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잿빛 여정 (Ash-Grey Journey)

**에피소드 1: 낡은 숨결**

**[장면 시작]**

**1. 배경: 폐허가 된 도시의 석양. 먼지 자욱한 창문 너머로 붉은 기운 하나 없이 온통 회색빛으로 물든 하늘이 보인다. 낡은 주유소 건물 내부, 간판은 떨어져 나가고 글자 몇 개만 덩그러니 남았다. ‘생존…’ 이라는 글자 조각이 희미하게 읽힌다. 건물 안은 임시 방편으로 막아놓은 철판과 합판으로 둘러싸여 있다.**

**내레이션 (강진우):** 세상이 숨을 멈춘 지 얼마나 되었을까. 기억조차 흐릿해졌다. 단지 한 가지 사실만은 선명하다.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

**2. 강진우 (30대 중반, 깡마르고 날카로운 인상)가 낡은 캔들을 뒤적이며 내용물을 확인하고 있다. 그의 옆에는 먼지 쌓인 구형 소총이 놓여 있다. 캔들에는 ‘비상식량-3년’ 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강진우:** (혼잣말처럼) …또 쥐어짜야 하나.

**3. 주유소 한구석, 녹슨 드럼통 위에서 아린 (8세 정도, 조용하고 또렷한 눈빛)이 낡은 크레용으로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림은 기묘하게 뒤틀린 나무와 검은 그림자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작은 사람 형상이다. 아린의 손에는 다 닳아버린 곰인형이 들려 있다.**

**준혁 (40대 중반, 피곤하고 신경질적인 얼굴)이 낡은 무전기를 만지작거리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다. 그의 등 뒤에는 큼직한 배낭이 놓여 있다.**

**준혁:** (투덜거리며) 지겹다, 지겨워. 언제까지 이 썩어가는 철골더미 속에서 숨어 지내야 하는 거야? 무전기는 이젠 끽소리도 안 하고. 물도 바닥이야, 진우야. 이대로는 한 달도 못 버텨.

**4. 진우가 캔들 뚜껑을 닫으며 준혁을 돌아본다. 그의 눈빛은 지쳐 보였지만, 동시에 단단했다.**

**강진우:** 알아. 그래서 움직여야 해.

**5. 진우가 낡은 지도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펼친다. 지도는 곳곳이 찢어지고 더러워졌지만, 몇몇 표시는 아직 남아있다. 그는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킨다. ‘오래된 지식의 전당’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강진우:** 기억해? 저번에 말했던 그곳. 무너지기 전엔 이 도시에서 제일 깊은 건물이었어. 지하 저장고가 남아있을지도 몰라.

**준혁:** (코웃음) 도서관? 거기 물이 있을 리가. 책만 잔뜩 있겠지. 게다가 그쪽은 ‘흐느낌’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 아니었나? 죽으러 가자는 소리군.

**6. 진우가 지도를 응시한다. 그의 눈빛에 복잡한 감정이 스친다. 아린은 진우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본다. 그녀의 그림 속 검은 그림자들이 진우의 주변을 감싸는 듯하다.**

**강진우:** 다른 선택지가 없어. 며칠 전부터 아린도 목말라해. 밤중에 열기에 시달리고. 물을 찾아야 해. 안전한 물을.

**아린:** (작은 목소리로) …괜찮아, 아저씨.

**진우:** (아린에게 고개를 돌리며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아니, 괜찮지 않아. 아린이는 깨끗한 물 마셔야지.

**7. 준혁이 한숨을 깊게 쉬더니,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준혁:** 알았어. 알았다고. 이 지긋지긋한 폐기물 더미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으니까. 그런데 ‘흐느낌’들은 조심해야 할 거야. 며칠 전 ‘숨결 동굴’ 근처에서 놈들의 소리가 더 자주 들렸다고 했어.

**강진우:** (고개를 끄덕이며 소총을 챙긴다) 알아. 최대한 조용히 움직일 거야.

**[장면 전환]**

**8. 배경: 폐허가 된 도시의 거리. 아스팔트는 갈라지고 그 사이로 기형적인 형태로 자란 식물들이 뒤엉켜 있다. 잿빛 먼지가 끊임없이 바람에 날리고, 멀리서 붕괴된 고층 건물들이 유령처럼 서 있다. 하늘은 여전히 칙칙한 회색빛이다.**

**내레이션 (강진우):** 세상은 변했다. 하늘은 더 이상 푸르지 않고, 땅은 더 이상 우리를 품지 않는다. 모든 것이 뒤틀리고, 잊힌 존재들의 그림자가 우리를 덮친다.

**9. 진우가 소총을 단단히 쥐고 앞장서고, 준혁이 뒤따른다. 아린은 진우의 그림자처럼 그의 발치에 바싹 붙어 걷는다. 그녀의 손은 진우의 낡은 바지춤을 조심스럽게 잡고 있다. 발밑의 잿빛 모래와 자갈들이 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린다.**

