.”
강혁은 으스대듯 어깨를 으쓱였다. 진우는 그 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의 영기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눈에 띄지 않고,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진우는 확신했다. 자신에게 흐르는 영기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깊고, 미묘한 떨림을 가지고 있다고.
그 떨림은 때때로 벽 너머에서, 땅 아래에서, 혹은 저 멀리 학원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듯했다. 미약하지만 끊이지 않는 진동. 다른 학생들은 느끼지 못하는, 오직 진우만이 감지하는 불길한 파동.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우르르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진우는 교재를 챙기며 잠시 묵천 교수를 돌아봤다. 묵천 교수는 늘 차분하고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은 영기를 꿰뚫어 보는 듯했지만, 때때로 진우의 시선과 마주칠 때면 묘한 동요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진우는 놓치지 않았다. 마치 감추고 싶은 비밀이라도 있는 듯한.
“진우, 오늘도 고생 많았다.”
묵천 교수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부드러웠다.
“네, 교수님도요.”
“너의 영기는 잠재력이 크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에 현혹되지 마라. 진정한 영술은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니.”
칭찬일까, 경고일까. 진우는 교수님의 말에서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읽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강의실을 나섰다.
저녁 식사를 마친 진우는 늘 그랬듯이 학원 뒤편에 있는 고목 아래로 향했다. 다른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환락가로 향할 때, 진우는 이곳에서 고요히 영기를 수련하곤 했다. 학원 구석에 위치한 이곳은 으스스한 분위기 탓인지 인적이 드물었다.
고목의 거대한 뿌리는 땅속 깊이 박혀 있었고, 그 밑으로는 오래된 석조 건물의 흔적 같은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진우는 나무 등걸에 기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 위로, 낮게 울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 오르는 듯한, 거대한 무엇인가의 숨소리 같은 것이었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지하 감옥에 갇혀 끊임없이 몸부림치는 소리 같기도 했다.
‘…또 저것인가.’
이 기이한 진동은 진우가 청천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 감지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환청이나 지반의 울림이라고 생각했지만, 영기가 강해질수록 그 진동은 더욱 선명하고 생생하게 다가왔다. 단순한 진동이 아니었다. 분명, 살아있는 무언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것은 학원의 중앙, 정확히는 대형 서고 지하에서부터 올라오는 듯했다. 서고 지하는 청천원에서 가장 엄격하게 통제되는 구역 중 하나였다. ‘오래된 문서들을 보관하는 곳’이라는 명목이었지만,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청천원의 최고 권력자인 ‘원장(院長)’조차도 직접 접근하는 일은 드물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진동이 평소보다 훨씬 강하게 울렸다. 쿵, 쿵.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소리처럼. 그리고 그 소리 사이로, 희미하지만 분명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 *열려라….*
— *해방….*
— *갈증….*
인간의 언어 같으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비명처럼 들리는 기이한 소리였다. 마치 수천, 수만 개의 영혼이 동시에 울부짖는 것 같기도 했다. 진우는 본능적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평소의 진동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건, 경고였다.
벌떡 일어선 진우는 그대로 서고 쪽으로 달려갔다. 늦은 밤, 학원은 고요했고 달빛만이 고즈넉하게 백옥궁들을 비추고 있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고의 가장 가까운 외벽에 귀를 대보았다. 차가운 돌벽 너머에서, 그 기괴한 속삭임이 더욱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그 속삭임 속에서 끔찍한 갈망이 느껴졌다. 진우는 그것이 무엇이든, 청천원의 지하 깊숙이 잠들어 있는 그것이 지금 깨어나려 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때, 등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우,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진우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것은 묵천 교수였다. 그의 눈빛은 밤의 올빼미처럼 날카로웠고, 평소의 부드러움은 온데간데없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묵천 교수의 얼굴에는 미세한 긴장감과 함께, 진우의 기척을 감지하지 못했다는 듯한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교수님… 저는 그저, 밤 공기가 좋아서…”
진우는 얼버무렸다. 하지만 묵천 교수는 그의 변명에 관심 없다는 듯, 서고의 외벽, 진우가 귀를 대었던 바로 그곳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경악이 스치는 것을 진우는 똑똑히 보았다.
“너, 지금… 저 아래에서 들려오는 것을 들었느냐?”
묵천 교수의 목소리에는 이제 경고를 넘어선 공포가 배어 있었다. 진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교수는 한 손을 뻗어 진우의 팔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의 손아귀에는 핏발 선 힘이 들어가 있었다.
“너는… 너는 안 되는 것이었다. 어째서…”
그 순간, 묵천 교수의 몸이 휘청였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초점을 잃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강하게 내공을 얻어맞은 듯, 그가 부여잡았던 진우의 팔에 힘이 빠졌다. 동시에, 서고 외벽에서부터 끔찍한 진동이 다시 한번 쿵, 하고 울렸다. 이번에는 벽에 금이 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릴 정도로 강력했다.
묵천 교수는 진우를 밀쳐냈다.
“도망쳐라! 여긴… 여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교수님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터져 나왔다. 그리고 진우가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서고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거대한 울음소리가 학원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짐승의 울부짖음이 아니었다. 수천 년간 봉인되었던 금기(禁忌)가, 드디어 깨어나는 소리였다.
청천원, 영술의 최고 학원 지하에 숨겨진 끔찍한 비밀이, 지금 막 그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