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광년 밖, 우주의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는 것은 늘 지루함과 경외감 사이를 오가는 일이었다. 카론호의 함장 이진우는 모니터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암흑을 응시하며 느릿하게 커피를 홀짝였다. 12번째 항해, 이번 임무는 은하계 외곽의 미개척 항로 탐사. 예상치 못한 일이라곤 언제나 연료 효율 계산 오류나 식량 배급 시스템의 사소한 버그 정도였다. 드넓은 우주에서 인류는 이미 수많은 경이로운 현상과 맞닥뜨렸지만, 동시에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 장치와도 같았다.
그때였다. 찌르르륵, 조용한 함교에 경보음이 낮게 울렸다. 빨간 불빛이 상황판을 스치고 지나갔다.
“함장님, 미확인 에너지 신호입니다.” 통신 담당 최민준 상병의 목소리에 미묘한 긴장이 서렸다. 그의 눈은 이미 경고 창에 고정되어 있었다.
진우는 들고 있던 머그컵을 내려놓으며 몸을 돌렸다. “미확인? 위치는?”
“함선 전방 0.5AU 지점입니다. 급작스럽게 포착됐습니다.”
과학 책임자 김서연 박사는 이미 자신의 콘솔에 코를 박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홀로그램 키보드 위를 맹렬히 움직였다. 데이터가 그녀의 눈동자에 푸른 빛을 비추며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비표준 파장입니다. 어떤 알려진 물질에서도 관측된 적 없는 패턴이에요. 그리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 쪽으로.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분명히요.”
진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움직인다고? 자연 현상은 아니라는 건가?”
카론호는 속도를 늦추고, 조심스럽게 미확인 신호의 근원지를 향해 전진했다. 진우는 함선 전체에 비상 경계령을 내리고 모든 시스템을 최대치로 가동시켰다. 창밖은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이었지만, 3D 홀로그램 스크린에는 신호원이 점점 더 선명하게 묘사되고 있었다. 미지의 존재가 점차 형체를 갖추기 시작하자, 함교 안의 공기는 점점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제기랄.” 기술 책임자 박지훈이 작게 욕설을 읊조렸다. “저게 대체 뭐지?”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신호는 육안으로도 감지될 수 있는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진우의 눈이 크게 뜨였다. 홀로그램을 넘어 실제 창밖에도 무언가 거대한 것이 존재했다.
그것은 거대한 검은색 정육면체였다. 매끄럽고 완벽한 검은색 표면은 별빛마저 집어삼키는 듯했다. 흡사 우주의 모든 어둠을 응축해 놓은 듯한, 완전한 비색(非色)의 덩어리였다. 표면은 완벽하게 매끄러웠지만, 시선을 고정하면 마치 무한한 심연이 그 안에 갇혀 있는 듯한 착시를 일으켰다. 그러나 표면 어딘가에서, 아주 미세하게, 청록색의 빛줄기가 맥박처럼 깜빡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잠들어 있는 거대한 심장 같았다.
카론호는 정육면체 앞에서 멈춰 섰다. 팽팽한 긴장감과 알 수 없는 경외감이 함교를 가득 채웠다.
“스캔 결과는?” 진우가 숨을 죽이며 물었다.
서연 박사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그녀는 땀에 젖은 이마를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온도, 방사능, 구성 물질… 아무것도 잡히지 않습니다, 함장님. 스캐너가 아예 무시당하는 것 같아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존재하지 않는다고?” 박지훈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저건 환영인가요? 지금 우리 함선 센서들이 죄다 고장 났다는 말입니까?”
“아니요.” 서연 박사의 눈빛이 형형했다. “존재하긴 하지만, 우리의 물리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혹은, 우리의 측정 장비로는 감지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존재일 수도…”
함교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우주선 내부의 공기조차 얼어붙는 듯했다.
“함장님, 너무 위험합니다. 회피 기동을 해야 합니다.” 민준이 경고했다. 그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역력했다. “저런 물체는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변수가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진우는 홀로그램의 검은 정육면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인류가 우주에서 마주친 것 중 가장 중요한 발견이 될 터였다. 동시에 가장 위험한 것일 수도 있었다. 인류의 상식을 뛰어넘는 존재를 마주했을 때의 공포와 본능적인 호기심이 그의 심장을 격렬하게 흔들었다.
“근접 탐사 드론을 보내.” 진우가 명령했다. “접촉은 최대한 피하고, 외형 데이터와 에너지 패턴을 기록해.”
“하지만 함장님!” 민준이 반발했다.
“명령이다, 상병. 이 미지의 존재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인류가 이만큼 깊은 우주까지 온 이유가 뭐겠나.” 진우의 목소리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작은 탐사 드론 한 대가 카론호의 격납고에서 발사되어 검은 정육면체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드론의 카메라가 전송하는 영상이 메인 스크린에 확대되어 나타났다. 정육면체의 표면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복잡해 보였다. 미세한 균열들이 보이기도 했지만, 그것이 자연적인 것인지 인공적인 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드론이 정육면체에 50미터까지 근접했을 때였다.
그때, 정육면체의 표면을 깜빡이던 청록색 빛줄기가 일제히 밝아졌다. 마치 눈을 뜬 것처럼.
카론호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비상등이 깜빡이고, 함교 콘솔의 화면들이 순식간에 암전되었다가 다시 켜지기를 반복했다.
“시스템 오류입니다! 알 수 없는 에너지 간섭! 모든 보조 시스템이 마비되고 있습니다!” 박지훈의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창밖의 거대한 정육면체는 이제 온몸을 청록색 빛으로 휘감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은… 카론호의 선체를 향해, 마치 유기체의 촉수처럼 뻗어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함장님! 스캔합니다! 무언가… 우리 함선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김서연 박사의 목소리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녀의 콘솔에서는 경고음이 미친 듯이 울렸다.
진우는 재빨리 메인 스크린을 노려봤다. 스크린에는 거대한 정육면체로부터 뿜어져 나온 빛의 파동이, 카론호의 방어막을 뚫고 함선 내부로 침투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표시되고 있었다.
“젠장, 비상 방어막! 모든 전력을 방어막으로 돌려!” 진우의 절규가 함교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이미 늦은 듯했다. 카론호 전체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사방에서 스파크가 튀었고, 선체 곳곳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정육면체에서 뻗어 나온 빛은 이제 카론호의 심장부를 향해 파고들고 있었다.
모든 것이 암전되기 직전, 진우의 눈에 비친 것은… 정육면체의 한 면이 천천히, 안쪽으로 열리는 듯한 착각이었다. 마치, 그 거대한 검은 문이, 그들을 초대하듯이.
그리고, 모든 것이 정지했다. 정적 속에서, 카론호는 검은 정육면체 앞에서 침묵했다.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