**효과음: 사그락 사그락 (발소리)**

**강진우:** (작은 목소리로) 아린아, 절대 내 손 놓지 마. 그리고 어떤 소리가 들려도… 놀라지 마. 알았지?

**아린:** (고개를 끄덕인다) 응.

**10. 진우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경계한다. 그의 시선은 낡은 상가 건물의 어두운 입구를 향한다. 그 안에서 어딘가 축축한 어둠이 흘러나오는 듯하다.**

**강진우:** (낮은 목소리로) 이쪽은 아닌 것 같아. 돌아가자.

**준혁:** 왜? 뭐가 보였어?

**강진우:** (고개를 흔든다) 아니, 그냥… 느낌이 좋지 않아. 이 세계에서 ‘느낌’은 목숨을 좌우해.

**11. 그들이 방향을 틀어 골목으로 접어들자, 갑자기 멀리서 희미한 ‘흐느낌’이 들려온다. 마치 수백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슬픔에 잠겨 흐느끼는 듯한, 하지만 인간의 소리라고는 믿기 힘든 기괴하고 날카로운 소리다.**

**효과음: 흐으으윽… 흐느으윽… (점점 커지는 흐느낌)**

**아린:** (몸을 움츠린다) …아저씨.

**강진우:** (아린을 자기 뒤로 바짝 끌어당기며) 쉬잇. 괜찮아. 가까이 오지 못할 거야.

**준혁:** 빌어먹을. 저것들이 왜 이 근처까지 온 거야?

**12. ‘흐느낌’은 그들의 뒤편, 방금 지나쳐 온 상가 건물 쪽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그들은 속도를 높여 걷기 시작한다. 진우는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며 경계한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그들을 응시하는 듯한 불길한 감각이 그들의 등을 훑고 지나간다.**

**내레이션 (강진우):** ‘흐느낌’들은 실체가 없다. 어둠 속에서 태어나, 슬픔과 절망을 먹고 자란다. 그들은 우리 안의 가장 깊은 상처를 건드려, 우리 스스로를 파괴하게 만든다. 그들의 소리를 듣는 것은 곧 자신의 가장 어두운 면을 마주하는 것과 같다.

**13. 그들이 목표로 삼았던 ‘오래된 지식의 전당’이 눈앞에 나타난다. 건물의 외벽은 검게 그을리고, 거대한 기둥들은 부러져 비스듬히 서 있다. 마치 거인의 해골처럼 을씨년스러운 모습이다. 건물 입구는 거대한 석재 잔해들로 막혀 있다.**

**준혁:** 젠장. 완전히 무너졌잖아. 입구도 없어.

**강진우:** (건물을 올려다보며) 저기 봐.

**14. 진우가 가리킨 곳은 건물 측면, 외벽 일부가 안쪽으로 완전히 함몰된 곳이었다. 그 틈으로 어두운 내부가 들여다보인다. 마치 거대한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

**강진우:** 저기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조심해. 안쪽은 더 위험할 거야.

**15. 그들이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그들을 맞는다. 잿빛 먼지로 뒤덮인 책장들이 미로처럼 늘어서 있고, 군데군데 뼈대만 남은 의자들과 테이블들이 뒹군다. 희미한 바깥 빛이 천장의 깨진 틈으로 스며들어, 긴 그림자들을 만들어낸다.**

**효과음: 뚝… 뚝…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희미하게)**

**준혁:** (코를 킁킁거리며) 곰팡이 냄새… 그리고 뭔가 이상한 냄새도 나. 썩은 흙냄새 같기도 하고.

**아린:** (진우의 옷자락을 더욱 세게 잡는다) 아저씨… 여기… 무서워요.

**16. 아린의 말처럼, 내부의 공기는 밖보다 훨씬 음산했다.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듯했고,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고요함 속에서 더욱 또렷하게 울린다. 진우는 소총을 단단히 쥐고 주위를 살핀다.**

**강진우:** (작은 목소리로) 괜찮아. 아저씨가 지켜줄게. 눈은 바닥을 보고 발밑을 조심해.

**17. 그들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정면에 있던 책장 뒤편에서 흐릿한 형체 하나가 스쳐 지나간다. 사람의 형상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모호한 그림자였다. 이내 그림자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강진우:** (소총을 겨누며) 누구야?!

