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장: 삐걱거리는 시간의 틈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이었다. 낡은 고목 저택의 삐걱이는 철문이 비명처럼 울부짖으며 열리자, 번개가 잠시 어둠을 갈랐다. 그 순간, 지욱은 익숙한 두통과 함께 세상이 한 바퀴 뒤집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쨍한 빛과 함께 귓가에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이 맴돌았다. 익숙한 현상이었다. 그의 시간은 늘 이렇게 불시에 삐걱거렸다.
“탐정님, 이쪽입니다!”
김 형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멀게 들렸다. 지욱은 애써 미간을 찌푸리며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잡았다. 심장이 요동쳤다. 언제나 그랬듯, 이 낯선 시간의 틈은 그를 사건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이끌었다.
저택 안은 외부의 거친 비바람과는 달리 정적에 잠겨 있었다. 고풍스러운 가구들과 벽에 걸린 낡은 초상화들이 그림자 속에서 음산하게 지욱을 노려보는 듯했다. 피 냄새, 그리고 낡은 나무와 먼지, 눅눅한 습기 냄새가 섞여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피해자는 고대훈 회장입니다. 서재에서 발견됐어요. 칼에 찔린 지 한 시간도 채 안 된 것 같습니다.” 김 형사는 작게 읊조리며 복도 끝의 육중한 문을 가리켰다. “가장 큰 문제는… 밀실입니다.”
밀실. 그 단어가 지욱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종처럼 울렸다. 지욱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걸었다. 그가 가장 싫어하면서도, 가장 깊숙이 파고들고 싶은 종류의 사건이었다. 그의 시간의 틈은 항상 이런 불가해한 수수께끼 앞에서 격렬하게 삐걱거렸다.
서재 문은 마치 거대한 미궁의 입구 같았다. 문이 열리자, 차가운 공기가 확 끼쳐왔다. 고풍스러운 책장들로 가득 찬 방, 그 한가운데에 놓인 앤티크 책상 위에서, 고대훈 회장이 엎드린 채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등에는 날카로운 칼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창문은 안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고, 세 겹으로 잠긴 특수 잠금장치였습니다. 높이도 3층이라 외부에서 침입은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이 저택은 담장이 높고 외딴곳에 있어서… 더군다나 이 폭풍우 속에서 말이죠.” 김 형사가 덧붙였다. “그리고 문은, 회장님 손에 열쇠가 쥐어진 채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지욱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해자의 왼손에 꽉 쥐어진 낡은 열쇠가 보였다. 방 안에는 어떤 흐트러짐도 없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불합리함. 모순. 그가 직면한 사건의 본질이었다.
그때였다.
**쉬이이이익—!**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지욱의 시야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방 안의 색깔이 뒤틀리고,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감각이 전신을 덮쳤다. 눈앞에 있던 시신과 책장들이 사라지고, 쨍한 백색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 그의 뇌리에 스쳐 지나간 것은…
*흐릿한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거친 빗줄기, 그리고 무언가를 쥐고 있는 손가락의 실루엣.*
짧았다. 너무나도 짧았지만, 온몸의 신경을 건드리는 듯한 생생함이었다. 등골을 타고 한 줄기 싸늘한 전율이 흘렀다. 시간이 다시 제자리를 찾자, 지욱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탐정님,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안 좋으신데요.” 김 형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지욱은 가까스로 대답했다. “단지… 이 방이 저를 부르는군요.”
그는 천천히 서재 안을 걸었다. 정교하게 조각된 샹들리에, 두툼한 페르시아 양탄자, 그리고 벽면을 가득 채운 고서적들. 어느 것 하나 범죄의 흔적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책상 위, 엎드린 고 회장의 주변을 훑었다. 유리컵, 잉크병, 만년필, 그리고 한 권의 고서적.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창문으로 향했다. 육중한 나무 창문에는 굵은 쇠빗장이 걸려 있었다. 빗장 안쪽으로는 세 개의 돌기형 잠금장치가 견고하게 박혀 있었다. 지욱은 창틀에 손을 대어 보았다. 창문 틈새로 미세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외부에서 침입은 분명 불가능해 보였다.
