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 액션 독립적인 단편 소설

강지훈은 열아홉 층 높이의 스카이라인 아파트 1307호에서 심장이 쿵 떨어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시계는 새벽 3시 1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쿵, 쿵, 쿵. 마치 쇠붙이가 콘크리트 바닥을 세 번 내리찍는 듯한 둔탁한 소리. 지훈은 늘 이런 식이었다. 처음엔 밤늦게 귀가하는 윗집 이웃의 발소리려니 했다. 다음엔 낡은 아파트의 구조적 문제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소음은 점점 더 기묘한 패턴을 보였다.

“젠장, 또 시작이군.”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창밖은 도시의 불빛과 희미한 달빛이 뒤섞여 잿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거실로 향하는 복도, 익숙한 적막 속에 묘한 냉기가 감돌았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마룻바닥이 삐걱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레 거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거대한 케이스로 향했다. 그 안에는 지훈의 오랜 파트너이자 도시 방위 시스템의 최첨단 기계병기, ‘황혼’이 잠들어 있었다. 접이식으로 보관된 황혼은 강철과 복합 섬유로 이루어진 거대한 몸체가 어두운 실루엣을 드리웠다. 평소에는 그 자체로 든든한 존재감을 뿜었지만, 오늘 밤은 마치 저 거대한 기계가 침묵 속에서 무언가를 응시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덜컹!

거실 전면의 베란다 창문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지훈은 움찔했다. 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바깥은 고요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창문으로 다가갔다. 잠금장치는 단단히 잠겨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오래된 머그컵이 스르륵 미끄러지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적막을 찢었다. 지훈은 컵 파편을 내려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건 명백히 비정상적인 현상이었다. 지난 몇 주간 벌어진 일들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열려 있던 책장이 저절로 닫히고, 욕실 거울에 김이 서리지 않은 채 사람 얼굴 형상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는 처음엔 스트레스나 과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황혼의 정비와 훈련, 그리고 간간이 들어오는 도시 방위 임무는 그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이건 그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섰다.

“누구냐, 대체….”

그의 목소리는 공허한 아파트에 메아리쳤다.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황혼이 잠들어 있는 케이스 안에서 웅- 하는 낮은 진동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기계가 꿈틀거리는 듯했다.

“황혼?”

지훈은 급히 다가가 케이스의 제어 패널을 확인했다. 모든 시스템은 대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전원은 꺼져 있었고, 외부 전력 공급도 차단된 상태였다. 그런데 이 진동은 뭐지? 그는 손을 뻗어 차가운 강철 벽면에 대 보았다. 진동은 손끝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마치 케이스 안의 무언가가 스스로 움직이려는 듯한, 살아있는 듯한 진동이었다.

그때였다. 거실의 모든 전등이 번쩍! 하며 동시에 깜빡였다. 그리고 이내 다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반복되는 섬광 속에서 황혼의 거대한 실루엣이 마치 살아 숨 쉬는 괴물처럼 비틀거리는 듯한 착시를 일으켰다.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이건 단순한 폴터가이스트가 아니었다. 이건 그의 삶에, 그의 가장 소중한 파트너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봐, 한해원! 지금 바로 올 수 있겠어? 미쳤다고 생각해도 좋아. 하지만… 내 아파트에 뭔가 있어.”

지훈은 급히 휴대 단말기를 찾아들고 해원에게 전화했다. 해원은 황혼의 정비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하는 그의 유일한 동료이자 친구였다.

“지훈? 이 새벽에 무슨 일이야? 긴급 호출이라도 떴어?” 해원의 목소리는 잠결에 잠겨 있었지만, 걱정이 묻어났다.

“아니, 긴급 호출보다 더 급해. 아니, 더 *기이해*. 내 아파트에서 뭔가 움직이고 있어. 컵이 저절로 떨어지고, 전등이 깜빡여. 그리고… 황혼이 혼자 진동하고 있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황혼이? 전원도 꺼진 상태에서?” 해원의 목소리에 잠기가 완전히 가셨다. “젠장, 그건 불가능해. 내가 설치한 보안 프로토콜은… 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 십오 분 안에 도착할 거야.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

지훈은 전화를 끊었다. 십오 분. 그 시간 동안 무엇이 더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황혼의 케이스에서 한 발짝 물러났다. 거대한 강철 벽면에서 웅웅거리는 진동은 점점 더 강해졌다. 이내 케이스 외부의 비상등이 마치 격렬하게 요동치는 심장처럼 붉은빛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덜컥! 덜컥! 덜컥!

케이스 내부에서 강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잠겨 있던 잠금장치들이 하나둘 풀리는 소리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능숙하게 조작하는 것처럼. 지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이럴 수가…!”

케이스의 전면 패널이 스르륵 열리기 시작했다. 육중한 강철문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귀청을 찢을 듯했다. 안개가 자욱한 무대 막이 걷히듯, 거대한 황혼의 실루엣이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황혼의 광학 센서는 꺼져 있었지만, 마치 수많은 눈동자가 자신을 노려보는 듯한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거대하고 위압적인 황혼의 몸체가 케이스 밖으로 미끄러져 나왔다. 그 육중한 발이 마룻바닥에 닿는 순간, 아파트 전체가 쿵! 하고 울렸다. 어둠 속에서 황혼은 한 발, 한 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계 관절이 삐걱이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들렸다. 지훈은 뒷걸음질 쳤다.

“황혼! 멈춰! 명령을 기다려!”

그는 무전기 겸 개인 단말기를 꺼내 황혼의 제어 시스템에 연결하려 했다. 하지만 단말기는 지직거리는 노이즈만을 뱉어낼 뿐이었다. 황혼의 움직임은 느렸지만, 집요했다. 마치 거대한 강철 괴물이 아파트를 탐색하듯 거실을 가로질러 주방으로 향했다.

