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무도회, 그 열아홉 번째 대회가 열린 흑요석 산맥의 거대한 아레나. 수천, 수만 명이 운집한 관중석은 흡사 웅장한 하나의 생명체처럼 숨을 죽이고 있었다. 중앙의 거대한 원형 무대 위에는 두 명의 그림자가 대치하고 있었다.
“천무진!”
누군가 외쳤다. 고요를 찢는 한마디는 그러나 메아리도 없이 사라졌다. 모든 이의 시선은 오직 한곳에 박혀 있었다.
청년 천무진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서 있었다. 그의 짙은 눈동자는 얼핏 고요한 호수 같았으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 같은 빛을 품고 있었다. 반대편에는 마치 벼락을 형상화한 듯한 백뢰가 굳건히 서 있었다. 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뇌운처럼 무겁게 아레나를 짓눌렀다.
“결승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 백뢰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쇳소리가 섞인 그 음성은 뇌정벽력권(雷霆霹靂拳)의 권법처럼 맹렬했다. “네놈의 심연내공(深淵內功)이 이 정도일 줄이야.”
천무진은 아무 말 없이 백뢰를 응시했다. 그의 시선은 백뢰의 단단한 육체 너머, 그가 휘감고 있는 뇌전의 기운 속에서 어른거리는 미묘한 균열을 감지하고 있었다. 이 아레나의 돌벽에는 고대 문양들이 기이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대회가 진행될수록 그 문양들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어쩌면 착각이 아닐지도 몰랐다.
“말이 없군. 좋다. 입 대신 주먹으로 답하겠다!”
백뢰의 외침과 함께 그의 몸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발아래 무대가 *파직* 소리와 함께 갈라졌다. 폭발적인 가속, 순간이동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백뢰는 천무진의 코앞에 도달했다. 그의 오른팔이 *콰앙!* 소리와 함께 전방을 향해 뻗어 나왔다. 그것은 단순한 주먹이 아니었다. 푸른빛을 머금은 백색 섬광, 뇌정벽력권의 필살기, ‘벽력일섬(霹靂一閃)’이었다.
허공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맹렬한 기압이 천무진을 덮쳤다. 관중석조차 그 여파에 휘청이는 듯했다. 그러나 천무진은 놀랍게도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에서 옅은 보랏빛 섬광이 스쳤다. 백뢰의 주먹이 도달하기 직전, 천무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것은 어둡고 깊은, 그러나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러운 장막과도 같았다.
*쉬이이익-*
벽력일섬의 기세가 천무진의 몸에 부딪히자 거짓말처럼 흡수되었다. 거대한 파도가 검은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백뢰의 맹렬한 권풍이 천무진의 심연내공 속으로 사라졌다.
“뭐, 뭐라고?” 백뢰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의 공격은 흡수당했을 뿐 아니라, 역으로 내부에서 기운이 뒤틀리는 듯한 불쾌감에 휩싸였다.
“네 공격은…” 천무진의 낮은 목소리가 아레나에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평온함과 함께 알 수 없는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결국, 너 자신을 갉아먹는 칼날일 뿐.”
천무진의 오른손이 천천히,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궤적으로 움직였다. 그의 손끝에서 검은 기운이 끈적하게 피어올랐다. 그것은 단순히 기(氣)의 형태를 넘어, 마치 살아있는 촉수처럼 흐느적거렸다. ‘현천일섬(玄天一閃)’. 그의 심연내공의 정수였다.
*촤악!*
그 검은 기운은 백뢰의 뇌정벽력권이 흡수된 곳, 그의 기운이 비틀리는 바로 그 지점을 향해 뻗어 나갔다. 마치 약점을 꿰뚫는 암살검처럼 정교하고 치명적이었다. 백뢰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그의 온몸에 뇌전의 기운이 폭주하듯 휘몰아쳤다.
“이런 사악한 무공이!” 백뢰는 분노로 포효했다. 그의 육체는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듯 보였다.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르고, 피부 밑으로 푸른색 혈관들이 뱀처럼 꿈틀거렸다. 그의 눈동자는 순간적으로 흐릿해지며, 그 안에서 희미한 녹색 빛이 아른거렸다.
그 빛은 아레나의 벽면에 새겨진 고대 문양들이 발하는 빛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천무진은 백뢰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저것은 단순한 강기가 아니었다. 백뢰의 내면을 잠식하고 있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무언가의 그림자였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감지하고 있었다. 이 천하제일무도회가 단순히 무림의 패자를 가리는 대회가 아니라는 것을. 운명을 건 싸움이라고 했지만, 그 운명의 대상이 ‘인간’만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라! 만뢰천장(萬雷天掌)!”
백뢰는 모든 것을 걸 듯 양손을 모았다. 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온 뇌전이 하나로 합쳐지며 거대한 구(球)의 형태를 띠었다. 그 구체는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었다. 그 안에서 어렴풋이 형언할 수 없는 형상들이 꿈틀거리는 듯했고, 기이하게 일그러진 공간의 틈새가 얼핏 보였다. 그것은 아레나를 감싼 모든 기운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주변의 돌벽이 *우드득* 소리를 내며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천무진은 백뢰의 만뢰천장을 온몸으로 마주했다. 그의 심연내공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백뢰가 만들어낸 균열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른 차원, 다른 존재가 이 세계를 엿보는 창과 같았다.
천무진은 결심했다. 그 균열을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고. 그래야만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흡수… 그리고 파동(波動)…”
천무진의 두 손이 마치 거대한 심연을 끌어당기듯 천천히 벌어졌다. 그의 심연내공이 한계치를 넘어 폭주하기 시작했다. 온몸의 혈관이 터져 나갈 듯 부풀어 올랐지만, 그의 얼굴에는 묘한 평온함이 감돌았다. 그의 등 뒤, 무대 바닥의 그림자가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어지며 흔들렸다. 마치 그림자 자체가 숨을 쉬는 듯했다.
*쉬이이이이이이이익…!*
백뢰의 만뢰천장이 엄청난 속도로 천무진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아레나의 바닥이 거대한 지진이 난 듯 요동쳤다. 공기가 비명처럼 찢어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모든 것이 파괴될 것 같은 찰나, 천무진은 오히려 두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기이한 보랏빛 문양들이 순식간에 펼쳐졌다. 그것은 아레나 벽면의 문양과 흡사했으나, 훨씬 더 복잡하고, 훨씬 더 깊은, 고대의 비밀을 담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천무진의 시야에 모든 것이 변했다.
백뢰의 만뢰천장은 단순한 뇌전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가능한 기하학적 형상들이 뒤틀리고 뒤섞인, 혼돈 그 자체였다. 그 혼돈의 한가운데, 만뢰천장이 만들어낸 공간의 균열 너머로, 그는 보았다.
우주 저편의 심연, 별들이 타버린 망각의 공간 속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을. 그것은 형언할 수 없는 규모와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어둠보다 더 짙은 어둠 속에서, 세상의 모든 빛을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눈동자가,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천천히 깜빡이는 것을.
그 눈동자는 천무진과 백뢰, 그리고 이 천하제일무도회 전체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대회가 아니었다.
이것은… 거대한 존재를 위한 ‘의식’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만뢰천장의 모든 파괴력이 천무진에게 덮쳐들었다.
세계가 비명을 질렀다.
— 다음 화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