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톱니바퀴의 울음
무겁게 내려앉은 증기의 장막 아래, 비좁은 골목은 늘 끈적한 기름때와 눅눅한 쇠 냄새로 절어 있었다. 제국의 거대한 도시 ‘크로노스’의 심장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굉음은 이곳, 변두리 빈민가의 하늘을 영원히 덮어버린 먹구름과 같았다. 고철과 폐기물로 얼기설기 지어진 움막들 사이로 낡은 증기 파이프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그 사이를 비집고 흐르는 희뿌연 증기는 마치 빈자들의 한숨처럼 끝없이 피어올랐다.
낡은 작업등 아래, 유나의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기름때 묻은 작업복 소매를 걷어 올린 팔뚝은 가늘었지만, 톱니바퀴와 밸브, 스프링 사이를 오가는 손놀림은 놀랍도록 정확하고 거침없었다. 땀에 젖은 앞머리가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지만, 그녀의 눈은 거대한 증기기관의 심장과도 같은 장치에 오롯이 박혀 있었다. 작고 투박한 망치가 정교한 톱니를 건드릴 때마다 ‘쨍그랑’ 하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작업실을 채웠다.
강휘는 작업실 구석,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의 시선은 허공을 떠다니는 먼지 같았지만, 그 안에는 끓어오르는 용광로 같은 열기가 숨어 있었다. 낡고 해진 가죽 재킷 위로 희미하게 묻은 녹물 자국은 그가 얼마나 많은 밤을 거리에서 헤매었는지를 말해주는 듯했다. 턱밑에 거뭇하게 자란 수염은 그의 표정을 더욱 읽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는 그저 유나가 만들어내는 기계음만이 유일한 배경음악인 듯 묵묵히 앉아 있었다.
“다 됐어.”
한참 만에 유나가 허리를 폈다. 그녀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이젠 놈들의 전송 장치를 꽤 오랫동안 마비시킬 수 있을 거야. 넉넉잡아 30분. 그 정도면 충분하지?”
강휘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의 발밑에서 낡은 나무 바닥이 ‘삐걱’ 소리를 냈다.
“30분? 제국 공병대라면 10분 안에도 복구할 수 있는 시간이지. 그래도… 이 정도면 됐어. 기회는 만들 수 있을 거야.”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다.
유나가 손에 든 검은색 원통형 장치를 강휘에게 건넸다. 금속으로 정교하게 세공된 표면에는 미세한 톱니바퀴들과 압력계가 박혀 있었다. 증기압으로 작동하는 간이 교란기였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내 작품을 무시하는 거야?” 유나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강휘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금세 사라졌다.
“무시하는 게 아니야. 그냥… 모든 게 너무 아슬아슬해서 그렇지. 놈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건 언제나 쉽지 않아.”
유나는 강휘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쉬운 싸움이라고 누가 그랬어? 우리는 어차피 이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한 번쯤은 발버둥이라도 쳐봐야 하는 사람들이잖아.”
강휘는 장치를 받아들고 손 안에서 굴렸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그의 손바닥에 와닿았다.
“발버둥… 그래, 어쩌면 우리는 고장 난 톱니바퀴가 계속 돌기 위해 애쓰는 것과 같지.”
그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제국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거대한 톱니를 돌리려고 우리를 쥐어짜고, 우리는 그 톱니에 끼어버리기 전에 달아나거나, 아니면… 부숴버리거나.”
“부숴버려야지.” 유나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저 썩어빠진 제국의 핵심부까지 닿을 수는 없어도, 저 거대한 증기망의 한 조각이라도 망가뜨려야 숨통이 트일 거 아니야.”
오늘 밤 그들의 목표는 제국군의 핵심 보급 물자를 수송하는 ‘강철 코뿔소’ 열차였다. 제국의 동부 전선에 식량과 증기 연료, 그리고 최신형 자동병기를 나르는 그 열차는 제국 권력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평소라면 제국의 강력한 방어망 때문에 접근조차 불가능했지만, 오늘 밤은 달랐다. 도시 외곽의 폭설과 증기 라인 고장으로 잠시 방어 시스템에 빈틈이 생겼다는 정보를 입수했던 것이다. 아주 짧은, 찰나의 기회.
강휘는 벽에 걸린 낡은 지도에 시선을 던졌다. 희미한 램프 불빛 아래, 지도 위로 붉은 펜으로 표시된 선이 열차의 경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정보가 정확하다면, ‘검은 협곡’을 지날 때 놈들의 무전기가 먹통이 될 거야.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딱 하나다.”
유나가 자신의 등에 멘 배낭을 고쳐 맸다. 배낭 속에는 개조된 스팀 라이플과 각종 공구들이 들어 있었다.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어. 저 열차에 실린 무기들이 결국 우리 같은 사람들을 죽이는 데 쓰일 테니까.”
강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폐 속으로 차가운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그래, 확실히 해야지.” 그는 허리에 찬 투박한 권총을 만졌다. 총신에는 닳고 닳은 가죽 끈이 감겨 있었다. “이제 갈 시간이야.”
유나는 작업실 탁자 위에 놓인 작은 증기 램프를 껐다. ‘쉬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작업실은 순식간에 암흑에 잠겼다. 밖에서는 제국 도시의 거대한 증기기관들이 내뿜는 굉음과 매연 냄새가 더욱 짙게 느껴졌다.
강휘는 문을 열었다. 좁고 어두운 골목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눅눅한 바람이 그들의 얼굴을 스쳤다. 하늘에는 제국 감시용 비행선들이 희미한 불빛을 깜빡이며 천천히 유영하고 있었다. 그 비행선들이 뿜어내는 매연은 별빛조차 가려버린 채였다.
그들은 그림자처럼 골목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는 제국의 거대한 기계음 속으로 파묻혔다. 마치 먼지처럼 작고 하찮은 존재들이지만, 그들의 손에 들린 고철 덩어리들이 언젠가 제국의 톱니바퀴를 멈춰 세울 수 있기를 바라면서. 증기의 그림자 아래, 희미한 희망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