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소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잿빛 먼지가 가득한 폐허 속에서 눈을 떴다. 삐걱이는 낡은 철골이 천장처럼 드리워져 있었고,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들이 이불처럼 몸을 덮고 있었다. 한때 별빛을 담던 두 눈은 이제 어둠에 익숙해져 희미한 잔광마저도 고통스럽게 받아들였다. 왼쪽 뺨을 쓸어보니 깊게 파인 흉터가 손끝에 느껴졌다. 피가 말라붙어 거친 딱지가 앉은 상처는 지난날의 모든 것을 잔인하게 일깨웠다.

‘유진.’

그 이름이 머릿속을 맴돌 때마다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환통이 밀려왔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 이름은 내게 따뜻한 빛이었다.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악의 무리를 물리치던 나의 유일한 반쪽, 나의 별무리 심장이었다.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거야, 시아. 어떤 어둠도 우릴 갈라놓을 수 없어.”

반짝이는 눈으로 내 손을 잡고 맹세했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우리는 서로의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내가 위험에 처하면 유진이 가장 먼저 달려왔고, 유진이 슬퍼하면 내가 밤새도록 곁을 지켰다. 우리의 마법은 하나의 빛처럼 어우러져 어떤 적도 막아낼 수 없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우리는 희망의 ‘별무리’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한낮의 꿈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그날은 유난히 어둠의 기운이 강했던 밤이었다. 거대한 재앙이 도시를 덮치려 했고, 우리는 온 힘을 다해 맞섰다. 유진과 나는 마지막으로 우리의 모든 마력을 끌어모아 적을 물리치기 위한 필살기를 준비했다. 찬란한 빛이 우리를 감쌌고, 나는 유진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우리의 ‘별무리 심장’을 하나로 합쳐 마력을 극대화하던 순간이었다.

유진은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아름답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늘 그랬듯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빛의 파동을 뿜어냈다.

그리고, 등 뒤에서 칼날이 박혔다.

“미안해, 시아. 하지만… 너는 너무 순진해.”

그것은 칼이 아니었다. 마법으로 이루어진 단검이 내 심장을 꿰뚫고 들어왔다. 아니, 심장 깊숙이 박힌 것은 칼날만이 아니었다. 내 몸 안의 ‘별무리 심장’을 갈취하기 위한 섬뜩한 마법의 기운이 나를 찢어발겼다. 고통보다 더 큰 배신감이 온몸을 마비시켰다. 눈동자에는 혼란과 절규가 서렸고, 나는 유진의 손을 놓쳤다.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은 순식간에 사그라졌고, 그녀의 손에 들린 내 ‘별무리 심장’이 차가운 푸른빛을 뿜어내며 희미하게 떨렸다.

그녀의 미소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이제는 싸늘한 승리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내 눈앞에서,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 유진은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었던 양 나의 빛을 흡수했다. 온몸의 마력이 빨려 나가는 듯한 극심한 고통과 함께 나는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도시의 파괴는 막았을지언정, 나는 그 어둠 속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빛의 마법소녀, 시아는 그렇게 죽었다.

***

차가운 돌바닥이 등에 닿는 감각이 이제는 낯설지 않았다. 나는 폐허의 가장 깊은 곳, 태양조차 닿지 않는 지하 통로에서 간신히 숨을 이어왔다. 온몸의 마력이 증발한 빈 껍데기가 되어 며칠을 헤맸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쓰러져 죽어가던 나를 구해준 건… 이 폐허의 심장부에 잠들어 있던 고대의 존재였다.

그것은 빛이 아닌 어둠이었다. 희망이 아닌 절망이었다.
“복수를 원하느냐.”
낮고 음산한 목소리가 내 의식 깊은 곳을 파고들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원합니다.”
피폐해진 영혼의 바닥에서 끓어오르는 단 하나의 욕망이었다. 유진에게 모든 것을 되갚아주고 싶었다. 내가 느꼈던 이 고통, 이 절망, 이 배신감을 그녀도 똑같이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고대의 존재는 비웃듯이 중얼거렸다. “빛은 너를 버렸고, 친구는 너를 배신했다. 이제 너의 영혼은 어둠에 속한다.”
몸 안에서 차가운 기운이 솟구쳤다. 그것은 빛의 마력과는 전혀 다른, 거칠고 파괴적인 힘이었다. 내 안의 ‘별무리 심장’이 있던 자리에, 새로운 어둠의 심장이 자리 잡는 것을 느꼈다. 꿰뚫렸던 상처는 아물었지만, 그 자리에 새겨진 것은 빛의 흔적이 아닌 어둠의 맹세였다. 왼쪽 뺨의 흉터는 빛을 잃은 내 얼굴에 더욱 뚜렷하게 음영을 드리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서진 잔해들 사이로 비치는 달빛이 마치 날 비웃는 듯했다. 도시의 중심에서는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유진의 마력, 내가 빼앗긴 ‘별무리 심장’의 빛이었다. 그녀는 나의 빛을 흡수하고, 내가 쌓아 올린 명성을 가로채어 ‘새로운 희망의 마법소녀’로 군림하고 있을 터였다.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 끝에서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이내 단단하고 날카로운 그림자 칼날로 변했다. 과거의 내가 꿈꾸던 아름다운 마법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이 힘은 훨씬 더 직접적이고, 훨씬 더 파괴적이었다.

“유진.” 내 목소리는 폐허에 메아리쳤다. 더 이상 울음기 섞인 연약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차갑고 단단하게 벼려진 칼날 같은 목소리였다. “너는 모든 것을 가졌다. 내가 이룬 모든 것을. 이제… 내가 너에게서 모든 것을 되찾아줄 차례야.”

어둠이 내 몸을 감쌌다. 더 이상 ‘빛의 시아’는 존재하지 않았다. 폐허의 깊은 곳에서 태어난 것은, 복수만을 갈망하는 검은 마법소녀였다. 내 이름은 시아. 그리고 나는 이제, 너의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다. 이 폐허를 벗어나 다시 세상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굳건했고, 눈동자에는 피처럼 붉은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밤의 장막이 드리운 도시가, 내 복수의 무대가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