“이 저택에는 회장님의 조카인 고병철 씨와 비서인 한수연 씨, 그리고 집사인 박정호 씨가 함께 거주 중입니다.” 김 형사가 설명을 이어갔다. “모두 방에서 잠든 상태였다고 진술했습니다.”
지욱은 벽에 걸린 대형 태엽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묵직한 추는 규칙적으로 흔들리고 있었지만, 초침은 멈춰 있었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기분이었다.
“세 분 모두 불러주십시오. 그리고 이 방에 있는 모든 물건에 손대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김 형사가 경례하며 나갔다. 방 안에 지욱 혼자 남았다. 그는 다시 한번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까의 섬광 속에서 보았던 흐릿한 실루엣이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흐린 유리창 너머의 빗줄기, 그리고 무언가를 쥐고 있던 손가락.
지욱은 창틀 아래에 있는 작은 협탁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 위에는 여러 가지 앤티크 소품들이 놓여 있었다. 작은 청동 조각상, 오래된 편지칼, 그리고 손잡이가 닳아버린 돋보기.
그는 돋보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창문 틈새를 자세히 살폈다. 빗장이 걸린 창문 안쪽 나무틀에, 눈에 띄지 않는 아주 미세한 흠집이 보였다. 마치 가는 실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간 듯한 자국이었다. 너무나 희미해서 육안으로는 쉽게 발견하기 어려웠다.
“이건… 뭘까.”
지욱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때, 또다시 시작되었다.
**쿠구구궁—!**
이번엔 섬광이 아니었다. 방 전체가 진동하는 듯한 굉음과 함께, 눈앞의 공간이 물결처럼 일렁거렸다. 그는 마치 심해 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시간의 틈이 더욱 격렬하게 그를 잡아끌었다.
이번에는 길었다.
눈앞에 서재의 모습이 다시 펼쳐졌다. 하지만 고 회장의 시신은 없었다. 대신, 방 안을 서성이는 그림자가 있었다. 길고 늘씬한 그림자. 그 그림자가 창문 앞으로 다가섰다. 그림자의 손에 들린 것은… 길고 가는 낚싯대 같은 것이었다. 아니, 낚싯대보다는 훨씬 견고하고 유연해 보이는, 특수 제작된 어떤 도구였다.
그림자는 창문을 열었다. 빗줄기가 거세게 안으로 들이쳤다. 그림자는 빠르게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마치 훈련된 등반가처럼, 창틀 옆에 설치된 낡은 빗물 배수관을 잡고 미끄러져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가 보았다.
창문 밖으로 거의 완전히 몸을 내민 상태에서, 그림자는 그 길고 가는 도구를 다시 창문 안으로 뻗어 넣었다. 정확히 창문 안쪽의 빗장으로 향했다. **딸깍!**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움직임만으로 알 수 있었다. 빗장을 완전히 잠그는 모습이었다.
모든 것이 연결되었다.
시간의 틈이 사라지자, 지욱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주저앉았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있었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는 눈을 감고 아까 본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그 길고 가는 도구. 그리고 창틀의 미세한 흠집.
“드디어… 찾았다.”
그는 중얼거렸다. 밀실의 트릭이 눈앞에서 해명되는 순간이었다. 범인은 창문을 통해 내려간 후, 그 특수한 도구를 이용해 밖에서 안쪽 빗장을 걸어 잠근 것이다. 3층 높이의 창문 아래에는 낡았지만 튼튼한 빗물 배수관이 있었다. 이 폭풍우 속에서 빗물 소리에 묻혀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 회장의 손에 쥐어진 열쇠는?
