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화: 꺾이지 않는 투지
투기는 검은 맹수처럼 경기장을 휘감았다. 결승 진출을 코앞에 둔 준결승전. 관중석은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했고, 그들의 숨 막히는 열기는 거대한 원형 경기장을 펄펄 끓는 용광로로 만들었다. 강철처럼 단단한 바닥에는 이미 수많은 균열이 거미줄처럼 번져 있었다.
그 균열의 한가운데, 강하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전신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 같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의 두 눈은 맹수처럼 번뜩였다. 땀과 피가 뒤섞여 그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고작 이 정도인가? 헛된 명성을 가진 잡배인 줄은 알았으나, 이리도 볼품없을 줄이야.”
강하진의 상대, 천무백은 흡사 거대한 바위 같았다. 흐트러짐 없는 자세, 냉혹한 눈빛, 그리고 그를 감싸는 압도적인 기운. 천하제일문(天下第一門)의 차기 문주이자, 이번 무신대회의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한 명인 그의 실력은 실로 벽과 같았다. 천무백의 주먹은 단순한 물리력을 넘어섰다. 공간을 찢고 시간을 일그러뜨리는 듯한 묵직한 권풍이 하진의 전신을 강타했다.
“흐읍!”
하진은 간신히 버티며 뒤로 밀려났다. 이미 그의 팔다리에는 붉은 실금들이 가득했다. 천무백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것은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그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거대한 파도를 피하듯 권격을 흘려보냈지만, 그마저도 체력 소모가 극심했다.
‘젠장, 끝이 없어… 이대로 가면 체력 차이로 밀린다.’
이곳에 온 지 얼마나 되었던가. 평범한 지구에서 살던 강하진이라는 이름은 이제 이 지독한 무림에서 살아남기 위한 껍데기가 되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도, 이곳에서 살아남을 방법도, 그가 바라는 모든 해답은 오직 이 무신대회의 승리에 달려 있었다. 그가 지닌 ‘시스템’의 유일한 안내는 ‘승리만이 모든 것을 밝힐 것이다’는 모호한 문장이었다.
‘죽을 순 없어… 여기서 무너지면… 모든 게 끝이다.’
하진의 눈에 섬광이 스쳤다. 그는 과거, 시스템이 강제했던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익혔던 한 가지 원리를 떠올렸다. 이 세계의 무인들이 ‘기’라는 형태로 다루는 에너지를, 그는 ‘자연의 섭리’와 ‘운동 에너지의 법칙’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가 몸을 뚫는다는 이들의 억지 같은 이론 속에서도, 그의 머릿속은 항상 냉철한 계산으로 가득했다.
“피하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가? 천하제일의 칭호가 이리도 우습게 들리는군.” 천무백은 멸시하듯 읊조렸다. 그의 발이 바닥을 짓밟자, 경기장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거대한 기운이 다시 한번 하진을 덮치기 직전이었다.
‘저 틈! 저거라면!’
천무백의 맹렬한 팔극권이 하진의 심장을 향해 쇄도하는 찰나. 하진은 몸을 뒤로 젖히는 동시에, 그의 발이 바닥을 긁으며 솟아올랐다. 단순한 발차기가 아니었다. 몸의 모든 기운을 끌어모아, 회전의 원심력을 극대화한 ‘회천각’이었다.
쾅!
굉음과 함께 천무백의 쇄도하던 주먹이 허공을 갈랐고, 그의 몸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뒤로 밀려났다. 하진의 회천각이 그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으나, 그 여파만으로도 천무백의 자세는 완전히 무너졌다. 억눌렸던 폭풍우가 터져 나온 듯, 경악과 흥분의 함성이 관중석을 휩쓸었다.
천무백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스쳤다. ‘이런 잡기에…!’ 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 순간, 하진은 회천각의 반동으로 몸을 돌리며 그의 정강이를 후려쳤다.
퍽!
견고한 천무백의 정강이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뒤로 밀렸다. 고통은커녕, 천무백은 오히려 그 충격에 이를 악물고 하진의 어깨를 붙잡았다.
“건방진!”
엄청난 악력에 하진의 어깨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 상태로 천무백은 하진을 공중으로 집어 던졌다. 하진의 몸이 무방비 상태로 치솟았다. 무방비한 상대에게 날리는 천무백의 일격은 필살이나 다름없었다.
“크아아악!”
천무백의 외침과 함께 그의 오른팔이 거대한 창처럼 뻗어 나갔다. 그 일격은 하진의 심장을 정확히 노렸다. 공간마저 찢어버릴 듯한 무시무시한 기세. 하지만 하진의 눈은 오히려 차분했다. 공중에서 몸을 회전하며, 그는 허공에 떠 있는 파편들을 잡아챘다. 아까 천무백의 공격으로 부서진 경기장 바닥의 작은 조각들이었다.
이 세상의 무인들에게는 단순한 돌멩이에 불과할지 몰라도, 하진의 눈에는 이것이 하나의 ‘무기’였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공중에 떠 있는 몸을 비틀었다. 모든 근육에 힘을 집중하고, 작은 돌멩이 조각들을 손가락 끝에 모아 천무백을 향해 던졌다.
쉬쉬쉬쉬쉬쉭!
일반적인 돌팔매질이 아니었다. 그의 손에서 벗어난 돌멩이들은 마치 탄환처럼 날아갔다. 수십 개의 파편이 천무백의 눈을 향해 쏟아졌다. 천무백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순간적으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건방진…!”
그 짧은 한순간의 틈. 그것이면 충분했다. 하진은 그 찰나의 순간, 몸을 비틀어 천무백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리곤 곧바로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게… 내가 배운 살법이다!”
천무백의 복부에 하진의 손바닥이 깊숙이 파고들었다. 무림의 고수들이라면 기를 막거나, 상대를 마비시키는 등의 내공을 담은 장법을 사용했겠지만, 하진의 공격은 달랐다. 그의 손바닥에서 터져 나온 것은 순수한 충격파였다.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파동이 천무백의 장기를 뒤흔들었다.
“커헉!”
천무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치 거대한 몽둥이로 얻어맞은 듯한 고통이 그의 복부를 강타했다. 온몸의 기운이 한순간 흐트러졌다. 그의 등 뒤로 보이는 거대한 경기장 화면에는, 천무백의 체력 게이지가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관중석은 다시금 정지된 듯 고요해졌다. 그리고 곧,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함성들이 거대한 공간을 뒤흔들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전개였다. 천무백의 얼굴에는 더 이상 당혹감을 넘어선,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네놈…!”
천무백은 이를 갈았다. 하진은 숨을 몰아쉬며 물러섰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이대로 물러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이 세계의 섭리를, 이 세계의 힘의 기준을, 자신이 익힌 ‘과학’과 ‘논리’로 깨부수려 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당신이 내 파도에 휩쓸릴 차례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진의 전신에서 푸른빛 기운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세계의 기운과는 다른, 그만의 독자적인 ‘힘’이었다. 경기장은 하진의 기운으로 푸르게 물들어갔고, 그의 다음 일격을 기다리는 관중들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