덜그럭! 덜그럭!

주방의 식기들이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가 제멋대로 부딪히며 쨍그랑! 소리를 냈다. 황혼의 거대한 손이 싱크대 위로 뻗어 나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존재가 황혼을 조종하여 주변 사물을 던지려는 듯했다. 접시와 컵이 무수히 쏟아지며 바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지훈은 재빨리 주방 조리대 아래에 숨겨둔 비상 무기고로 향했다. 그는 황혼을 제어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가 가진 것은 황혼의 파일럿 권한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황혼을 직접 설계하고 조립하는 데 참여한 전문가였다. 그에게는 비상시 매뉴얼 제어를 위한 물리적 키와 강제 종료 코드가 담긴 단말기가 있었다.

“이 빌어먹을 유령 자식!”

그는 재빨리 비상 단말기를 손에 넣었다. 동시에 황혼의 거대한 발이 거실 테이블을 짓밟았다. 쾅! 소리와 함께 테이블은 산산조각이 났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황혼은 이제 거실 중앙에 우뚝 서서 지훈을 응시하는 듯했다. 아니,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존재*를 느끼고 반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황혼의 팔이 서서히 올라갔다. 그리고는 그의 정교한 손가락들이 벽에 걸린 대형 화면을 향해 뻗어 나갔다. 콰직! 화면이 박살 나며 스파크가 튀었다. 지훈은 망설일 틈도 없이 비상 단말기에 강제 종료 코드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황혼의 모든 관절에서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증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황혼의 광학 센서가 번쩍! 하고 켜지더니 붉은색으로 섬뜩하게 빛났다. 마치 악마의 눈동자처럼.

“크어어어어…!”

낮고 굵은 기계음이 황혼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그것은 기계음이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비명 같은, 아니 그보다 더 오래된 무언가의 원초적인 울부짖음 같았다. 황혼의 거대한 팔이 지훈을 향해 번개처럼 휘둘러졌다.

지훈은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강철 팔이 그가 방금 서 있던 벽을 꿰뚫었다. 철근이 휘고, 콘크리트 파편이 쏟아져 내렸다. 아파트의 구조가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었다. 지훈은 바닥에 엎드린 채 단말기를 꽉 쥐었다. ‘코드 778-알파-제로-쓰리…’ 그의 손가락이 빠르게 키패드를 눌렀다.

황혼은 멈추지 않았다. 거대한 몸체를 돌려 다시 지훈을 향해 돌진했다. 쿵! 쿵! 쿵! 아파트 바닥이 울렸다. 지훈은 좁은 거실을 가로질러 침실로 달렸다. 황혼은 거대한 몸집으로 문틀을 부수며 뒤를 쫓았다. 침실 안은 더 좁았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이게… 정말 네 의지란 말이야?!” 지훈은 외쳤다.

황혼은 대답 없이 거대한 발을 들어 침대 프레임을 짓밟았다. 콰직! 침대는 순식간에 납작한 철 조각으로 변했다. 붉은 광학 센서가 지훈을 향해 고정되었다. 황혼의 모든 무장 포트가 스르륵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사일 발사관, 기관총 포트, 에너지 캐논의 충전음까지. 이것은 실전 전투 상황과 다를 바 없었다. 단지, 상대가 자신의 가장 소중한 파트너일 뿐.

지훈은 마지막 코드 숫자를 입력했다. 동시에 황혼의 어깨에 장착된 소형 미사일 발사관이 그를 향해 조준되었다.

“망할…!”

그가 마지막 키를 누르는 순간,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동시에 지훈은 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미사일은 침실 벽을 뚫고 지나갔다.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황혼의 붉게 빛나던 광학 센서가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관절을 뒤덮었던 증기가 멈추고, 모든 무장 포트가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몸체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웅웅거림이 잦아들었다.

황혼의 거대한 몸체가 휘청이더니, 이내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침실 한가운데에 쓰러졌다. 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붉은 센서가 완전히 꺼지고, 황혼은 다시 단순한 강철 덩어리로 돌아왔다.

지훈은 숨을 헐떡이며 몸을 일으켰다. 침실은 미사일에 뚫린 벽과 박살 난 가구들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바닥에는 깨진 유리 조각과 콘크리트 파편이 흩어져 있었다. 그는 황혼의 거대한 몸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검게 그을린 강철 표면에는 아무런 생명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훈! 괜찮아?! 무슨 일이야 대체?!”

바로 그때, 현관문이 격렬하게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해원이 뛰어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거실을 본 해원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깨진 탁자와 널브러진 식기, 박살 난 대형 화면. 그리고 침실에서 보이는 황혼의 압도적인 잔해.

“해원아… 늦었으면… 나는 저놈에게 죽었을 거야.” 지훈은 겨우 목소리를 냈다. 그의 눈은 피로와 충격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해원은 그의 얼굴을 살피고는 이내 황혼의 거대한 잔해로 시선을 돌렸다.
“이건… 해킹이 아니야. 외부 접근 흔적도 없고, 내부 시스템에도 이상 징후가 없어. 마치… 마치 황혼 자체가… 스스로 움직인 것 같아.”

“스스로 움직인 게 아니야. 무언가가… 저놈을 움직였어. 내 아파트에 있던 그것이… 황혼을 조종했어.” 지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은 침실 벽에 뚫린 거대한 구멍 너머, 새벽의 회색빛 도시를 향했다. 그의 아파트는 더 이상 안전한 안식처가 아니었다. 강철의 그림자가 드리운 밤, 보이지 않는 악몽이 그의 가장 강력한 파트너를 이용해 그를 덮쳤다. 이 모든 것이… 그저 시작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이 지훈의 심장을 옥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