**준혁:** (숨을 들이켠다) 진우야, 저건… 흐느낌이야.

**18. 진우의 눈에 비친 것은 분명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인간의 형상을 닮았지만 분명 인간이 아닌 기이한 그림자들. 그것들은 빠르게 움직이며 그들을 포위하려는 듯했다. 희미했던 ‘흐느낌’ 소리가 갑자기 건물 전체를 뒤흔들 만큼 증폭된다.**

**효과음: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찢어지는 듯한 흐느낌 소리)**

**내레이션 (강진우):** 놈들은 이성을 마비시킨다. 슬픔을 증폭시키고, 절망을 주입한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고통이다.

**19. 아린이 공포에 질려 진우의 품에 얼굴을 묻는다. 준혁은 허리춤에서 낡은 단검을 뽑아 들고 경계 태세를 취한다. 진우는 눈앞의 그림자들을 향해 소총을 발사한다. 탕! 하는 총성이 울리지만, 그림자들은 물리적인 타격을 입지 않은 듯 흐릿하게 흔들릴 뿐이다.**

**강진우:** (절박하게) 빌어먹을! 실체가 없어!

**20. 그림자 중 하나가 빠르게 진우에게 다가온다. 진우의 정신 속으로 마치 쐐기를 박는 듯한 슬픔과 회한의 감각이 밀려든다. 그는 주춤거리며 과거의 끔찍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가족의 얼굴, 무너지는 도시, 그리고 자신만의 나약함.**

**강진우:** (이를 악물며) 끄, 꺼져…!

**21. 그때, 준혁이 주머니에서 꺼낸 작은 조명탄을 그림자를 향해 던진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조명탄이 터지며 강렬한 섬광을 내뿜는다. 흐릿하던 그림자들이 섬광에 움찔하며 잠시 물러난다.**

**준혁:**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빛이다! 빛에 약한가 봐! 빨리 도망쳐야 해!

**22. 진우는 아린을 안아 들고 준혁과 함께 조명탄이 터진 순간 생긴 짧은 틈을 이용해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그들은 책장 사이를 헤치며 건물의 더 깊은 곳으로 향한다. 뒤에서는 여전히 ‘흐느낌’들이 그들을 뒤쫓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효과음: 쾅! 와르르- (건물 내부의 추가 붕괴음)**

**23. 그들은 낡은 철제 문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문은 반쯤 부서져 있었지만, 안쪽으로 통하는 통로를 막고 있었다. 진우가 힘껏 문을 밀어내자,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그들은 서둘러 문 안으로 몸을 던진다.**

**24. 문 안쪽은 좁고 어두운 계단이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갑자기 ‘흐느낌’ 소리가 멀어지는 듯하다. 진우와 준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내려간다. 아린은 진우의 품에서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아린:** …조용해졌어요.

**강진우:** (아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행이다.

**25. 계단의 끝, 그들 앞에는 지하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은 메인 홀보다 훨씬 작았지만,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천장은 낮았고, 벽면은 젖어 있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준혁:** (눈을 비비며) 저게 뭐야…?

**26. 그들이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그들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지하 깊은 곳, 바닥의 갈라진 틈 사이에서 솟아나는 물줄기가 작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웅덩이 속의 물은 놀랍도록 맑고 투명했다. 물방울이 뚝, 뚝 떨어지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효과음: 뚝… 뚝… 찰랑- (맑은 물 소리)**

**내레이션 (강진우):** 기적. 이 절망적인 세상에서 우리가 감히 바랄 수 없는, 순수한 기적의 물방울이었다.

**27. 준혁이 감격에 찬 얼굴로 웅덩이로 달려가 손을 담근다. 그는 물을 한 움큼 떠서 마신다. 그의 얼굴에 희망과 안도감이 교차한다.**

**준혁:** (흥분해서) 진우야! 찾았어! 깨끗한 물이야! 정말 깨끗해!

**28. 진우는 준혁의 말을 들으면서도, 웅덩이 주변의 벽면을 응시한다. 그곳에는 어두운 색으로 덧칠된 고대의 상징들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기묘한 문양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물웅덩이 가장자리에는 기이한 형태로 피어난, 푸른빛을 띠는 버섯들이 마치 살아있는 듯 희미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린:** (물웅덩이를 바라보던 아린이 갑자기 진우의 옷자락을 잡아당긴다. 그녀의 눈빛은 불안해 보인다) 아저씨… 저 물… 뭔가 이상해요.

**29. 진우는 아린의 말에 웅덩이 속 물을 다시 바라본다. 맑고 투명한 물. 하지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닥에서는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가… 맥동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마치 물속 깊은 곳에서 거대한 심장이 뛰고 있는 것처럼.**

**30. 준혁은 플라스틱 통을 꺼내 물을 담기 시작한다. 그의 얼굴에는 순수한 기쁨과 안도감이 가득하다. 진우는 그런 준혁과 물웅덩이, 그리고 벽의 기묘한 상징들을 번갈아 응시한다. 그의 눈빛은 기쁨 대신 불안과 의심으로 가득 차 있다.**

**내레이션 (강진우):** 이 황폐해진 세상에서, ‘순수’라는 단어는 이미 그 의미를 잃었다. 모든 것은 오염되었고, 뒤틀렸다. 단지… 그 정도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 우리는 이 물을 마셔야만 한다. 하지만… 과연 그 대가는 무엇일까?

**31. 진우는 물웅덩이에서 고개를 들어,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린을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물웅덩이를 본다.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소총을 더욱 단단히 쥔다. 그의 눈빛에 다시금 결의가 스치지만, 그 결의 속에는 거대한 의문과 불안이 공존한다.**

**[장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