지욱은 다시 시신으로 다가갔다. 열쇠는 마치 고 회장이 죽기 직전까지 꼭 쥐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까 본 시간의 틈 속에서는, 범인이 창문을 잠글 뿐, 열쇠를 놓는 모습은 없었다.
지욱은 열쇠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오래되어 빛바랜 열쇠.
그는 문득,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이 열쇠가 정말 서재 문 열쇠일까?
“탐정님, 세 분 모시고 왔습니다.”
김 형사의 목소리와 함께, 고병철, 한수연, 박정호 세 사람이 서재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불안감과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지욱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시선은 세 사람을 차례로 훑었다. 모두 평온한 척했지만, 아주 미세한 동요가 감지되었다.
“밀실의 트릭은 풀렸습니다.” 지욱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묘한 무게감을 담고 있었다.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그에게로 향했다. 김 형사마저 놀란 표정이었다.
“범인은 창문을 통해 나갔습니다.” 지욱이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나간 뒤, 안쪽에서 빗장을 걸어 잠갔습니다.”
“말도 안 돼!” 고병철이 소리쳤다. “3층 높이에, 빗장은 안에서 걸려 있는데 어떻게 밖에서 잠근다는 겁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지욱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범인은 이 저택의 구조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창문 옆에 있는 낡은 배수관은 범인의 완벽한 도주로가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특별히 제작된 길고 유연한 도구를 이용해 밖에서 안쪽 빗장을 잠근 거죠.”
그의 시선이 다시 창틀의 미세한 흠집으로 향했다.
“그 도구는 아마도… 이 창틀에 아주 미세한 흔적을 남겼을 겁니다. 그리고 빗물 배수관에는 범인의 옷자락이나 신발 자국, 혹은 지문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 사람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한수연 비서는 입을 가렸고, 박정호 집사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졌다. 고병철은 굳은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회장님 손에 쥐어진 열쇠는 어떻게 된 겁니까? 그 열쇠는 이 서재의 문 열쇠입니다!” 박정호가 다급하게 외쳤다.
지욱은 고 회장의 시신으로 다시 다가갔다. 그리고 굳게 쥐어진 손에서 열쇠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 열쇠 말입니까?” 지욱이 열쇠를 공중에 들어 올렸다. 낡은 놋쇠 열쇠가 차가운 서재의 불빛 아래서 빛났다.
“네, 그 열쇠가 바로 회장님 서재 열쇠입니다!” 고병철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시던 겁니다.”
지욱은 열쇠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놀랍게도, 이 열쇠는 이 서재 문을 여는 열쇠가 아닙니다.”
모두의 시선이 경악에 물들었다.
“이 열쇠는… 오래된 서재의 낡은 벽난로 속, 비밀 금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고 회장님은 죽기 직전, 이 열쇠를 범인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쥐고 있었던 겁니다.”
지욱은 벽난로 쪽으로 걸어갔다. 낡은 벽난로의 장작들이 쌓인 곳 깊숙한 곳을 손전등으로 비추자, 작은 철제 금고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진짜 서재 열쇠는 애초에 회장님의 몸에 없었거나, 아니면…” 지욱의 시선이 세 사람 중 한 명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이 닿은 곳에서, 누군가의 어깨가 움찔하고 떨렸다.
“…아니면, 범인이 이미 그 열쇠를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이 저택의 내부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고 회장님의 모든 비밀을 꿰뚫고 있었던… **당신**처럼 말입니다.”
지욱의 날카로운 시선이, 창백하게 질린 한 사람에게로 못 박히듯 박혔다.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지욱의 눈빛에 담긴 진실을 마주하며, 온몸을 떨고 있을 뿐이었다.
밤의 폭풍우는 여전히 거셌지만, 서재 안의 공기는 얼어붙은 듯 차갑게 가라앉았다. 밀실의 트릭은 깨졌다. 이제 남은 것은… 진실의 그림자를 쫓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지욱의 시간은, 또다시 삐걱거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